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1:1~4 고레스의 조서 2018. 2. 4

 

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4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지난주 역대하 마지막 부분과 에스라서 시작이 연결이 됩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간지 70년 동안 예루살렘이 있는 땅은 안식년을 누림같이 안식하였다고 합니다. 70년을 안식하였으니 성전이 황폐화되어 짐승들의 거처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과정과 바벨론 포로생활 중에 일어난 일을 함께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남 유다가 멸망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한 선지자가 예레미야 선지자입니다. 그리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자 중에 에스겔과 다니엘과 같은 선지자가 있습니다. 에스겔은 성전의 완성을 보고 있습니다(47). 이 성전의 완성은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임을 요한복음이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생수가 강 같이 흐른다는 말씀입니다(7:38).

 

다니엘서를 보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중에 계시를 받습니다. 다니엘은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하여 등용되었습니다. 그 시대를 호령하던 제국(帝國)의 왕의 꿈을 해석함으로 다니엘의 하나님이 참된 하나님이심을 이방 왕들도 인정합니다. 그래서 거대한 신상이나, 사나운 짐승에 대한 왕의 꿈들을 해석하면서 제국들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예언을 합니다. 바벨론 제국에 포로로 잡혀갔지만 돌아오는 시기는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 왕 때입니다.

 

오늘은 에스라 느헤미야서 전체의 구조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이 자료는 김지찬 교수의 구약 역사서 개론인 여호와의 날개아래 약속의 땅을 향하여에 있는 내용입니다. 이 자료의 원 저자는 타마라 에스케나지의 글입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두 책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히브리인들의 성경분류에 의하면 한 책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에스라 느헤미야를 한권으로 본 구조입니다.

 

1. 명령: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라(1):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와 고레스의 명령

2. 하나님의 집 재건(2~7)

A 포로 귀환자들의 명단(2)

B 하나님의 집 재건(3~6)

a 성전 재건(3~6): 수룹바벨이 고레스와 다리오 왕의 명에 의해

b 거룩한 자손 재건(7~10): 에스라가 아닥사스다 왕의 명에 의해

c 예루살렘 성벽 재건(1~6):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의 명에 의해

3. 하나님의집의 완공 축하: 지속적 회복과 갱신(8~13)

 

이 구조를 보면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와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잘 볼 수가 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왕 고레스가 즉위 원년에 유다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집을 재건하라는 명령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로 인하여 성전이 허물어 졌는데 이제는 이방의 왕으로 하여금 그 성전을 재건하게 합니다. 그런데 성전만 재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이라는 내용 안에서 포로에서 돌아오는 자들의 명단들이 중요하게 언급이 됩니다. 물론 이들인 성전을 재건합니다만 하나님의 집의 재건은 성전과 백성과 성벽이 완공이 되어야 하나님의 집이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봅니다. “봉독 바사 곧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왕으로 등극한 첫 해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도 지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고레스 왕이 온 나라에 공포(公布)하고 조서(詔書)를 내립니다. 바사 왕 고레스의 조서 내용은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성전으로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는 것은 단지 성전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과 성전을 둘러싸는 성벽까지 완성이 되어야 성전의 완성이라고 보기에 하나님의 집으로 표현하는 것이 나은 표현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 신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여호와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 지역에 갇혀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일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예루살렘의 하나님께서 참 신이시기에 고레스 자신이 왕이 되었지만 그렇게 된 것도 여호와 하나님의 일이라고 합니다.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리라고 합니다. 이러한 왕의 조서를 다니엘서에서 몇 곳을 찾아보겠습니다.

 

다니엘 3:28~30절입니다. 봉독다니엘의 세 친구가 왕의 신상에 절하지 않음으로 풀무 불에 던져졌지만 오히려 불안에 한 사람이 더 있는 모습으로 보호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그들을 불러내니 그을린 흔적이나 냄새도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전국에 조서를 내린 내용입니다. 다니넬의 세 친구의 하나님이 참으로 신이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4:34~37절입니다. 봉독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이 바벨론의 영광을 보고서 이것은 내가 만들었다고 하는 순간에 짐승처럼 되어 일곱 때를 지납니다. 다니엘이 경고하였지만 그 교만을 버리지 못하였기에 짐승처럼 일곱 때를 지나고 하늘을 우러러 보자 총명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총명이 돌아오고서 나서 조서를 내리지는 않았지만 다니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시고자 하시는 대로 행하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입니다. 어떤 누구라도 그에게 당신이 무엇을 하느냐고 할 수 없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다니엘 6:25~28절입니다. “25 이에 다리오 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되 원하건대 너희에게 큰 평강이 있을지어다 26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27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 28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의 왕조가 끝이 나고 메데 사람 다리오가 왕이 됩니다. 다리오 시대에 다니엘을 모함하려고 하지만 다니엘이 어떤 허물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하루에 세 번 기도하는 것을 보고 흠을 잡으려고 왕에게 청원하기를 30일 동안 왕 외에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는 자는 사자 굴에 던져 넣자고 합니다. 그리고 메데와 바사의 고치지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조서를 내리게 합니다. 그리하여 조서에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다니엘이 기도합니다. 그래서 사자 굴에 던져 넣었지만 왕은 다니엘은 아껴서 밤을 새고 새벽에 사자 굴에 가보니 살아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그의 신이 살려준 것이기에 살려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서를 내린 것입니다. 다리오 왕의 시대가 지나고 고레스의 시대에 오늘 본 본문의 조서가 내려지는 것입니다.

