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4:32~35 무화과나무의 비유 2017. 7. 2

 

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2)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35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태복음 24장의 해석은 마태복음 24:1~3절을 잘 봐야 합니다.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3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제자들은 성전을 자랑하는데 예수님은 성전의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조용히 묻습니다.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을 것인지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을 것인지 알려달라고 하였습니다. 성전의 멸망은 유대인들의 생각에는 세상의 멸망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멸망의 징조가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멸망이 온다고 하여도 주님의 임하심을 다시 질문합니다. 주님이 임하시면 비록 성전이 무너지더라도 다시 세우면 되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의하여 파괴된 성전도 재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세상 끝의 징조도 묻습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대답하신 내용이 마태복음 24장입니다.

 

마태복음 24:1~31절까지 설교 제목만 다시 말씀드리면 무너뜨려지리라, 종말의 시작과 끝, 멸망의 가증한 것, 미혹, 성령강림과 재림, 십자가와 재림이라는 제목으로 살펴보았습니다. 마태복음 24장의 내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재림에 초점을 맞추어 그 날과 그 때를 알려고 합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는 이 말씀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1948년 이스라엘이 재건된 것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보겠습니다만 그러한 날과 때를 말하는 자들은 다 엉터리입니다. 그 날과 때는 천사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셨습니다(36). 그러므로 그 날과 때를 알려고 하는 것 자체가 말씀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시는 것이 종말의 사건임을 요엘서와 사도행전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성령이 임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다 이루심의 결과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자기 백성들의 손에 의하여 일어난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신 것이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자기 백성들에게 배척받았기에 이제 육적인 이스라엘은 끝이 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사도들은 육적인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됨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하시면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인자가 가까이 온다는 말씀을 하셨지만 이 말씀은 재림보다는 성령의 강림으로 먼저 봐야 합니다. 평행구절을 먼저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21:29~33절입니다. “29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30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31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33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오늘 본문과 평행구절인데 조금씩 다릅니다. 마태복음은 무화과나무만 언급되어 있지만 여기서는 모든 나무를 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의 일차독자는 유대인이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하면 성경전체에서 무화과나무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은 이방인을 배려한 복음서입니다. 그러므로 무화과나무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나무도 말합니다. 그러면서 인자의 임함이라는 단어가 마태복음에 나옵니다. 유대인들은 인자의 임함이라고 하면 다니엘서의 예언을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서는 인자의 임함이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하시면서 인자가 가까이 온 것을 알라고 하신 것은 십자가 이후에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이 임한 사건을 성령강림과 재림의 설교에서 피와 불과 연기기둥이라는 요엘서의 표현과 사도행전의 성취를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 32절을 봅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합니다.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안다고 합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내용입니다. 이와 같이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고 하십니다. 이것을 대부분 재림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1948년을 무화과 잎이 나온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1장에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으로 나무가 말라버린 사건이 있습니다. 이것을 열매 없는 예루살렘으로 해석을 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새롭게 세워지는 1948년을 무화과나무 잎이 나오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성전의 터는 이슬람의 사원입니다. 이곳을 이스라엘이 정복하여 제 3성전이 세워지는 것을 종말의 프로그램으로 말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좀 열심 있다는 많은 단체들이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평행구절을 보니 인자가 가까이 온 다는 것이 재림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으로 말씀하였습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의 멸망보다 더 놀라운 멸망의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분을 유대인들이 살해함으로 이제 유대인들의 나라는 영원히 무너진 것입니다. 그들의 혈과 육으로 형성된 나라가 무너지는 것이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지금도 극렬하게 십자가의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메시아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가장 반대한 자들이 유대인입니다. 그런데 또 놀랍게도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증거 하게 된 것은 결코 이들의 능력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다 이루심의 능력임을 보여줍니다.

 

다시 본문 32~33절입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합니다. 무화과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는 것처럼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알라고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과 성령의 임하심을 말씀합니다. 물론 겹쳐서 예루살렘의 멸망과 세상의 멸망까지 포함을 합니다만 오늘 본문이 재림만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자가 가까이 문 앞에 왔다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한 것을 누가복음이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면 종말을 알게 되고 종말을 아는 자들은 혈육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하신 말씀은 단지 징조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뜻도 있습니다.

 

요한복음 1:45~51절입니다.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빌립이 나다나엘을 예수님께 데려오려고 무슨 말을 합니까? 자신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가보니 모세와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만났다고 합니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이 기록한 메시아를 만났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메시아가 바로 나사렛 예수라고 합니다. 빌립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와보라고 하여 데리고 갔는데 예수님께서 먼저 나다나엘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참 이스라엘이라고 하시면서 네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나다나엘이 당신이 어떻게 나를 아느냐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너를 보았다고 하십니다. 이 말을 들은 나다나엘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이스라엘의 임금이라고 합니다. 왜 이런 고백을 하였을까요?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요? 이스라엘의 회복을 생각한 것입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보자 예수님은 네가 더 큰일을 볼 것이라고 합니다. 그 큰일이란 야곱이 본 사닥다리가 예수님 자신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무화과나무 아래라는 것이 무엇인지 성경을 찾아보면 됩니다.

 

구약에서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말할 때에 두 가지 의미로 말합니다. 하나는 평안하게 잘 살아가는 상태입니다. 솔로몬이 다스릴 때에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이 살았다고 합니다(왕상4:25). 다른 하나는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가 잘려지고 잎이 말라버리는 것은 저주와 심판을 말합니다(105:33, 34:4, 8:13). 그러므로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서 이스라엘의 평화를 바라보며 메시아를 기다린 것으로 봐야 합니다. 이런 나다나엘을 부르시고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다는 말씀에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것입니다. 무화과나무 아래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두 곳만 더 찾아보겠습니다.

