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6:1-2 인을 떼시는 어린 양 2020. 10. 25

 

1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2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본문 1절의 앞부분을 봅니다.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계시록 5장에서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 이미 보았습니다.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입니다. 그런데 그 죽으심이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보좌에 계신이의 오른 손에 있는 두루마리를 취하시는 일입니다. 이 두루마리를 받아서 펴 볼 자가 하늘위에도 땅 위에도 땅 아래에도 없어서 사도 요한이 울고 있을 때에 장로중 하나가 알려줍니다. 유다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가 취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보니 죽임 당한 어린 양이 그 책을 취하시자 새 노래가 울려 퍼지는 내용까지 보았습니다.

 

계시록 5장에서 이루어진 일을 6장에서 다시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신다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그 일을 차례대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한계에 갇혀있기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알지 못합니다. 성경은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를 영적인 세계라고 합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자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가 믿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거듭난 사람들이 기록된 계시를 통하여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믿습니다.

 

고린도후서 4:18절입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여기서 우리라고 함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 곧 바라보고 소망하고 갈망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물리학적으로 말하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보이는 세계가 성도의 목적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세상이 왜 만들어졌는지 보이지 않는 세상은 무엇인지 성경에서 계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는다면 반드시 주목하는 방향이 달라집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보이는 것이 전부인줄 알고 추구하며 살았습니다. 이런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육적인 눈으로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바라보며 삽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 아주 간단하게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내 삶의 방향성이 눈에 보이는 것입니까? 아니면 보이는 것은 잠간이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영원함을 알고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의 세계를 믿고 살아갑니까? 우리가 이렇게 교회당에 모여서 예배를 한다고 하여도 추구하는 바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면 교회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인간은 보이는 땅의 것만 구하게 되었습니까? 아담과 하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보이는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사람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셨습니다. 이것은 영원하신 하나님과 교제를 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러나 타락하여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됩니다. 그래서 생명나무가 있는 곳에서 쫓아내시면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차단된 증거가 땅에서 나온 것을 먹고 살다가 땅으로 돌아가야 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말씀을 봅니다.

 

창세기 6: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하나님의 영이 사람과 함께 하지 않으면 사람이 육신이 됩니다.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영적인 교제가 끊어진 겁니다. 육신이 된 인간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자기의 근본 된 흙을 경작하여 먹고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육신입니다. 이렇게 육신이 된 자들이 하는 일이 먹고 마시며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만 합니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는 방주를 예비합니다. 은혜를 입은 자는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음을 믿기에 방주를 예비하면서 살아갑니다.

 

골로새서 1:12~14절입니다. “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보이는 것만 바라보며 사는 자들이 흑암의 권세에 갇힌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을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신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은 예수님입니다. 그 예수님의 나라로 옮기시기 위하여 그 아들을 십자가에서 내어 주셨습니다. 그 아들로 인하여 속량 죄 사함을 받음이 빛의 세계로 넘어온 자들입니다. 빛의 세계는 세상의 빛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의 빛은 예수님입니다.

 

이어지는 15~17절입니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을 예수님께서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서 만물이 창조되는데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모두를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위하여 창조하셨습니다.

 

이어지는 18~23절입니다.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믿는 자들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보이는 세계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는 자들입니다. 일 곱 인을 떼시는 어린 양이 누구신지 그분이 어떤 분인지 말씀을 드리기 위하여 골로새서의 말씀을 보는 겁니다. 죽임 당한 어린 양이 하나님의 두루마리를 받아서 취하시고 인봉을 떼신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십자가로 다 이루심으로 사도요한이 본 것이며 성령이 임한 사도들이 보고 증거 한 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의 내용을 믿는 자들이 교회인데 이들이 하나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산 자들입니다. 이런 복음을 전하면 보이는 것만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조롱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런 조롱은 복음으로 인한 핍박이기에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어떤 모습입니까?

