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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1. 15

1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1절에 보시면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진 것입니다. 이 재앙은 일곱 대접재앙입니다. 그동안 일곱 인과 일곱 나팔의 재앙을 보았습니다만 이제 일곱 대접의 재앙이 마지막 재앙입니다. 마지막 재앙이라는 것은 이 재앙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완결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지고 있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90:1-12절을 봅니다. 표제어에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라고 되어 있는데 모세가 무엇을 알았는가 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 같이 이 시편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봉독” 제가 병원심방 갈 때 자주 증거 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만 이 말씀이 정말 현실임을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이 현실로 보이지 않습니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피조물인 주제에 창조주가 되겠다는 주제넘은 생각으로 선악과를 따 먹은 사람에게 하신 말씀이 티끌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티끌을 다른 번역으로 보면 파멸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이란 티끌로 즉 파멸로 돌아가는 과정인데 구약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인 므두셀라가 969세를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천년도 밤의 한 경점과 같은 것입니다. 홍수처럼 쓸어 가시니 저희는 잠간 자는 것 같고 아침에 돋는 풀과 같아서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바 되어 마른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주의 노에 소멸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1절에서 주의 진노라고 한 것이 바로 시편 90편 모세의 기도에서 이렇게 나오는 것입니다. 주의 분노에 소멸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그 죄를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그 얼굴 빛 가운데 두셨으니 우리의 일평생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는 것이기에 칠팔십 평생의 자랑이라는 것이 수고와 슬픔뿐입니다. 목사 된 유익이 죽음을 자주 접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정말 이 말씀이 너무나 현실임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이런 하나님의 진노를 알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이런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4절을 봅니다.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시편 90편과 계시록 15장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참으로 두려우신 분이신데 시편에서는 하나님의 두려움을 아는 자가 없다는 것이지만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두려움을 모를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알기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재앙을 다 쏟으시고 나면 어느 누구이든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재림하시고 이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것도 농담으로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는 어떠한가 하는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이 눈에 보이는 하늘과 땅이 불에 타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한다는 것을 믿고 사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수능 시험 날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않아서 함께 영화를 보았습니다. ‘2012’ 인류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해서 보았는데 종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희망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태양주변의 거대한 폭발로 중성자가 방출하여 지구의 핵을 뜨겁게 달구는 것입니다. 지질학자가 이것을 먼저 알고서 백악관에 보고가 되고 지구의 종말을 예측하면서 46개국의 정상이 모여서 비밀프로젝트를 가동합니다. 거대한 배를 중국의 동굴 속에서 만드는데 여기에 드는 비용을 세상의 권세 자와 재벌들에게 회원권을 팔아서 만듭니다.

현대판 노아방주가 되는데 노아 방주에는 노아 가족 외에는 아무도 타지 않았는데 이 방주에는 한 사람당 10억 유로를 받고 티켓을 파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재벌이 아니면 티켓을 살 수도 없는 가격입니다. 살아남으려는 모습이 지옥을 방불하게 합니다. 엄청난 화산폭발과 1500미터가 되는 해일이 발생하면 지각이 바뀌어 버리는데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영화는 결코 종말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아무리 재앙이 쏟아져도 사람은 살아남는다는 희망을 말합니다. 그러나 한번 볼만한 것은 이 지구란 것이 수천도의 온도로 펄펄 끓고 있는 마그마위에 커다란 판때기 몇 개 걸쳐놓고 그 위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다시 1절을 봅니다. 마지막 재앙이 쏟아질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한편에서 놀라운 장면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2절에 보니 불 섞인 유리바다 같은 것이 있고 그 바닷가에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곧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앞에서 보았던 짐승과 그 짐승의 우상과 그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을 이기고 벗어나는 것은 세상의 권세와 영광과 부를 추구하는 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 핍박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들이 부르는 노래가 모세의 노래 곧 어린 양의 노래입니다.

그러면 왜 모세의 노래가 어린양의 노래가 되는지를 구약의 출애굽기에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을 종살이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때가 되어 이들을 출애굽 시키시는 것입니다. 그 출애굽의 과정이 10가지 재앙으로 시작이 됩니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 왕에게 가서 하나님의 백성을 내어 놓으라고 합니다. 그러자 바로가 거절합니다. 거절할수록 재앙은 심하여 집니다. 그 재앙이 10가지로 쏟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왕이 재앙이 쏟아질 때는 잠시 회개하는 척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어 보내겠다고 하다가 재앙이 그치면 다시 강퍅하여 지는 것입니다.

