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14~15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2018. 8. 26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본문 14절입니다. 첫 구절이 요한이 잡힌 후에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마가복음 6장에서 나옵니다. 헤롯이 자기 동생 빌립의 아내를 차지한 것입니다. 이것을 요한이 책망하자 헤롯이 감옥에 가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거 하였기에 거침없이 헤롯에게 회개하라고 하다가 감옥에 갇힌 것입니다. 회개하라고 하는데 감옥에 가야 하는 것이 이 세상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요한이 잡혔다는 이 단어가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팔았다는 단어와 같습니다(3:19).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은 세상이 싫어하는 소식이 분명함을 보여줍니다.

 

그 다음은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십니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신 후에 왜 갈릴리로 가시는 것입니까? 누가복음 4:14절을 보면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로 돌아가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광야로 가신 것도 성령께서 내 모셨습니다. 갈릴리로 가신 것도 성령께서 가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의 사역을 하실 때는 늘 성령의 인도를 따라 행하십니다. 그러나 십자가 이후에는 성령의 세례를 주시는 분이십니다(2:33). 갈릴리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십자가지시고 부활하신 후에도 갈릴리에서 제자를 만납니다(16:7). 왜 그럴까요?

 

이사야 9:1~2절입니다. “1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1)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스불론과 납달리는 야곱의 아들 이름이지만 이들이 정착한 곳을 따라 지명(地名)이 됩니다. 이들은 갈릴리 호수 주변에 자리 잡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수도가 예루살렘이 되면서 이곳은 변방이 되었습니다. 이방인과 섞여 사는 지역으로 멸시를 당하는 곳이 이곳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이곳으로 가게 하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게 하시며 십자가 이후에도 이곳에서 제자들을 만나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으로 전한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사야 9:6~7절입니다.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이루십니다. 이것이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님께서 이루어내십니다.

 

본문 14절을 다시 봅니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합니다. 갈릴리에 가신 것이 성령께서 인도하신 것이며 이것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임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루시는데 한 아기를 주시고 그 아기로 오신 분이 다윗의 왕좌에 앉을 것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왕을 지상의 힘 있는 나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나라가 아님을 갈릴리에서 하나님의 복음의 전함으로 보여주고 계십니다.

 

여기서 살펴볼 내용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마가복음 전체에서 예수님의 언행이 다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이후에 성령이 임한 자들은 예수님의 언행을 복음이라고 전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지금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믿는 것이 유대인들이 복음을 믿는 일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배척하는 것은 복음을 배척하는 것이 됩니다. 지금 우리들은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믿습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내용이 예수님의 언행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언행이 복음인데 유대인들은 믿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이 가지고 있는 문자적이고 자기 민족중심적인 메시아 관 때문입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라고 하여도 구약에 무수하게 많이 예언되어 있는 메시아의 내용들을 문자대로 믿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메시아가 고난 받는 종으로 오실 것도 분명하게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런 구절들은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정말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특성입니다. 그래서 제가 복음을 듣는 것도 취향이라는 말씀을 자주 드리는 것입니다.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 자기 취향에 맞는 말이 있으면 은혜 받았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다른 복음이라고 합니다.

 

본문 15절입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합니다. 때가 찼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율법을 받아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들은 율법의 의미를 모르고 율법의 의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인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때가 찼다는 것은 율법과 선지자들이 증거 한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됩니다(3:21).

 

갈라디아서 4:1~7절입니다. “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1)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여기서 때가 차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때가 차기 전에는 어디에 갇혀있었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어린 아이 때에는 종과 다름이 없이 그 아버지가 정한 때 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후견인과 청지기가 율법입니다. 이것을 세상의 초등학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아버지의 때가 되어 후견인과 청지기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직접 아버지의 다스림을 받는 때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자기 백성들을 속량하시고 부활하셔서 성령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명분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릅니다.

 

여기서 초등학문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헬라어로 스토이헤이아라는 말인데 고대의 우주관과 운명론 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세계관이라고 보면 됩니다. 사람은 그 시대의 세계관에 영향을 받습니다. 유대인으로 태어나면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어려서부터 율법의 훈련을 받으면서 자랍니다. 우리가 조선시대에 태어나면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배웁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그 시대의 아들들입니다.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이나 자기들의 세계관이 견고합니다. 이것을 초등학문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사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표범이 그 얼룩반점을 바꿀 수가 없고 흑인이 그 피부색을 바꿀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13:23).

 

본문 15절을 다시 봅니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십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곧 아들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흑암의 권세에서 끄집어 내셔서 그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1:13). 그 아들 안에서 속량을 얻는 것입니다(1:14).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은 지금 예수님께서 그 나라를 이루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그 아들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합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완전히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보았습니다만 초등학문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자신의 세계관이 틀렸음을 알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세계관은 율법을 다 지켜 행하여야 하나님의 백성 자격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이런 자들이 회개를 하려면 자신이 가진 율법의 의를 쓰레기와 배설물로 여겨야 합니다. 율법의 의로 입은 옷이 누더기임을 알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회개하는 것이며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의를 버릴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지켜온 율법입니까? 조상 대대로 받은 율법을 목숨 걸고 지켜왔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버립니까?

 

이방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나라들마다 자국의 이상적인 진선미(眞善美)가 다 있습니다. 북한의 가치관이 있습니다. 남한의 가치관이 있습니다. 미국의 이상적인 가치관이 있습니다. 중국의 이상적인 가치관이 있습니다. 이러한 자기들의 가치관들을 진리이며 선이며 아름다운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가치관들이 죄라고 하면서 그런 길에서 돌이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님의 뜻이 내 안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전하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하듯이 이방인도 배척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세상에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다는 인간으로는 불가능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교회로 모이는 것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죽이기 위하여 이렇게 모이는 것입니까? 아니면 내가 살아야겠고 살아도 더 멋있게 살고 천국까지 가기 위하여 이렇게 모였습니까? 우리는 단연코 후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나는 이미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은 지 오래되었다고 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은 지금도 유효하게 들려야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화석화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안다는 사람들도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에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안다고 하는 자들이 자신들이 말하는 십자가 이론이나 복음의 이론을 절대화시키면서 자신들과 같은 표현을 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이단으로 내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들은 자신들의 이론과 생각이 견고한 진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0:4~5절입니다. “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6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견고한 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우리의 이론과 모든 생각들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죄와 사망아래 태어났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배운 이론과 생각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이 역사 속에서 이런 것이 무너져 내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는 예수님마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자들이 어떻게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시고 성령을 부어주시면 그제야 회개하고 복음을 믿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사도들이 복음을 전합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다시 살리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동일하게 선포되는 복음의 내용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이론과 생각들이 무너져 내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이 복음의 선포 앞에 어찌할꼬! 하는 회개가 일어납니다. 이들에게 사도들은 주 예수를 믿으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1:14~17절입니다. “14 헬라인이나 3)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을 의롭다 하시는 능력이 복음입니다.

 

고린도전서 1:21~24절입니다.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2)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복음 전도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만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간에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지혜임을 믿게 됩니다. 이 복음의 선포는 과거형이 아닙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합니다. 회개하라는 복음을 믿지 않는 것이 죄가 됨을 알아야 바른 회개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게 되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가 됨을 압니다(16:9). 그러므로 회개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자기의 행위나 자기의 이론과 생각을 믿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다 이루었다고 하신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