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2:41~23:12 나의 종말이 2021. 3. 21

 

22:41 아침에 발락이 발람과 함께 하고 그를 인도하여 바알의 산당에 오르매 발람이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의 진 끝까지 보니라 23:1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여기 제단 일곱을 쌓고 거기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하소서 하매 2 발락이 발람의 말대로 준비한 후에 발락과 발람이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리니라 3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당신의 번제물 곁에 서소서 나는 저리로 가리이다 여호와께서 혹시 오셔서 나를 만나시리니 그가 내게 지시하시는 것은 다 당신에게 알리리이다 하고 언덕길로 가니 4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시는지라 발람이 아뢰되 내가 일곱 제단을 쌓고 각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렸나이다 5 여호와께서 발람의 입에 말씀을 주시며 이르시되 발락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할지니라 6 그가 발락에게로 돌아간즉 발락과 모압의 모든 고관이 번제물 곁에 함께 섰더라 7 발람이 예언을 전하여 말하되 발락이 나를 아람에서, 모압 왕이 동쪽 산에서 데려다가 이르기를 와서 나를 위하여 야곱을 저주하라, 와서 이스라엘을 꾸짖으라 하도다 8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 9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그를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 10 야곱의 티끌을 누가 능히 세며 이스라엘 사분의 일을 누가 능히 셀고 나는 의인의 죽음을 죽기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노라 하매 11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그대가 어찌 내게 이같이 행하느냐 나의 원수를 저주하라고 그대를 데려왔거늘 그대가 오히려 축복하였도다 12 발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아니할 수 있으리이까

 

지난주에 발람과 나귀에 대하여 보았습니다. 한 주간 말 안 듣는 나귀를 몇 번이나 만났습니까? 온통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면 제대로 나귀를 만난 겁니다. 그런데 그런 나귀를 때리면 나귀가 말을 할 겁니다. 나귀가 말을 할 때 눈을 뜨게 되면 천사가 칼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보는 겁니다. 내가 내 뜻대로 잘 풀려가는 것이 결코 복이 아님을 성경이 말씀합니다. 타락한 인간이 내 뜻대로 가는 길은 지옥으로 가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은 내가 생각한 나의 길이 부인되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우리 안에 이루어집니다. 그 길이 예수님을 믿는 길입니다.

 

오늘 본문 22:41절입니다. 발람이 발락에게 환대를 받았습니다. 그다음 날 아침에 발락이 발람을 인도하여 바알의 산당에 오릅니다. 바알의 산당은 바알 신을 섬기는 곳입니다. 풍요와 다산의 신인 바알의 산당이 높은 곳에 있기에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진 끝까지 봅니다.

 

23:1~3절입니다. 발람이 발락에게 제단 일곱을 쌓게 합니다. 일곱 제단에 제물을 드리기 위하여 일곱 마리의 수송아지와 숫양이 필요합니다. 왜 일곱 개의 제단을 만들라고 하였을까요? 성경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제단을 쌓을 때는 하나의 제단을 쌓습니다. 물론 관유나 피를 뿌릴 때는 일곱 번 뿌리라고 하지만(8:11,16:14), 제단을 일곱 개 쌓으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일곱 개의 제단을 쌓은 이유는 이방인도 일곱이라는 숫자를 좋게 보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자기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고서 발람 왕은 제물 곁에 서게 하고 발람은 다른 곳으로 가서 기다립니다. 제단을 쌓는 방법도 자기 마음대로 또 제단도 자기를 위하여 쌓으라고 하였는데 왜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십니까?

 

4~6절입니다.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임하십니다. 발람이 하나님께 말합니다. ‘내가 일곱 제단을 쌓고 각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렸나이다종교인의 특징입니다. 일곱 제단을 쌓고 각 제단에 제물을 드렸다고 말씀을 드립니다. 발람은 자기가 한 공적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기에 대하여 한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발람의 입에 말씀을 주시며 발락에게 돌아가서 말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자기 언약을 얼마나 신실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루시는지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발람이 발락에게로 돌아가니 발락과 모압의 모든 고관이 번제물 곁에 함께 서 있습니다.

 

7~1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발람에게 주신 말씀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모압 왕 발락이 나를 데려왔지만,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은 자를 내가 어찌 꾸짖을 수 있느냐고 합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자신의 종말이 이스라엘과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저주가 아니라 축복을 하면서 발람도 그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는 말을 듣고 발락이 나의 원수를 저주하라고 데려왔더니 오히려 축복 한다고 합니다. 그러자 발람이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발람에게 주신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본문 7절입니다. 발람이 예언을 전합니다. 이 예언은 발람이 여호와께 받은 말씀입니다. 앞에서도 보았습니다만 이방인의 큰 무당도 하나님께서 도구로 사용하시는 겁니다. 나귀도 사용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이라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은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수 있다고 세례 요한이 회개를 촉구합니다(3:9).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제자의 무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하면서 찬송합니다.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예수님께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라고 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고 하십니다(19:38~40). 여호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7~8절입니다. 발람이 예언을 전합니다. 발락이 나를 아람에서, 모압 왕이 동쪽 산에서 데려다가 이르기를 와서 나를 위하여 야곱을 저주하라, 와서 이스라엘을 꾸짖으라고 하지만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겠느냐고 합니다. 그동안 알려진 발람은 발람이 축복하면 복을 받고 발람이 저주하면 저주를 받는 줄 알고 높은 관리를 발람에게 보내어 모셔온 겁니다(22:6). 그런데 자신의 복과 저주가 전혀 통하지 않는 민족이 이스라엘이라고 고백하면서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저주하지 않으시고 꾸짖지 않으신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9~10절입니다. 여기서 살펴볼 내용은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며 그를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과 야곱의 티끌을 헤아릴 수 없다는 것과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신명기 33:27~29절입니다. “27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28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모세의 축복입니다. 이스라엘이 홀로 거한다는 것과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는다는 그 언약의 복을 말합니다. 지금 발람의 예언 속에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한 내용이 다 나오고 있습니다.

