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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1:3-6 신령한 복 2012. 4. 29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휴암 스님의 ‘한국 불교의 새 얼굴’이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복에 환장한 한국 불교인들아! 너희 스승은 왕궁을 버렸는데 너희는 그 스승에게 무엇을 구하느냐? 나는 오늘 불교인들의 생리에 저항하고 싶다. 설령 불교가 오늘의 병든 복 사상에 저항하다가 설사 신자가 천 삼백 만에서 백 삼십 명으로 줄어들지라도 여지없이 타락한 물질주의 복 사상을 철폐하는 데 맞장서지 않으면 안 된다. 복에 환장한 불교신자들아!” 이 스님의 다른 책으로 ‘장군죽비’에 대하여는 오래 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책의 표지에 누가 부처를 죽였는가 하는 작은 글씨가 가득하였습니다. 중이 죽였고 불교신자들이 죽였다는 말이겠지요!

 

그런데 불교가 이렇게 된 것이 남의 일이 아닙니다. 여기 불교인들아! 내용에 복에 환장한 기독교인들아! 너희가 믿는 예수는 하늘 보좌를 버리고 종이 되어 십자가를 지셨는데 너희는 도대체 무엇을 달라고 하느냐고 외쳐야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기독교의 복의 개념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하늘에 속한 것에 대하여 몇 곳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면 위에 것을 찾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합니다. 위에 즉 하늘에 무엇이 있다는 말입니까?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시고 우리의 생명도 그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이라면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 위엣 것을 찾으라는 말씀에 아멘이 되지만 교회수십 년을 다녀도 다시 살리심을 받지 않았다면 이런 말씀은 화나는 말씀이 됩니다.

 

바울사도가 하나님을 찬송하리라고 한 이유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셨기에 찬송한다고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다고 합니다. 왜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것입니까? 그리스도 밖의 것은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밖에서 추구하는 복들이 어떤 것입니까?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복이라고 들어왔던 모든 것들입니다. 그 중에 오복이라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인데 유호덕과 고종명 대신 귀(貴)와 자손중다(子孫衆多)를 꼽기도 합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복이라고 여기며 살아온 문화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문화 속에서 말하는 복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았다는 성경의 인물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제일 먼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복에 비추어 봅시다. 장수 하였습니까? 33세에 돌아가셨습니다. 부자였습니까? 머리 둘 곳조차 없었습니다. 건강하고 평안하였습니까? 마른 땅에 자란 줄기 같았으며 늘 대적들로 인하여 평안하지 못하였습니다. 좋은 덕을 쌓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까? 귀신이 들렸다고 하였습니다. 좋은 죽음을 죽었습니까? 가장 수치스럽고 저주받은 십자가의 죽음이었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면서 무슨 복을 달라고 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이기에 그렇게 하셨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하여 저주를 대신 받았기에 우리는 복을 받아야 한다는 이론을 펴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런 신학을 번영신학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세상에서 잘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오복정도 받아서는 안 되고 만사형통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통하면 인통 하고 물통 한다고 합니다. 영적으로 통하면 사람과 물질은 다 통하기에 사람을 거느리게 되고 물질의 부를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삼박자 축복도 나오는 것입니다. 네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되고 강건 하라는 그 말을 가지고 복에 환장한 사람들의 구미를 맞추어 주고 있는 이 땅의 교회라는 현실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제자들을 봅시다. 예수님이 대신 저주를 받으셨기에 이제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이 복이 받아야 한다면 가장 많은 복을 받아야 하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특히 사도들이 어떤 복을 받았습니까? 세상에서 오래 살았습니까? 부자가 되었습니까? 건강하고 평안하였습니까? 잘 죽었습니까? 거의 대부분 순교하였습니다. 기독교의 영광이란 순교입니다. 순교란 일을 하다가 죽어 버린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일을 하다가 죽어버리면 실패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순교가 영광이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하늘의 완성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4:9-13절입니다. “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11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13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이것이 주님의 사도가 당한 모습입니다.

