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3:16~22 눈 먼 인도자 2017. 3. 26

 

16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7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18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9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예물이냐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20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21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22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 함이니라

 

지난주에 본 화 있을진저!’에 대한 내용은 선생과 랍비와 지도자라는 칭함 받기를 좋아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천국을 가로 막고 있는 것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이들이 평소에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은 영원한 나라, 곧 천국에 대하여 가르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천국의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부지런히 전도하여 교인 하나를 얻으면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를 구약의 화 있을진저! 대한 말씀들을 찾아보니 그 이유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고, 천국에 간다고 하면서 이렇게 교회당으로 모였습니다. 또 전도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당신이 가려는 그런 천국에 나도 가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아니면 당신을 보니, 나는 당신이 가는 천국에 가고 싶지 않다고 합니까? 저의 어머니가 먼저 교회로 나오시고 아버지는 한참 뒤에 나오셨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화가 나시면 네가 천당은커녕 벽에도 못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게 워드플레이입니다. 천당을 집의 천장과 비슷한 발음이기에 천당은커녕 벽에도 가지 못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 자라면 하늘의 것을 사모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보다 더 인색하고, 세상 사람보다 더 세상의 것에 집착한다면, 우리가 천국 문을 가로막는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을 봅니다. 16절에서 예수님은 화 있을진저! 눈먼 인도자여라고 합니다. 눈 먼 인도자가 오늘 설교제목이기도 합니다만 17절에서는 어리석은 맹인이라고 합니다. 19절에서는 맹인이라고 합니다. 같은 내용을 세 번이나 말씀하십니다. 인도자가 눈이 멀면 그의 인도를 받는 자들이 다 잘못된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고 이미 마태복음 15:14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고 비난한 배경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이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지킨다고 손을 씻고 음식을 먹었지만 정작 중요한 하나님의 계명을 사람의 유전으로 폐하고 있다고 책망하신 말씀입니다. 사람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인데도 이들은 겉만 씻고서는 거룩한 체를 한 것입니다. 이들이 눈 먼 인도자들입니다.

 

이러한 눈먼 인도자, 맹인들이 어떤 짓을 하고 있습니까? 성전으로 맹세를 하면 아무 일 없겠지만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키라고 합니다.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이 없겠지만 제단의 예물로 맹세하면 지키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맹세를 하면 자신보다 더 높고 큰 것을 가지고 맹세를 합니다. 우리도 어떤 맹세를 할 때에 하늘과 땅을 두고 맹세를 합니다. 때로는 자기 아버지의 이름이나 자기 자녀의 이름으로도 맹세를 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도 맹세를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거론할 수가 없기에 성전이나 제단이나 하늘로 맹세를 합니다. 그런데 백성의 인도자라는 자들이 어떻게 가르칩니까?

 