 

골로새서 3:1~5절입니다.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1)진노가 임하느니라

 

우리는 다시 살리심을 받았습니까? 다시 살리심을 받은 증거가 무엇입니까? 위의 것을 찾는 사람입니다. 위의 것은 보이는 세계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그 세계입니다. 혼자 보좌에 앉으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피로 구약의 성도들을 용서하시고 흰 옷을 입히셔서 보좌에 앉혀 놓았습니다. 신약의 성도들도 성령으로 인하여 복음을 듣고 믿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혀진 자들입니다(2:5~6). 그러므로 당연히 위의 것을 찾기 마련입니다. 그렇지 않고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을 따라 산다면 이것이 우상숭배이기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무엇을 소망하면서 살아갑니까?

 

이어지는 7~11절입니다. “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우리도 다 전에는 흑암의 권세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이 세상의 신인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에게 속아서 살아왔습니다(12:9). 이런 우리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어 교회가 되었다면 보이는 것을 찾는 자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찾는 자가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교회를 다니지만 말하고 생각하고 추구하는 삶의 모든 방향이 눈에 보이는 것과 땅에 속한 것뿐이라면 이 사람은 아직도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기 전에 서론이 이렇게 긴 것은 본문에서 나오는 내용들이 눈에 보이는 세계의 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인 일이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다시 본문 1절을 봅니다. 내가 보매요한이 하늘에 이끌려 올라가 십자가로 일어난 일을 보고 있습니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이미 계시록 5장에서 본 내용입니다.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어린 양이 일곱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 것을 보는 중에 네 생물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은 말하기를 오라고 합니다. 우렛소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될 때에 우렛소리같이 들립니다. 그러므로 네 생물중의 하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삼하22:14,18:13, 29:3...). 또는 큰 물소리처럼 들립니다(43:2,,,).

 

본문 2절입니다.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면류관을 썼다는 것은 이미 승리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기면서 나가고 이기려고 나가는 것은 이미 승리하였을 확정하여 나가는 싸움입니다. 이 내용은 수요일 저녁에 시편 20편을 통하여 왕의 승리에서 면류관과 활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승리가 십자가의 승리입니다. 구약의 모든 약속들을 십자가로 이루셨기에 승리하셨습니다. 그 승리한 십자가의 완성을 땅 끝까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확정하여 나가시는 일이 복음 선포입니다. 흰 말을 타고 면류관을 쓰고 활을 쏘며 승리하는 내용들이 구약에서 다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승리들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세상의 혈과 육의 말과 무기들일까요?

 

이사야 31:1~3절입니다. “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2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의 말씀들을 변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 하는 자들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들을 치시리니 3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도움을 구하려고 할 때에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애굽은 사람이며 애굽의 말들이 육체라고 합니다. 영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고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자도 함께 멸망할 것이라고 합니다. 육체에 불과한 세상의 사람의 힘과 말과 병거의 힘을 의지하면 의지하는 자가 망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이런 말들과 스가랴서의 말들이 혈과 육의 내용이 아닙니다.

 

시편 33:16~17절입니다. “16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 17 구원하는 데에 군마는 헛되며 군대가 많다 하여도 능히 구하지 못하는도다성경의 말씀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눈에 열리지 않으면 세상의 말과 병거를 두려워합니다. 엘리사 시대에 도단 성을 둘러싼 아람 군사와 말과 병거를 보고 큰일 났다고 말하는 엘리사의 사환을 위하여 엘리사가 기도하니 사환의 눈이 열렸습니다.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러 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왕하6:14~17). 영적인 눈이 열린 겁니다. 그렇다면 계시록의 네 말이 나타나는 이런 내용은 혈육의 말과 병거입니까? 영적인 말과 병거입니까?