 

미가 4:1~5절입니다. “1 끝 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2 곧 많은 이방 사람들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니라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3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4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라 5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의지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

 

여기서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많은 민족과 이방을 심판하심으로 모든 전쟁과 무기가 사라지고 평화의 나라가 도래한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라면 이런 말씀을 문자대로 볼 것입니다. 끝 날에 여호와의 전의 산 곧 시온 산이 모든 산들 꼭대기에 설 것을 기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곳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나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 말씀의 성취가 이루어지면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의 날이 올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민이 각자의 신들의 이름을 부르기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니 자기 자신들이 다들 신들이 되어 있기에 평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영원히 행한다고 하는 자들은 포도나무 아래 무화과나무 아래 앉는다는 말은 평화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선지자들의 예언과 달리 이스라엘에는 참된 평화가 없었습니다. 제사장들이 있었고 선지자들이 있었고 왕이 있었지만 제대로 된 평화를 맛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럴지라도 선지자들은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할 날을 예언하였습니다. 이런 약속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여러 가지 환상을 보는 중에 그 당시의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있습니다. 사탄이 참소를 하자 하나님은 사탄을 책망하시면서 대세자장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새 옷을 입도록 하십니다. 더러운 옷을 벗기시는 것을 죄를 사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환상들이 예표가 됩니다. 어떤 예표가 됩니까?

 

스가랴 3:8~10절입니다. “8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들이라 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 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거기에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여기서 대제사장 여호수아도 장차 오실 영원한 대세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합니다. 예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분이신데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 지시는 영원하신 대제사장이십니다. 이러한 제사장이 싹으로 돌로 말하고 있습니다. 돌이란 한 돌에 일곱 분이 있다고 합니다. 일곱 눈이란 온 세상을 살피시는 주의 영을 말합니다. 그 돌에 새길 것을 새긴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고 합니다. 대세자장으로 순으로 돌로 예표 된 그분이 오시는 날에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한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단번에 영원히 제거하신 일이 십자가의 다 이루심입니다. 그렇다면 그 용서를 받은 자들이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서로 초대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알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언약을 어김으로 포도나무가 말라버리고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무화과의 순이 돋아나고 잎이 자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이루실 때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매를 맺지 못하여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으로 나무가 말라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 열매를 맺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인자가 가까이 온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무화과나무를 통하여 심판과 구원이 어떠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자신이 그 심판을 대신 담당하시고 구원과 평화를 주시는 것입니다.

 

본문 34절을 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오늘 말씀을 예수님의 십자가와 성령 임함으로 보지 않으면 이 말씀은 해석이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성령의 임함을 예수님의 세대 사람들이 친히 목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사람들은 이미 세상의 종말을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의 파괴를 제자들이 목격하지 못하여도 이미 세상의 종말이 온 것을 알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한 것입니다. 물론 사도요한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의 파괴도 다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요한은 그런 내용도 언급하지 않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합니다.

 

본문 35잘입니다.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예수님께서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천지보다 귀한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로 예수님의 말씀으로 천지보다 귀한 것으로 믿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하시면서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르렀다는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성령 임함의 내용입니다. 성령이 임함으로 사도들은 혈과 육의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산 자기 백성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말한 것입니다. 이것이 종말의 영이 임한 사도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십자가의 다 이루심과 성령의 강림도 이루어졌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 놓이지 않고 무너지리라는 말씀도 다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한 말씀이 천지보다 귀한 것입니다.

 

구약은 오실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말씀대로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신약은 오신 그리스도와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2천 년 전에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구약의 모든 약속들을 그의 십자가로 다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면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말씀하신 그 순간이 이미 완성입니다. 그 말씀은 반드시 성취가 되는 천하보다 귀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이 성경의 모든 말씀이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믿는 자들이 종말의 영이 임한 성도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세상의 그 어떤 발전이나 희망이라는 말에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면 위의 것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 자들이 성도입니다. 이런 말씀들이 성경에 다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정말로 믿으십니까?

 

이사야 40:6~8절입니다.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말씀의 영원함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며 그의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습니다. 풀이 마르고 꽃이 떨어지지만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섭니다.

 

이사야 51:6~8절입니다. “6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1)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7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내게 듣고 그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8 옷 같이 좀이 그들을 먹을 것이며 양털 같이 좀 벌레가 그들을 먹을 것이나 나의 공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이런 말씀은 천지는 없어지겠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는 말씀과 다 연결이 됩니다. 우리가 무엇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까? 사라질 천지가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영원한 말씀을 믿습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의 죄 짐을 짊어지셨습니다. 이 말씀이 하신 일들만이 영원합니다. 이 말씀을 하신 분이 영원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스가랴 3:9절 하반 절부터 10절까지 다시 봅니다.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는 사건이 어디서 일어났습니까? 십자가에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성령으로 넘겨받은 자들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우리를 짊어지고 그리스도의 몸으로 모으십니다. 이렇게 모인 자들은 십자가 아래에 모인 자들입니다. 십자가 아래 모였다는 것은 미가서의 말씀대로 전쟁이 아니라 평화입니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십자가 아래로 초대합니다. 그 안에만 죄 용서가 있고 그 안에만 참된 평안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만 참된 안식이 있습니다. 이 은혜가 날마다 더 풍성하여 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