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5:11~31 의심의 소제(素祭) 2020. 4. 26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만일 어떤 사람의 아내가 탈선하여 남편에게 신의를 저버렸고 13 한 남자가 그 여자와 동침하였으나 그의 남편의 눈에 숨겨 드러나지 아니하였고 그 여자의 더러워진 일에 증인도 없고 그가 잡히지도 아니하였어도 14 그 남편이 의심이 생겨 그 아내를 의심하였는데 그의 아내가 더럽혀졌거나 또는 그 남편이 의심이 생겨 그 아내를 의심하였으나 그 아내가 더럽혀지지 아니하였든지 15 그의 아내를 데리고 제사장에게로 가서 그를 위하여 보리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헌물로 드리되 그것에 기름도 붓지 말고 유향도 두지 말라 이는 의심의 소제요 죄악을 기억나게 하는 기억의 소제라

 

오늘 본문은 남편이 아내에 대한 의심으로 인하여 생긴 문제를 다룹니다. 어떤 사람의 아내가 남편에게 신의를 저버리고 바람을 피웠는데 증거가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바람을 피웠는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지만 남편이 의심을 합니다. 그래서 아내가 더럽혀졌는지 아닌지 남편이 의심이 들면 남편은 아내를 데리고 제사장에게로 갑니다. 보리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헌물로 드리게 합니다. 가장 가치 없는 제물입니다. 그리고 기름도 유향도 붓지 못하게 하는 것은 감사와 기쁨의 제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제사를 의심의 소제 곧 죄악을 기억나게 하는 기억의 소제라고 합니다. 다른 번역으로 보면 미움 때문에, 질투 때문에 드리는 제사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기름도 유향도 없는 제물입니다.

 

16~30절입니다. “16 제사장은 그 여인을 가까이 오게 하여 여호와 앞에 세우고 17 토기에 거룩한 물을 담고 성막 바닥의 티끌을 취하여 물에 넣고 18 여인을 여호와 앞에 세우고 그의 머리를 풀게 하고 기억나게 하는 소제물 곧 의심의 소제물을 그의 두 손에 두고 제사장은 저주가 되게 할 쓴 물을 자기 손에 들고 19 여인에게 맹세하게 하여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네 남편을 두고 탈선하여 다른 남자와 동침하여 더럽힌 일이 없으면 저주가 되게 하는 이 쓴 물의 해독을 면하리라 20 그러나 네가 네 남편을 두고 탈선하여 몸을 더럽혀서 네 남편 아닌 사람과 동침하였으면 21 (제사장이 그 여인에게 저주의 맹세를 하게하고 그 여인에게 말할지니라) 여호와께서 네 넓적다리가 마르고 네 배가 부어서 네가 네 백성 중에 저줏거리, 맹셋거리가 되게 하실지라 22 이 저주가 되게 하는 이 물이 네 창자에 들어가서 네 배를 붓게 하고 네 넓적다리를 마르게 하리라 할 것이요 여인은 아멘 아멘 할지니라 23 제사장이 저주의 말을 두루마리에 써서 그 글자를 그 쓴 물에 빨아 넣고 24 여인에게 그 저주가 되게 하는 쓴 물을 마시게 할지니 그 저주가 되게 하는 물이 그의 속에 들어가서 쓰리라 25 제사장이 먼저 그 여인의 손에서 의심의 소제물을 취하여 그 소제물을 여호와 앞에 흔들고 제단으로 가지고 가서 26 제사장은 그 소제물 중에서 한 움큼을 취하여 그 여자에게 기억나게 하는 소제물로 제단 위에 불사르고 그 후에 여인에게 그 물을 마시게 할지라 27 그 물을 마시게 한 후에 만일 여인이 몸을 더럽혀서 그 남편에게 범죄 하였으면 그 저주가 되게 하는 물이 그의 속에 들어가서 쓰게 되어 그의 배가 부으며 그의 넓적다리가 마르리니 그 여인이 그 백성 중에서 저줏거리가 될 것이니라 28 그러나 여인이 더럽힌 일이 없고 정결하면 해를 받지 않고 임신하리라 29 이는 의심의 법이니 아내가 그의 남편을 두고 탈선하여 더럽힌 때나 30 또는 그 남편이 의심이 생겨서 자기의 아내를 의심할 때에 여인을 여호와 앞에 두고 제사장이 이 법대로 행할 것이라 31 남편은 무죄할 것이요 여인은 죄가 있으면 당하리라

