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7:45~56 죽음으로 연 생명 길 2017. 11. 26

 

45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되더니 46 제 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47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48 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49 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53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54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55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56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오늘 본문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있는 중에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시간은 오전 9시입니다(15:25). 지난주에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네 자신을 구원하여 보라고 합니다. 남은 구원하였으면서 자신은 십자가에 매달려 저주 받은 죽음을 죽느냐고 조롱한 것입니다. 네가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너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지 세 시간이 지난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에 일어난 일입니다. 삼시, 육시, 구시라는 시간은 우리의 시간으로 환산하려면 여섯 시간을 더하면 됩니다.

 

45절입니다.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세 시간동안 계속됩니다. 이러한 어두움이 구약에 나타난 것은 출애굽 시에 열 가지 재앙 중에 아홉 번째 재앙이 어두움이었습니다. 캄캄한 어두움이 삼일동안 애굽을 뒤덮었습니다(10:22).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고센 땅에는 빛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예루살렘이 어두움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빛으로 오셨지만 사람들은 그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않았습니다(3:19). 그러므로 십자가의 사건은 이방나라만이 아니라 이스라엘도 어둠에 속한 것을 보여줍니다.

 

46절입니다. 제 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면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시편 22:1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다윗이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메시아의 고난을 미리 보여준 내용입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부르짖음은 메시아의 고난을 그대로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아야 할 유일한 분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그가 버림받음이 하나님의 약속을 완전히 이루시는 일입니다. 그 버림받음으로 이미 버림받은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과 연합되어 생명으로 이끄십니다.

 

로마서 5:10절입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6절부터 보면 우리가 아직 연약하였을 때에,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합니다. 그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것은 장차 나타날 그의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어 있는 것을 그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우리의 연약함과 죄인 됨과 원수 됨을 해결하는 화목제물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이 십자가의 비밀을 알고 믿는 자들입니다.

 

47~49절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부르짖는 소리를 십자가 주변에 섰던 사람들이 듣고서는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고 하였습니다. ‘엘리라는 말은 나의 하나님이라는 뜻인데 그 사람이 잘 못 알아들었든지 조롱하였든지 간에 엘리야가 와서 구원하는지 보자고 조롱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엘리야가 구름타고 하늘로 올라간 선지자로 알기에 특별한 구원의 능력자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중에 다른 한 사람이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셔서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그것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엘리야가 와서 구원하는지 보자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이런 조롱을 하고 있습니다.

 

50절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가십니다.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하시고 나서 크게 소리 지르셨다고 합니다. 무슨 소리인지 기록을 하지 않습니다만 사 복음서를 보면 십자가 위에서 일곱 말씀을 하셨습니다. 일곱 말씀을 간략히 말씀드리면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향하여 저들을 용서하여 달라고 합니다. 저들이 하는 짓을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23:34). 십자가의 한 편 강도에게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23:43). 요한에게 네 어머니라고 하면서 마리아를 부탁합니다(19:26,27). 내가 목마르다(19:28). 다 이루었다(19:30). 아버지 내 영혼을 부탁합니다(23:46). 이렇게 일곱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큰 소리의 내용을 다 이루었다는 말씀에 초점을 맞추어 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스스로 가신 길입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죽일 능력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잡으려고 온 군병들이 예수님의 말씀 앞에 나가 엎드려집니다(18:6). 예수님 말씀 한 마디면 열두 영 더 되는 천군천사들을 동원하실 수 있습니다(26:53).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버릴 권세도 있으시고 찾으실 권세도 있습니다(10:18). 예수님의 목숨을 스스로 버리심은 선한 목자로서 양들을 구하시기 위하여 스스로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서는 그 영혼이 떠나갔다는 말씀을 문자대로 번역하면 요한복음 1930절에서는 그 영을 넘겨주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십자가의 다 이루심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51~54절입니다.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였다고 합니다. 백부장과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내용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나무에 달려있는 그 상태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첫째 성소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고 합니다. 성소의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는 두껍게 직조된 가림 막입니다. 그 천에는 천사의 그룹문양이 직조되어 있습니다. 성소에서 지성소로는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일 년에 대 제사장이 단 한번 들어가는데 정결한 짐승의 피를 들고 들어갑니다. 제사장이라도 조금만 부정하면 죽임을 당하는 장소가 지성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동시에 그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가장 거룩한 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3:22~24절입니다. “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에덴동산에서 추방시킨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선악과를 먹은 채로 스스로 생명나무 열매를 따 먹고 영생하면 안 되기 때문에 추방한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죽음을 죽지 않고서 생명나무를 자신의 선악의 개념으로 취하게 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차단한 것입니다. 그룹이란 천사들을 말합니다. 그들이 두루 도는 불 칼을 들고 있기에 어떤 인간도 그 길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그룹이 새겨진 휘장이 찢어진 것입니다.

