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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4:1-9 처음 것과 같이 2011. 7. 17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다듬어 만들라 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2 아침까지 준비하고 아침에 시내 산에 올라와 산꼭대기에서 내게 보이되 3 아무도 너와 함께 오르지 말며 온 산에 아무도 나타나지 못하게 하고 양과 소도 산 앞에서 먹지 못하게 하라 4 모세가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그 두 돌 판을 손에 들고 여호와의 명령대로 시내 산에 올라가니 5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에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실새 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8 모세가 급히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9 이르되 주여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원하건대 주는 우리와 동행하옵소서 이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니이다 우리의 악과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주의 기업으로 삼으소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로 맺은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여 금송아지를 섬김으로 하나님의 언약의 증거를 담은 돌 판이 깨어졌습니다. 모세가 돌 판을 깨뜨림으로 임시조치를 취하였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다듬어 만들라고 합니다. 모세가 깨뜨린 처음 판에 있던 말씀을 하나님께서 다시 쓰신다고 합니다. 돌 판을 만들어 준비하여 산꼭대기에 올라오되 아무도 너와 함께 오지 말라고 하십니다. 짐승들도 그 산 앞에서 먹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사람이나 짐승이나 견딜 수가 없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계시 전달을 위하여 긍휼을 입었습니다.

 

우리는 처음이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처음 마음을 잊지 말라고 합니다. 또 일이 뒤틀리면 처음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라는 영화를 보면 순박한 청년이 좋아하는 처녀에게 말도 못하고 군 입대를 하고, 광주항쟁을 진압하려고 차출되어 가고, 형사가 되고, 사업을 하면서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 자신을 보다 못하여 자살하기 위하여 철교위에서 달려오는 기차를 마주 서서 ‘나 돌아갈래!’ 고함지르면서 영화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화에서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지 현실은 자살하려고 선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처음 자리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처음 과 같이 만들어 오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처음과 같이 만들어 내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은 반드시 성취가 되기 때문입니다. 4절을 봅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세가 돌 판을 처음 것과 같이 만들어서 올라갑니다. 처음의 돌 판은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돌 판은 모세가 만들어서 올라갑니다. 모세에게 만들어 오라고 하신 이유는 그 돌 판이 누구 때문에 깨어졌는지를 알게 하시기 위한 것으로 봅니다. 흔히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여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가 바로 우리의 죄로 인한 것임을 알지 못하면 그저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사랑을 순전히 우리 인간의 구원을 목적으로 삼아버립니다. 이것을 인본주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천지 창조는 하나님의 자기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그 영광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하여 우리를 구원하여 내십니다. 그 구원의 방법이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바라본다는 것은 마치 두 번째 돌 판을 들고 올라가는 모세와 같은 심정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말씀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인간들이 죽여 버렸는데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내십니다.

 

내가 돌 판을 깨어버렸는데 다시 만들라고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이 깨어버려도 처음 것과 같이 다시 만들어 내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내가 예수님을 죽였는데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을 죽인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다고 하는 것은 언제나 우리가 하나님을 살해한 자라는 흔적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모세가 두 번째 돌 판을 만들어 간 것은 처음 것이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하여 깨어졌다는 것이 전제가 됩니다. 그러므로 처음 것과 같이 만들어 가서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 넣습니다. 이렇게 다시 새겨진 말씀을 어디에 담아 둡니까?

 

언약궤 속에 담아 둡니다. 언약궤에 담아둔 이유는 이 언약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대로 적용을 하면 날마다 심판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 심판이 일어나야 하는 말씀을 언약궤에 담고 그 위에 뚜껑을 만들어 덮어둡니다. 이 뚜껑의 이름이 속죄소입니다. 죄를 속하는 자리이며 하나님의 은혜가 수여되는 자리입니다. 이 뚜껑에 일 년에 한번 대제사장이 어린 양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서 뿌려야 합니다. 그 언약의 말씀을 적용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죽어야 하는데 대신 어린 양이 희생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한 말씀이기에 단 한 말씀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성취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말씀을 본다는 것은 두려움입니다. 중3인 수연이가 방학이라 부모님과 함께 금요성경공부에 참여합니다. 지금 창세기를 쓰고 있다고 하는데 하나님이 두렵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이 두렵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사야 66:1-6절을 봅니다. “봉독” 하나님을 위하여 집을 지어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을 위하여 소와 양을 바치는 것 보다 더 기뻐하시는 자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이런 자들을 돌보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두려워 떠는 자들을 그렇지 아니한 자들이 쫓아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두려워 떨지 아니한 자들은 심판을 받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의 선포 앞에서 얼마나 두려워하는지를 본문 8절을 봅니다. “봉독” 얼마나 하나님의 이름의 선포 앞에 두려워 떨었는지 급히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우리와 동행하여 달라고 합니다. 우리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의 선포 앞에서 두려워 떱니까? 6-7절을 봅니다. “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하나님의 이름이 참으로 깁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이 하실 일을 그 이름의 선포를 통하여 보여줍니다. 여호와는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많으셔서 그 인자를 천대까지 베푸시기에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시지만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와 인자는 천대까지 베푸시는데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악행은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신지와 그 보응은 잠간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모세가 이 말씀을 듣고 왜 당장 엎드려 동행하여 주시기를 간청하면 자기들은 목이 뻣뻣한 백성이라고 하였을까요?

