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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1:3-6 창세전 선택 2012. 5. 6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바울사도가 편지를 쓴 것은 사사로운 편지가 아닙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딤후3:16, 벧후3:15,16).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이 서신을 세심하게 살펴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인사말을 하고서 바로 찬송이 터져 나오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합니다. 3절에서 ‘우리’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바울의 이 찬송에 성령의 역사로 아멘이 되시는 분은 ‘우리’에 포함이 되는 사람입니다.

 

지난주에 신령한 복에 대한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은 자는 바울과 함께 신령한 복을 찬양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 주어지는 것은 언제 결정이 된 것입니까? 지난주 설교 끝에서 잠시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창세전입니다. 창세전이라는 말은 인간이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영역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1:9-10절과 디도서 1:1-3절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라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된 것임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는 것은 전혀 우리의 공로나 행위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런 복을 받기를 원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주어졌습니까?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에 대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걸려 넘어집니다. 특히나 인간의 주체의식이 가장 발달하여 있는 현대 이후의 시대를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더욱 반발이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의 특징은 한마디로 주체성의 극대화입니다. 옛날에는 무지하여, 군주에 눌려서, 종교적인 힘에 눌려서 주체성을 마음껏 발산할 수 없었기에 잠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자기 주체성을 극도로 발산하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을 누가 믿겠습니까? 대형마트에 가서 물건을 골라 담습니다. 내가 물건을 선택하는 것이지 물건이 나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물론 물건들을 팔기 위하여 수많은 광고라는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게 만들고 그 물건을 소유하면 세상의 자랑이 될 만하다는 광고의 유혹을 받아서 물건을 선택하기에 어떤 사람들은 물건이 나를 선택한다고 말하기도 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의 선택들은 주체자인 내가 선택하며 산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신도 내가 선택해서 믿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어떻게 증거 하고 있습니까?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로 모든 인간은 허물과 죄로 죽었기에 스스로 생명을 선택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것을 이사야 선지자는 눈이 감기게 하고 귀를 막으라고 하는 말씀을 듣습니다. 어느 누구도 스스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함에도 인간이 스스로 신을 찾아가서 섬긴다고 하면 그 신은 백 프로 우상입니다. 내가 스스로 신을 찾아갔으니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달라고 하기 마련입니다. 내가 온갖 정성을 바칠 테니 내가 원하는 복을 달라고 하는 것이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입니다.

 

이사야 41:1-9절을 봅니다. “봉독” 여기서 만대란 모든 역사를 말합니다. 모든 역사의 시작과 끝이 다 주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하는 일은 서로 격려하면서 우상을 만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생각에서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낸 신과 종교라는 것이 다 우상입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택한 야곱을 부르십니다. 야곱의 하나님의 벗이라고 하신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야곱은 에서와 쌍둥이입니다. 그런데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에서를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하셨습니다. 에서보다 야곱이 더 속이고 악착같고 세상에 대한 야망이 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야곱이지만 하나님께서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한 자가 어떠함을 보여줍니다.

 

이사야 41:10-14절을 봅니다. “봉독” 야곱을 향하여 두려워하지 말고 합니다. 너와 함께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고 의로운 오른 손으로 붙들어 주신다고 합니다. 야곱을 대하여 분노하는 자들이 멸망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일에 야곱의 어떤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14절에서 야곱을 버러지라고 부릅니다. 이 버러지라는 것은 전에 성경에서는 지렁이라고 합니다. 지렁이는 흙속을 파고 다닙니다. 흙에서 벗어나면 새들의 먹이가 되거나 말라 죽습니다. 그런 지렁이 같은 야곱을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 때문입니다. 이런 말씀에 반발이 일어난다는 것은 자신이 피조물이 아니라 주인이 되어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습니다.