 

더 구체적인 내용을 고린도후서 11:23-33절을 봅니다. “봉독” 바울이 우리처럼 고집부리다가 매를 맞아서 이런 고난을 당했습니까?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당한 모습이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런 복을 받으시겠습니까? 아무도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셈인지 성경에도 없는 온갖 세상의 성공스토리를 들고 와서는 성경에 비슷한 구절을 찾아와서 얼마나 각색을 잘하는지 뱀이 하와를 유혹하고 하와가 받아들인 것은 말씀에 대한 보태기, 빼기, 비틀기, 덮기입니다. 성경을 이런 식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왜 이런 고난을 당합니까?

 

마태복음 10:24-25절입니다. “24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25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이 세상의 신이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바알세불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알세불은 귀신의 왕의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세상에서 미쳤다고 배척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설교를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제시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너는 예수를 믿어도 별나게 믿는다고 미친 사람 취급받을 것입니다. 그럴 바에야 뭐하려 교회에 다니느냐고 할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요한복음 15:18-20절입니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여 버린 세상에서 예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는 당연히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의 복과 성공을 꿈꾸며 달려간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계속되는 21-27절을 보시면 이렇게 되는 것이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모든 것을 말씀하셨기에 이제는 그 죄를 핑계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미워하는 자는 아버지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본 것이 아버지를 본 것인데 예수님을 미워하였기에 아버지를 미워한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시편에서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는 말씀을 응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오직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만 예수님을 증언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도들도 성령이 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증거 하게 됩니다.

 

베드로사도는 신령한 복을 이렇게 증거 합니다. 베드로전서 1:3-4절입니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베드로도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말하면서 먼저 찬송이 터져 나옵니다. 이 세상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은 없습니다. 오직 하늘에 간직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신령한 복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계속하여 보시면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다고 합니다. 세상의 영광이라는 권력을 쫒아간 사람들의 말로를 보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예수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로가 어떠하였습니까? 그 뒤로 나타난 많은 대통령과 그 측근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권력들이 얼마나 허무하게 시드는 풀의 꽃과 같이 떨어집니까? 그러함에도 그런 썩을 영광을 항하여 달려가는 것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지 못하여서 그렇습니다. 썩은 것에는 썩은 것을 좋아하는 것들만 달라붙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이는 것입니다(마24:28).

 

다시 본문을 봅니다. 바울사도가 찬송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을 복을 주심을 인하여 찬송합니다. 여기서 신령하다는 것은 영적인 복을 말합니다. 요한복음에서 4:24절에서 전에 성경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 때가 온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신령과 진정이라고 하면 우리의 문화에서는 신령한 분위기 속에서 사람의 진정을 가지고 정성을 바친다는 느낌으로 옵니다. 그런데 이번 성경에서 이것을 바르게 표현하였습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복이라고 하기 보다는 하늘에 속한 영적인 복이라고 하면 됩니다. 그러면 이 복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 중에 하나입니다. 여기서 창세전이라고 하는 말은 인간이 전혀 손 쓸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말합니다. 사람이 어떤 영향력을 미칠 수 없는 묵시의 세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시대에 성령이 임하여 자신이 예수님을 죽인 죄인임을 알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면 이것은 우리의 선택과 결단이 아니라 이미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입었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극적인 체험을 하거나 놀라운 일을 인하여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결코 사람에게는 자랑할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디모데후서 1:9-10절입니다.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우리가 부름을 받은 것은 결코 우리의 행함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은혜로 하신 것입니다. 그분이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란 썩지 아니할 내용입니다. 썩고 더럽혀지고 쇠하여지는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디도서 1:1-3절입니다. “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3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전도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약속하신 내용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러한 신령한 복에 대한 관심과 열의와 기쁨이 있기는 한 것입니까? 오늘 읽어드린 성경의 말씀들이 정말 우리 마음에 아멘으로 받아들여진다면 그 사람은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제 더욱 힘써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영적인 복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지를 체험하며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