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24:18~25:7 유다 멸망의 의미(1) 2017. 3. 5

 

18 시드기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일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요 립나인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19 그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20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진노하심이 그들을 그 앞에서 쫓아내실 때까지 이르렀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

 

지난주에 여호야긴 왕에 대한 말씀을 보았습니다. 여호야긴 다음으로 여호야긴의 숙부 밋디야가 바벨론 왕에 의하여 이름이 시드기야로 고쳐서 왕으로 세워집니다. 이름이 다른 나라의 왕에 의하여 고쳐진다는 것은 그 나라의 속국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유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왜 이렇게 멸망하는 유다를 그냥 보고만 계시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본 내용대로 유다의 멸망과 왕과 왕후와 수많은 귀족들과 능력 있는 자들이 포로로 잡혀가는 것도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가 멸망하는 그 의미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왕하 24:18~20절을 봅니다. 시드기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21세입니다. 예루살렘에서 11년간 다스립니다. 그의 어머니는 하무달이며 립나인 예레미야의 딸입니다. 그러므로 시드기야는 요시야의 셋째 아들이며 여호아하스 왕 곧 살룸의 형입니다(대상1:15). 시드기야는 유다의 마지막 왕으로 기록이 됩니다만 그의 행위도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에 진노하심으로 그들을 그 앞에서 쫓아내실 때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에 의하여 세워졌는데 바벨론 왕을 배반함으로 바벨론이 쳐 들어와서 완전히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왕하 25:1~3절입니다. “1 시드기야 제 구년 열째 달 십일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에 대하여 진을 치고 주위에 토성을 쌓으매 2 그 성이 시드기야 왕 제 십일 년까지 포위되었더라 3 그 해 넷째 달 구일에 성 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양식이 떨어졌더라시드기야가 왕이 된 지 구 년 만에 바벨론 왕을 배반합니다. 이렇게 된 것은 예루살렘 안에 반 바벨론의 정서가 강한 자들이 득세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을 배신함으로 바벨론이 쳐들어와서 성을 포위합니다. 시드기야 왕 91010일에 포위가 되어 1149일까지 포위당합니다. 해수로 3년이지만 18개월 동안 포위됨으로 성의 양식이 다 떨어집니다. 성안에는 굶주림이 가득합니다. 결국 성이 무너집니다.

 

4~7절입니다. “4 그 성벽이 파괴되매 모든 군사가 밤중에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갈대아인들이 그 성읍을 에워쌌으므로 그가 아라바 길로 가더니 5 갈대아 군대가 그 왕을 뒤쫓아 가서 여리고 평지에서 그를 따라 잡으매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 6 그들이 왕을 사로잡아 그를 리블라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그들이 그를 심문하니라 7 그들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앞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 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더라

 

바벨론 군대가 3년을 예루살렘을 포위한 후에 북쪽지역으로 공격해 들어옵니다. 예루살렘성은 다른 지역은 벽처럼 둘러싸여 있지만 북쪽은 그런 천년적인 방어지가 없음으로 이곳으로 공격해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자 왕과 모든 군사들은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아라바 길로 가다가 바벨론 군대의 추격을 받아 사로잡혀 옵니다. 바벨론 왕의 주둔지인 립나로 왕이 끌려가서 심문을 받고 그의 눈앞에서 그의 두 아들이 죽임을 당합니다. 그리고 시드기야의 눈을 빼고 놋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갑니다. 참으로 끔찍한 유다 왕의 말로이며 유다의 멸망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유다의 멸망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지런히 자기의 선지자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런 선지자를 핍박하고 죽임으로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결국은 언약의 저주를 따라 멸망하게 되는데 이렇게 멸망하는 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계속 말씀을 드렸습니다. 죄를 지으면 심판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런 심판의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언약을 담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언약하시기를 너의 아들들이 죄를 범하면 사람 막대기와 인생채찍을 가하기는 하겠지만 그 은총을 빼앗지는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왕위를 말하지만 그러나 다윗의 왕위도 끊어집니다.

 

그렇다면 결국 이 말씀은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내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전에 어떤 분이 질문하기를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많은 고생을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물론 그런 과정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게 된다면 그 고난조차 하나님의 사랑이지만, 그렇지 않고 결국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으면 그런 고생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를 범하였기에 모두가 그렇게 고생을 하다가 영원한 사망에 이르러야 마땅하다는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이런 심판의 과정을 통하여 회개하고 주의 약속을 바라보게 되는 입니다. 그런데 심판을 받든지 아니 받든지 간에 주님의 언약에 상관없이 평생을 그렇게 살다가 가는 자들이라면 이들은 약속 밖의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직접 목격한 예레미야 선지자의 애가를 통하여 유다 멸망의 의미를 보겠습니다.