이런 바로의 모습이 오늘 우리의 모습과 별다를 바 없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은 그렇지 이 세상이 끝이 있어! 하나님의 심판이 있어! 그러니 이 땅을 목적으로 살지 말고 위엣 것을 생각하면서 살아야지! 또는 세상에서 떼어놓는 어떤 사건들이 일어나면 그래 내가 지금 무엇을 바라보면서 사는가! 하면서 잠시 위엣 것을 바라보지만 돌아서면 또다시 썩을 것을 구하여 달려가고 있는 강퍅한 우리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마지막 10번째 재앙에서 완전한 분리가 일어납니다. 10가지 재앙이 초반에서는 애굽과 이스라엘을 구별하지 않다가 중간에는 구별하여 재앙이 내립니다. 그러니 애굽에서는 재앙이 내리는데 이스라엘의 땅에는 재앙이 내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10번째 재앙은 이런 구별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자동으로 구별하지 않는 것입니다. 반드시 어린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고기는 불에 구워서 먹으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먹을 때는 떠날 채비를 다 하라고 합니다.

그날 밤에 죽음의 천사가 애굽의 전역을 심판하는데 단 한가지의 조건만 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린 양의 피가 있느냐 없느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이스라엘 백성이고 모세의 가족이라고 하여도 어린 양의 피를 바르지 않으면 사람의 장자와 짐승의 초 태생의 수컷은 다 죽어나간 것입니다. 이방인이라도 이 소식을 듣고서 어린 양의 피를 발랐다면 장자가 살아남는 것입니다. 장자는 대표이기에 다 죽었다고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왕이 놀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내어보냅니다.

그러나 내어보내고 나니 다시 아까운 생각이 들어 애굽의 병거를 보내어 다시 잡아오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바닷가에 있을 때에 바로의 병거들이 들이 닥친 것입니다. 당장 모세를 원망합니다. 이때 모세가 한 유명한 말이 너희는 서서 가만히 있으라고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베푸시는 구원을 보라고 하시면서 모세의 지팡이를 바다로 뻗치니 밤새 동풍이 불어서 바다가 갈라집니다. 좌우로 벽이 된 바다를 건넙니다. 그 동안 구름기둥 불기둥이 이스라엘과 바로 왕의 군대를 격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먼저 건너고 있을 때에 그 차단막을 걷어버리니 애굽 군대가 바다로 추격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넌 길이기에 자기들도 건널 수 있다고 달려들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다에서 다 나오자 말자 바다는 합쳐져서 그들을 수장시켜버린 것입니다. 그때 부른 노래가 모세의 노래입니다. 출애굽기 15:1-3절입니다 “1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3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이런 모세의 노래를 부르는 홍해바닷가에 어떤 모습이 있는 것입니까? 14:30절입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의 애굽 사람의 시체를 보았더라” 애굽 사람들은 수장되어 시체가 즐비하고 한 편은 무사히 바다를 건넌 것입니다. 이 차이점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어린 양의 피의 능력인 것입니다. 홍해 바다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빠져죽을 수 없었던 이유는 어린 양의 피의 능력이 이미 죽음의 사자가 넘어가게 된 것처럼 홍해가 그들을 덮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세의 노래가 곧 어린 양의 노래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5:9-14절입니다. “봉독” 새 노래라는 제목으로 이미 보았습니다만 새 노래의 내용은 곧 어린 양의 노래가 되는 것입니다. 즉 어린 양의 공로를 찬양하는 노래인 것입니다. 일찍 죽임 당한 어린 양이 자기 피로 사람들을 사서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불 섞인 유리바다 건너편에 선 자들이 무슨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 명확한 것입니다. 모세가 부른 노래가 바로 어린 양의 노래가 되는 것입니다.

불 섞인 유리바다를 경계로 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70명의 장로들이 모세와 함께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봅니다. 하나님의 발 앞에 청옥을 편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고 합니다(출24:10). 저는 이 광경이 푸른 옥으로 펼쳐진 것 같으니 유리바다처럼 보였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계시록 4:6절에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다고 하는데 오늘 말씀에서는 이 유리 바다에 불이 섞여있는 것이니 곧 심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벗어난 자들이 노래를 하는 것이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인 것입니다.

이들이 부르는 노래의 내용이 3-4절입니다. 출애굽기와 시편과 선지서에 나오는 말씀들입니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다는 것입니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심판과 구원을 행하시는 그 일이 다 의롭고 참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 거룩하신 것입니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며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노래입니다.

우리 주님 재림하시면 온 세상을 심판하시고 구원하실 자를 구원하실 때에 반드시 이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빌립보서 2:10-11절입니다.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구원 얻는 자나 심판을 받는 자나 다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예수님께 무릎을 꿇은 자들이 복이 있는 사람인데 이들이 바로 어린 양의 피로 값 주고 산 자들입니다.

모세의 노래는 어린 양의 피로 애굽에서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일찍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의 피로 세상 자체에서 탈출하여 불 섞인 유리바다를 건너가서 어린 양의 노래를 모세의 노래를 부른 자들과 함께 부를 것입니다. 그 찬송이 오늘 성찬식을 통하여 더욱 생생하여 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