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4:40~44 깨어 있으라 2017. 7. 16

 

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43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지난주에 그 날과 그 때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혹시 제목만 보고 그 날과 그 때를 짐작하려고 하셨다면 전혀 답을 얻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들도 모르고 천사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날과 그 때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4장과 25장은 여러 가지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깨어 있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깨어 있으라고 하니 그 날과 그 때를 예측하면서 기다리려고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게 되면 이미 종말을 알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을 아는 자들입니다.

 

마태복음 24:33절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하신 말씀에서 이 말씀의 뜻을 살펴보았습니다. 인자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의 평행구절인 누가복음 21:31절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알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인자가 가까이 왔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인 온 줄을 알라는 말씀의 일차적인 성취는 성령의 임하심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후에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육적인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한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적인 이스라엘 곧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를 말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1:17~23절입니다.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이 엄청난 비밀을 아는 사람들이 교회입니다.

 

에베소서 2:19~22절입니다.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지난주에는 사도행전에서 성령이 임하여 일어난 일들을 보았지만 오늘은 바울서신을 중심으로 봅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이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증거 한 그리스도 예수께서 모퉁이 돌이 되신 것이며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비밀이 영원 전에 계획된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자는 이미 세상의 종말을 알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지어지는 것에 삶의 목적과 의미를 두고 살게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직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지 않았다고 봐야 합니다.

 

에베소서 3:8~12절입니다. “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9 1)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영원부터 감추어진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을 사도들을 통하여 교회에 알리신 것입니다. 그 경륜은 이방인들도 포함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임함으로 알게 된 비밀입니다. 이런 자들은 세상의 것들이 이미 심판 받았음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종말의 영이 임한 자들의 증거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를 다닌다는 사람들이 정말로 성령이 임한 사람들이 맞습니까?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사람들이 맞습니까? 성령이 임하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자기의 손으로 지은 집과 미래에 대한 계획보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과 경륜을 알기를 원할 것이며 그러한 경륜에 감사하며 그 약속을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40~42절을 봅니다. 그 때라고 합니다. 그 때란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을 말씀하십니다. 이 날에 남자 두 사람이 밭에 있은데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하였다고 합니다. 또 두 여자가 맷돌을 갈다가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데려가고 버려둠을 당하였다는 것이 휴거가 일어나고 다른 사람은 남아서 환난을 당하다는 그런 말씀이 아니라 최종적인 분리가 일어남을 말씀합니다. 주님의 재림과 영원한 분리가 생각지도 못한 시간에 순식간에 일어나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알지 못하고 순식간에 일어나기에 깨어있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깨어 있으라고 한 이 말씀을 가지고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 것이 깨어 있는 것이냐는 방법론을 찾아 나섭니다. 어떻게 하면 그 날을 준비하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세대주의적인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의 연도를 따라 날짜를 계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을 버림을 받는 사람의 겉모습은 같습니다. 두 사람이 다 밭을 갈거나 맷돌을 돌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 사람은 밭을 갈고 한 사람은 성경보고 기도하거나 찬송한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은 맷돌을 돌리는데 한 사람은 철야기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평소대로 살아가는데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림을 받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을 보면 내가 무엇을 함으로 데려가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날과 그때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생각지도 않았던 때에 주님이 오셔서 영원히 분리시켜버립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고 합니다. 준비하라고 합니다. 어떻게 준비하고 깨어 있는 것입니까?

 

창세기 5:21~24절입니다. “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3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이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습니다. 유다서를 보면 하나님의 심판을 에녹이 예언한 것입니다. 그 계시란 므두셀라가 죽으면 세상의 심판이 온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늘 종말을 의식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기도원에 가서 기도만 하고 살았던 것이 아닙니다.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자녀들을 낳았다고 합니다. 종말이라고 아이도 낳지 않고 살았던 것이 아닙니다. 심판이 온다고 외국으로 피난가거나 지리산으로 피난가지 않았습니다. 일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주님의 심판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낳고 결혼을 시키고 먹고 살면서도 종말을 의식하며 산 것입니다.

 

유다서 14~16절입니다. “14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15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16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이 본문 앞에는 구약의 수많은 심판의 내용을 언급합니다. 소돔과 고모라, 가인의 길, 발람의 길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더 앞부분에는 거짓 선생들이 들어왔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4절을 봅니다.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영지주의자들이 들어왔습니다. 영적인 지식을 가지면 어떻게 살아도 괜찮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을 경고하면서 에녹을 말한 것입니다. 에녹이 심판을 예언한 것처럼 므두셀라가 죽던 해가 노아 육백 세 곧 홍수가 일어났습니다.

 

히브리서 11:5~6절입니다. “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에녹이 믿음이 좋아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니 믿음이 에녹을 이렇게 이끌어 간 것입니다(벧전1:11). 그러므로 데려감을 당하는 것은 그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이 임하여 데려감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본문 43~44절입니다. 두 사람이 밭을 갈거나 맷돌을 돌리고 있는데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한다는 말씀을 하신 후에 깨어 있으라고 하시면서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두 이야기 다 깨어있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언제까지 깨어있을 수 있습니까?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는 것은 아닌 줄 압니다. 그러면 늘 성경보고 기도하고 교회 충성하면 깨어 있는 것입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가 그렇게 깨어 있다고 의식하여 있는 순간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오십니다.