 

의심의 소제를 드리는 절차입니다. 이런 내용은 겉으로만 보면 미신적이고 주술적으로 보입니다. 토기에 거룩한 물을 담고 그 물에 성전 바닥의 티끌을 취하여 넣습니다. 두루마리에 저주하는 글을 쓴 것을 물에 빨아서 그 물도 그릇에 담아 저주의 맹세를 하게 합니다. 이런 모습은 성전의 티끌이나 글자를 쓴 먹에 저주의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앞에서 맹세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은 지금 광야를 행진하고 있습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이 함께 합니다. 성막이 가운데 있습니다. 이러함에도 이런 죄가 발생할 수 있고 의심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국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저주의 맹세를 하게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두려운 줄 안다면 이실직고(以實直告)할 겁니다. 그런데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거짓말을 한다면 그 사람이 즉석에서 저주를 받지 않아도 영원한 저주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이란 결국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본문을 보면서 남편은 아내를 의심하면 제사장에게 나아가서 의심의 소제를 드리는 내용이 있는데 왜 여인이 남편에 대한 내용은 없느냐고 물어볼 수 있습니다. 이런 질문을 좀 더 극단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성경은 남성중심이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강한 자에게 피해를 당한 약자를 돌보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라는 말씀과 함께 하나님께서 누구를 심판하시는지 보면 세상의 힘으로 약한 자를 학대하는 자를 심판하십니다. 이런 법이 있음으로 여성이 보호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 법을 다르게 사용하여 약한 자를 괴롭히고 죽이는 일이 실제로 유대 사회에서도 율법을 지킨다는 문화권에서 나옵니다(예 스토닝 영화).

 

그러므로 남자나 여자나 이런 의심의 소제를 통하여 죄를 기억하게 합니다. 그래서 의심의 소제 또는 기억의 소제라고 하는 것은 저주의 선포와 맹세 속에서 하나님 앞에서 죄를 기억하고 회개할 기회를 주는 겁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살펴볼 내용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남편이시고 이스라엘을 아내라고 하시는데 아내 된 이스라엘이 늘 바람을 피웁니다. 그러함에도 하나님은 바람난 아내를 버리지 않으시고 긍휼로 품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런 의심의 소제를 통하여 자기 죄를 기억하여 회개하고 주께로 돌이키라고 주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 54:1~10절입니다. “1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2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3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 4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5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6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 7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8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9 이는 내게 노아의 홍수와 같도다 내가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땅 위에 범람하지 못하게 하리라 맹세한 것 같이 내가 네게 노하지 아니하며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 10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놀라운 긍휼입니다.

 

예레미야 3:1~5절입니다. “1그들이 말하기를 가령 사람이 그의 아내를 버리므로 그가 그에게서 떠나 타인의 아내가 된다 하자 남편이 그를 다시 받겠느냐 그리하면 그 땅이 크게 더러워지지 아니하겠느냐 하느니라 네가 많은 무리와 1)행음하고서도 내게로 돌아오려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 네 눈을 들어 헐벗은 산을 보라 네가 행음하지 아니한 곳이 어디 있느냐 네가 길 가에 앉아 사람들을 기다린 것이 광야에 있는 아라바 사람 같아서 음란과 행악으로 이 땅을 더럽혔도다 3 그러므로 단비가 그쳤고 늦은 비가 없어졌느니라 그럴지라도 네가 창녀의 낯을 가졌으므로 수치를 알지 못하느니라 4 네가 이제부터는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는 나의 청년 시절의 2)보호자이시오니 5 노여움을 한없이 계속하시겠으며 끝까지 품으시겠나이까 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네가 이같이 말하여도 악을 행하여 네 욕심을 이루었느니라 하시니라유다가 얼마나 음행을 하는지 창녀의 낯을 가졌다고 합니다.

