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6:47~56 성경을 이루심 2017. 10. 8

 

47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8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 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한지라 49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그들이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51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55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56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성경은 누구의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누가 기록하였습니까?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기록하였습니다(딤후3:16). 그러므로 성경은 사사로이 풀면 안 됩니다(벧후1:20). 성경을 사사로이 푼다는 것은 사람이 주체가 되어 사람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보고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보아도 내가 성경을 보고 성경에서 무엇을 하라고 하면 내가 하면 되고, 하지 말라면 내가 하지 않으면 복도 받고 구원도 받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보면 성경의 기록 목적을 모르게 됩니다. 요한복음 5:39절에서 예수님은 모든 성경이 자신을 증거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때의 성경이란 구약성경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구약 성경이 오실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을 통하여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그리스도가 오셨는데 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습니까? 그 이유는 그들이 기다리는 그리스도가 자기들이 원하는 그리스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배경은 마태복음 16장에서 베드로의 바른 신앙고백 후에 예수님께서 비로소 자신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말리고 나설 때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신 후에 자기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나 우리나 간에 평소에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무엇을 해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자기 주체성이 무너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베드로가 진심으로 예수님을 위하여 그런 고난과 죽으심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의 말이 사탄의 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위하여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한다고 나서는 것이 사람의 일이며 사탄의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른다는 것은 내가 주체가 되어 성경의 말씀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모든 말씀은 예수님이 이루어내셔야 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7~50절입니다. 말씀하실 때란 예수님께서 세 번을 기도하시고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릴 것이라고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일어나 함께 가자고 하실 때입니다.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둥이를 가지고 왔습니다. 유다가 입을 맞추는 자가 예수라는 군호를 짜서 왔습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랍비라고 하면서 안녕을 물으며 입을 맞춥니다. 입을 맞추는 것은 존경의 인사인데 이렇게 입맞춤으로 팔아넘깁니다. 이때 예수님은 유다에게 네가 하려고 온 그 일을 행하라고 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손을 대어 잡습니다.

 

51절입니다.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립니다. 칼을 빼어 휘두른 자는 베드로이고 그 칼에 귀가 날아간 자는 말고라는 사람입니다(18:1). 베드로가 이렇게 칼을 휘두른 것은 죽을지언정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한 말이 진심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적들이 몰려왔는데 바로 도망가지 않고 칼을 휘두른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칼을 휘두른 것도 성경을 응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누가복음 22:36~38절입니다. “36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37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2)이루어져 감이니라 38 그들이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각주 )을 보면 이사야 53:12절이 있습니다.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는 말씀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칼을 든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시면서 왜 칼을 준비하라고 하신 것입니까? 그 이유는 불법의 자의 동류라는 말씀을 이루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감람산으로 가시기 전에 칼을 챙기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각주 1)을 보면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라고 되어 있는데 다른 번역으로 보면 내게 관한 일이 끝남이라고 합니다. 결국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다 이루심이 하나님의 말씀을 완성하는 자리라는 말씀입니다.

 

52절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기를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고 합니다.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한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칼이나 무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복음에서 본 대로 칼을 준비하라고 하신 것은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기 위한 말씀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하나님의 나라를 힘으로 확장하려고 하는 자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이런 자들은 베드로가 받아야 할 책망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세상의 힘을 무너뜨립니다.

 

스가랴 9:9~10절입니다. “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10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찾아본 말씀입니다. 왕이 오시는데 그는 공의로운 분으로 구원을 베푸십니다. 그런데 이 왕이 겸손하여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십니다. 이 왕이 하시는 일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어버린다고 합니다. 전쟁하는 활도 끊어버린다고 합니다. 그 왕이 이방나라에게도 화평을 전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말씀이 분명히 성경에 있지만 대제사장들이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도 그들의 나라를 힘 있는 나라로 만들어줄 그리스도를 기다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칼을 든 자는 칼로 망할 것이라고 합니다. 세계의 힘 있는 제국들이 다 무너졌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세상은 힘을 추구합니다.

 

101일이 국군의 날입니다. 연휴로 인하여 국군의 날을 당겨서 했습니다. 최신 무기들을 보여주었습니다. 북한의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하니 한국도 핵무기를 갖추자는 주장이 나옵니다. 추석 인사를 하는 사람들의 현수막이 길거리 곳곳에 붙었습니다. 정치할 사람들의 이름들인데 그 중에는 우리도 전술 핵을 배치하자는 글도 있었습니다. 이에는 이로 대응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야 전쟁을 억제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힘의 논리가 세상을 지배합니다만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에서 말하는 그런 힘의 나라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희생하여 이루어내시는 나라입니다.