성전과 제단을 두고 맹세를 하면 지키지 않아도 아무 일이 없겠지만 성전의 금이나 제단의 예물로 맹세를 하면 반드시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예수님은 어느 것이 크냐고 묻습니다. 금이 큰지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 큰지를 묻습니다. 동일한 방식으로 예물이 큰지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 큰지를 물으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하는 것이며,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이로 맹세함이며,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세 번째 화가 있을진저!’에 해당되는 눈 먼 인도자들이 무슨 짓을 한 것입니까? 이들은 성전이나 제단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금과 예물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거룩한 성전을 말하고 거룩한 제단에 예물을 바치라고 말합니다. 성전으로 맹세하거나 제단으로 맹세한 것은 지키지 않아도 무방하지만 성전의 금이나 제단의 예물로 맹세한 것은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의 금이나 제물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전과 제단과 그를 통하여 보여주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눈 먼 인도자들은 제단과 성전과 하나님보다 금과 예물이 더 크고 중하다고 본 것입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제사보다 젯밥에 눈이 먼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예배당으로 모여서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찬양도 하고, 기도도 하고, 연보도 하고, 식당 봉사도 하고, 설교도 합니다. 이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자신이 하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설교자는 그 무엇보다 설교가 중요하다고 여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마다 자기의 행위가 중요하다고 여기게 되면 정말로 크고 중요한 하나님의 크신 일을 놓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큰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마태복음 5:33~37절입니다. “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이미 앞에서 본 말씀이지만 오늘 말씀과 연결하여 일부분을 다시 보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은 인간의 맹세라는 것이 크고 높은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생각하는 맹세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따른 맹세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 처하면 어떤 맹세라도 남발을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늘로도 땅으로도 예루살렘으로도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이며,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이며, 예루살렘은 큰 임금의 성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네 머리로도 맹세하지 말라고 합니다. 자기의 머리로 맹세한다는 것은 자신의 전부를 걸고 하는 맹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의 머리카락 하나 마음대로 희거나 검게 하지 못하는 유한하고 제한적인 피조물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맹세할 수준도 되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백성의 인도자라고 하는 자들이 어떤 맹세는 안 지켜도 되고 어떤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지키고 아니 지키고의 내용은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편리와 자신들의 이익을 따라 맹세의 기준을 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자들이 눈 먼 인도자들입니다. 이들의 인도를 따라 가면 결국 둘 다 구덩이에 빠지는 것이며 천국에도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 땅에 수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교회들마다 목표들이 있습니다. 영구 목표를 두고 해마다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기도 합니다. 영구 목표란 거의 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목표가 설정됩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하여 여러 가지 실천사항들이 나옵니다. 그 실천사항들을 제가 일일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여러분들은 잘 알 것입니다. 그런 실천사항들에 너무 지쳐서 이곳으로 오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그런 실천사항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복음으로 여기고 오셨다면 잘못 오셨습니다.

 

복음은 무엇을 잘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복음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입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살고 그리스도를 나의 배경으로 삼고 싶은 것입니다. 여전히 내가 주인인 상태로 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내 몸과 마음이 편한 것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이란 이런 우리를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이시고, 이 역사 속에서 실제로 죽여나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죽음에 넘겨지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렇게 죽어가면서 성도는 무엇을 확인 당하는가 하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확인당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의 계시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인간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하나님의 언약을 완성하시고, 그 다 이루심의 의를 그 영으로 넘겨주신 자들만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이러한 자들은 이제 자기를 위하여 살 수가 없게 됩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임을 확인당하는 과정이 성도의 삶입니다. 이러한 길에 서 있는 자들은, 자신의 결단과 결심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 알게 됩니다. 어떤 맹세를 하여도 그것이 나를 위한 맹세임이 들키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자기 맹세를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눈 먼 인도자들이 아니라 눈을 뜨게 된 인도자들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사도행전 1: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성령이 임하면 앞에 오직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직이라는 말은 다른 일로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여야만 제자들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땅 끝까지 증인이 되는데 누구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증인이 되라는 말씀이 아니라 증인이 되게 하겠다는 예수님의 의지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 곧 맹세대로 성령을 보내십니다. 성령이 임한 제자들이 예수님의 증인이 됩니다. 이러한 증인은 맹세를 시키는 자들이 아니라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를 바라보라고 합니다(12:12).

 

