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3:7~13 재난의 시작과 끝 2019. 11. 24

 

7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8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9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10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12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13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이 놀라서 질문을 합니다. 그런 날은 세상의 끝이기에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나느냐고 묻습니다. 우리는 이런 질문의 대답을 AD70년에 로마의 장군 티투스에 의한 성전건물의 파괴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 건물성전도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다 무너졌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죽으심이 성전의 무너짐으로 말씀하셨습니다(2:21). 그러므로 성전이 무너지는 세상 종말의 징조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봐야 당연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본문 7~8절입니다. “봉독 난리와 난리의 소문, 민족과 민족이 나라와 나라가 대적하여 일어나는 일과 곳곳에 지진과 기근이 일어나는 일들은 창세기부터 계속되는 일들입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로 재난이 없었던 적이 없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살해합니다. 노아 홍수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난리와 전쟁의 소문이 없었던 적이 없습니다. 아브람 시대도 기근으로 인하여 애굽으로 피난 갑니다. 사사시대 나오미의 가정이 살던 베들레헴도 기근이 일어나 모압으로 이민을 갑니다. 유다 왕 웃시야 시대에도 지진이 있었습니다(1:1,14:5). 세상 어느 나라인들 조용한 때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재난의 시작이라는 말씀은 타락이후로부터 세상에 가득한 난리와 전쟁의 소식들이 아닙니다. 어떤 집사님이 이사를 하면서 난리가 났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 내용은 이사 전날 가보니 도배장판이 엉망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하게 되고 이사도 엉망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6.25는 난리도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6.25를 겪지도 않았는데 왜 그 말을 했느냐고 물어보니 할머니들이 자주 쓴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표현은 나에게 일어나는 어려움이 세상에서 제일 큰 난리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짜 난리가 무엇이겠습니까?

 

예레미야 51:44~46절입니다. “44 내가 벨을 바벨론에서 벌하고 그가 삼킨 것을 그의 입에서 끌어내리니 민족들이 다시는 그에게로 몰려가지 아니하겠고 바벨론 성벽은 무너졌도다 45 나의 백성아 너희는 그 중에서 나와 각기 여호와의 진노를 피하라 46 너희 마음을 나약하게 말며 이 땅에서 들리는 소문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소문은 이 해에도 있겠고 저 해에도 있으리라 그 땅에는 강포함이 있어 다스리는 자가 다스리는 자를 서로 치리라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에 의하여 남 유다가 멸망하고 성전이 파괴되는 것을 목격한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이미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 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이 아무리 세계의 제국이라도 하나님의 심판의 몽둥이 역할을 한 후에 멸망당합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전쟁의 소문으로 들리니 유다 백성들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전쟁의 소문은 이 해에도 있겠고 저 해에도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난리와 전쟁은 유일무이한 난리와 전쟁입니다.

 

요한계시록 18:1~4절입니다. “1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2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1)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1)곳이 되었도다 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예레미야 51장과 요한계시록 18장이 똑 같이 바벨론의 멸망을 말합니다. 예레미야 51장은 역사적인 제국의 바벨론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은 묵시적인 표현이기에 이 바벨론은 로마를 말하기고 하지만 온 세상을 말합니다. 온 세상이 요란하고 소란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아담의 타락 이후로 끊임없이 난리와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전쟁을 끝내시는 것이 바벨론의 멸망인데 요한계시록 18장의 내용은 묵시적인 내용이기에 십자가의 전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난리와 전쟁의 소식들은 십자가에 비하면 난리도 아닙니다.

 

창세기 3:14~15절입니다.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과 하와의 타락 후에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뱀의 후손은 여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지만 여인의 후손을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전쟁의 내용이 가장 큰 전쟁인 것입니다. 뱀의 후손이란 옛 뱀 곧 마귀 사탄이며 온 세상을 미혹하는 자가 됩니다(12:9). 이 사탄의 미혹을 받아 세상의 권력을 가진 자들이 하는 짓은 늘 여호와와 그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시편 2:1~3절입니다.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1)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이방 나라들이 소란합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에 지구상에 조용한 날이 없습니다. 민족과 민족이 나라와 나라가 서로 이합집산을 하면서 자기들의 힘을 키우려고 합니다. 온갖 세계기구를 만들어서 자기들의 이익을 도모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여호와와 그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모습입니다.

