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출애굽기 30:17-21 물두멍 2011. 4. 24

 

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8 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만들어 씻게 하되 그것을 회막과 제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으라 19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20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제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여호와 앞에 화제를 사를 때에도 그리 할지니라 21 이와 같이 그들이 그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할지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이 대대로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합니다. 오늘 말씀도 물두멍을 만들게 하시고 그곳에 물을 담아두었다가 제사장이 늘 씻도록 합니다. 제사장들의 수족을 씻어야 합니다. 회막에 들어갈 때에 씻어야 하고 제단에 가까이 가서 수종을 들 때도 씻어야 하고 여호와 앞에 화제를 사를 때에도 씻어야 합니다. 씻지 아니하면 죽습니다. 그동안 본 말씀에서도 죽는 다는 말씀이 많았습니다. 분향을 할 때에 다른 불을 담아도 죽게 됩니다. 향연으로 가리지 않아도 죽게 됩니다. 이런 규례에도 불구하고 구약 전체를 보면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율법의 기능이란 인간이 죄 아래 갇혀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율법 이전에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먼저 보여주시고 그 뒤에 430년이 지나서 모세의 언약을 통하여 보여주신 것은 인간이 율법의 행위로서 의롭다 함을 받을 수가 없는지를 보여주십니다. 그러면서 다윗에게 또 아브라함과 같은 일방적은 언약을 주시면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새 언약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든 제사와 율법과 규례들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물두멍을 만들게 합니다.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어 그곳에 물을 담아두고 제사장들이 씻어야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국어사전에는 ‘두멍’이 물을 많이 담아 두고 쓰는 큰 가마나 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두 번째 뜻이 또 있는데 ‘깊고 먼 바다’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물두멍을 단지 물 담아 두는 그릇이 아니라 바다라고 봐도 됩니다. 이런 바다에 대한 말씀이 다윗이 성전의 설계도를 성령을 통하여 받고 솔로몬에게 주어서 성전을 건축하는 내용에서 보게 됩니다.

 

역대하 4:5-6절을 봅니다. ““5 바다의 두께는 한 손 너비만 하고 그 둘레는 잔 둘레와 같이 백합화의 모양으로 만들었으니 그 바다에는 삼천 밧을 담겠으며 6 또 물두멍 열 개를 만들어 다섯 개는 오른쪽에 두고 다섯 개는 왼쪽에 두어 씻게 하되 번제에 속한 물건을 거기서 씻게 하였으며 그 바다는 제사장들이 씻기 위한 것이더라” 물두멍 열 개를 만들고 물두멍 외에 또 놋으로 만든 바다를 만들게 해서 제사장들로 씻게 합니다.

 

두멍이 얼마나 큰지 바다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봅니다. 작은 물두멍에서 물을 길어 붓고 씻다가 물이 떨어지면 제사를 지낼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아예 바다가 있다면 물이 부족하지 않겠죠! 에스겔 47:1-12절을 보시면 에스겔 선지자가 새로운 성전이 완성된 것을 환상으로 봅니다. 그 성전의 동쪽 문에서 물이 흘러나옵니다. 물을 측량하는데 일천 척을 측량하니 발목에 이르고, 다시 일천 측을 측량하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일천 측을 측량하이 건너지 못할 강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강물이 가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납니다.

 

오늘 세례식을 합니다. 물론 어린 아이가 무엇을 알겠습니까만 부모들에게 질문을 하고 나중에 만 15세가 되었을 때에 네 부모가 서약한 이 내용을 네가 믿겠느냐고 묻고서 입교를 합니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 하나라도 기억을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이 아이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고 성령으로 거듭나는 은혜가 필요한 것을 인정하십니까?” 갓난아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준다는 것은 물로서 세례를 주는데 그 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금요일 설교준비를 하다가 우연히 책상위의 놓인 물병의 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1. 물은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다. 2. 인체의 75%이상이 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비율을 표로 만들어 놓았는데 뇌와 심장은 75%, 폐와 간은 86%, 신장은 83%, 근육은 75%, 혈액은 83%, 뼈는 22%가 물로 되어있다고 합니다. 3. 물은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으나 인간은 물 없이는 살 수 없다. 물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런 물은 아무리 마셔도 영생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물에 잠겨버리면 다 죽게 됩니다.

 

성경에서 물로 인한 심판의 모습이 창세기 6-7장에 나옵니다. 온 세상이 죄악이 가득하였기에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그 죄악이 가득한 모습이 사람들이 자기 마음에 좋은 대로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런 홍수 심판에서 살아남은 자가 있습니다. 노아와 그 가족입니다. 이 사건을 기록하면서 노아는 은혜를 입었더라고 합니다. 은혜를 입었기에 방주를 예비하고 방주를 탔습니다. 방주에 타지 않는 자는 물로서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물은 죽고 사는 것을 보여줍니다.

