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6~8 요한의 세례 2018. 7. 29

 

6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7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2)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2)세례를 베푸시리라

 

지난주에 복음의 시작을 보았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입니다. 나사렛에서 자라나신 예수,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가 되심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왜 복음이 되는가 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로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하나님의 약속을 성령을 통하여 자기 백성에게 부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이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분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율법에는 몸이 부정하면 씻게 하는 법은 있지만 세례요한과 같은 세례는 율법에 명시되지는 않았습니다.

 

본문 6절입니다.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고 합니다. 요한의 외모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石淸)을 먹습니다. 석청은 자연산 꿀입니다. 이런 모습은 엘리야를 연상시킵니다(왕하1:8). 누가복음 1:17절을 보면 천사가 사가랴에게 예언하기를 아이를 낳을 것인데 요한이라고 하라고 하면서 그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할 것이라고 합니다.

 

열왕기하 1:7~8절입니다. “7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올라와서 너희를 만나 이 말을 너희에게 한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더냐 8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그는 1)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여기의 왕이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입니다. 왕이 옥상 난간에서 떨어져서 병이 났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을 에그론의 신 바발세붑에게 자신의 병이 나을지 물어보도록 보냅니다. 이때 엘리야가 그들을 가로막아서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우상에게 물으러 가느냐고 책망하면서 아하시야가 죽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신하들이 일찍 돌아와서 보고를 합니다. 그러자 그 모습이 어떠하냐고 물으니 털옷을 입고 가죽 띠를 띠었다고 합니다. 왕이 엘리야를 불러오려고 오십 부장과 군인을 보냅니다. 두 번이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사릅니다. 세 번째 오십 부장은 엘리야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을 엘리야의 종이라고 하면서 우리의 생명을 귀하게 여겨달라고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아하시야 왕에게 가서 말하라고 합니다. 물론 이들은 죽임을 당하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의 사역을 엘리야의 사역과 연결하여 보면 마지막 오십 부장이 엘리야 앞에 무릎을 꿇듯이 세례 요한의 외침을 받아들이는 것은 예수님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말라기 4:1~4절입니다. “1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3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내가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4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구약의 마지막 장입니다. 여호와의 날 곧 메시아가 오시는 날은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말라기 선지자 시대에 온갖 외식을 하는 자들을 책망하면서 동시에 세례요한의 시대에도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말씀은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말라기 4:5~6절입니다. “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이 말씀이 구약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 곧 메시아가 오시는 날은 앞에서 본 대로 심판과 구원의 날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열왕기하 1장에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사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말라기시대나 오늘 우리나 간에 지금 주의 날이 임하게 되면 심판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신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엘리야를 보낸다는 것은 메시아가 오셔서 심판과 구원을 이루시기 전에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가 와서 백성들을 돌이킬 것이라는 것이 구약의 마지막 내용입니다.

 

엘리야는 일반 사람들처럼 죽음을 보지 않고 회오리바람으로 주께서 데려가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라기 선지자의 이 예언대로 엘리야가 메시아 오기 전에 다시 오실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와서 하리라는 그 일 곧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께로 돌이키는 일을 세례요한이 하지만 사람들이 엘리야로 알아보지를 못합니다. 예수님은 엘리야가 오리라고 한 그 엘리야가 세례요한이라고 합니다.

 

마가복음 9:11~13절입니다. “11 이에 예수께 묻자와 이르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2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13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따로 산으로 데리고 가셨을 때에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시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과 말씀을 나눕니다. 이 장면을 보고 산에서 내려오는 중에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 전에는 이렇게 본 것을 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말하기를 서기관들이 메시아 오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하느냐고 묻습니다. 이런 질문은 자기들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고서 메시아로 확신을 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오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엘리야가 왔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엘리야의 그 일을 세례요한이 하였지만 사람들이 듣지도 않고 함부로 대하였다고 합니다.