 

히브리서 10:19~20절입니다.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버리시는 순간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집니다. 그 휘장이 예수님의 육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새로운 살 길을 열어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스스로 영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이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놓으실 뿐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길이 되셔서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둘째 땅이 진동합니다. 지진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자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이 내용은 예수님의 부활사건과 겹쳐집니다. 부활 시에도 바위가 터지며 무덤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 후에 이들이 예루살렘에 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왜 무덤이 열리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입니까? 문자대로 보면 부활 후에 살아난 자들이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죽으심과 지진과 바위가 깨어지고 무덤에서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것은 죽음의 완성을 보여줍니다.

 

열왕기하 13:20~21절입니다. “20 엘리사가 죽으니 그를 장사하였고 해가 바뀌매 모압 도적 떼들이 그 땅에 온지라 21 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도적 떼를 보고 그의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 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더라열왕기하를 볼 때에 하나님의 언약을 전한 자는 죽어도 그 언약은 영원하다는 차원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말씀과 연결하여 보면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선지자가 죽고 그 뼈에 시체가 닿았는데도 회생하여 살아났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죽은 자를 살리실 것을 미리 보여준 사건이 됩니다.

 

셋째 백부장과 군병들이 자기가 처형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물론 하늘의 어두움과 지진으로 두려움이 임한 것도 있지만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로마의 백부장과 함께 예수를 지키던 군병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함으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배척한 그 나사렛 예수를 이방인 군인들이 믿었다는 것은 참으로 기적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인 것입니다.

 

55~56절입니다.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에 있어 멀리서 바라봅니다. 큰소리치던 남자들은 다 도망가고 여자들만 멀리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목격합니다. 그 여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습니다. 이 여인들은 예수님의 무덤까지 확인하고 돌아갑니다. 또한 부활의 최초의 목격자가 됩니다.

 

오늘 설교제목이 죽음으로 연 길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여는 길은 죄인으로서는 할 수가 없습니다. 천사가 두루 도는 화염검으로 지키고 있는데 누가 생명나무로 나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생명은 하나님 편에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그 길이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히브리서 10:21~25절입니다.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우리가 길을 찾아 나선 것이 아니라 길이신 그 분이 친히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으로 우리에게 그 영을 넘겨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자들은 새로운 살 길이 열린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에게는 지금도 큰 대제사장이 되시는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에 피를 뿌리고 계십니다. 그러면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납니다. 믿음과 소망이 생깁니다. 이런 자들이 모인 것을 교회라고 합니다. 이들은 믿는 도리와 소망을 잡고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모이기를 힘쓰는 자들이 됩니다. 무엇을 말하기 위하여 모입니까?

 

히브리서 10:26~29절입니다.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들도 두세 증인으로 인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진리의 지식을 받은 우리가 그 진리의 지식을 버리는 죄를 범하면 다시는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이 심판입니다. 이러한 자들을 태울 맹렬한 불만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여서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우리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 은혜의 성령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살 길은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를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이 성경전체입니다. 새롭고 살아있는 길이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열린 것입니다. 그 새롭고 살아있는 길이 우리에게 어떻게 열린 것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다 이루심으로 그 영을 넘겨주시면 알게 됩니다. 성령이 임하면 우리의 죄가 무엇인지 알게 하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십니다. 은혜의 성령이 임하면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서 거룩하게 됨을 믿게 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열어놓으신 생명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