 

예레미야 애가 2:1~10절입니다. “1 슬프다 주께서 어찌 그리 진노하사 딸 시온을 구름으로 덮으셨는가 이스라엘의 아름다움을 하늘에서 땅에 던지셨음이여 그의 진노의 날에 그의 발판을 기억하지 아니하셨도다 2 주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들을 삼키시고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셨음이여 노하사 딸 유다의 견고한 성채들을 허물어 땅에 엎으시고 나라와 그 지도자들을 욕되게 하셨도다 3 맹렬한 진노로 이스라엘의 모든 뿔을 자르셨음이여 원수 앞에서 그의 오른손을 뒤로 거두어들이시고 맹렬한 불이 사방으로 불사름 같이 야곱을 불사르셨도다 4 원수 같이 그의 활을 당기고 대적처럼 그의 오른손을 들고 서서 눈에 드는 아름다운 모든 사람을 죽이셨음이여 딸 시온의 장막에 그의 노를 불처럼 쏟으셨도다 5 주께서 원수 같이 되어 이스라엘을 삼키셨음이여 그 모든 궁궐들을 삼키셨고 견고한 성들을 무너뜨리사 딸 유다에 근심과 애통을 더하셨도다 6 주께서 그의 초막을 동산처럼 헐어 버리시며 그의 절기를 폐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절기와 안식일을 잊어버리게 하시며 그가 진노하사 왕과 제사장을 멸시하셨도다 7 여호와께서 또 자기 제단을 버리시며 자기 성소를 미워하시며 궁전의 성벽들을 원수의 손에 넘기셨으매 그들이 여호와의 전에서 떠들기를 절기의 날과 같이 하였도다 8 여호와께서 딸 시온의 성벽을 헐기로 결심하시고 줄을 띠고 무너뜨리는 일에서 손을 거두지 아니하사 성벽과 성곽으로 통곡하게 하셨으매 그들이 함께 쇠하였도다 9 성문이 땅에 묻히며 빗장이 부서져 파괴되고 왕과 지도자들이 율법 없는 이방인들 가운데에 있으며 그 성의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묵시를 받지 못하는도다 10 딸 시온의 장로들이 땅에 앉아 잠잠하고 티끌을 머리에 덮어쓰고 굵은 베를 허리에 둘렀음이여 예루살렘 처녀들은 머리를 땅에 숙였도다

 

열왕기하의 오늘 본문의 내용, 3년간 포위된 상황을 알고 이 애가를 보면 다른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바벨론 왕이 와서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무너뜨리는 것은 바벨론 왕의 일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무너뜨리십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여호와의 언약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루살렘의 성이 무너지고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는 것조차 여호와의 언약을 배반하면 이렇게 되리라는 언약의 저주로 인하여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아직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은 파기가 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파기할 때에 심판을 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 자체가 이미 끝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심판이 집행되는 것 자체가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이루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8:15~19절입니다. “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16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17 또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18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소와 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19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이러한 언약의 저주의 내용이 이어지는 말씀들에 계속됩니다. 그 중에 오늘 본문과 연결이 되는 몇 절만 봅니다.

 