 

본문 7~8절입니다. 세례요한이 무엇을 전파합니까? 자기보다 능력이 많으신 분이 내 뒤에 오시는데 자신은 그 분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할 수 없는 자라고합니다. 신발 끈을 푸는 일은 종이 하는 일입니다. 세례요한은 제사장의 아들입니다. 태어날 때에도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면서 자신은 그 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세례요한이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은 자신의 혈과 육의 능력이 아닙니다. 주의 성령이 알게 하신 것입니다. 구약의 문서로 기록된 마지막 선지자는 말라기입니다. 말라기를 끝으로 약 4백 년 동안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증거 하기를 자신을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 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합니다.

 

세례요한이 물로 세례를 준다는 것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을 맞이하라는 선포입니다. 이 당시의 세례란 완전히 물에 잠겼다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침례교는 지금도 물을 머리에 바르는 정도의 세례가 아니라 완전히 물에 잠기는 침례를 해야 제대로 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물속에 담겼다가 나오든지 물을 몇 방울 머리에 바르든지 간에 이것은 다 물로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세례의 방식보다 그 의미가 중요합니다. 그 의미는 물에서 나온 것을 보여줍니다. 지구도 물에서 나온 것이며 노아 홍수도 물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베드로후서 3:5~7절입니다.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6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베드로후서 3:1~4절을 보면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이들은 세상의 종말이 없다고 합니다. 주의 강림, 곧 다시 오심이 없다고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그냥 죽어갔다고 하면서 세상은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베드로사도는 이 땅이 원래 물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땅의 형체가 드러나기 전에 물에 뒤덮여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사실을 일부러 잊어버리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 것을 보고 물로 심판 받는다는 것을 무시한 말입니다. 그러므로 노아 때 홍수로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이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것입니다. 언제까지 보존 하십니까?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때까지입니다.

 

이어지는 8~9절입니다.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자명해 집니다. 세례 요한의 외침이나 베드로의 증거나 간에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이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처음의 이 땅도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 된 것을 일부러 잊어버리려고 하는 시대가 물로 심판을 받은 것을 보여줍니다. 요한의 시대나 지금의 사람들도 노아 홍수의 심판을 일부러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도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가 방주를 예비하듯이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또한 오늘 말씀과 연결하여 보면 인자가 올 때가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합니다(23:37).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물로 세례를 주면서 회개를 외치는 것을 지구가 물에서 나온 것과 노아 홍수와 함께 연결하여 보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살펴봐야 합니다. 그것은 모세가 물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이름의 뜻이 물에서 건짐을 받았다는 뜻입니다(2:10). 모세가 바로의 공주의 손에 의하여 건짐을 받아 바로의 궁전에서 40년을 지내다가 자기 동족을 구하려고 살인을 합니다. 그 사건이 발각이 되어 광야로 도망가서 양치기로 40년을 지낸 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냅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바르게 하고 애굽에서 빠져나온 그들이 애굽과 완전히 단절되는 것은 홍해바다를 건너는 것입니다. 이러한 홍해 건넘은 모세개인이 물에서 건짐을 받은 것을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로 확장하여 물에서 건짐을 보여줍니다.

 

고린도전서 10:1~5절입니다.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1)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모세에게 속하여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수를 기뻐하지 않았기에 광야에서 멸망하였다고 합니다.

 

베드로전서 3:20~21절입니다. “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3)표니 곧 4)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세례 요한이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에 대하여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 무엇인지 성경 전체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물로서의 세례를 몽땅 모아서 세례 요한이 요단 강에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는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라는 세례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노아 홍수 때의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우리를 구원하는 표가 되는데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나는 성령의 세례를 보여줍니다.

 

베드로전서 3:21~22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21 그 물은 지금 여러분을 구원하는 6)세례를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세례는 육체의 더러움을 씻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힘입어서 선한 양심이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입니다. 22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 가셔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세례는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함께 죽고 살아나는 것을 미리 보여줍니다. 노아 홍수의 그 물이 한 편으로는 심판이지만 은혜를 입은 자들에게는 그 물이 구원하는 세례를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모든 구약의 성경이 세례요한의 손가락으로 모아져서 세상 죄를 지고가시는 어린 양을 가리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도 이 모습입니다.

 

이러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모습을 갈라디아서 2:20절에서 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