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7:4~17 인침을 받은 자 2020. 12. 20

 

4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5 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6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7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8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지난주에 인치기까지 네 천사가 사방의 바람을 붙잡고 있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받고 흰옷을 입히는 일입니다. 물론 이런 일이 역사 속에서는 차례대로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았습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약속, 씨를 주신다는 약속을 믿었을 때 이를 의롭다고 하셨습니다(15:6). 이 씨는 그리스도라고 바울 사도가 증거 합니다(3:16). 그러므로 구약의 성도들이 인침을 다 받은 것이 십자가입니다. 동시에 구약에서 인침을 받지 못한 자는 십자가가 심판의 소식입니다. 신약에서 인침을 받는 일은 복음을 듣고 믿는 것이 성령의 인침임을 지난주에 보았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 인침을 받은 자의 숫자를 봅니다.

 

본문 4~8절입니다. “봉독요한이 인침을 받은 자들의 숫자를 듣습니다. 한 지파에서 12천 명씩 12지파이니 144천 명입니다. 인 맞은 자의 숫자를 가지고 얼마나 많은 해석을 하는지 그 해석의 예만 들어도 몇 시간을 말해도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열둘이라는 숫자의 의미가 무언지 살펴보면 모든 구원받은 숫자로 봐야 합니다. 열둘이란 원래 야곱의 열두 아들입니다. 그런데 그 열두 아들이 그대로 열두지파가 되는 것이 아니라 레위 지파는 빠지고 요셉의 두 아들이 두 지파가 됩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열둘로 말합니다. 열두 아들이 한 이스라엘이 됩니다. 열둘이 하나의 이스라엘 나라이기에 여기에는 레위인과 남녀노소도 다 들어가는 숫자가 144천입니다.

 

본문 9~12절입니다. “봉독 144천의 인 맞은 자의 숫자에 대하여 들었는데 이제는 봅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다고 찬송합니다. 그러자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경배의 내용입니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여기서 우리도 아멘 하면 끝이 납니다. 그런데 또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144천은 누구이며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오는 흰옷 입은 무리는 누구인지를 묻습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도 이방인들이 주께로 돌아와 이스라엘에 연합이 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출애굽 때에 수많은 잡족도 따라 나옵니다(12:38). 이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방인이 주님의 인도를 받아 약속의 백성이 됩니다. 몇 사람의 예를 들면 유다의 아내 다말,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 솔로몬 때의 남방 여왕처럼 많은 사람이 주께로 돌아옵니다. 이런 일을 하는 나라가 제사장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셀 수 없는 큰 무리도 144천입니다. 구원받은 모든 숫자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친 받은 자들이 셀 수 없는 큰 무리인데 그들이 다 열둘에 포함이 됩니다.

 

민수기 1:44~46절입니다. “44 이 계수함을 받은 자는 모세와 아론과 각기 이스라엘 조상의 가문을 대표한 열두 지휘관이 계수하였더라 45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그 조상의 가문을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이스라엘 자손이 다 계수되었으니 46 계수된 자의 총계는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었더라전쟁에 나갈 만한 이스라엘 자손의 수를 열두 지파별로 헤아리니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입니다. 이들만 구원을 받고 나머지 레위인이나 어린이나 늙은이는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 양의 피 아래 있으면 다 한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허다한 무리입니다. 사람이 헤아릴 수 없는 큰 무리인데 한 이스라엘이라는 말입니다.

 

창세기 13:16절입니다.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아브람이 조카 롯에게 땅을 먼저 양보합니다. 그렇게 롯을 보낸 후에 하나님의 약속이 헤아릴 수 없는 자손입니다.

 

창세기 15:5~6절입니다.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아이도 낳지 못하는 아브람과 사라인데 하나님께서 자신이 아브람의 방패와 상급이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자신은 자식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무엇이 나에게 상이냐는 항의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별과 같은 자손을 주신다고 합니다. 이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습니다. 이 약속의 자손이 그리스도입니다(3:16). 그러므로 구약이나 신약이나 다 그리스도의 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되는데 그 모든 수가 144천이며 이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수입니다.

 

창세기 32:12절입니다. “1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만에 돌아옵니다. 형 에서를 만나면 죽을까 염려하면서 기도하기를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언급합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하여 열두 아들이 나오고 이들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아지게 되는 일은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그 약속대로 땅과 사람이 많아진 때가 다윗 시대입니다. 다윗 시대에 다윗이 성전을 준비하면서 행한 편성을 살펴봅니다.