 

창세기에서 물을 통한 심판과 구원을 보여주신 것이라면 출애굽기에서 물로 인한 심판과 구원이 홍해바다에서입니다. 고린도전서 10:1-4절입니다.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바다 속에서, 물속에서 살아나온 사건을 세례라고 합니다.

 

그러나 다수를 기뻐하지 아니하여 광야에 멸망을 받았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물속에 잠기는 침례로 해야 하느냐, 물을 뿌리는 세례냐의 논쟁은 아무른 의미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17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 교회가 파당이 나누어 졌습니다. 나는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기에 누구에게 속하였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누가 십자가를 졌느냐고 책망하면서 세례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함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세례란 씻는 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물론 제사장들이 물두멍의 물을 가지고 씻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씻으라는 율법을 더 철저하게 지키기 위하여 일상생활 속에서도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으라는 장로들의 유전들을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지켜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을 때에 왜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지 않느냐고 따집니다. 예수님께서 책망하시기를 사람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에 대하여 책망하신 후에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15:17-20절입니다. “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사람의 입으로 나오는 것이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우리의 마음에 무엇이 가득하다는 말씀입니까? 악한생각, 살인, 간음, 음란, 도적질, 거짓 증언, 비방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여기에 해당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씻어야 합니다.

 

어떻게 씻을 까요? 밥 먹을 때 마다 씻으면 됩니까? 예배당에 들어올 때 마다 씻으면 됩니까? 성당에는 입구에 성수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물을 찍어 바르고 들어갑니다. 그런다고 마음이 씻어지느냐의 문제입니다. 저는 청년 때에 이 율법의 규례들을 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지 자주 씻었습니다. 그래서 결벽증일 정도로 씻었습니다. 그렇게 씻는다고 마음이 씻어지지 않습니다. 마치 흑인과 한국 여성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손을 씻는다고 돌멩이로 문질러 피가 나도록 씻어도 검은 것이 씻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레미야 13:23절입니다.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구스 인이란 흑인을 말합니다. 흑인이 피부를 어떻게 바꿀 수가 있습니까? 표범이 그의 반점을 씻어서 없앨 수가 없습니다. 만약 가능하다면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스스로의 행위로는 어떤 행위로도 자기의 더러움과 악함을 씻을 수가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죄인들을 씻기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앞에서 자기의 손을 씻고 있는 인간들이 경건하고 거룩하다고 여기는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란 물로 씻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함께 죽고 그리스도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구약에서는 씻는 장치를 통하여 보여주십니다. 너희가 아무리 씻고 또 씻어도 마음에서 나오는 악을 무슨 방법으로 씻을 수가 있느냐는 말입니다. 율법의 규례를 적용하여 그렇게 정결하게 한다고 한 사람들이 오히려 완전하게 씻어주실 수 있는 분을 배척하였다는 것이 인간의 죄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죄란 다른 것이 죄가 아니라 예수님으로부터 씻음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 죄인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하실 때에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종이 하는 일을 예수님께서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발 씻어주심을 거절합니다. 어떻게 주님이 저의 발을 씻어주십니까? 제가 씻어드려야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렇다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십니다. 너무 엄청난 말씀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씻음을 받지 않으면 아무른 상관이 없는 자라고 하시자 베드로가 발만 아니라 온 몸을 다 씻어 달라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온 몸을 씻은 자는 발만 씻어도 된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씻음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목욕도 해야 하지만 날마다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무엇으로 씻어주시는 것입니까? 물이 아니라 자신의 피로서 씻어주십니다. 이것을 로마서 6장에서 보시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것을 세례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홀로 죽고 홀로 살아나셨는데 그 홀로 죽고 살아나신 사건에 성령을 보내셔서 함께 죽고 살아난 것으로 묶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자신의 죄와 비참함을 알게 되고 이런 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주님의 보혈 안에 거하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3:20-22절입니다.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22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21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그 물은 지금 여러분을 구원하는 세례를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세례는 육체의 더러움을 씻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힘입어서 선한 양심이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입니다” 노아 홍수 때의 물이 지금의 세례를 미리 보여 준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세례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합류가 되는 것이 세례입니다. 이렇게 합류가 된 사람은 하나님께 대하여 반응을 보입니다.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됩니까? 노아홍수 때에 방주를 예비하며 살았던 노아처럼 살게 됩니다. 노아가 방주를 예비하며 산 것처럼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살게 됩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자는 깨끗하게 단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 단장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입니다. 떡과 잔을 받으면서 왜 예수님의 살과 피로서만 참된 생명이 되는지, 예수님의 살과 피 만이 우리로 하여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점과 흠과 티도 없이 세워지게 되는지를 마음 속 깊이 새겨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