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12~13 광야로 몰아내심 2018. 8. 19

 

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1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지난주에 본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임하시며 하늘에서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렇게 성령의 세례를 받으신 후에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셨다고 합니다. 마태복음은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시험을 받으시는 장면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40일 금식하신 후에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유혹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유혹과 모든 세상의 영광을 주겠다는 유혹을 모두 말씀으로 물리치십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은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시고 시험을 받으셨다는 말씀과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시중들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 12절입니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셨다고 합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신 후에 왜 광야로 가야 합니까? 세례 요한도 광야에서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광야는 빈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40년을 지낸 곳이 광야입니다. 그런데 이 광야에 사십 일을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동안 한 일은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는 일만 했습니다. 이것을 민수기 14:22절에서는 는 열 번이나 여호와의 말씀을 어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편 78편을 보면 늘 어긴 것입니다. 광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성경의 몇 곳을 찾아보겠습니다.

 

창세기 28:12~19절입니다.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1)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야곱이 형의 장자 권을 죽 한 그릇으로 차지하고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챕니다. 에서는 장자의 권리를 소홀히 하였습니다만 나중에 야곱이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챈 사실을 알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야곱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안 리브가는 야곱을 자기 친정으로 피신시킵니다. 야곱이 외삼촌의 집으로 가는 중에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잡니다. 그곳이 광야입니다. 그런데 꿈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하신 약속을 주십니다. 야곱이 그 약속을 받고 그곳이 하나님의 집이며 하늘의 문이라고 합니다. 광야에서 하늘이 문이 열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것을 야곱에게도 이루시겠다고 하시면서 그 약속을 다 이루시기까지 야곱과 함께 하신다고 하십니다. 이 약속을 받은 야곱의 인생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만사형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에는 만사형통이 되지만 야곱의 자기 뜻은 만사불통이 시작됩니다. 외삼촌의 집에 가서 라헬을 사랑하며 칠년을 수일같이 품을 팔았는데 막상 결혼하고 보니 언니 레아인 것입니다. 외삼촌이 야곱을 7년 더 부려먹으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14년을 종살이 하면서 아내 둘 얻었습니다. 다시 6년은 자기의 품삯을 위하여 일하였습니다. 그런데 도망가야 합니다. 얍복 강에서 천사와 씨름하다가 허리가 위골 됩니다. 평생 장애인으로 삽니다. 딸이 강간을 당합니다.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참으로 험악한 나그네 세월을 보냅니다. 결국은 애굽에서 죽지만 자신을 아브라함과 이삭의 무덤에 묻어 달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 안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약속 안에 들어간다는 말이 무엇일까요? 야곱은 하늘에 연결된 그 사닥다리의 계시를 받고 나서는 이곳이 하늘의 문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여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짓습니다. 이런 내용은 결국 하나님의 약속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고 할 것입니다. 야곱이 꿈에서 본 그 사닥다리를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나오는 하늘의 문, 사닥다리를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늘에 연결된 사닥다리이며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입니다.

 

요한복음 1:51절입니니다.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과 배경과 내용은 이렇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메시아를 만났다고 합니다. 갈릴리 나사렛 출신이라고 합니다.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고 합니다. 그러자 빌립이 나다나엘을 예수님께 가보자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나다나엘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는 참 이스라엘이라고 하면서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나다나엘이 어떻게 나를 아느냐고 묻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다는 말씀을 듣고 바로 예수님을 향하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이스라엘의 임금이라고 합니다. 그때에 네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던 것을 보았다고 하는 말을 믿는다면 이보다 더 큰일을 볼 것인데 그것은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지 위에 오르락내리락 할 것을 보리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하늘의 문이시며 길이십니다. 이것을 야곱은 광야에서 미리 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사닥다리를 자신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은 야곱이라는 한 개인의 인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신다는 믿음이 아직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 약속을 받고서는 아멘하고서 가면 될 텐데 불안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시면 십일조를 바치겠으며 이곳에 성전을 지어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렇게 한 내용이 성경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약속을 도망가는 야곱, 광야, 그것도 꿈속에서 하시고 결국 이루어 내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전체에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내십니다.

 

예레미야 2:1~2절입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

 

창원극동방송설교를 마태복음 마치고 예레미야를 시작했습니다. 지난주 이 본문을 녹음하면서 오늘 광야와 연결이 되어서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기억하신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라는 여성명사로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남편이시고 이스라엘이 아내라는 표현입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목격하는 선자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기억하신다고 합니다. 그 때가 네 청년 때의 인애와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한다고 합니다. 그 때가 언제인가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입니다. 출애굽 하여 시내산에서 언약을 체결함으로 하나님은 남편이 되고 이스라엘은 아내가 됩니다. 그리고 신혼여행이 광야입니다. 씨를 뿌리지 못하는 광야에서 나를 따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한 적이 없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신명기를 보면 열 번이나 거역하였다고 합니다. 시편 78편은 거듭거듭 늘 반역만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이 광야의 시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따랐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시편 78:12~17절입니다. “12 옛적에 하나님이 애굽 땅 소안들에서 기이한 일을 그들의 조상들의 목전에서 행하셨으되 13 그가 바다를 갈라 물을 무더기 같이 서게 하시고 그들을 지나가게 하셨으며 14 낮에는 구름으로, 밤에는 불빛으로 인도하셨으며 15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시고 매우 깊은 곳에서 나오는 물처럼 흡족하게 마시게 하셨으며 16 또 바위에서 시내를 내사 물이 강 같이 흐르게 하셨으나 17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범죄 하여 메마른 땅에서 지존 자를 배반하였도다광야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보면서도 그들은 계속하여 하나님께 범죄하고 배반하였습니다.

