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2:19~24 그리스도 예수의 일 2018. 4. 1

 

19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20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21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22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23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지를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24 나도 속히 가게 될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본문 19절을 봅니다. 바울사도가 빌립보 교회에 디모데를 속히 보내기를 주 안에서 원한다고 합니다. 디모데를 보내려고 하는 이유는 빌립보 교회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고 한다고 합니다. 이런 표현은 바울사도의 교회에 대한 염려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염려는 오늘날 우리가 교회를 위한 염려와는 결이 다릅니다. 우리는 교회라고 하면 자꾸만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건물과 사람의 숫자와 외형적은 일들을 중심에 두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빌립보 교회는 그런 외형적은 것들이 별로 없습니다. 가정집에서 시작된 예수 믿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이런 교회가 복음으로 인한 믿음과 교제와 핍박에 대하여 소식을 알려고 디모데를 보내려고 한 것입니다.

 

20절입니다. 디모데를 보내려고 하는 것은 바울과 같은 뜻을 가지고 빌립보 교회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디모데 밖에 없다고 합니다. 디모데는 여러 서신에서 바울과 공동 발신자로 나옵니다. 그리고 영적인 아들이라고도 합니다. 디모데는 빌립보에 갈 때에 바울과 함께 갔습니다. 이러한 디모데가 바울과 같은 마음으로 교회를 위하여 염려한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로 먼저 보내기로 하였지만 바울 자신이 일이 어떻게 될지를 본 다음 보내기로 하고 에바브로디도를 먼저 보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디모데에 대하여 계속 말합니다.

 

21~24절입니다. 바울 주변에 여러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지만 디모데는 복음을 위하여 바울과 함께 수고하였다고 합니다. 마치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과 같이 바울의 복음사역에 함께 한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한 것입니다. 이러한 디모데를 빌립보에 보내기를 바라고 바울 자신도 속히 가게 될 것을 확신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디모데가 자신의 재판의 과정을 보고 보내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자신도 속히 가게 될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무죄 석방이 되어 빌립보에 다시 가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이 바울의 심정이었습니다.

 

오늘은 21절의 그리스도 예수의 일에 대한 말씀을 중점적으로 보려고 합니다. 바울주변의 사람들이 각자의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멀리 떨어져 있는 빌립보 교회의 문제를 알아보고 해결하려고 나서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자기의 일들이 바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기꺼이 감당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이란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이란 곧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 하나님의 일, 교회의 일이라고 하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목사를 교인들이 어떻게 말합니까? 주의 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목사에게 잘하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으로 말합니다. 그래서 주의 종을 잘 섬기라고 하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주의 종이 주의 뜻대로 하지 않을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께서 알아서 하시니 너는 함부로 나서지 말라고 하는 말을 우리는 어려서부터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목사만 주의 종이 아니라 모든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다 주의 종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만물이 다 주의 것입니다(1:13~18).

 

오늘 제목이 그리스도 예수의 일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알려면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알아야 합니다. 그는 천지만물을 자기를 위하여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것을 아는 사람은 그의 피로 속량을 받은 교회만이 압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속량 받은 사람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관계를 화목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의 일이며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한다는 것은 그분이 하신 일을 알고 믿고 전하는 겁니다.

 

그러면 누가 그리스도 예수의 일 곧 하나님의 일을 하는 주의 종입니까? 바울과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와 같이 복음을 전하는 자가 주의 종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목사만 되면 다 거룩한 주의 종인 줄 압니다. 목사가 말하고 목사가 전하는 내용은 주의 종이기에 무조건 주의 뜻으로 알면 안 됩니다. 목사가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않고 자기의 야망과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비전을 선포하고 달려가면 그것이 결코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자들은 자기의 배가 신이 된 자들이며 십자가의 원수로 가는 자가 됩니다.

 

빌립보서 3:18~21절입니다. “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 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보라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바울사도가 자신을 본받으라고 하면서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보라고 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에 보내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않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말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하지만 그들의 신이 배가 되어 있는 자들이라면 그 마침이 멸망입니다. 그 신이 배라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 신이 되어 있는 자들입니다. 주의 일을 한다고 하고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지만 위엣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땅의 영광과 세상의 썩어질 것들을 추구한다면 십자가의 원수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는 자는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 자들이기에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분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종말의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성령은 말세에 부어지는 종말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로 다 이루시고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신 주님께서 오순절 성령을 부어주시자 성령이 임한 사도들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전합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으라고 합니다. 이렇게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은 자들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립니다. 그가 오시면 우리의 이 낮은 몸을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의 몸의 형체로 바꾸어주십니다.