신명기 28:52~57절입니다. “52 그들이 전국에서 네 모든 성읍을 에워싸고 네가 의뢰하는 높고 견고한 성벽을 다 헐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의 모든 성읍에서 너를 에워싸리니 53 네가 적군에게 에워싸이고 맹렬한 공격을 받아 곤란을 당하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자녀 곧 네 몸의 소생의 살을 먹을 것이라54 너희 중에 온유하고 연약한 남자까지도 그의 형제와 그의 품의 아내와 그의 남은 자녀를 미운 눈으로 바라보며 55 자기가 먹는 그 자녀의 살을 그 중 누구에게든지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 적군이 네 모든 성읍을 에워싸고 맹렬히 너를 쳐서 곤란하게 하므로 아무것도 그에게 남음이 없는 까닭일 것이며 56 또 너희 중에 온유하고 연약한 부녀 곧 온유하고 연약하여 자기 발바닥으로 땅을 밟아 보지도 아니하던 자라도 자기 품의 남편과 자기 자녀를 미운 눈으로 바라보며 57 자기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가 낳은 어린 자식을 남몰래 먹으리니 이는 네 적군이 네 생명을 에워싸고 맹렬히 쳐서 곤란하게 하므로 아무것도 얻지 못함이리라신명기의 언약의 저주가 유다가 멸망할 때에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애가 2:11~22절입니다. “11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끊어지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딸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기절함이로다 12 그들이 성읍 길거리에서 상한 자처럼 기절하여 그의 어머니들의 품에서 혼이 떠날 때에 어머니들에게 이르기를 곡식과 포도주가 어디 있느냐 하도다 13 딸 예루살렘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증거하며 무엇으로 네게 비유할까 처녀 딸 시온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비교하여 너를 위로할까 너의 파괴됨이 바다 같이 크니 누가 너를 고쳐 줄소냐 14 네 선지자들이 네게 대하여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보았으므로 네 죄악을 드러내어서 네가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지 못하였도다 그들이 거짓 경고와 미혹하게 할 것만 보았도다 15 모든 지나가는 자들이 다 너를 향하여 박수치며 딸 예루살렘을 향하여 비웃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기를 온전한 영광이라, 모든 세상 사람들의 기쁨이라 일컫던 성이 이 성이냐 하며 16 네 모든 원수들은 너를 향하여 그들의 입을 벌리며 비웃고 이를 갈며 말하기를 우리가 그를 삼켰도다 우리가 바라던 날이 과연 이 날이라 우리가 얻기도 하고 보기도 하였다 하도다 17 여호와께서 이미 정하신 일을 행하시고 옛날에 명령하신 말씀을 다 이루셨음이여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무너뜨리사 원수가 너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게 하며 네 대적자들의 뿔로 높이 들리게 하셨도다 18 그들의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딸 시온의 성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를 쉬게 하지 말지어다 19 초저녁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 각 길 어귀에서 주려 기진한 네 어린 자녀들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 하였도다 20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주께서 누구에게 이같이 행하셨는지요 여인들이 어찌 자기 열매 곧 그들이 낳은 아이들을 먹으오며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어찌 주의 성소에서 죽임을 당하오리이까 21 늙은이와 젊은이가 다 길바닥에 엎드러졌사오며 내 처녀들과 내 청년들이 칼에 쓰러졌나이다 주께서 주의 진노의 날에 죽이시되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도륙하셨나이다 22 주께서 내 두려운 일들을 사방에서 부르시기를 절기 때 무리를 부름 같이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시는 날에는 피하거나 남은 자가 없나이다 내가 낳아 기르는 아이들을 내 원수가 다 멸하였나이다

 

신명기의 저주가 예레미야 애가에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바벨론 군대에 의하여 성이 포위됨으로 양식이 떨어집니다. 이렇게 양식이 떨어지지 성 안에서 여인들이 자기들의 아이를 잡아먹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이미 열왕기하 6장에서도 보았습니다. 엘리사 선지자 시대에 북 이스라엘 왕 여호람 때에 일어난 일입니다. 사마리아 성에 앗수르에 3년간 포위되었을 때에 성 안에 굶주림으로 두 여인이 자기 아이들을 잡아 먹기로 하고 한 아이를 잡아먹었는데 한 어미가 아이를 내어 놓지 않는다고 왕에게 고소한 사건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북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이런 일이 남 유다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역사와 예레미야 애가의 탄식을 보면서 우리가 처한 이 나라의 현실을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라가 어수선하지 곧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작년에도 한국에 전쟁이 일어난다고 예언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런 기도한다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수십 명이 외국으로 피난가기도 하였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유다의 멸망과 같은 상황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한 문제가 이 땅의 현실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기갈입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이 이스라엘 두 가지 악입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하여 미국에서 사드를 도입하든지, 이것을 반대하든지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는 교회가 무엇을 염려하고 있습니까? 양식이 없고 마실 물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입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무엇에 굶주리고 있습니까? 먹을 것이 남아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습니다. 입을 옷이 남아돌아서 헌옷을 버리는 통에 보면 가득가득 버려지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썩을 양식을 위하여 염려하는데 영원한 생명의 말씀에 대하여는 별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마리아의 굶주림과 유다의 굶주림으로 인하여 자기의 아이들을 잡아먹는 것이 오늘 이 시대에도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경쟁하여 이겨야 한다는 교육을 하고 있는 부모들이 자기 자녀들을 자본주의의 제물로 바치고 있는 것으로 봅니다. 교회 안에서의 평가도 세상의 조건을 따라 성공과 실패를 말하고 있습니다. 대학과 직장과 결혼의 성공과 실패를 세상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다면, 이런 모습이 부모가 자식을 삶아먹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봅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에 대한 애통이 있습니까?