 

비오는 수요일 저녁에 주님이 오신다는 이야기를 제가 청년 때에 어느 열심 있는 분에게 들었습니다. 이 말은 비오는 수요일 저녁에는 사람들이 교회당이 많이 모이지 않기에 그런 말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주님이 오시면 좋겠습니까? 기도하고 찬송보고 말씀보고 있을 때에 오시면 좋겠지요! 그런데 술집에 있고, 바람피우고 있고, 돈 번다고 혈안이 되어 있고, 남 미워하고 있을 때에 주님 오시면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요! 또는 사랑 하는 사람과 결혼 날 받아 놓고, 명문 대학 합격 해 놓고, 대기업 취업해놓고, 수 천 억 들여 예배당 건축해 놓고서 입당하기 전에 예수님 재림하시면 환영하시겠습니까?

 

고린도후서 5:1~10절입니다.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이 말씀을 정말로 믿으십니까? 이 말씀을 성령으로 인하여 믿으신다면 이 말씀이 여러분 안에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이 말씀이 여러분 안에 증거로 나타나고 있습니까? 그저 세상 살기 싫어서 천국에 가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임함으로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덧입기를 탄식하여 기다리십니까? 늙고 병들고 죄짓는 이 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의 그 몸을 덧입기를 소망하십니까? 그런 소망을 가진 자들은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셔서 보증이 되신 자들입니다. 성령이 담보물이 되신 자들입니다. 이들은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말로는 하루라도 빨리 죽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원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를 기쁘시게 한다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을 뵙기를 소원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주님이 언제 오시든지 환영합니다. 그렇지 않고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면서 자기의 이름과 자기의 자존심을 위하여 살았다면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날이 심판의 날이 됩니다. 그가 아무리 종교적인 업적을 남겼더라도 그 중심을 보십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1~11절입니다.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그런데 여기서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 봅시다. 나는 정말로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설렘과 기쁨으로 기다리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분이 오시기에 말할 수 없는 사랑으로 기다리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지금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당에 다닌다고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어떤 죄인인지 알게 하여 달라고 기도합시다. 우리가 죄인인데 죄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참 말은 내가 전적인 죄인이라고 하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이런 고백조차 우리는 습관처럼 형식적으로 학습되어 말하고 있는 위선자들입니다. 기도할 때 마다, 말할 때 마다 죄인이라고 입에 달고 다니지만 진짜 죄인이 맞습니까?

 

나는 하나님 앞에서 전적인 죄인입니다. 이런 고백이 나오는 사람이 구원 받는 사람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거한다고 하였습니다. 교만하여 나병이 들었던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서게 됩니다. 그러자 선지자인 자신이 나병 환자임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구원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베드로는 물고기 많이 잡힌 기적 앞에서 자신은 죄인이라고 주님께 자신을 떠나달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고백들은 사람으로 할 수가 없습니다. 주의 성령이 임하게 되면 자신의 죄와 비참함을 알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죄를 용서하신 그 십자가의 사랑을 알기에 주님을 사랑하며 기다립니다. 죄 많은 여인이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씻기고 머리카락으로 닦고 향유를 부어 그 발에 입 맞추기를 쉬지 않았던 그 여인은 용서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많은 죄가 예수님 때문에 용서 받았기 때문입니다. 기적 중에 기적이 자신이 전적인 죄인임을 아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노년에 이렇게 증거 합니다. 미쁘도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이 받을 말한 말이여! 주께서 죄인을 부르러 오셨도다! 내가 죄인의 괴수로다! 이런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었습니까? 그렇다면 주님을 기다림이 자연스럽습니다. 요란하게 종말을 계산하고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였기에 하루라도 속히 주님의 뵙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도적같이 오든지 어느 날 갑자기 오시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베드로후서 3:10~13절입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노아 홍수 때에 하나님의 말씀 곧 세상을 물로 심판하신 다는 말씀을 믿지 않은 자들을 심판하셨습니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세상의 종말이 없다고 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정말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예수님의 심판의 말씀과 바울과 베드로 사도가 전한 이런 말씀을 믿으십니까? 어려운 내용이 아닙니다. 세상이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을 믿으십니까? 믿으신다면 지금 예수님이 재림하셔도 기쁨으로 맞이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정말 누가 예수님을 사랑하여 사모함으로 기다리는 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아직 재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오늘 우리가 회개하도록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주와 그리스도로 모셔 들이시기를 바랍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날 곧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게 됩니다.

 

14~18절입니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2)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고 합니다. 바울사도도 베드로 사도도 동일하게 말합니다. 아직 재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오늘 우리에게 회개하도록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 자신입니다. 내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도록 지금까지 오래 참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억지로 풀지 않기 바란다고 합니다. 여기서 억지로 푼다는 각주를 보면 교묘하게 푼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이 임합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면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자신이 어떤 죄인인지 알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이런 자들을 창세전에 예정된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합니다. 이러한 신부들은 하루라도 빨리 신랑이 오시기를 기다립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