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4:6~7 기도와 평강 2018. 6. 17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오늘 설교제목이 기도와 평강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와 응답, 기도응답의 비결, 금식기도의 능력 이런 제목에 익숙해 있습니다. 책 제목이 이런 내용이 많습니다. 자신의 정성과 열정을 바쳐서 기도응답도 받고 능력 있는 자가 된다는 식은 종교적인 거래이지 성경의 기도가 아닙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속담이 나오는 것은 지극한 정성을 바치면 하늘도 감동한다는 생각이 교회당에 그대로 들어와서 좀 세련된 방식으로 기도한다고 해도 그것은 신과 거래하는 것입니다. 그런 식의 기도라면 트럼프에게 한 수 배워야 할 것입니다. 트럼프가 지은 책이 ‘The Art Of The Deal’입니다. 거래가 기술을 넘어서 예술의 수준이라는 말입니다. 거래를 잘 해서 세계적인 부동산 재벌이 되었다는 자서전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도는 거래가 아니라 자기부인입니다.

 

기도에 대한 책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말씀을 드립니다. 대장간 출판사에서 나온 자크 엘륄우리의 기도입니다. 원래제목은 불가능 한 기도입니다. 그 중 한 부분을 소개 합니다 "이제 기도는 나와 같은 인간에게는 소비를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돕는 의미가 있을 뿐이다. 가장 초보적인 차원에서 청원 기도는 유용한 물질들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그 물질들은 오늘날 우리가 필수적인 것이라고 규정하지만, 사실은 필요 이상의 여분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기도한다면, 우리는 이 사회에서 우리 몫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하나님에게 요청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불의의 희생자로 보면서 산업이 생산하는 잡다한 물건들을 가지지 못하면 절망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 사회가 산출한 필요 욕구들을 만족시키는 에이전트가 되었다."

 

우리가 들어왔고 알고 있는 기도는 대부분이 신과의 거래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자크 엘륄의 글에서도 그런 내용을 보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기도라는 것은 나와 같은 인간이 소비를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것저것을 구하지만 결국 돈을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이 기도가 아니기에 이런 기도를 대항하는 것이 성경적인 기도입니다. 복음을 들은 사람들에게서 제일 먼저 나오는 반응은 기도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복음을 듣고 나면 그동안 내가 기도한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구한 우상숭배자임이 드러나기에 기도할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제대로 기도해야 합니다.

 

복음을 듣고서 기도 할 것이 없다고 하는 분이 많아서 기도에 대한 주제로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호소하다, 부르짖다, 간구하다는 내용들을 다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제일 먼저 등장하는 호소가 아벨의 피의 호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을 받아주시고 가인의 제물을 받아주시지 않았을 때에 가인이 분노하여 아벨을 죽인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제물을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받아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총입니다. 이것을 히브리서는 믿음으로 양의 첫 새끼로 제물을 드렸다고 합니다. 이러한 믿음이란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이러한 일방적인 은총에 대하여 분노한 것입니다. 가인은 자기의 행위를 받아주지 않는다고 분노하여 아벨을 살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인의 행위로 인하여 아벨이 피를 흘렸고 그 피가 땅에서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아벨에 피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3잘을 보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예수님은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하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보낸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였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피를 흘리게 한 대가가 이 세대에 돌아갈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죽인 자들이 그 주님을 죽이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사도들이 전한 내용이 예수님의 이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의 이 말을 듣고 입을 막으려고 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이 말에 회개하는 자들이 나옵니다. 성령의 지혜가 충만하여 예수님의 이 말씀대로 설교하는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이는 일을 하는 자들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처럼 자기의 의로 치장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이나 신약이나 그리스도를 증거 하다가 피를 흘린 그 피들이 이 땅에서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에서 그 말씀을 증언함으로 죽임 당한 자들이 자기들의 피 값을 신원하여 달라고 합니다(6:10). 결국 이 세상이라는 바벨론이 멸망하는 것도 그 성에서 선지자들과 성도들의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18:24).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최초의 호소가 아벨의 피의 호소인데 이러한 의인의 피를 흘린 땅에서 우리가 어떤 기도를 하면서 살아가는지를 묻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약에서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예언 한 자들의 피를 흘린 땅이며 신약에서 오신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자들이 피를 흘린 땅입니다. 물론 그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이 있습니다. 이러한 땅이 심판을 받는 것이 지극히 당연합니다. 이렇게 심판받을 땅에서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성경에서 두 번째로 살펴본 기도의 내용은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 성을 위하여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죄악이 가득하였습니다. 그곳에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을 멸하려고 하시자 악인과 의인을 함께 멸하시는 것이 공의롭지 못하다고 기도하면서 그곳에 의인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느냐고 하시자 그들로 인하여 용서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의인 열 명이 없어서 그 성이 불에 살라집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롯이 구원받아 나오는 것은 아브라함의 기도를 생각하셔서 롯을 끄집어내셨다고 합니다(19:29).