 

예레미야 애가 3:1~18절입니다. “1 여호와의 분노의 매로 말미암아 고난당한 자는 나로다 2 나를 이끌어 어둠 안에서 걸어가게 하시고 빛 안에서 걸어가지 못하게 하셨으며 3 종일토록 손을 들어 자주자주 나를 치시는도다 4 나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나의 뼈들을 꺾으셨고 5 고통과 수고를 쌓아 나를 에우셨으며 6 나를 어둠 속에 살게 하시기를 죽은 지 오랜 자 같게 하셨도다 7 나를 둘러싸서 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내 사슬을 무겁게 하셨으며 8 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나 내 기도를 물리치시며 9 다듬은 돌을 쌓아 내 길들을 막으사 내 길들을 굽게 하셨도다 10 그는 내게 대하여 엎드려 기다리는 곰과 은밀한 곳에 있는 사자 같으사 11 나의 길들로 치우치게 하시며 내 몸을 찢으시며 나를 적막하게 하셨도다 12 활을 당겨 나를 화살의 과녁으로 삼으심이여 13 화살통의 화살들로 내 허리를 맞추셨도다 14 나는 내 모든 백성에게 조롱거리 곧 종일토록 그들의 노랫거리가 되었도다 15 나를 쓴 것들로 배불리시고 쑥으로 취하게 하셨으며 16 조약돌로 내 이들을 꺾으시고 재로 나를 덮으셨도다 17 주께서 내 심령이 평강에서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내어버렸음이여 18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예루살렘의 고통이 예레미야 선지자 자신의 고통으로 그대로 전이대고 있습니다. 오히려 대신 고통을 당하는 식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바로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선지자들의 고통입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면 이러한 탄식과 애통이 나옵니다. 세상을 보고 교회를 보면서 이런 애통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애통하는 자를 세상은 조롱할 것입니다 비웃고 핍박을 할 것입니다. 이런 고난을 당하는 본인도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런 고난과 탄식에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혀가는 이 바닥에서 드디어 소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19~24절입니다. “19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21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24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목격하면서 그 고난이 자기의 온 몸으로 맞이하는 고난이 된 선지자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벧전1:10). 그러한 고초와 재난 쑥과 담즙을 기억하고 마음이 낙심이 되었지만 그러나 오히려 그런 것이 나의 소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한 행위로 보자면 멸망을 받아서 마땅한 것입니다. 39절을 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들 때문에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살아 있는 자들이 벌을 받는 것은 자기 죄 때문에 벌을 받으니 원망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에 항상 남 핑계를 됩니다. 남 때문에 그렇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인간의 자기 죄로 인하여 벌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면 그런 고난 중에 소망이 생깁니다.

 

그 소망이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심을 기억하게 됩니다. 자신의 행위로는 진멸당하여 마땅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유다의 멸망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을 보내시고 예루살렘을 멸망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그들이 언약의 백성이기에 이렇게 행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 언약의 백성이라고 하지만 정말 언약의 백성인지 아닌지는 이런 멸망의 과정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자신들이 행한 것이 모두 죄 뿐인 줄 알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만 의지하게 된다면 이들이 바로 언약의 백성들이며 남은 자들이 됩니다. 이러한 자들은 주의 성실하심과 인자하심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의지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소망을 고난 가운데 가지는 자들이 복이 있습니다.

 

이어지는 25~33절입니다. “25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27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28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 29 그대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30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31 이는 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며 32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런데도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은과 금은 도가니와 풀무로 연단하시지만 인간은 고난을 통하지 않고서는 연단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고난이 올 때에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리라고 합니다. 주께서 멍에를 메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 고난 가운데 그대의 입을 땅에 티끌에 대라고 합니다. 우리가 땅의 티끌임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혹 소망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땅의 티끌임을 아는 것이 자신의 근원을 보게 됩니다.

 

이런 땅의 티끌이 얼마나 교만하였는지 하나님처럼 되려고 한 것입니다. 만사를 자기중심으로 통일시키려고 한 건방진 흙덩어리 들입니다. 어느 정도로 낮아집니까?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치욕으로 배불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되로 받으면 말로 갚으려고 합니다. 결국 이 말씀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내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도 이 길로 가게 됩니다. 이런 자들이 결국 주님께만 소망을 둡니다. 그러므로 유다의 멸망을 통하여, 우리의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풍부한 인자와 긍휼과 그 언약의 성실함으로 소망으로 삼게 되었다면, 망하는 것이 망한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길이 됩니다. 그래서 이 길을 좁고 협착한 길이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찾지 않지만 생명의 길은 이 십자가의 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