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9:42~50 지옥불과 소금 2019. 6. 23

 

42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43 만일 네 손이 너를 1)범죄 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2)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4 3)(없음) 45 만일 네 발이 너를 1)범죄 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2)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6 3)(없음) 47 만일 네 눈이 너를 1)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지난주에 제자들이 편 가르기를 하다가 예수님께 책망 받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세상이 늘 요란한 것은 편 가르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만이 아니라 교회에서도 얼마나 편 가르기를 하는지 모릅니다. 물론 빛과 어두움이 함께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 자신은 언제나 빛이라고 착각하기에 다른 사람들을 어두움으로 보는 것입니다. 자기 눈에 들보가 가려져 있기에 남의 눈의 티만 지적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세상만사를 자기중심으로 줄 세우기를 하고 편 가르기를 하는 것이 죄입니다. 이것이 죄인 줄 아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믿는다는 것은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1:10).

 

42절을 봅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양과 염소를 나누시는 장면에서 예수님을 믿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께 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지극히 작은 자와 예수님을 동일시합니다. 우리는 큰 일,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선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면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43절입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1)범죄 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2)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낫다고 합니다. 42절에서는 타인을 실족하게 하는 일이 있다면 연자 맷돌이 목에 달려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그런데 43~47절까지는 자신의 실족을 말합니다. 여기서 실족이나 범죄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스칸달리세인데 영어로 스캔들이라는 단어입니다. 스캔들로 조작하면 멀쩡한 사람도 하루아침에 생매장됩니다. 그러므로 실족이란 타인이나 자신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되는 일을 말합니다.

 

44절입니다. 없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가끔 이런 곳이 나옵니다. 이것은 어떤 번역본에는 있는데 어떤 번역본에는 없다는 표시입니다. 그런데 어떤 번역에는 없음이라고 되어 있는 44절과 46절 자리에 48절의 말씀이 있습니다. 48절은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지옥은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는 것이 후렴구처럼 나옵니다.

 

45~48절입니다. 손과 발이 범죄 하면 손과 발을 찍어 버리고 눈이 범죄 하면 눈을 빼서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지옥은 더 이상 죽을 수도 없습니다. 그곳에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습니다.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이렇게 지옥이 무서운 곳이지만 지옥에 가지 않으려고 손이 범죄 하였을 때에 손을 찍어 버린 사람이 있습니까? 발이 죄 짓는 곳에 간다고 발을 찍어 버린 사람이 있습니까? 눈이 죄를 짓는다고 눈 뽑은 사람이 있습니까?

 

제가 어려서부터 교회를 열심히 다닌 이유는 지옥이 무서워서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교회를 열심히 다녀도 죄를 해결할 길이 없었습니다. 분명히 지옥이 무서운 것은 알겠는데 죄를 지었다고 손을 찍어내지도 발을 찍어 내지도 못했습니다. 도박을 하는 사람이 도박을 하지 않으려고 손가락을 잘랐지만 곧 손가락에 붕대를 감도 다시 도박하러 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진짜로 손과 발을 찍고 눈을 뽑아도 죄를 끊을 수 없는 것은 그 죄가 속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7:18~23절을 봅니다. “봉독 우리가 앞에서 본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보고 장로들의 전통을 어겼다고 시비를 겁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속 곧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합니다. 속에서 나오는 것은 우리 안의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과 같은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합니다. 우리의 속이 이렇기에 손과 발을 자르고 눈을 뽑아서 될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지옥 불에 다 들어가야 합니다.

 

여기서 지옥이라는 단어가 게헨나입니다. 게헨나는 힌놈의 골짜기를 뜻하는 게힌놈이라는 히브리를 헬라어로 표기한 것이 게헨나입니다. 이곳은 예루살렘 서남쪽의 골짜기 이름입니다. 이곳에는 우상숭배를 바알의 제단이 있었고 심지어 자기 자식을 몰렉이라는 우상에게 불에 태워 제물로 바치는 곳이었습니다. 우상숭배를 어느 정도로 심하게 하였는지 자기 자식을 제물로 바칠 정도였습니다. 우상숭배가 탐심입니다. 이런 곳을 요시야 왕이 쓰레기 더미로 만들어 버립니다.

 

열왕기하 23:10~14절입니다. “10 왕이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을 더럽게 하여 어떤 사람도 몰록에게 드리기 위하여 자기의 자녀를 불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고 11 또 유다 여러 왕이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을 제하여 버렸으니 이 말들은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곳의 근처 내시 나단멜렉의 집 곁에 있던 것이며 또 태양 수레를 불사르고 12 유다 여러 왕이 아하스의 다락 지붕에 세운 제단들과 므낫세가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세운 제단들을 왕이 다 헐고 거기서 빻아내려서 그것들의 가루를 기드론 시내에 쏟아 버리고 13 또 예루살렘 앞 멸망의 산 오른쪽에 세운 산당들을 왕이 더럽게 하였으니 이는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시돈 사람의 가증한 아스다롯과 모압 사람의 가증한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가증한 밀곰을 위하여 세웠던 것이며 14 왕이 또 석상들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들을 찍고 사람의 해골로 그 곳에 채웠더라

 

요시야 왕이 예루살렘의 온갖 우상들을 부수어 내 버린 곳이 힌놈의 아들 골짜기가 지옥의 대명사 게헨나가 된 것입니다. 지옥의 이미지는 온갖 탐심의 우상들을 불태우고 해골로 그곳에 채운 곳입니다. 물론 우상숭배를 한 자들의 해골들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에 쓰레기 더미를 불태우는 곳이니 구더기도 득시글거리며 온갖 더러운 것과 탐심의 배설물들이 불에 타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지옥은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곳이라고 게헨나로 말씀합니다.