마태복음 5장의 맹세에 대한 말씀을 보면서 전한 내용 일부를 봅니다. 시편 105:7~10절입니다. “7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도다 8 그는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걸쳐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9 이것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고 이삭에게 하신 맹세이며 10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여호와의 언약은 영원한 언약입니다. 이 언약을 맹세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시고 이삭에게 하신 맹세이며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언약 곧 여호와 자기의 이름으로 맹세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언약의 책이며 하나님의 자기 맹세를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어내신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6:13~20절입니다. “1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14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15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 17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하나님은 하나님보다 더 높으신 분이 없기에 하나님의 자기 이름으로 맹세하십니다. 맹세는 자기보다 크고 영원한 것으로 맹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보다 더 크고 영원한 분이 없기에 하나님은 자기 이름으로 맹세하십니다. 그리고 맹세는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으로 맹세하신 것을 신실하게 이루어내심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과 가나안 땅을 차지한 것을 통하여 다 보여주셨습니다. 이러한 약속을 보여주신 것은 오늘날 성도들이 가는 길에 소망이 흔들리지 않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맹세의 결론이 예수께서 휘장 안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7:18~28절입니다. “18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20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21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23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27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28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지금까지의 맹세에 대한 말씀을 보면서 무엇이 구별이 됩니까? 인간의 맹세라는 것은 얼마나 자기의 위기를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의 맹세인지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도무지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세상에서 행하는 서약들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세례문답도 못하고 결혼 서약도 못할 것입니다. 이런 것들도 다 맹세이기 때문입니다. 전에 말씀드렸지만 장우식 형제가 제가 왔을 때에 청년인데 세례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왜 그런가 물어보니 자기는 세례 문답을 할 때에 그런 내용을 지킬 능력이 없다고 하였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은 약속을 지키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자기 약속을 지켜내실 것을 믿느냐고 물으니 믿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세례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맹세는 하나님만이 하시는 것이며 그 맹세를 이루는 결론이 히브리서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이 하나님의 모든 맹세의 완성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야고보서 5:7~12절입니다. “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10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12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

 

우리가 앞에서 본 맹세를 왜 한다고 보았습니까? 사람들이 위기에 처하면 어떤 맹세를 해서라도 그 위기를 면하고 싶은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맹세를 합니다. 맹세를 지킬 능력도 없는 주제에 맹세를 하는 것은 이런 욕심들이 들어 있기에 정죄를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맹세를 하도록 만드는 자들이 있다면 이들이 눈 먼 인도자들이라는 말입니다. 자기의 탐심을 이루기 위하여 맹세하고 서원하고 기도하는 것들이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가르치는 자들이 눈 먼 인도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주님 강림하시기 까지 고난 가운데 오래 참으라고 합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그렇게 걸어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맹세하지 말고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라고 할 것은 아니라고 하면 됩니다. 이것도 얼마나 우리 인간에게 불가능한지 우리가 체험하면서 삽니다. 모든 사람이 예하는데 아니라고 하는 것과 이와 반대로 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아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면 전적인 은혜입니다.

 

성경에 마지막으로 나오는 맹세가 요한계시록 10:5~6절입니다. “5 내가 본 바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6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곧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7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여기서 나오는 천사가 맹세를 합니다. 그런데 이 천사의 형상이 영광 받으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1절을 보면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은 사도 요한이 본 영광의 주님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이 천사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천사로 나타난 자가 작은 두루마리 책을 들고 땅과 바다를 밟고 서서 오른 손을 하늘로 들고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합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천사로 나타나서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한 그 맹세가 무엇입니까?

 

일곱 번째 나팔이 불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비밀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 나팔은 마지막 나팔입니다. 그러면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하나님의 비밀이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비밀이 이미 성도에게는 다 알려져 있습니다. 십자가의 다 이루심안에 그 비밀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알지 못합니다. 세상은 사람들끼리 맹세를 하면서 자기보다 높은 온갖 이름을 들먹이면서 맹세를 할 것입니다. 자기의 위기를 벗어나려고도 맹세하고, 자기의 소원성취를 위하여서도 맹세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이미 십자가가 세상을 이긴 그 비밀을 알기에 그런 헛된 맹세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과 언약하신 그 맹세를 이루실 것을 믿음으로 견디는 것입니다. 그 견딤이 잠시잠간입니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1:15~19절입니다. “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16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7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하나님의 맹세는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십니다. 그 맹세로 이루신 비밀이 마지막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면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십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 비밀을 모릅니다. 알려주어도 믿지를 않습니다. 이 세상의 신이 이 세상은 영원할 것으로 속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나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온 우주에 밝히 드러내시고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일곱째 나팔 소리에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자기 이름으로 맹세하셨습니다. 그 맹세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었습니다. 마지막 나팔에 성전 안에 언약궤가 보인 것은 하나님의 언약대로 이루어내실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지혜와 계시의 영이 임하여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그 일들이 밝히 보여 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