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5:1~31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2020. 8. 16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는 내가 주어 살게 할 땅에 들어가서 3 여호와께 화제나 번제나 1)서원을 갚는 제사나 낙헌제나 정한 절기제에 소나 양을 여호와께 향기롭게 드릴 때에 4 그러한 헌물을 드리는 자는 고운 가루 십분의 일에 기름 사분의 일 힌을 섞어 여호와께 소제로 드릴 것이며 5 번제나 다른 제사로 드리는 제물이 어린 양이면 전제로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을 준비할 것이요 6 숫양이면 소제로 고운 가루 십분의 이에 기름 삼분의 일 힌을 섞어 준비하고 7 전제로 포도주 삼분의 일 힌을 드려 여호와 앞에 향기롭게 할 것이요 8 번제로나 서원을 갚는 제사로나 화목제로 수송아지를 예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는 9 소제로 고운 가루 십분의 삼 에바에 기름 반 힌을 섞어 그 수송아지와 함께 드리고 10 전제로 포도주 반 힌을 드려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화제를 삼을지니라 11 수송아지나 숫양이나 어린 숫양이나 어린 염소에는 그 마리 수마다 위와 같이 행하되 12 너희가 준비하는 수효를 따라 각기 수효에 맞게 하라 13 누구든지 본토 소생이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를 드릴 때에는 이 법대로 할 것이요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주셔서 살게 하시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화제, 번제, 낙헌제, 절기제, 각양 헌물, 곡식 가루와 기름으로 드리는 모든 규례들은 레위기에서 다 살펴본 내용입니다. 제사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피 흘림의 속죄제사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제사로 언약한 제사장 나라입니다. 이런 내용들은 레위기에서 보았기에 오늘 분문에서 집중하여 보려고 하는 내용은 타국인과 거류민에 대한 내용입니다.

 

14~16절입니다. “14 너희 중에 거류하는 타국인이나 너희 중에 대대로 있는 자나 누구든지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를 드릴 때에는 너희가 하는 대로 그도 그리할 것이라 15 회중 곧 너희에게나 거류하는 타국인에게나 같은 율례이니 너희의 대대로 영원한 율례라 너희가 어떠한 대로 타국인도 여호와 앞에 그러하리라 16 너희에게나 너희 중에 거류하는 타국인에게나 같은 법도, 같은 규례이니라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거류하는 타국인이나 너희 중에 대대로 있는 자나 간에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하라고 합니다. 대대로 있는 자란 정통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지만 출애굽 과정에서 함께 나온 무리들입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에서 이스라엘에 편입이 된 자들이나 그 이후라도 이스라엘에 편입되는 자들에게도 같은 법도와 규례를 따르라고 합니다.

 

17~21절입니다. “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8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인도하는 땅에 들어가거든 19 그 땅의 양식을 먹을 때에 여호와께 거제를 드리되 20 너희의 처음 익은 곡식 2)가루 떡을 거제로 타작마당의 거제 같이 들어 드리라 21 너희의 처음 익은 곡식 2)가루 떡을 대대에 여호와께 거제로 드릴지니라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의 양식을 먹을 때에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을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라고 합니다. 처음 것을 드림은 그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오게 된 것이 그들의 노력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셨음을 기억하게 합니다.

 

22~26절입니다. “22 너희가 그릇 범죄 하여 여호와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 모든 명령을 지키지 못하되 23 곧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여호와께서 명령한 날 이후부터 너희 대대에 지키지 못하여 24 회중이 부지중에 범죄 하였거든 온 회중은 수송아지 한 마리를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로 드리고 규례대로 소제와 전제를 드리고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로 드릴 것이라 25 제사장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면 그들이 사함을 받으리니 이는 그가 부지중에 범죄 함이며 또 부지중에 범죄 함으로 말미암아 헌물 곧 화제와 속죄제를 여호와께 드렸음이라 26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타국인도 사함을 받을 것은 온 백성이 부지중에 범죄하였음이니라속죄의 제사가 있음이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한 일입니까? 이 속죄에도 타국인이 포함이 됩니다.

 

27~31절입니다. “27 만일 한 사람이 부지중에 범죄 하면 일 년 된 암염소로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28 제사장은 그 부지중에 범죄 한 사람이 부지중에 여호와 앞에 범한 죄를 위하여 속죄하여 그 죄를 속할지니 그리하면 사함을 얻으리라 29 이스라엘 자손 중 본토 소생이든지 그들 중에 거류하는 타국인이든지 누구든 부지중에 범죄 한 자에 대한 법이 동일하거니와 30 본토인이든지 타국인이든지 고의로 무엇을 범하면 누구나 여호와를 비방하는 자니 그의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 31 그런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의 명령을 파괴하였은즉 그의 죄악이 자기에게로 돌아가서 온전히 끊어지리라

 

인간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범죄를 하게 되면 속죄제를 드리게 합니다. 속죄제가 있다는 것은 인간이 용서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복음입니다. 그래서 개인이 범죄 하거나 제사장이 범죄 하거나 간에 속죄의 길이 다 있습니다. 이러한 속죄에도 본토 소생이나 거류하는 타국인이나 같이 속죄의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방인에게도 열려있는 복음입니다. 그러나 본토인이나 타국인이나 간에 이런 법과 속죄의 제사를 알고 있으면서도 여호와의 법을 고의로 범하고 여호와를 비방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 끊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자들의 모습이 어떤지 엘리제사장 집을 봅니다.