 

로마서 9:10-16절을 봅니다. “봉독” 하나님의 택하심은 사람이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택함을 받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반발이 나오면 로마서 9장의 이어지는 말씀에서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자기의 마음대로 만들 권한이 없느냐고 합니다. 같은 진흙덩어리로 어떤 것은 귀하게 쓸 그릇으로 빚고 어떤 것은 천하게 쓸 그릇으로 빚을 권한이 토기장이에게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흙덩이라는 말이냐고 반발하는 사람은 자신이 흙으로 지음 받은 자임을 몰라서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는 다 땅의 티끌입니다. 땅의 티끌 주제에 자신이 무엇이나 된 것처럼 교만을 떨고 살아갑니다. 이런 교만한 질그릇에 대하여 철장권세를 가지고 오셔서 깨트려 버릴 것입니다. 시편 2:9절입니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시편 2편은 세상의 왕들과 관원들이 일어나서 여호와와 그 기름부음 받은 자에게서 끊어내려고 합니다. 이들을 향하여 하늘의 하나님께서 비웃으시면서 한 아들을 시온에 세우십니다. 이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에게 입 맞추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급하십니다. 그래서 철장으로 질그릇 부수듯이 부수어버린다고 합니다.

 

이 분이 장차 어떻게 세상을 심판하실지 계시록에서 몇 곳을 더 봅니다. 계시록 2:27절입니다.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계시록 12:5절입니다.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계시록 19:15절입니다.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우리가 지렁이고 땅의 티끌입니다. 그러함에도 천상천하유아독존으로 살아가기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이러한 모든 말씀에 아멘이 되십니까? 버러지 같은 자라고, 땅의 티끌이라는 말씀에 진정으로 아멘이 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입은 자들입니다.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자들만이 자신이 어떠한 자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씀들이 선포될 때에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만이 아멘을 합니다. 그러므로 지렁이와 땅의 티끌이 스스로 믿고 나올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더더구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 것을 믿고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할 능력이 사람에게는 애초에 없기에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것이 복입니다.

 

요한복음 15:16절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진액을 빨아먹고 사는 자임을 드러내는 것이 열매라는 말입니다. 스스로 열매를 맺어서 갖다 바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가지가 나무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열매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창세전에 택하심이 얼마나 엄청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인지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2:13-14절입니다. “13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14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처음부터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만이 복음을 듣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택하심은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십니다. 이 구원이 무엇입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부활입니다. 그 모든 영광을 얻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7-9절입니다.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바울이 율법의 행위로서 의롭다 함을 받으려고 한 것을 다 배설물로 여긴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입니다.

 

베드로전서 1:1-2절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성도의 별명이 흩어진 나그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랐다고 합니다. 미리 아셨다는 것은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입었습니다. 무엇을 위한 택하심이니까?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창세전에 선택하신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통하여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택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4절에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신 것은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기 위하여 택하신 것입니다. 흠이 없이 거룩하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와 여러분이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자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그 사랑 안에서 택하심을 입었습니다. 이 사랑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로마서 5:8-11절을 봅니다. “봉독” 우리가 죄인 되어 있을 때에, 우리가 원수 되어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입니다. 이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창세전에 택하신 것입니다.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신다는 것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온전한 신부로 세우시기 위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5:26-27절입니다.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것은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기 위하여 택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택함을 입은 자들이 교회로 부름을 받습니다. 이러한 부름은 그리스도의 신부로 단장되기 위한 것입니다.

 

이미 하늘에서는 완성이 되었지만 이 역사 속에서 우리의 약함과 악함이 교회 안에서 드러납니다. 말씀의 선포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거룩하지 못하고 흠이 많은지를 알게 하십니다. 혼자 있을 때는 자기가 거룩한 줄 알지만 관계 속에서 부딪히면 우리의 실상이 드러납니다. 그러할 때에 자신이 얼마나 버러지이며 땅의 티끌인지를 알게 하셔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으로만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심을 알고 믿게 하시기 위하여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창세전에 택함을 받은 자의 이러한 복들을 맛보며 살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