오늘은 전 세계의 교회가 지키는 부활절입니다. 가톨릭이든 개신교이든 보수든 진보이든 오늘을 부활절로 지킵니다. 그런데 부활절을 지킨다고 해서 정말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되는 것입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고서는 함께 부활에 참여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에 연합되는 것은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은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누어주시는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신 일을 믿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26~29절입니다.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1)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2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그러자 무려 5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로 하여금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배타고 건너게 하시고 예수님은 그들을 피하여 산으로 가버리셨습니다. 다음날 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고 바다 건너 가버나움까지 예수님을 찾아 와서는 랍비여 언제 여기에 오셨느냐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찾아온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불러서 찾아왔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표적이란 십자가를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먹고 썩어질 양식만을 구하기 위하여 무리들이 몰려온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왜 여기에 모였습니까? 썩어질 양식을 구하기 위하여 오셨다면 잘 못 오신 것입니다. 썩는 양식은 혈과 육으로 심고 거두는 것입니다.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거두는 것은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동일하게 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악인과 의인에게 동일하게 햇빛과 비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썩어질 양식은 노력하는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에 와서 연보까지 하면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보다 썩어진 것을 덜 거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무리를 향하여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썩지 않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니 이들은 썩지 않은 일이란 하나님을 위한 일임을 알기에 어떻게 하나님을 일을 해야 하는지 묻습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자들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인 줄 압니다. 그런데 잘 분별하시고 눈여겨 살펴보아야 합니다. 전에 우리교회에 왔다가 일 년이 안 되어 다른 데로 이사를 가신 분이 있습니다. 부인은 참으로 열심히 교회 일에 충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마지못해 아내를 따라 다녔습니다. 우리교회에 와서 그 남편이 하는 말이 전에 다니는 곳에서 설교를 들어보니 왜 내가 저 목사의 욕망에 협조를 해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런데 그 부인은 저의 설교를 도저히 들을 수가 없어서 갈등하다가 다시 옛날 그 열심히 하던 교회로 남편과 가족을 데리고 돌아갔습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일입니까? 우리교회에 오신 여러분들이 전에 다니던 곳에서 열심히 교회 일을 하다가 오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듣고 쉼이 오는 것은 좋은데 계속 이렇게 쉬어도 되는가 하는 불안함이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6:29절입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은 내가 행하는 종교적인 사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일을 십자가로 다 이루신 것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요한복음 6:30~33절입니다. “30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1)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31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4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양식이 내려서 먹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내린 그런 음식을 먹고 죽는 양식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만나라는 것은 그림자역할입니다. 참된 생명의 양식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생명을 주는 떡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 떵을 항상 우리에게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떡이 누구인지 말씀합니다.

 

35~40절입니다.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듣고서 사람들이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인데 어떻게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이라고 하느냐며 수군거립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수군거리지 말라고 하시면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자기에게로 보내주시는 자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시고 다 구원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53~59절입니다.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59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그런데 사람들이 이 말씀을 못 알아듣습니다. 먹고 죽는 양식 곧 썩어질 양식을 위하여 예수님을 따라온 자들은 이 말씀이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결국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않았습니다(66). 이때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그러나 그 열둘 중에 하나는 배신할 것이며 나머지 제자들도 십자가 앞에서는 도망을 갑니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는 일은 인간이 할 수가 없습니다. 영생을 얻는 일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십자가로 다 이루시고 그 다 이루신 혜택을 성령으로 자기 백성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의 일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성찬식을 하는 것은 일 년에 한 두 번하는 의식으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아홉 살 아이가 자기 부모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영화를 보다가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버림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물어보라고 해서 몇 가지 말을 하면서 오늘 성찬식에서 보충하여 설명 해 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버림받는 것은 우리에게로 버림을 받아 우리가 예수님을 먹고 마심으로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 태어나실 때에 그 지역의 목동들에게 주의 천사가 나타나서 온 백성에게 미칠 기쁜 소식을 전하여 줍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를 알아보는 표적이 무엇입니까? 아기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것이 표적이라고 합니다. 아이가 왜 짐승의 먹이통인 구유에 누워진 것입니까? 사람은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면 멸망 받는 짐승과 같다고 시편에서 말씀합니다(49:12,20). 이런 짐승 같은 자들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만 영원한 생명을 얻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 일을 예수님은 십자가 지시기 전에 최후의 만찬에서 떡을 주시면서 자신의 몸이 생명의 양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잔을 주시면서 자신이 흘리는 피가 죄 사함을 얻게 하는 새 언약의 피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생명을 주시는 일입니다.

 

오늘 성찬식을 합니다. 일 년에 한 두 번 하는 의식으로만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셔서 그 살과 피를 주신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다 이루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찬을 하는 것은 눈으로 보는 설교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의 모든 설교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증거 하는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가 서로 교제하는 것도 예수님의 살과 피 곧 생명의 나눔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자기의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는 일에 충만하여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