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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3:7-16 동행 2011. 7. 3

 

7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8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 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9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10 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 11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12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1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15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 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16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지난주 말씀이 하나님을 만나려면 장신구를 떼어내라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장신구만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장막을 옮겨버립니다. 물론 이 장막은 생활하는 장막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회막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회막은 광야의 성막과 다릅니다. 제사장들이 상주하며 제사하는 곳이 아니라 모세 홀로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입니다. 이곳은 다른 사람이 아무도 오지 않고 여호수아만 그 장막을 지키게 됩니다. 그러면 왜 모세가 이스라엘의 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 진 밖에서 만나야 합니까?

 

지난주에도 보았습니다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목이 곧은 백성과 함께 하시면 백성들이 진멸당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모세가 만나는 회막을 이스라엘 백성의 진에서 격리시킴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나중에 성막이 만들어지면 항상 진의 가운데 하나님의 성막이 세워집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스라엘의 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나갑니다. 모세의 이 행동을 알아차린 백성들은 모세를 따라 진 밖으로 나갑니다. 이들이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면 자기들의 장막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는 것을 봅니다. 그때 구름기둥이 내려 회막문에 섭니다. 여호와의 임재를 보여줍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기를 마치 친구에게 말씀하시듯이 하셨다고 합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막문에 서서 여호와께 예배합니다. 모세가 돌아오면 여호수아만 그 장막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런 장막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를 마치 친구처럼 말씀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신을 낮추었기에 죄인인 모세를 친구처럼 대하실 까요?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과 만남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을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언제라고 여깁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배시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만약 예배시간이라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만 하나님을 만난다고 하면 그것은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우상은 고정되어 있습니다. 형상물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메이도록 만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시간과 공간에 매이지 않으시고 자기의 뜻대로 만나주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만나주실 때에 무언가 격리가 됩니다.

 

김서택목사의 출애굽기 설교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축약해서 전합니다. ‘공식적인 교회가 부패하면 하나님은 공식적인 교회 밖에서 자기 백성들을 만나십니다. 가토릭 교회가 썩어 인간의 제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몰아낼 때 하나님께서는 로마교회 밖에서 자기 백성들을 만나셨습니다. 이것이 지금의 개신교입니다. 개신교도 교회가 커지고 오래되면 제도가 교회를 끌고 갑니다. 하나님은 그런 인간의 제도에 제한되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십니까? 많은 가정 교회를 일으켜서 거기서 자기 백성을 만나십니다.’

 

다른 사람의 말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프랭크 바이올라라는 사람의 ‘유기적 교회 세우기’를 보면 지금 미국에서 한해 백 만 명 정도의 교인이 기존의 교회에서 이탈하여 다른 모임을 가진다고 합니다. 가정교회와 같은 모임을 가진다고 합니다. 그러한 가정교회들이 세워지고 무너지고 이합집산들을 하는 것을 보면서 초대교회의 모형이 어떤 것인지를 밝히면서 제도에 얽매인 교회가 아니라 유기적인 교회는 이런 것이라고 아주 구체적인 대안까지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 중에 한 부분을 인용합니다.

 

‘유기적 교회라고 할 때 그것은 영적 생명에 의해 태어난 것을 뜻한다. 즉, 그것은 인간의 제도로 조직되어 종교적 프로그램에 의해 유지되는 교회가 아니라는 말이다. 유기적인 교회 생활은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바탕으로 한 경험이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며 교재 하는 친밀한 공동체, 모든 지체가 다 제 기능을 발휘함, 목사 한명이 주도하는 예배가 아닌 누구나 직접 참여하는 열린 모임, 서열이 없는 지도자층, 모임의 실제적 지도자요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성과 우월성이 드러난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우리가 특정한 교회나 특정한 지도자만 의지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내가 매일 의지하려고 하는 것에서 단절하고 격리를 해보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심성에 맞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늘푸른교회도 어느 순간에 우리만의 색깔이 나오게 됩니다. 과연 말씀이 그러한가를 보지 않고 우리 목사님이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으로 진리의 척도로 삼고 있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다른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주로 그렇게 말합니다. 말씀이 과연 그러하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목사님이 뭐라고 하느냐에 관심을 둡니다.