 

본문 53~54절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고 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군단이라는 것은 이 당시의 약 6천명의 로마의 한 군단을 말합니다. 지금 예수님을 잡기 위하여 몰려온 자들이 많아도 수백 명 미만일 겁니다. 그런데 하늘의 천군을 열두 군단이 더 되게 부른다면 예수님을 잡으려고 온 자들만이 아니라 온 로마군대를 다 진멸하여도 되는 군대입니다. 엘리사가 살고 있는 도단 성을 아람 군대가 포위한 것을 본 사환이 놀라서 엘리사에게 말하자 그의 눈을 열어 하늘의 불 말과 불 병거를 보게 하였습니다. 그 하늘이 군대가 더 많은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숫자의 개념이 아니라 한 천사만 내려와도 이들을 다 무찌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천사들을 부려서 이들을 무찌른다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고 합니다.

 

요한복음 18:6~9절입니다. "6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7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그들이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9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예수님을 잡으려고 온 자들에게 누구를 찾느냐고 예수님께 물으시니 그들이 나사렛 예수라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내가 그라고 하십니다. 그 유명한 에고 에이미입니다. 이 말씀 앞에 예수님을 잡으려고 온 자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려집니다. 이러한 자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체포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이 잡히시고 고난 받으심은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는 성경을 이루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다 가게 하시는 것도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그 말씀을 이루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을 예수님이 이루십니다.

 

본문 55~56절입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후에 예수님을 잡으려고 온 무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처럼 칼과 몽치를 들고 나를 잡으러 왔느냐고 하시면서 내가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쳤지만 너희가 나를 잡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그 때는 때가 되지 않았으며 또한 백성들이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고 있으니 공개적으로 함부로 잡아 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때가 되어 밤중에 잡으려고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는 것이 사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이 내용도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진다는 스가랴 13:7절의 말씀의 성취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54절과 56절을 다시 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는 것이 성경을 이루시기 위함이며 또한 선지자의 글을 이루시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힘이 없어서 잡히시고 고난을 받고 죽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성경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모든 성경은 예수님을 증거 합니다. 성경이 예수님을 증거 한다는 말씀은 성경의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님께서 이루어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오실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신약이 오신 그리스도와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증거 하지만 이 모든 성경을 이루시는 분도 예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증거가 구약에 수도 없이 많지만 유대인들은 이런 말씀을 다르게 해석합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이사야서입니다.

 

이사야 52:13~15절입니다. “13 보라 내 종이 2)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14 전에는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보다 상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하여 놀랐거니와 15 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왕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아니한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여호와의 종이 고난을 받고 높이 들려질 것이라고 하는 소식이 각 나라들이 놀라며 왕들이 입을 봉할 소식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소식은 새로운 소식이 됩니다.

 

이사야 53:1~9절입니다.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아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어떻게 여호와의 종이 고난 받는 내용을 이렇게 기록하였습니까? 그 이유는 베드로전서 1:10~11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그리스도께서 장차 고난 받을 것을 예언하여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가 그리스도의 영으로 이렇게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이 본문을 예수님으로 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모든 성경이 나를 증거 한다는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10~12절입니다. “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3)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12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은 여호와께서 원하신 일입니다. 질고를 당하게 하시고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를 여호와께서 원하셨고 그 아들이 이 역사 속에 오셔서 여호와의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한 것입니다. 그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죄악을 친히 담당하십니다. 자기 영혼을 버려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습니다. 이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제자들에게 칼을 준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신 것이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지금 예수님께서 이루시기에 성경을 이룬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1장을 보면 태초에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며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분이 피조물이 되어 오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원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영원전의 언약이라고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영원하신 분이시기에 그 약속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 영원한 약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천지를 창조하실 뿐만 아니라 친히 피조세계에서 오셔서 피조물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는 이 일이 성경을 이루시는 일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내용은 결코 사람의 생각에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무시할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이 복음의 내용은 자신이 똑똑하다고 여기는 자들에게서 조롱을 받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교회라는 곳도 그리스도의 희생의 의미를 담아내는 십자가의 의미를 제대로 전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는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고 있는 곳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래서 더욱더 십자가의 복음이 가려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모든 약속은 예수님께서 홀로 이루어내십니다. 여기에 인간의 역할은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잡아 죽이려고 하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율법사들처럼 율법의 문자를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여 율법을 완성하려고 오신 예수님을 죽입니다. 이들이 로마제국의 정치를 이용합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한 사람도 남김없이 다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성경을 이루신다고 하신 말씀은 성경의 몇 구절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이루시는 것이며 이러한 이루심은 이미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따라서 이루어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다 이루어내심으로 자기 백성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믿음이 자기 부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