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출애굽기 30:22-33 거룩한 관유(灌油) 2011. 5. 1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23 너는 상등 향품을 가지되 액체 몰약 오백 세겔과 그 반수의 향기로운 육계 이백오십 세겔과 향기로운 창포 이백오십 세겔과 24 계피 오백 세겔을 성소의 세겔로 하고 감람기름 한 힌을 가지고 25 그것으로 거룩한 관유를 만들되 향을 제조하는 법대로 향기름을 만들지니 그것이 거룩한 관유가 될지라 26 너는 그것을 회막과 증거궤에 바르고 27 상과 그 모든 기구이며 등잔대와 그 기구이며 분향단과 28 및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29 그것들을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 구별하라 이것에 접촉하는 것은 모두 거룩하리라 30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기름을 발라 그들을 거룩하게 하고 그들이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고 31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이것은 너희 대대로 내게 거룩한 관유니 32 사람의 몸에 붓지 말며 이 방법대로 이와 같은 것을 만들지 말라 이는 거룩하니 너희는 거룩히 여기라 33 이와 같은 것을 만드는 모든 자와 이것을 타인에게 붓는 모든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하라

 

오늘 말씀은 거룩한 관유를 만들어 성막의 기구들과 제사장에게 바르게 합니다. 관유(灌油)는 붓는 기름이라는 말입니다. 관유로 사용하는 재료는 상등 향품으로 하되 액체 몰약 오백세겔과 그 반수의 향기로운 육계 이백오십 세겔과 향기로운 창포 이백오십 세겔과 계피 오백 세겔을 성소의 세겔로 하고 감람기름 한 힌을 재료로 하여 거룩한 관유를 만들되 향을 제조하는 법대로 향기름을 만들게 합니다. 이 기름은 성막의 기구들과 제사장들에게 발라서 거룩하게 하며 이 거룩한 기름이 발라진 기구에 접촉만 하여도 거룩하여 집니다.

 

그런데 이 향이 얼마나 향기로웠는지 사람들이 자기들을 위하여서도 만들어 붓도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향기름의 제조법으로 만들어 사사로이 사람에게 붓고자하면 만드는 자와 붓는 자가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보니 몇 년 전에 본 향수라는 영화가 생각이 납니다. 향수 하면 프랑스이지요! 그런데 영화에서 프랑스의 시장과 서민들이 사는 거리가 얼마나 불결하고 냄새가 진동을 하는지 한마디로 돼지우리 같이 질척거리는 거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상류층에서는 비싼 향수를 사서 뿌립니다. 그러나 거룩한 향유는 사람들이 만들어 사용하면 죽임을 당한다고 합니다. 이런 말씀이 무슨 뜻인지 보려고 합니다.

 

관유를 제조하여 성막의 기구들에 바르고 제사장에게 바르게 하는 것은 칼빈이 이렇게 해석을 했습니다. “기름과 혼합시킨 향품은 의심 없이 성령의 모형이다”고 합니다. 거룩한 관유를 부어서 성막의 기구들과 제사장에서 바름으로 거룩하게 구별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이루어내실 일로 보여주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루어내신 모든 일이 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일어난 일이라는 말입니다. 성령이 임하신 것을 구약의 기름부음과 연결이 되기에 성령의 임하심을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늘의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사람보다 더 낮은 종의 모습으로 오신 것은 자기 백성의 죄를 속죄하시는 것인데 이것도 성령으로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잉태되시고(마1:18), 성령의 세례를 받으시고(요1:33), 성령을 한량없이 받으신 것은(요3:34)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다 이루시기 위하여 기름부음을 받으신 것입니다. 또한 구약의 선지자들도 기름 부으심에 대하여 많이 증거 합니다. 스가랴서에서 두 감람나무가 등대에 기름이 공급되는 것을 이미 보았습니다.

 

오늘은 기름부음에 대한 이사야서 61:1-3절을 봅니다.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사야 선지자의 이 예언의 성취를 예수님께서 이루어 내신다고 하는 말씀을 신약에서 봅니다.

 