 

베드로후서 2:6~8절입니다. “6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7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8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롯이 소돔과 고모라성에 들어가서 살지만 그곳에서 함께 어울리지 못합니다. 그곳에 일어나는 음란한 행실로 인하여 고통당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아브라함이 언약을 받은 자로서 기도를 하기에 롯이 그 성안에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 것으로 봤습니다. 오늘날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하시고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기도하시기에 우리도 롯처럼 이 세상에서 살아가되 어울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곳을 떠날 수도 없이 살아갑니다. 롯이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저녁때에 혼자 성문 곁에 앉았다가 나그네를 영접하였는데 그들이 천사였으며 그들이 롯의 가족을 이끌어 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기도하였기에 하나님께서 그 소돔과 고모라성이 멸망하는 자리에게 이끌어 내시듯이 예수님의 기도로 우리가 구원받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봅니다. “봉독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신다고 합니까? 나의 소원을 다 들어주신다고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염려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늘 염려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까? 지난주의 말씀을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쁨과 관용이 무엇 때문에 나옵니까? 주께서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도 주께서 가깝기 때문에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수요일 저녁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예수님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것들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방인들이라는 말은 하나님 아버지가 없는 자들을 말합니다. 부모가 있는 어린 아이는 염려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똑 같은 어린 아이이지만 부모가 없는 자들은 의식주를 염려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에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농사짓지 않고 길쌈하지 않아도 먹이고 입히신다고 하시면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씀들을 우리가 다 알고 있어도 늘 염려가 나옵니다. 가시밭에 떨어진 씨처럼 내일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으로 인하여 염려하기에 재물을 쌓아두려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모든 일에 기도하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지만 우리가 염려할 것도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아무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합니다.

 

이것을 기도응답의 방법론으로 감사헌금 먼저 하고 기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금까지 어떻게 인도하여 오셨는지를 보라는 것입니다. 지난날의 고통과 염려와 아픔들이 결국 더욱 주를 알고 주를 의지하게 하였다면 그 힘듦조차 감사의 제목이 됩니다. 성서 유니온에서 나온 하나님의 은혜라는 책을 보면 저자가 음주 운전을 한 사람이 낸 교통사고로 저자의 어머니와 아내와 막내딸이 죽었습니다. 본인과 세 명의 어린 자녀는 많이 다쳤지만 살아남았습니다. 이 과정을 겪어 나오면서 신학교 교수와 목사를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하는 이야기 중에 우리의 고난의 삶에서도 구속받은 시각으로 보면 용서 받은 죄와 슬픔마저 천국의 성질로 변한다고 합니다. 이런 자들이 완성된 천국에서 하는 말은 우리는 평생천국에서 살았다는 말을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구원을 잃은 자들은 우리는 항상 지옥에서 살았다고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구속받은 시각으로 보면 지금의 상황이 어떠하더라도 감사함으로 아뢸 수가 있습니다.

 

다시 본문을 봅니다. 봉독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합니다. 그러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설교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도하라고 합니다. 기도는 마스터키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면 내가 원하는 방향의 문제해결을 해 주신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일로 인하여 기도하였을 때에 하나님의 응답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강을 얻는 것입니다. 이런 평강은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평강입니다. 참으로 크고 놀라운 평화입니다.

 

사도행전 12:6~9절입니다. “6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바로 앞의 말씀을 보면 헤롯이 야고보를 죽이니 유대인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감옥에 가두어둡니다. 무교절이 끝나고 다음 날이며 사형이 되는 날인데 베드로가 얼마나 깊이 잠을 잤는지 천사가 옆구리를 쳐서 깨웠습니다. 이 정도로 베드로가 단 잠을 잔 것은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사도는 옥에 갇혀서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감옥에서도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셨기에 빌립보 교회에 대하여 오늘 우리에게도 이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이미 하늘에 완성된 그 세계를 계시로 보고 알고 믿게 된 자들입니다.

 

로마서 8:28~30절입니다.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3)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말씀은 지금 손해를 보았지만 나중에 더 나은 이익을 받는 다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은 성령이 성도 안에서 기도하시기에(8:26)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그 선을 이루시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리 정하신 그들을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이미 십자가로 완료가 되었기에 성도가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기도하면 이런 말씀의 확신이 주어집니다. 이미 완성된 그 약속들이 성령의 역사로 더욱 분명해지게 확인이 되니 평안이 있습니다.

 

로마서 8:31~34절입니다.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이미 영화롭게 하셨다는 이 약속을 그 어떤 누구도 시비 걸거나 정죄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통하여 이루신 것이며 그 아들 또한 기도합니다.

 

이어지는 35~39절을 봅니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의 생각을 지켜주신다는 것은 이러한 말씀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에 세상이 알 수도 없고 줄 수도 없는 평강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크고 놀라운 평화입니다. 세상에 없는 평화가 말씀과 기도로 더욱 풍성히 맛보시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