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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3:1-9 성령을 받은 것  2011. 11. 13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지난주와 같은 본문입니다. 어느 목사님은 한 본문으로 다섯 번은 설교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정도로 말씀이 풍성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으로 다섯 번만이 아니라 50번을 설교해도 부족합니다. 성령을 받은 것에 대하여 제대로 전하려면 구약과 신약에서 다 살펴보아야 하는데 한 50번 정도 설교하면 어느 정도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내용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말씀을 듣고 깨닫게 하시면 단 한 말씀으로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런 기대를 가지고 말씀을 봅니다.

 

2절을 봅니다. 바울사도가 갈라디아 교회에 알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합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냐 듣고 믿음이냐고 묻습니다. 지난주에 누가 너희를 꾀더냐 하는 말씀을 보았습니다만 그 꾄다는 말도 결국 성령을 받은 것과 연결이 됩니다.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성령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다시 율법적인 행위로 돌아가는지 과연 너희가 성령을 받았는가 하는 의심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성령을 받은 것이며 그 성령을 받은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밝히 드러나 보이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성령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의 설교나 그들의 주장들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밝히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은사나 신비적인 체험들이나 병을 고침 받는 것이나 방언들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구약은 성부의 시대이고 신약의 공관복음서는 예수님의 시대이고 지금은 성령의 시대라고 합니다. 그렇게 구별하는 것이 성경에 나오지 않는데도 그렇게 말합니다. 삼위 하나님은 함께 일하십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증거 하고자 하는 바는 삼위 하나님의 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모르면 성부도 성령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성령을 받는 것이 무엇인지 구약에서 몇 곳을 봅니다. 예레미야 31:31-34절입니다.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옛 언약은 돌 판에 기록이 되었다면 새 언약은 마음 판에 기록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을 보내셔서 그 마음에 언약을 새긴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여 마음에 언약이 새겨지는 그 언약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자기 피로 세우시는 언약입니다. 누가복음 22:19-20절입니다. “19 또 떡을 가져 감사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이렇게 완성된 새 언약을 성령을 통하여 자기 백성에게 부어주십니다.

 

에스겔 36:26-27절입니다.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새 영을 주시면 새 마음이 됩니다. 성령이 임할 것에 대하여 요엘 2:28-29절을 봅니다. “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여기에 하나님의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신다는 것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자기만이 특별한 영을 받아 주의 종이라고 하는 자는 엉터리입니다.

 

사도행전 2장을 봅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40일을 지상에 계시다가 승천 하시고 10일 만에 성령이 임하였으니 이 날이 오순절입니다. 성령이 임하자 다른 언어로 말합니다. 다른 언어 즉 방언에 대하여 신약에서 한 곳만 봅니다. 고린도전서 14:21-22절입니다. “21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방언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의 근거를 율법이라고 하는데 구약 전체를 율법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므로 선지서도 율법이라고 하며 바울사도가 인용한 본문이 이사야 28:11절의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도 믿지 않으니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들이 이 백성에게 말하리라고 합니다. 그것이 이사야 시대는 다른 방언을 말하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순절 성령이 임하여 사도들이 방언을 말한 곳이 예루살렘 한 복판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믿지 아니함에 대한 심판의 증거입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을 때에 성령이 임하여 방언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서 이제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하는 심판의 사건이 방언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방언을 하고 무슨 신비체험을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성령을 받은 가장 분명하고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사도는 요엘서를 인용하면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이 주의 이름이 무슨 이름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구원이며 이것이 성령을 받은 증거입니다. 다윗도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32-42절입니다. “봉독” 성령이 임하게 된 것은 어떻게 이루어진 일입니까?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하나님이 살리시고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높이셨습니다. 하늘 보좌에 등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다고 합니다. 성령이 임한 자들이 아주 분명하게 증거 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살리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 마음이 찔린 자들이 어찔할지를 묻습니다. 베드로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로 받으리라고 합니다. 다르게는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하느냐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성령의 역사이기에 성령의 선물이라고도 하고 성령을 받는다고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성령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게 되면 성령은 단독적으로 일하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게 됩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한 자들이 그렇게 증거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보내실 것이라고 하시면서 성령이 임하시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며(요14:26), 예수님을 증거 하시며(요15:26),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는데 성령이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알리신다고 하셨습니다(요16:13). 그러므로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을 받은 자는 성령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고 믿게 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밝히 보이게 됩니다.

 

또한 성령이 임하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십니다. 요한복음 16장의 말씀인데 자주 말씀을 드렸습니다. 죄에 대하여 책망하심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의란 예수님이 떠나 버리셨기에 인간들이 만들어 낸 의라는 것이 책망을 받습니다.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는데도 우리는 세상의 기준과 심판을 두려워하는 것에 대한 책망이 성령의 역사입니다(요16:8-9). 히브리서 10:29절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은혜의 성령이 임하게 되면 하나님의 아들이 흘린 언약의 피를 알고 믿게 됩니다. 이것을 부정하는 것이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성령을 받게 되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로마서 8:14-17절입니다.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증언 하시기에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게 됩니다. 고린도 전서 12:3절에서는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은 것은 십자가에 못 박하신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는 것이며, 예수님의 십자가는 모든 언약을 완성하신 새 언약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는 사람들이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령을 받았다고 말하는데 성령의 은사나 신비주의로 말하거나,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예수 믿고 난 이후의 자기의 훌륭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인 중의 괴수임을 알아가는 것이 성령이 임한 자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밝히 보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으로 감사하고 기뻐하는 자들입니다.

 

오늘 세례를 받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문답 시간에 로마서 6장을 가지고 세례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연합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요한복음 17:21-22절입니다.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이 하나라고 합니다. 무엇으로 하나가 됩니까? 성령으로 하나가 되셨습니다. 이 하나 됨의 자리에 아버지께서 창세전에 택한 자기 백성들을 아들의 피의 공로로 함께 참여시키시는데 그 일을 성령이 하십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제거하시고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한 새 사람을 지어서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십니다. 한 새 사람이 되는 것은 오직 성령으로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는 것은 한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유대인이니 이방인의 차별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릿도의 십자가로 하나 되었다는 것만 밝히 드러납니다. 이런 자들이 성령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러한 성령을 받은 것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받고 성찬에 참여한다는 말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잡혀 함께 묶였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도저히 빠져 나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살 수 밖에 없는 신세입니다. 세상의 헛된 욕망에 붙들려 있다면 기쁜 소식이 아니겠지만 성령을 받은 자라면 이것이 영원한 생명의 길 인줄 알기에 울면서도 가는 길입니다. 이러한 성령이 임한 것이 예수님의 피로 이루신 새 언약의 능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