 

요즈음 학생들이나 젊은이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를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분명히 이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집트 제국과 바벨론과 페르시아 제국을 움직여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팔레스타인 땅이 심어두신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보다 크고 힘이 있어서 택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작기에 택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의 일하심은 세상의 힘과 능력으로 이루어 내시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신명기 7:6~11절입니다. 봉독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가 분명합니다. 숫자가 많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작 적다고 합니다. 출애굽 당시에 이집트라는 대 제국의 노예들이었습니다. 이런 자들을 택하여 이집트 제국을 물리치고 이집트 제국보다 더 큰 제국을 만드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런 나라에서 출애굽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알아야 할 내용은 하나님의 언약과 사랑입니다. 하나로 합치면 헤세드언약적인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유대인들이 보기에 어떤 표적이 아닙니다. 무력하게 저주 받아 죽는 죽음입니다.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그들이 상상하는 메시아를 기다린 것입니다. 이러한 제국들을 물리칠 제국의 황제보다 더 힘이 있는 메시아를 기다린 것입니다. 이렇게 기다린 것은 성경을 잘 못 보았기 때문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시각으로 성경을 문자로 본 것입니다. 고난 받는 그리스도, 대신 죽음의 길을 가시는 그리스도를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자기 백성을 출애굽 시키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이집트 제국에서 출애굽 시키셔서 약속의 땅에 들어갑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갔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지만 예레미야 선지가가 말한 그 때가 되어 바벨론에서 돌아옵니다. 이것을 제 2의 출애굽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출애굽 시키셔서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와서 메시아를 기다립니다. 메시아가 영원한 왕국을 세울 줄 알았습니다.

 

다니엘 2:44~45절을 봅니다. “44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 45 손대지 아니한 돌이 산에서 나와서 쇠와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서뜨린 것을 왕께서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은 참되고 이 해석은 확실하니이다 하니

 

우리가 유대인이라면 이 말씀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이 땅에 이스라엘 나라가 세워지고 영원히 견고할 것을 믿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땅을 회복하여 제 삼 성전을 짓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그래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하자 세상이 요란합니다. 세대주의 해석을 하는 사람은 트럼프가 나팔을 분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의 나팔이 영어로 트럼팻입니다. 그러니 이에 팔레스타인 땅에서 이슬람을 몰아내고 지금 예루살렘 성전 자리에 있는 모스크를 헐고 성전을 세우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혈통적인 이스라엘의 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마태복음 17장에서 예수님께서 한 산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올라가십니다. 그곳에서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시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별세를 의논하십니다. 별세라는 단어가 출애굽이라는 엑소더서입니다. 그러면 제 일의 출애굽이 이집트에서 출애굽하는 것이고, 제 이의 출애굽이 바벨론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제 삼의 출애굽은 예수님과 함께 이 세상으로부터 출 세상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 성령을 부어주시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에베소서 2:14~22절입니다.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유대인과 이방인이 원수처럼 지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 둘 사이를 허물어 버리시고 한 새사람을 지으신 것입니다.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차별이 없이 그 십자가로 한 새 사람을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건물로 비유를 합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터란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이 증거 한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새로운 건물이 지어지는 것입니다. 그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갑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렇게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처소가 될 것을 오늘 본문에서 고레스 왕이 하나님의 백성은 다 예루살렘으로 가서 하나님의 집을 지으라고 한 명령안에 궁극적으로 이루어질 내용을 함께 살펴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별세를 꿈꾸는 자들입니다. 세상에서 별세, 곧 출애굽 함으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지어지는 것입니다. 이 성전이 다 지어져 갑니다.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면 그제야 그리스도의 몸의 완성이 이루어지기에 세상의 끝이 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합니까? 멸망할 세상에 들어붙기를 원할 것이 아니라 떨어져 나와서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서 거하실 처소가 되는 일을 말씀을 통하여 보는 것입니다. 이 말씀들이 사실로 믿어진다면 멸망할 바벨론과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식민지인 교회이며 성도입니다. 이들은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