 

이 이름의 선포는 처음 돌 판에 기록이 될 때에 주신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20:5-6절입니다.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파기되지 않습니다. 깨어버려도 다시 처음 것과 같이 만들어 내십니다. 여호와의 이름의 선포를 듣고 모세가 당장 엎드려 은총을 구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은혜와 보응이 엄청난 차이를 보입니다. 천대라는 말은 영원이라는 뜻이며 삼사 대는 잠깐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이름의 선포 앞에서 당장 엎드린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목이 곧은 백성이라 천대의 은혜는 고사하고 날마다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을 본 것입니다. 이런 것이 신명기의 언약 갱신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신명기 28장에서 복과 저주가 나옵니다. 우리는 복만 좋아하지 저주는 싫어합니다. 그런데 복 보다 저주의 양이 세배가 넘습니다.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여야 합니다. 여기서 모든 이라는 말을 사람들이 간과합니다.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키다가 하나만 어겨도 저주가 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당장 엎드려서 은총을 구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과연 경외함으로 보느냐는 말입니다. ‘나는 가수다’는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경쟁 프로그램들이 경쟁하듯이 나오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하여 녹화되어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청중들의 반응이 종교이상이었습니다. 그 간절함과 사모함이 눈에 보입니다. 두 손을 꼭 모두고 눈을 감기도 하고 가수의 동작과 표정과 음을 하나도 놓지 않으려고 몰입을 하는데 감정이입이 되었는지 눈물을 줄줄 흘리고 환호성을 지르고 기립박수를 보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종교인들보다 더한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듣고 전하는 자들의 모습이 어떤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두려워 떨면서 당장 엎드린 모세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인간의 죄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은총을 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그 은총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동행 하여 주십니다. 그러나 그냥 동행할 수가 없기에 성막을 만들고 언약궤를 만들어 하나님의 말씀을 언약궤 안에 담아두는 방식으로 동행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돌 판이 언약궤 안에 보관이 되어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반역으로 인하여 한번 깨어졌다는 흔적을 가지고 있는 돌 판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망쳐도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그대로 이루어내십니다.

 

이런 모습을 이사야 55:10-11절에서 봅니다. “10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이사야 55장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록 범죄 하여 포로로 잡혀 갔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돌이키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목마른 자들아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합니다. 범죄 하여 포로로 잡혀갔으면 그곳에서 망해야 하는데 왜 다시 돌이켜 주십니까?

 

하나님의 이름의 선포가 무엇입니까? 은혜롭고 자비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기 입에서 나온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대로 출애굽이 일어납니다. 이들이 광야에서 반역하면 반역하는 자들을 죽이시면 서도 그 중에 자기 백성을 남겨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약속의 땅에서 또 범죄 합니다. 이들은 언약의 저주로 인하여 포로로 잡혀가지만 그 심판의 때가 차면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이렇게 되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그 과정의 이스라엘은 고난입니다.

 

마태복음 5:17-20절입니다.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 말씀 앞에 모세처럼 당장 엎드려 은총을 구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이 다 이루심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어내십니다. 모든 저주를 예수님이 대신 받으시고 자기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 순종함으로 나오는 의의 선물인 은총을 베풀어주십니다. 이 은총의 선물을 성령을 통하여 받은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당장 엎드리게 됩니다. 주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심을 인하여 감사하며 자신의 죄가 어떠한지를 알기에 입을 가리고 회개하며 주님의 은혜만을 사모하고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늘에 속한 것이나 땅에 속한 것 모든 만물과 모든 피조물이 보좌에 계신 이와 어린양께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리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과 같이 이루어내시는 일입니다. 이 은총을 받은 사람은 그 날이 오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