 

이사야 14:9~15절입니다. “9 아래의 스올이 너로 말미암아 소동하여 네가 오는 것을 영접하되 그것이 세상의 모든 영웅을 너로 말미암아 움직이게 하며 열방의 모든 왕을 그들의 왕좌에서 일어서게 하므로 10 그들은 다 네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도 우리 같이 연약하게 되었느냐 너도 우리 같이 되었느냐 하리로다 11 네 영화가 스올에 떨어졌음이여 네 비파 소리까지로다 구더기가 네 아래에 깔림이여 지렁이가 너를 덮었도다 12 너 아침의 아들 1)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15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스올도 죽은 자들은 가는 곳이기에 지옥과 연결됩니다. 스올에 바벨론의 왕이 갑니다. 대제국 바벨론의 왕이 수많은 왕들을 물리쳤지만 그 왕들이 먼저 들어가 있는 무덤의 세계 곧 지옥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바벨론 왕이 얼마나 교만하였든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자기 자리를 높이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 먹은 인간들의 타락한 본성입니다. 이러한 교만으로 왕으로 군림하였지만 죽어서 무덤에 내려가니 그곳에 수많은 왕들이 먼저 들어가 있다가 너도 연약하여 우리와 같이 되었느냐고 합니다. 세상에서 최고의 영광이 무덤에 내려가니 구더기가 그 아래 깔리고 지렁이가 덮게 됩니다. 이러함에도 세상 영광이 부럽습니까?

 

이사야 66:22~24절입니다.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 초하루와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

하나님이 지으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새로운 피조물만이 들어갑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 합니다(고후5:17).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거듭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않은 자들이 들어가는 곳이 스올이며 게헨나입니다. 이곳에는 벌레 즉 구더기도 죽지 않으며 그 불이 꺼지지 않는 곳임을 말씀합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천국과 지옥을 농담으로 여깁니다. 우리 중고등부 학생도 절반은 믿지 않는다고 합니다. 성경이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오늘 본문 48~49절을 봅니다. “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표준 번역입니다. “48 지옥에서는 11)'그들을 파먹을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49 모든 사람이 다 소금에 절이듯 불에 절여질 것이다.” 지옥은 불이 꺼지지 않을 뿐 아니라 불로 소금을 치듯이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번역을 보면 사람을 소금에 절이듯 불에 절일 것이라고 합니다. 지옥불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그러므로 손발을 찍고 눈을 빼서라도 지옥에는 가지 않아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본문 50절 표준 번역입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너희는 무엇으로 그 짠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너희 가운데 소금을 지니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어라.” 49절에는 지옥에 들어가는 사람이 불에 소금 치듯 할 것이라고 하니 소금이 지옥에 간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 소금이 맛을 잃은 것입니다. 맛을 잃은 소금은 버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맛을 잃지 않는 소금은 어떤 사람입니까? 너희 가운데 소금을 지니고 서로 화목하라고 합니다. 지금 제자들이 편 가르기를 하는 말씀의 결론과 같습니다. 제자들끼리도 서로 경쟁하고 시기합니다. 이런 모습은 아직도 그 속에 소금으로 절여지지 않은 것입니다. 성도는 소금이 그 안에 쳐지는 사람입니다.

 

레위기 2:13절입니다.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이스라엘 백성들이 곡식가루 제사를 드릴 때에 소금을 치라고 합니다. 이 소금을 치는 것을 언약의 소금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곡식가루로 드려지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하면 이스라엘 백성 안에 소금을 치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지옥에서 불로 소금 치듯 하는 것은 소금을 불로 절여버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이 세상에서 소금에 절여져야 합니다.

 

역대하 13:5절입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 아니냐남 유다 아비야가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에게 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주신다는 언약이 소금언약이라고 합입니다. 그런데 유다도 망합니다. 그러나 다윗에게 하신 그 소금 언약을 예수님께서 이루십니다(1:32). 그 이루심이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언약을 변하지 않고 완성하시는 소금언약의 완성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 안에 소금을 치라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너희 안에 두라는 것입니다. 소금을 치면 무릇 살아있는 것이 죽게 되지만 부패하지 않고 보존 되듯이 예수님을 믿는 것은 세상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보존됩니다.

 

에베소서 2:13~22절입니다.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인간이 타락함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된 인간들은 인간들끼리 서로 서로 원수가 됩니다. 그래서 유대인과 이방인도 원수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원수들이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한 새사람이 되어야 화평하게 됩니다. 이러한 자들은 한 성령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어 아버지께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언약을 완성하신 것이 영원히 변하지 않을 소금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소금을 우리 안에 치고 화목 하라는 말씀도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이루셔서 성령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성령이 임한 자는 자기 죄를 알기에 자기주장을 할 수 없기에 그 피 안에서 화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지금 여기서 소금이 쳐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지옥에서 불로 소금 치듯 함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 참 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