 

4~12절입니다. “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세상이 요란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요란함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이가 비웃으시면서 자기 아들을 왕으로 세웁니다. 그 아들을 왕으로 세우시는 일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일이기에 영원전의 일이며 창세전의 일이라고 합니다. 시간을 초월하는 내용이기에 묵시적인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름부음 받은 왕을 이 역사 속에서 보이시기 위하여 그림자로 다윗을 왕으로 세웁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림자역할입니다. 실제로 다윗의 왕위에 앉아서 영원히 다스릴 하나님의 아들이 누구입니까? 영원히 다윗의 집에 왕이 될 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1:31,32). 그러면 이 아들이 이 역사 속에 오셔서 언제 영원한 왕으로 등극합니까?

 

마가복음 12:35~37절입니다. “35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36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이미 앞에서 본 내용입니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성령의 감동으로 주라고 고백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시편 110:1절의 내용입니다. 그러면 시편 2편이나 시편 110편의 내용들은 다 누구를 증거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왕 되심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왕으로 등극하시기 위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패배로 보이지만 그 죽으심이 원수를 멸하신 승리입니다.

 

히브리서 2:14~17절입니다.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4)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복음의 핵심을 다 담고 있는 내용입니다.

 

요한일서 3:8절입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 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난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입니다. 마귀의 일을 멸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이 일을 어디서 하시는 것입니까?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내십니다. 그러므로 난리와 난리 전쟁과 전쟁이 일상으로 일어나는 세상의 일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일어날 영적인 전쟁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공중권세 잡은 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달려들어 십자가에 못 박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만 그 일이 오히려 자기들이 영원히 패배하는 일인 줄 마귀들이 몰랐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2:22~25절입니다.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2)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25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지상에서 부활을 증거 하신 후에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10일 만에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함으로 복음을 증거 하여 본격적인 추수가 됨을 레위기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난리와 전쟁을 끝내시고 승리하시고 승천하셔서 주와 그리스도로 일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전하니 핍박을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복음전함으로 핍박을 받음을 사도들이 기뻐합니다(5:41). 스데반 집사는 복음전하다가 순교할 때에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좌우편에 계신을 것을 봅니다(7:56).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당하는 것도 예수님은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9~13절입니다. “봉독 재난의 시작이라는 것은 재림직전의 재난이나 난리의 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전무후무한 재난과 난리의 소식입니다. 이 내용은 다음 주에 계속하여 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세상의 종말의 소식이며 동시에 이 십자가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구원의 소식이 됩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한 제자들이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으라고 합니다. 이런 자들은 세상의 권력자들 앞에 끌려가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뿐 아니라 가족에게서도 배척을 받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미움을 받는 것이지만 끝까지 견디는 자를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재난의 시작이 십자가이며 이 복음이 증거 되는 현장은 언제나 난리의 소문이 들리게 됩니다. 왜 복음이 증거 되는 현장에 난리가 나는 것입니까? 지금 멀쩡하게 잘 먹고 잘살아가는 자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볼 때에 나라도 평안하고 가정도 평안하고 국민의 행복지수도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것은 기존의 모든 체제와 가치관을 둘러엎는 내용이 복음입니다. 그렇다고 물리적인 조직을 만들고 힘을 키워 세상을 변혁시키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의 자체의 능력이 일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4:1~5절입니다.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고발하여 이르되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대제사장이 장로들을 데리고 변호사를 동원하여 벨릭스 총독에게 고발합니다. 고발의 내용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전염병과 같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재난의 시작과 끝은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이지만 그렇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의 소식입니다. 이러한 난리의 소식이 땅 끝까지 증거 되어 주님의 택한 백성들을 다 찾아내시면 이 역사는 끝입니다. 이 끝을 아는 자는 성령이 임하여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세상의 난리와 기근과 전쟁의 소식들이 두려운 소식이 아니라 당연히 멸망할 세상의 소란함으로 보일 것입니다. 세상의 소문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않고 진동하지 아니할 나라를 사모하는 자들이 믿음의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