 

이어지는 36~41절입니다. “봉독 하나님을 반역함으로 징계가 오면 살려달라고 빌지만 그러나 돌아서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하나님을 거역합니다. 그들은 돌이켜 거듭거듭 시험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노엽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향하는 마음에 정함이 없습니다. 그의 언약에 성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함에도 죄악을 덮어 주시어 멸망시키지 않으신 이유는 하나님의 긍휼이며 또한 인간이 육체이며 가고 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다고 합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혼 때에 그 인애를 이스라엘을 위하여 기억하신다고 합니다.

 

광야에서 한 번도 제대로 순종한 적이 없는데도 왜 하나님은 광야 때의 인애를 기억하신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야곱을 보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도망가다가 광야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 야곱에게 하나님은 어떤 책망도 하지 않으시고 자기 약속을 하십니다. 이것은 야곱이 어떠한 자 인지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도 똑 같은 것입니다. 광야에서 그들의 실상이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늘 원망과 불평을 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신혼 때의 인애를 너를 위하여 기억한다고 하시는 것은 광야에서 구름 기둥 불기둥의 인도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그 인도가 없으면 죽습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구름 기둥 불기둥의 인도를 받아가지만 하나님은 이것을 신혼 때의 인애라고 기억해 주십니다.

 

교회에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지 않고 일반적인 종교의 가르침을 따르면 사람들이 얼마든지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신에게 정성을 바치는 만큼 신은 나에게 더 큰 축복을 주신다고 하면 그 축복을 위하여 따라갈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복음은 우리가 죽어야 한다는 소식입니다. 나의 뜻과 계획이 죽고 하나님의 뜻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것입니다. 아들을 보고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입니다. 이런 복음을 누가 좋다고 따라나서겠습니까? 그러므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름 기둥 불기둥의 인도를 좋아서 따라간 것이 아니라 가지 않으면 광야에서 죽을 수밖에 없기에 따라갑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네 신혼 때의 인애를 기억한다고 합니다.

 

신명기 8:1~3절입니다. “1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왜 광야 40년을 걷게 하신 것입니까? 광야에서 주리고 낮추신 이유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광야 길로 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 동안 단 한 번도 제대로 순종한 적이 없습니다. 물이 없다고 원망합니다. 양식이 없다고 원망합니다. 길이 험하다고 원망합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의 인도를 목격하면서도 원망합니다. 만나를 먹고 반석에서 물을 마시면서도 불평합니다. 이러한 광야의 길에 예수님께서 들어가십니다. 예수님께서 광야로 가신 것은 이스라엘이 실패한 그 광야의 길에 그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심으로 그 백성들을 살려내시는 길입니다.

 

레위기 16:21~22절입니다. “21 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22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다음에 레위기를 보면서 자세히 보겠습니다만 속죄일에 염소 두 마리를 택하여 한 마리는 죽여 속죄소 앞에 피를 뿌리고 한 마리는 광야로 이스라엘의 모든 범한 죄를 지워 광야로 보냅니다. 염소를 광야로 내 몰아야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죄가 없는 분이 죄인을 대신하여 광야로 가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셨다고 합니다. 성령께서 급하게 예수님을 몰아내셔서 광야로 나가게 하신 것입니다. 왜 광야로 나간 것인지는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친 내용에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예레미야서와 시편과 레위기에서 살펴보았습니다. 광야에서 늘 원망과 불평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달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하게 순종하셨습니다. 그래서 40일을 광야에서 금식하시고서 사탄의 시험을 받으시는데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처음 시험을 방금 읽은 신명기 8장의 말씀으로 물리치십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본문 13절입니다.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시중들더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험 받았던 광야에서 예수님은 모든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에덴동산에서 사탄의 유혹을 받은 시험도 예수님은 이기신 것입니다.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세상의 자랑이 될 것에 대한 시험을 예수님은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들짐승과 함께 거하시고 천사가 시중듭니다.

 

이사야 11:1~9절입니다.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5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메시아야가 오시면 이 일을 이루십니다.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시고 이기신 예수님은 결국 십자가에서 최종승리를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는 이런 세계를 맛보며 살게 됩니다. 해함과 상함이 없는 나라,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없는 나라, 참된 평안이 있는 나라입니다. 이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부분적으로 맛을 보는 자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면 완전한 샬롬의 세계가 완전하게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성도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이런 샬롬을 부분적이라도 맛을 보게 됩니다. 이런 평화를 맛보는 사람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사모하면서 살아가기에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소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성령께서 성도를 광야로 몰아내십니다. 광야는 사람도 없습니다. 외롭습니다. 먹을 것과 마실 것도 없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염려가 되는 방향으로 몰아내십니다. 그런 곳에서 온갖 시험을 다 받습니다. 그런데 그런 광야에서 무엇을 배우게 됩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하신 말씀을 배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웁니다. 이들은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원해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주께서 자기 백성을 이렇게 인도하시는 것을 구약을 통하여 보여주셨습니다. 구약을 완성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오시면 우리도 그리스도가 가신 그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주 학생회 수련회를 하면서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복음을 심어준다는 것이 인간으로 불가능함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목이 터져라 외쳐도 마지못해 들어주는 척 하는 것이 보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7장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믿음이 없는 아하스 왕이 표적을 구하라고 하는데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징조로 주신 것이 임마누엘의 약속이었습니다. ‘마헬살랄하스바스를 통하여 스알야숩하시고 임마누엘하신다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통하여 남은 자를 돌아오게 하시고 그들 안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십자가로 다 이루시고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신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의 길이 광야로 가는 길입니다. 그 광야로 몰아내실 때에 십자가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