 

사무엘상 3:12~14절입니다.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셨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의 인도로 약속의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사사시대의 말기에 사무엘이 등장합니다. 이 때에 말씀이 희귀하였다고 합니다. 엘리 제사장은 늙었고 두 아들은 타락하였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 먼저 드린 후에 제사장에게 돌아가야 할 제물을 여호와께 드리기도 전에 자기들이 먼저 가져가 먹은 겁니다. 제사와 제물을 멸시하는 자들은 저주를 자청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책망도 듣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죽이기로 작정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명의 선지자가 심판을 전합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삼상2:29)” 엘리 집안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으로 망하는 모습은 장차 이스라엘의 역사도 이러함을 미리 보여주는 역할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된 것은 여호와의 언약을 배반하고 제사를 멸시하였습니다. 그래서 북 이스라엘은 앗스르에 남 유다는 바벨론에 멸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하시기에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자기들을 거룩하게 하려는 운동이 일어납니다. 이 운동이 분리주의 운동인 바리새파 운동입니다. 분명히 율법에도 이방인들에 대하여 속죄의 길이 열려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범죄를 하든지 속죄의 길이 열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율법의 규례를 덧붙여서 자기들은 의롭고 그렇지 못한 세리와 죄인들과 이방인들을 죄인 취급하였습니다.

 

이럴 때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런 바리새인들을 저주하시면서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리면서 자신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은 어떻게 하면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여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엘리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처하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속죄함을 받는 길이 구약에서 속죄의 제사가 보여준 내용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멸시하여 죽여 버림은 엘리의 두 아들이 제물을 멸시한 것과 같은 죄악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10:26~29절입니다.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모든 죄가 다 용서 받지만 성령을 훼방하면 용서 받지 못한다는 죄가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죄입니다. 더욱 간단히 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멸시하는 것이 용서 받지 못할 죄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이 오늘 교회로 모였다는 것은 우리는 진멸당하여 마땅한 죄인들이 예수님의 피 값으로 용서 받고 모였음을 인정하는 자들입니다. 여기에는 세상의 어떤 가치로도 편 가름을 할 수 없는 모입니다. 혈연, 학연, 지연, 정치적인 성향들이 다 배설물임을 아는 자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땅의 교회라는 곳이 얼마나 많은 세상적인 가치로 편 가름을 하는지 우리의 눈으로 늘 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보았듯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타국인과 거류민이라도 같이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범죄 하면 동일하게 속죄의 제사를 드림으로 속죄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라는 곳에서 자신들의 세상 가치관을 따른 정치성향으로 온갖 편 가름을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피가 무엇을 이루었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는 모습들이 도처에 횡행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3:29~30절입니다. “29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30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한 후에 이 말씀을 합니다. 그러므로 이미 구약 율법에서 타국인이라도 함께 율법 적용을 받습니다.

 

고린도전서 1:22~24절입니다. “22 유대인은 2)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십자가 안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이 주 예수의 은혜로 한 몸이 됩니다.

에베소서 2:11~13절입니다. “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러므로 생각하라고 합니다. 우리도 생각 좀 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구약 식으로 말하면 약속의 땅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기 전에 우리는 유대인들의 시각으로 보면 이방인이며, 할례도 없는 자들이며, 그리스도 밖에 있었으며,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들이며, 약속의 언약에는 외인들이었기에 세상에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자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약속의 땅인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어지는 14~18절입니다.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유대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였는데 예수님의 피로 한 새사람을 만들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신 겁니다. 그런데 이방인인 우리가 다시 유대인으로 돌아갔습니까? 온갖 분리주의가 교회 안에 가득합니다. 물론 비 진리는 반드시 배격하여야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정치적인 취향이 진리입니까?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관이 진리입니까? 자신이 알고 있는 성경 몇 구절이 진리입니까? 율법에도 이방인이나 타국인이 같은 속죄의 제사로 하나님께 용서 받는 길이 있는데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원수 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새사람이 되는 곳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입니다.

 

이어지는 19~22절입니다.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약속의 땅에 들어간다는 것은 기존의 애굽의 삶의 방식을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광야 40년을 보내면서 사람이 사는 것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을 배우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까? 아니면 썩어질 자기 가치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갑니까? 사람들이 좋아는 설교는 자기의 가치를 긍정해 주는 설교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를 따라 오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모퉁이 돌이 되십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버림받은 예수님께 붙어서 새로운 집이 되려면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모든 가치관들이 다 무너져 내려야 합니다. 나의 어떤 주의나 주장들을 성경에 투사시켜 자기주장을 하는 것이 죄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주장과 신념들이 살아있는 말씀으로 해체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지는 자리가 예배입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모퉁이 돌이 붙어서 새로운 집이 지어져 갑니다. 이러한 처소에 영원하신 하나님이 사시겠다고 하십니다. 묵시 속에서는 이미 완성이 되었습니다. 이 역사 속에서도 거의 다 지어져 갑니다. 이곳에는 어떤 차별이나 주의나 주장이 없습니다. 이전의 죄악된 것들은 기억되거나 생각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로 영원한 기쁨이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산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이 영원한 하나님이 거하실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