 

모세처럼 진에서 격리하여 나가보아야 합니다. 사람의 가르침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보라는 말입니다. 요한1서 2:27절입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누가 우리를 가르칩니까? 성령께서 가르칩니다. 이렇게 하려면 특정인의 가르침에 매이지 말고 과연 말씀이 그러한지 말씀을 읽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모세에게 친구처럼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종말의 시대에 누구로 말씀하십니까?

 

히브리서 1:1-3절입니다. “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이 아들의 등장으로 모세는 하나님의 친구라고 하였는데 졸지에 하나님의 집의 사환이 되어버렸습니다.

 

히브리서 3:5-6절입니다. “ 5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모세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실하였다고 합니다. 우선 모세가 하나님의 집의 종으로 신실하였다는 것을 출애굽기 본문에서 보시면 진에서 격리하여 나가서 하나님과 만나 대화를 하였다는 말입니다. 황송스럽게도 하나님께서 모세를 친구에게 말씀하시듯이 말씀하셨습니다. 그 결과 모세가 하나님의 뜻도 알고 다음과 같이 간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33:12-16절입니다. 지난 주 말씀과 연결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땅에 올라가라고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친히 가시지 않으시고 천사를 보내시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모세는 제가 주께 은총을 입었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겨 달라고 합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시는 길이 모세가 쉬는 길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모세가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 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말아달라고 합니다. 나와 주의 백성이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겠습니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극히 낮추셔서 친구처럼 말씀하셨다는 것은 모세가 받은 말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통하여 참된 복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하시면 그곳은 지옥이 됩니다. 그러니 차라리 가나안에 들여놓지 말게 하여 달라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시면 이 광야에서 죽는 것이 낫습니다. 이런 간구가 됩니다. 이런 간구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에 할 수 있는 간구입니다. 그러나 이런 모세조차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에 들여놓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야 합니다. 율법의 한계가 무엇인지도 보여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의 아들은 어떻습니까? 모세와 선지자와 시편이 증거 한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의 충성됨이란 모세와 감히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모세는 자신도 죄인이라서 반석을 명하라고 하였는데 반석을 쳤습니다. 처음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할 때에는 반석을 치게 하지만 두 번째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할 때는 반석을 명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명하지 않고 반석을 지팡이로 치면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 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민수기 20:1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모세와 아론이 믿지 않았다는 것과 여호와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반석은 바울사도가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한번 희생으로 족한데 이것을 믿지 못하고 그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봅니다. 이로 인하여 약속의 땅의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약속의 땅에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신다는 믿음으로 들어갑니다. 그 약속을 어떻게 이루어내십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이루어내십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온전하고 완전한 속죄를 단번에 영원히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맡겨주신 자를 완벽하게 구원하여 내십니다. 구원하여 내실 뿐만 아니라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의 보증으로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백성이라면 성령이 임한 자가 주의 백성이 됩니다. 성령이 임한 자는 이제부터 자기를 믿지 않고 예수님을 믿고 삽니다. 이런 자를 예수님은 친구라고 불러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이 죄임을 알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의에 대한 책망을 받습니다. 유일하신 의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버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심판에 대하여 책망을 받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판단이 두렵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임금이 심판을 받았기에 그런 세상의 심판과 판단이 두렵지가 않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주님이 동행하여 주시는 자는 천만인이 나를 둘려 치려고 하여도 나는 두렵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은 패거리를 모을 이유도 없고 다른 사람의 동의를 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늘날도 주님께서 동행하시는 사람은 인간적인 면으로 볼 때에 외로운 사람입니다. 에녹을 보시기 바랍니다. 300년을 주님과 동행하였다고 합니다. 물론 자녀도 낳고 생활도 하였습니다. 그 동행의 시작이 므두셀라는 낳고부터 동행합니다. 므두셀라 낳을 때가 65세인데 이때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계시입니다. 므두셀라가 죽는 해가 노아 600세 되던 홍수가 나던 때입니다. 그러므로 므두셀라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는 계시로 인하여 늘 주님과 동행하였습니다(유다서1:14-16절 참고). 에녹이 하나님의 심판을 계시 받고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늘로 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과연 다시 오실 주님과 동행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의지적 결단이 아니라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자들이 주와 동행하게 됩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도 맛보아 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