 

6~18절입니다. “6 요시야 왕 때에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배역한 이스라엘이 행한 바를 보았느냐 그가 모든 높은 산에 오르며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서 행음하였도다 7 그가 이 모든 일들을 행한 후에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게로 돌아오리라 하였으나 아직도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는 그것을 보았느니라 8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쫓고 그에게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 9 그가 돌과 나무와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행음하여 이 땅을 더럽혔거늘 10 이 모든 일이 있어도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 뿐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은 반역한 유다보다 자신이 더 의로움이 나타났나니 12 너는 가서 북을 향하여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고 네 길로 달려 이방인들에게로 나아가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너희를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15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한 목자들을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1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하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하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다시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17 그 때에 예루살렘이 그들에게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모든 백성이 그리로 모이리니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에 모이고 다시는 그들의 악한 마음의 완악한 대로 그들이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18 그 때에 유다 족속이 이스라엘 족속과 동행하여 북에서부터 나와서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기업으로 준 땅에 그들이 함께 이르리라

 

하나님께서 북 이스라엘을 버리셨습니다. 이혼증서를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심은 남 유다로 하여금 바람 그만 피우고 돌아오라는 사인입니다. 그런데도 정신을 못 차리고 북 이스라엘 보다 더 음행을 하니 북 이스라엘이 상대적으로 의로워졌습니다. 그래서 북 이스라엘에게 돌아오라고 합니다. 성읍에서 하나 족속에서 둘을 데리고 온다고 하십니다. 나는 너희 남편이라고 하십니다. 이혼 증서를 준 자를 다시 받아들이면 율법으로 남편이 부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다시 돌아오라고 하시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부정함을 입겠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마음에 합한 목자를 세우시면 그 때에는 언약궤를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새 언약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창기들을 부르십니다. 그들을 자기 피로 점도 티도 흠도 없는 자신의 신부로 만들어 내십니다.

 

19~25절입니다. “19 내가 말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든지 너를 자녀들 중에 두며 허다한 나라들 중에 아름다운 기업인 이 귀한 땅을 네게 주리라 하였고 내가 다시 말하기를 3)너희가 나를 나의 아버지라 하고 나를 떠나지 말 것이니라 하였노라 20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아 마치 아내가 그의 남편을 속이고 떠나감 같이 너희가 확실히 나를 속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1 소리가 헐벗은 산 위에서 들리니 곧 이스라엘 자손이 애곡하며 간구하는 것이라 그들이 그들의 길을 굽게 하며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렸음이로다 22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하시니라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 23 작은 산들과 큰 산 위에서 떠드는 것은 참으로 헛된 일이라 이스라엘의 구원은 진실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나이다 24 부끄러운 그것이 우리가 청년의 때로부터 우리 조상들의 산업인 양 떼와 소 떼와 아들들과 딸들을 삼켰사온즉 25 우리는 수치 중에 눕겠고 우리의 치욕이 우리를 덮을 것이니 이는 우리와 우리 조상들이 청년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20절을 봅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아내가 그 남편을 속이고 떠나감 같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아내를 부르십니다. 호세아가 고멜을 값을 주고 사옵니다. 그러면서 내가 네게 장가들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 의심의 소제나 기억의 소제라는 것은 남편이나 아내나 다 여호와 앞에서 그 죄를 기억하고 소제를 드리게 합니다. 그럴 때에 두 사람 다 여호와 하나님의 남편 되심과 이스라엘의 아내 됨을 기억하고 회개하고 주께로 돌이키게 하기 위함입니다. 구약의 이러한 예언을 예수님께서 어떻게 이루어내십니까?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예수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사셔서 자신의 신부로 만들어 내십니다. 점도 흠도 티도 없는 순결한 신부로 만들어 내십니다.

 

에베소서 5:25~27절입니다.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예수님이 신랑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가 신부입니다. 이런 교회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교회입니까? 사람이 만들어내는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 뿌림 입은 신부입니다. 이들은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흠이 없는 거룩한 신부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입니다.

 

고린도후서 11:1~4절입니다. “1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1)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4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에베소서와 이 본문을 연결하여 보면 뱀이 하와를 미혹한 것처럼 신부된 교회를 미혹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용납하고 있으니 지금 바울이 의심하고 질투하고 책망합니다.

 

갈라디아서 4:19~20절입니다. “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20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바울사도가 마치 구약의 의심의 소제를 드리는 것처럼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의혹이 있다고 합니다. 전에 번역은 의심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서에서 본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을 전하는 자들이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전한 복음을 버리고 그들의 말을 따르는 것을 보고서 의심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8절부터 보면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였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알고 더욱이 하나님 아신 바 되었는데 왜 다시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날과 달과 절기를 지키려고 하느냐고 책망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수고가 헛될까 두렵다고 하면서 너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해산의 수고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주와 그리스도로 계시는지 의심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지만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룹니다(고후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