빌립보서 4:21~23 문안하라 2018. 7. 15

 

2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22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 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오늘로 빌립보서를 마무리합니다. 전체를 읽으면 7분 정도 걸립니다. 그런데 우리는 2018. 1. 7일에 시작하여 오늘까지 26회 설교를 했습니다. 시간이 이렇게 걸린 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와 성경이 말하는 단어의 내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을 우리는 적극적 사고방식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내가 정성을 바치면 능력이 많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원을 성취하여 줄 것이라는 말씀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살펴보려고 하니 시간이 많이 걸린 것입니다.

 

오늘 본문 21~22절을 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고 합니다. 성도끼리 문안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옆 사람과 문안인사를 해 볼까요? 친한 사람끼리는 인사도 잘 하는데 잘 모르는 사람에게 문안하라고 하면 어색해 합니다. 그런데 저도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설교만 듣고 가만히 가시는 분들은 누가 누구인지 저도 모릅니다. 성도라면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입니다. 몸은 하나이지만 여러 지체가 있는 것처럼 성도란 한 몸의 지체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남녀노소 인종이나 신분의 차이가 없이 한 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고 하면서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한다고 합니다. 지금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곳에서 함께 하는 형제들과 로마 교회의 성도들이 빌립보 교회에 문안을 합니다. 그러면서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 중 몇 사람이 너희에게 문안한다고 합니다. 가이사는 로마의 황제입니다. 로마의 황제는 이미 신격화 되어 있기에 가이사가 주가 됩니다. 그런데 갈릴리 나사렛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것은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에 예수님을 믿는 자가 있다고 합니다. 가이사의 집 사람들이라면 로마의 황제 가이사의 일을 돌보는 사람인데 노예일 수도 있고 자유인 일수도 있지만 이들이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요한복음 19:12~16절입니다. “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13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14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1)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5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16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빌라도는 예수님이 유대인의 지도자들이 시기심으로 넘겨준 것을 알기에 풀어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빌라도를 압박하기를 자신을 왕이라고 하는 예수를 풀어준다면 가이사를 반역하는 일에 동조하는 것이니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 압박과 받고 또 민란이 일어날 것처럼 보이기에 하는 수 없이 군중들에게 예수를 보이면서 보라 너희 왕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를 없애라고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합니다. 그러자 빌라도가 내가 너희의 왕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겠느냐고 하니 대제사장들이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다고 합니다. 로마식민지의 한 변방 예루살렘, 여호와 하나님을 주로 믿고 메시아를 기다린 그들이 정작 메시아가 오셔서 주와 그리스도임을 증거 하셨지만 그들은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이 원하는 메시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원하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이고 종교적인 메시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을 다 잡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인줄 알았던 바울도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완전히 바뀌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어 복음을 전합니다. 여러 이방인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예루살렘에 왔다가 유대인들이 죽이려고 하자 가이사에게 상소함으로 지금은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사도행전 23:10~11절입니다. “10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은 바울이 그들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인을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내로 들어가라 하니라 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이방인 지역에 삼차에 걸쳐서 복음을 전하고 또 이방인 교회가 연보한 것을 예루살렘 교회에 들고 왔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 하자 부활을 믿는 바리새인과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 사이에 큰 분쟁이 일어나 바울이 찢겨 죽을 지경이 되었기에 로마의 천부장이 바울을 부대 안에 들여놓았습니다. 그 날 밤에 주님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시기를 담대하라고 하시면서 예루살렘에서 증언 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 하여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로마에 증언하러 가는 모습이 죄수의 모습으로 끌려가지만 로마의 시민권이 있기에 로마 군인이 보호하여 로마에까지 갑니다. 그 로마의 감옥에서 이미 시위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빌립보서 1:12~14절입니다. “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14 2)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복음이 잘 증거 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내가 세상에서 잘 되어야 복음이 잘 증거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신에 의하여 복음이 가려져서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당한 일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되었다고 합니다. 바울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시위대란 로마의 황제에게 상소를 하였기에 로마 황제의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여 가이사의 집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었습니다. 가이사의 집 사람들 몇 사람이 성도가 된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일을 하면서도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었습니다. 발각이 되면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옥에 갇힌 바울이 전하는 그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능력이며 은혜라고 합니다.

 

빌립보서 1:1~2절을 봅니다. 내용을 그대로 읽어나가면서 그동안 자세하게 말씀드린 내용을 다시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합니다. 2절을 같이 읽으면서 우리도 인사를 합시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1:3~11절입니다. 바울사도가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 마가 기쁨으로 항상 간구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게도니아 지역의 첫 교회인 빌립보 교회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바울이 복음 전하는 일에 같이 협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착한 일이라고 하면서 이 일을 시작하신 분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것을 확신한다고 합니다. 복음을 믿고 그 복음에 참여하는 일을 주님께서 시작하시고 그리스도 예수의 날 곧 재림 때 까지 이루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은혜에 참여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더욱 사랑과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여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1:12~18절입니다. “봉독 앞에서도 찾아본 말씀입니다만 바울이 옥에 갇힌 것이 복음에 방해가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의 진전이 되었으며 로마의 중심부인 가이사의 집 사람들에게도 복음이 증거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로 인하여 바울 대신 우리가 더 열심히 전도해야 되겠다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에 바울을 시기하면서 자신들이 더 옳은 일꾼이라고 하면서 전도하는 사람들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그리스도가 증거 되는 것으로 기뻐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자기부인이 되는 모습입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 없습니다.