누가복음 4:16-30절입니다. “봉독” 나사렛 회당에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것은 회당장이 한 사람을 지목하여 읽게 하는데 성경도 회당장이 내어 놓은 두루마리 성경을 읽게 됩니다. 읽은 자가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성경이 마침 이사야 성경이었고 예수님은 지금 우리가 본 이 말씀을 읽으시고 이 말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다고 하십니다. 즉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느 부분만 읽으신 것입니까? 은혜의 해를 전파한다는 말씀까지만 읽으셨습니다. 보복의 날, 심판의 날, 신원의 날에 대하여는 아직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이 심판의 날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받는 것이며 주님 재림하시는 날에 드러나기에 아직 말씀하지 않은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은혜로운 말씀을 듣고서는 이 사람의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고 의아해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지 못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고 하시고서 하나님의 선택을 말씀합니다. 엘리야 시대 때에 삼년 육 개월의 흉년에 수많은 이스라엘의 과부가 있었지만 엘리야가 보내심을 받은 과부는 이방 지역의 한 과부 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엘리사 시대 때에 이스라엘의 수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지만 이방인 나아만 한 사람뿐이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자들이 회당에서 쫒아내어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 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가십니다. 이 날이 안식일입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예수님께서 있고 예수님께서 그 기름 부으심을 받은 자가 해야 할 일을 지금 한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그것도 경건하게 안식일에 회당이 모인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는 것은 이들을 누가 장악하고 있는 것입니까? 악령이 장악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기름 부으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믿는 것은 사람에게서 나온 능력이 아니라 창세전에 예정된 자들만 믿게 된다는 말입니다. 기름 부으심을 받은 자란 히브리말로 메시아이며 헬라말로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예수님을 증거 할 때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고 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게 되는 것은 결코 우리의 능력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으로 인하여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33절입니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자 사람들이 이들을 보고 새 술에 취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아침 9시인데 어떻게 술에 취하였겠느냐며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요엘 선지자의 예언대로 말세에 모든 육체에 성령을 부어주신다는 그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로 통하여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서 어떻게 할까를 묻습니다. 38절을 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거꾸로도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이렇게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 다른 말로 성령이 임하여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을 역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라고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다시 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한 분이 기름부음 받은 자입니다. 이 분이 이루어내실 일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증거 됩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증거 되는 것은 가난한 자가 부자가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의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세상에 가난한 자를 택하셔서 믿음에 부요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늘의 부요, 영적인 부요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친다는 것은 세상의 것을 더 차지하지 못하여 마음이 상한 자에게 세상의 것을 더 차지하도록 하여 고쳐준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의 통치가 일어나지 않음을 보고 마음이 상한 자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다리며 속상해 하는 자들, 즉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들을 고쳐주십니다. 포로 되고 갇힌 자를 해방시키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감옥을 파괴하고 죄수를 풀어내신 것이 아닙니다. 죄와 사망에 사로잡혀 있는 자를 의와 생명의 나라로 옮기시는 일을 이루어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름 부으심 받은 자의 사명을 다 이루어내시면 그로부터 기름 부음이 임한 자들이 생겨납니다. 이사야 61:3절을 다시 봅니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기름 부음을 받으신 예수님이 그의 일을 이루어 내실 때에 그 혜택을 받은 자 또한 기름 부음이 있습니다. 이 기름 부음이 기쁨의 기름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낼 자가 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기름 부으심이 있습니까? 세상에서 아무 것도 없다고 할지라도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으로 인하여 기쁨이 있습니까? 세상에 가난한 자를 택하여 믿음에 부요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이 부요한 것보다 세상에 부요하기를 좋아한다면 평생을 교회 다녀도 참된 기쁨을 맛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기쁨의 기름 부음이 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전에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라고 합니다. 왜 유쾌하게 됩니까? 이어지는 20-21절을 봅니다. “봉독” 예수님을 곧 보내주신다고 합니다. 지금은 하늘에 계시지만 곧 오실 분이십니다. 이 소식이 얼마나 유쾌한 소식입니까?

 

이 소식이 아직 유쾌하지 않다면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만지지 못하였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29절을 봅니다. 기름을 바른 기구들이 지극히 거룩하여 그 기구에 접촉이 되면 거룩하여 집니다. 물론 제사장도 거룩한 기름을 발랐으니 제사장에게 접촉이 되어도 거룩함을 입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형이기에 실체이신 예수님께서 접촉이 되어야 거룩함을 입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접촉이 됨으로 거룩함을 입은 자들의 이야기가 복음서에 많이 기록이 된 것은 구약의 거룩함을 입는 것의 완성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만져주신 자들이 있고 예수님께 나아와 만진 자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곳의 말씀만 보겠습니다.

 

마가복음 5:25-34절입니다. “봉독”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알아온 한 여자가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당하였습니다. 돈만 허비하고 병은 더 중하여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고 예수님께 다가가 그 옷에 손을 댔습니다. 그러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른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능력이 나간 줄 아시고 돌아서서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고 합니다.

 

제자들이 무리가 에워싸 미는데 누군지 알고 그렇게 묻느냐고 합니다. 손을 댄 사람이 한 두 사람이겠습니까? 그런데 그 여인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기에 두려워하며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아룁니다.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강건하라고 하십니다. 이 여인의 믿음이 여인에게서 나온 것으로 말씀하시지만 능력이 예수님께서 나온 것처럼 이 여인의 믿음 또한 예수님에게서 나온 것으로 저는 믿습니다. 지극히 거룩한 물건에 접촉되는 것으로 거룩함을 얻는 다는 것은 예수님께 접촉이 된 자가 거룩함을 얻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접촉이 오늘날은 성령을 통하여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믿게 하시는 일로 나타납니다. 요한 1서 2:27절입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이렇게 주 안에 거하는 자는 어떻게 됩니까? 28절입니다.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