 

역대상 22장에서 다윗이 성전 건축을 위하여 준비합니다. 23장에서 레위인을 구별하여 24천 명을 성전을 봉사하도록 합니다. 앞으로 12, 24의 숫자에 유의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24장은 제사장의 직분을 제비뽑아 세우는데 24명입니다. 성전에서 제사장 직분을 행하는데 24반으로 조직합니다. 25장은 찬양대를 조직하는데 역시 24반으로 각 반에 12명씩 조직합니다. 27장은 왕을 섬기는 조직도 12명씩 한 달에 24천 명씩 임명합니다. 모두 1224의 반복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의 수가 1212가 더하여져 24가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숫자가 상징인 것은 하나님의 택한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역대상 27:23~24절입니다. “23 이스라엘 사람의 이십 세 이하의 수효는 다윗이 조사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사람을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음이라 24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조사하기를 시작하고 끝내지도 못해서 그 일로 말미암아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한지라 그 수효를 다윗 왕의 역대지략에 기록하지 아니하였더라다윗 왕이 인구조사를 하다가 재앙이 임한 사건은 역대상 21장에 상세하게 나옵니다. 하나님 백성의 숫자를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하리라고 하셨는데 자기가 파악하여 손아귀에 쥐려는 것이 월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144천의 수가 능히 헤아릴 수 없는 큰 수가 됩니다. 그런데 이 무리는 구약의 성도들이 일차적입니다. 그래서 열두지파의 이름을 말하는 겁니다. 열두지파 안에 들어오는 자들이 구약에서도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오는 것을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허다한 무리나 144천의 수가 하나님의 구원받은 완전한 수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구약의 대제사장 복장을 봐도 가슴의 패에 열두 보석으로 열두지파의 이름을 새깁니다. 그리고 양어깨에 두 개의 보석에 여섯 지파씩 새김으로 합이 24가 됩니다(28).

 

오늘 본문 13~14절을 봅니다. “봉독 144천 곧 능히 헤아릴 수 없는 흰옷 입은 큰 무리가 누구며 어디서 오는지를 장로 중 하나가 묻습니다. 요한이 당신이 아신다고 말하자 그가 알려줍니다.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큰 환난이라고 하니 우리는 7년 대환란이 생각납니다. 어려서부터 너무 많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에서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전무후무한 큰 환난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죽는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이 큰 환난에서 죽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입니다. 그 피에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이 일차적으로 구약의 모든 성도인 144천 곧 허다한 무리입니다.

 

본문 15~17절입니다. “봉독 지난주에 본 대로 인을 치기까지 사방의 바람을 잡고 있게 한 이유는 인을 친 모든 자들이 구원받도록 기다린 겁니다. 그래서 인친 모든 자를 구원하시는 일이 144천 곧 어린 양의 피로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허다한 무리가 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그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깁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십니다. 이들은 다시는 주리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고 그 어떤 기운에서 상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로 구약의 심판과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이 원리대로 십자가 이후로는 복음의 선포로 이 일을 이 역사 속에서 이루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무엇을 다 이루셨는지를 전하는 겁니다. 그러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복음 앞에서 자신의 어떠한 죄인인지를 알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면 이들도 신약에서 144천이 되는 겁니다. 신약의 144천도 헤아릴 수 없는 허다한 숫자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열두지파와 신약의 열두 사도의 이름 안에 모든 신구약의 성도가 포함됩니다.

 

요한계시록 21:9~11절입니다. “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어린 양의 신부를 보여준다고 하는데 어린 양의 신부가 건물 모양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면 어린 양의 신부가 건물이라면 예수님께서 건물하고 사시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어린 양의 신부란 구약과 신약의 구원 받은 모든 자를 말하기 위하여 건물로 설명을 합니다.

 

이어지는 12~17절입니다. “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지파의 이름들이라 13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니 14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15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 자를 가졌더라 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2)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17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3)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어린 양의 신부인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구약의 12지파 이름이 열두 문으로 등장하고 신약의 열두 사도의 이름이 열두 기초석의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이제 이런 말씀이 12 곱하기 12 하면 144가 되고 여기에 완전의 의미 천을 곱하면 144천이 헤아릴 수 없는 허다한 무리 곧 어린 양의 피로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모든 구원받은 수가 됩니다.

 

 

에베소서 2:14~22절입니다.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과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도 어린 양의 피로 흰옷을 입히시는 일이 144천이며 동시에 헤아릴 수 없는 허다한 무리입니다. 이러한 십자가의 원리를 십자가 이후로 재림 때까지, 이 십자가의 복음으로 같은 일을 하십니다. 그래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시고 성령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으신 것이 성전입니다. 바울 사도의 이 말씀이나 사도 요한의 말씀이나 같은 내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한 모든 사람이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서 거하실 처소가 되는 겁니다. 이 처소가 여러 개가 아니라 하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말하는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나 사도 요한이 말하는 어린 양의 신부가 같은 뜻입니다.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구약과 신약의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의 신부 된 한 몸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경쟁과 차별이 아니라 한 성령이 임함으로 한마음으로 그리스도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