 

1:19~21절입니다. 빌립보 교회가 바울을 위한 기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을 말하면서 자신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한다고 합니다. 살든지 죽든지 우리의 몸에서 누가 존귀하게 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는 내가 존귀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내가 그리스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게 되면 자신이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합니다. 공개적인 신앙상담에 어떤 분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죽는 것이라고 대답 헸습니다. 우리의 주체성과 자율성과 자아라는 것이 죽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날마다 자신이 죽는 것으로 나타납니다(고전15:31).

 

1:22~26절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육신으로 살아갑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자신의 열매인데 내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알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삶과 죽음 그 둘 사이에 끼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여러 가지 선책의 기로에 끼어 있습니다. 둘 사이에서 무엇을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요? 바울은 지금 삶과 죽음 사이에서 차라리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좋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육신으로 사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다고 합니다. 자신으로 인하여 빌립보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여 지기를 원하고 있기에 살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모습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삶인지 나만을 위한 삶인지 이 말씀으로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27~30절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합니다.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복음을 믿는 자들을 대적하는 자들은 그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가 됩니다. 복음을 믿음으로 핍박을 받으면 그것이 구원의 증거가 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왜 핍박을 받습니까? 예수님이 세상에 속한 분이 아니시기에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에 속하였다면 세상이 우리를 사랑하겠지만 예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서 택하셨기에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입니다(15:18~19). 복음을 듣고 오는 사람들에게 세상 사람들에게 일어나지 않는 어려움들이 일어나는 것을 제가 종종 듣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그를 믿을 뿐만 아니라 고난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도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그 고난이 아니라면 저주 받아 죽은 십자가에 눈길이라도 주었겠습니까!

 

2:1~11절을 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가 서로 권면하고 사랑하고 위로하고 성령의 교제를 하면서 긍휼과 자비를 나타낼 때에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람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으라고 합니다. 같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유오디아와 순두게 같은 사람들의 다툼이 빌립보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려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빌립보서만이 아니라 모든 성경의 핵심 내용이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자기 비하, 자기 낮추심, 자기 비움입니다. 헬라어로 케노시스라고 합니다. ‘케노시스는 원래 그리스도 자신이 부요하신 분인데 그 부요함을 버리시고 가난하게 되셨다(고후 8:9)’는 뜻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자기를 비워 십자가에서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자기에게로 이끌어 들여서 자기의 몸으로 세우시는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십자가의 죽으심이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신 자리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높아지신 주님은 눈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성경의 계시를 믿음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성령의 역사로만 됩니다. 이런 자들은 지금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주와 그리스도로 믿습니다. 이렇게 되려면 마음이 낮아지지 않으면 결코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이 역사 속에서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은 고난이 당연히 수반됩니다.

 

그러나 이 역사 속에서 낮아지지 않음으로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 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자들이나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시인함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여기서 하늘에 있는 자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로 보면 됩니다. 땅 아래 있는 자란 그리스도 밖에서 죽은 자로 보면 됩니다. 그렇다면 땅에 있는 자들이란 지금 살아있다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는 것입니다.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천하를 얻어도 생명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2:12~30절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합니다. 이것은 구원을 우리가 이루어내야 한다는 말씀이 아니라 바울이 없을 때에라도 사도가 전한 이 복음에 굳게 서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어서 나오는 말씀이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여러분들의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무희 무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역한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3:1~16절입니다. 바울이 개들을 삼가라고 합니다. 개들이라고 하는 자들은 손으로 할례를 행한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을 무효화 하려고 하는 율법주의 자들이기에 경계하면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우리가 바른 할례파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육체를 신뢰하는 자가 있다면 자기는 누구보다 육체를 자랑할 만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율법에 철저하였는지 모태 히브리인이었으며 바리새파였으며 가말리엘 문하생이었으며(22:3) 율법의 의로 흠이 없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다 해로 여기며 배설물로 여겼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말합니까? 그러한 의로 완벽하다고 하였을 그 때에 예수 믿는 자를 돌로 쳐 죽이는 일에 앞장 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예수 믿는 자를 다 잡아 죽이는 일이 하나님의 영광인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바울을 예수님께서 이방의 사도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합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 가장 귀함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다 이루었다고 하지 않고 예수께 잡힌바 된 것을 향하여 달려간다고 합니다.

 

3:17~19절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본 받으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원수들의 마침은 멸망입니다. 그들의 신은 배라고 합니다. 배는 욕망을 상징하기에 욕망을 신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들이 영광이라는 것이 부끄러운 것들이며 땅의 일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하늘에 시민권이 있습니다. 내가 하늘에 시민권이 있는지 없는지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나의 삶의 가장 중요한 추구의 방향이 땅의 것인지 하늘에 있는 것인지 말씀에 비추어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하늘에 시민권이 있는 사람이라면 거기로부터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립니다. 재림을 기다립니다. 그가 오실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입니다.

 

4:1~22절입니다. 다툼이 있는 자들에게 한 마음을 가지라고 합니다. 그리고 복음에 함께 한 자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는 것을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복음을 믿고 그 복음에 힘쓰는 것으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에든지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기를 기원하면서 빌립보 교회에 보낸 연보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연보를 보내서 기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이 너희의 열매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족하기를 배웠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합니다. 이것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4:23절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이 있을지어다빌립보서를 마무리하면서 하는 인사입니다. 빌립보서 전체를 다시 보면서 주가 어떤 분이신지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보았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분이 사람이 되어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살과 피를 주심으로 우리가 생명의 양식을 얻었습니다. 그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 이 세 단어만 제대로 안다면 이보다 더 크고 놀라운 문안이 없습니다. 모두 문안합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이 있을지어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