 

스가랴 1:7~11절입니다. “7 다리오 왕 제 이년 열한째 달 곧 스밧월 이십사일에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니라 8 내가 밤에 보니 한 사람이 붉은 말을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붉은 말과 자줏빛 말과 백마가 있기로 9 내가 말하되 내 주여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이들이 무엇인지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니 10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니라 11 그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천사에게 말하되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 보니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더이다 하더라 12 여호와의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 하매

 

스가랴 선지자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던 때인 학개 선지자 때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성전 재건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 스가랴 선지자와 환상을 보는데 한 사람이 붉은 말을 타고 화석류 사이에 서 있습니다. 그 뒤에 말들이 나옵니다. 이 말들은 온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라고 합니다. 이들이 세상을 두루 다녀보니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더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을 망하게 한 나들이 평안하게 잘 있더라는 겁니다. 이 보고에 여호와의 천사가 대답합니다.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에 노하신지 칠십 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냐고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칠십년이 되어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세상의 강대국들은 여전히 평안하고 예루살렘이 힘이 듭니다.

 

이어지는 13~17절입니다. 봉독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하며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반역하는 예루살렘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조금 진노하셔서 바벨론의 손에 붙이셨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이 힘을 내어 유다를 다 멸하다 시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바벨론 포로에서 칠십년 만에 돌아왔기에 하나님의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될 것이라고 합니다. 성전이 완성이 되고 성읍이 넘쳐날 것이라고 합니다.

 

스가랴 6:1~8절입니다. 봉독 네 병거와 말들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주 앞에 서 있다가 나가는 하늘의 네 바람이라고 합니다. 네 병거가 나오는 산이 구리 산이라고 합니다. 구리나 놋은 성경에서 심판의 이미지가 됩니다. 그러므로 병거와 말이란 온 세상을 심판하는 바람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 북쪽으로 나간 자들이 내 영을 쉬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 내용은 성전 재건이 되도록 다리오 왕에 다시 조서를 내리게 되는 사건입니다. 이 내용은 에스라 4장에서 6장에 자세히 나옵니다. 이스라서와 스가랴서는 이미 설교를 했기에 그곳을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스가랴 6:9~12절입니다. “9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0 사로잡힌 자 가운데 바벨론에서부터 돌아온 헬대와 도비야와 여다야가 스바냐의 아들 요시아의 집에 들어갔나니 너는 이 날에 그 집에 들어가서 그들에게서 받되 11 은과 금을 받아 면류관을 만들어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고 12 말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싹이라 이름 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스가랴 선지자가 여호와의 말씀을 받는데 바벨론에서 돌아온 자들에게서 은과 금을 받아 면류관을 만들어 여호수아에게 씌우라고 합니다. 여호수아는 그 당시 대제사장입니다. 대제사장인 여호수아에게 면류관을 씌우고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전합니다. 싹이라고 이름 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할 것입니다. 이 성전은 건물 성전이 아닙니다. 영원한 왕과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성전을 만드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말과 병거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로 구원하시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요한계시록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말과 병거를 예언한 이런 내용들까지 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사탄을 이기시는 내용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 양이 인을 떼신다는 것은 스가랴서의 병거들이 나가서 적들을 물리치는 영적인 전쟁을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이루셨다는 내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말과 병거라고 하니 이 시대의 전차와 탱크로 해석하면 그런 것이 육적인 해석입니다. 그러므로 말들의 등장은 영적인 전쟁을 말합니다.

 

본문 1~2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흰 말을 탄 사람이 면류관을 받았습니다. 스가랴서에서 말들의 활동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쓴 면류관과 싹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모든 예언들이 예수님으로 귀결됩니다. 그러므로 면류관을 쓴 것은 이미 승리한 것이며 또 활을 가지심은 계속하여 승리를 하실 겁니다. 십자가는 승리이기에 구원과 심판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모든 구약의 성도들을 십자가의 피로 구원하셨습니다. 묵시적으로는 신약의 완성도 됩니다. 그 십자가의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어 택한 자들이 다 돌아오면 그제야 세상 역사는 끝이 납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믿는 자는 자기 죽임이나 세상의 끝이 두려움이 아니라 소망이 됩니다.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