 

둘째는 창세기 13:16절입니다. “1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아브라함이 롯과 헤어진 뒤에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입니다. 창세기 22:17절입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렸다가 돌려받은 후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창세기 26:4절입니다.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애굽에 내려가지 말고 이곳에 머물라고 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창세기 28:14절입니다.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야곱이 형을 피하여 도망가는 중에 광야에서 돌 베개를 베고 잘 때 받은 말씀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약속하신 내용이 네 씨가 땅의 티끌같이 많으리라고 한 그 약속이 약 4백 년이 지난 지금 이루어진 것입니다.

 

셋째는 나는 의인의 죽음을 죽기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이 부분까지 예언의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이 발람의 소원일 수도 있지만, 여호와의 영에 의하여 예언된 내용이기에 참된 복이란 의인의 죽음을 죽는 것이며 나의 종말 곧 나의 죽음이 그와 같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이 내용은 발람이 이 복을 받느냐 아니냐의 문제보다도 하나님의 복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겁니다. 발람은 그동안 자기가 주술을 사용하여 축복하면 복을 받고 저주하면 저주가 내려지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전혀 그것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받은 그 복을 받기를 원한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발람이 간절히 원한 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주어진 예언이기에 발람은 이 예언을 하고도 이 복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민수기 31:1절입니다.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민수기 25장을 볼 때 이 내용에 대하여 신약까지 연결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발람이 발락 왕에게 융숭한 대접을 받고서 이스라엘을 아무리 저주하려고 하여도 저주가 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돌아가는 길에 발람이 발락에게 한 꾀를 전한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음란에 빠지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발람이 이스라엘의 죽음과 같은 죽음이 되기를 원한다고 한 이 예언의 내용은 자기의 속이 변하여 나온 고백이 아닙니다.

 

본문 10절을 다시 봅니다. 야곱의 티끌을 누가 능히 세며 이스라엘 사분의 일을 누가 능히 셀고 나는 의인의 죽음을 죽기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노라 하매야곱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없다고 한 내용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서 그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레와 같이 땅의 티끌같이 많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증거가 지금 신명기의 현장입니다. 그러므로 그 약속을 받은 자들이 죽음을 죽기를 원하여 나의 종말도 그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는 내용을 야곱에게서 봅니다.

 

창세기 48:14~16절입니다. “14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15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16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야곱이 늙고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병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요셉이 두 아들을 데리고 야곱의 축복을 받게 하려고 큰아들을 요셉의 왼손에 작은아들을 요셉의 오른손으로 이끌어 야곱에게 나갑니다. 야곱은 손을 뻗어서 머리에 올리면 야곱의 오른손이 큰아들 므낫세에게 왼손이 작은아들 에브라임에 가는 겁니다. 그런데 야곱이 손을 엇바꾸어 머리에 손을 얹었습니다. 요셉은 이를 마땅치 않게 여겨 손을 바꾸려고 하니 야곱이 나도 안다고 합니다. 육신의 눈이 멀었지만, 영적인 눈이 뜨인 겁니다. 그래서 자기를 지금까지 인도하여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어떻게 신실하게 이루어내셨는지를 지금 손자를 축복하는 엇바꾼 손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기꾼의 뜻이 있는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이름이 되는 순간부터 장애인이 되어 평생 지팡이를 짚고 살아야 하였습니다.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삶이 어떤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발람과 나귀에 대하여 보았습니다. 나귀가 발람의 길을 막지 않았다면 세 번이나 하나님의 천사의 칼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였을 겁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길을 언약의 백성으로 이끌어 가시는 일을 신실하게 이루어내신 겁니다. 야곱의 생애를 보면 그의 아버지 이삭과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보다 훨씬 더 많은 고난을 겪습니다. 그런데 그 고난을 겪으면서 더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언약의 신실함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내용을 도망가는 야곱에게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하는 복과 그 과정을 함께 담아서 보여주는 축복입니다.

 

창세기 49:29~33절입니다. “29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30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의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31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노라 32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33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1)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야곱이 죽을 때 유언한 내용입니다. 세계 최고의 제국인 애굽의 총리가 요셉입니다. 왕은 이름만 왕이지 왕보다 더 큰 실질적인 통치는 요셉이 하는 그런 나라에 묻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그의 아내 레아가 있는 곳에 묻히기를 원합니다. 그가 그렇게 사랑한 라헬의 무덤에 묻어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의 인생길이 험악하였으니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반드시 그 언약대로 이루심을 평생에 걸쳐 온몸으로 겪은 야곱입니다. 이러한 야곱이 이스라엘이며 이러한 이스라엘의 최후 안식처는 하나님의 약속 안에 들어가는 겁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죽음과 같은 죽음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33:27~29을 다시 봅니다. “봉독 모세가 한 이 축복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영원한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된다고 합니다. 그 영원한 팔이 네 아래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안고 가시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런 여호와의 구원을 얻은 자들이 누구냐는 겁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 15:17절에서 홍해를 건넌 후 모세의 찬송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처 삼으신다고 합니다. 시편 90:1절도 모세의 시편인데 주님은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된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14:1~3절입니다.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1)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신다는 말씀입니다. 아버지가 아들 안에 아들이 아버지 안에 있는 그 관계 속에 자기 백성을 함께 참여시키신다는 말씀이 요한복음 14~16장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그 성령이 임하였다면 우리의 종말도 이스라엘과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스라엘이 보여주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임을 요한계시록에서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도 같은 은혜를 입은 자라면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을 소망하게 됩니다(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