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21:1~20 악을 행하였으나 2017. 9. 24

 

5 여호람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삼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다스리니라 6 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7 여호와께서 다윗의 집을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음은 이전에 다윗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시고 또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음이더라

 

본문 1~5절을 보면 여호사밧이 죽고 그의 아들 여호람이 대신하여 왕이 되었습니다. 여호사밧의 아들이 일곱명입니다. 여호람이 장자라서 왕위를 물러주고 다른 동생들은 은금과 보물과 유다 견고한 성읍들을 선물로 후히 주어 왕자의 난을 피하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호람이 왕이 되어 세력을 얻게 되자 그의 모든 아우들을 다 죽이고 백성의 지도자들 몇 사람도 죽였습니다. 여호람이 32세에 왕이 되어 8년을 왕위에 있는 동안 악만 행하였습니다.

 

6절입니다. 여호람이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습니다. 유다 왕이 유다의 선한 왕들의 길로 간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왕들로 간 이유는 아합의 달이 그의 아내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호람의 아버지 여호사밧에 대하여 우리가 두 번에 나누어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우상을 척결하여 나라가 강하여지자 아합과 사돈을 맺은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아들과 아합의 딸 곧 이세벨의 딸인 아달랴를 며느리로 맞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으니 여호람의 아합의 집의 길로 간 것입니다. 그런데 6절 끝에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라고 하는 것은 그 악보다 놀라운 은혜가 있습니다.

 

7절입니다. 여호람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지만 여호와께서 다윗의 집을 멸하기를 즐겨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전에 다윗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시고 다윗과 그 자손에서 항상 등불을 주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호람의 행위를 보면 여호람이나 다윗의 집을 벌써 멸하여야 하셨지만 다윗에게 하신 언약으로 인하여 멸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등불을 주시겠다는 약속은 다윗의 왕위를 이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언약을 배반하면 사람 막대기와 인생채찍을 주신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하 7:12~15절입니다. “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14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다윗 언약 안에는 하나님께서 그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신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다윗의 자손이 죄를 범하는데도 가만히 두시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를 합니다. 여호람은 엄청난 징계를 받습니다. 그래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죽을 때에 아무도 그를 아까워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사람일까요?

 

본문 8~10절입니다. 여호람 때에 에돔이 배반하여 유다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기들의 왕을 세웁니다. 여로람이 지휘관들과 모든 병거를 거느리고 출정하였지만 포위를 당하였습니다. 겨우 포위망을 뚫고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에돔의 유다의 지배를 벗어나게 된 것도 여호람이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호람도 여호와께 완전히 버림을 받나요?

 

11~15절입니다. 에돔이 반역하고 왕을 세운 것을 막으려고 갔다고 겨우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을 반역한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그렇게도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유다 여러 산에 산당을 세워 예루살렘 주민으로 음행하게 하고 또 유다를 미혹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엘리야가 여호람에게 글을 보내어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을 알려줍니다. 두 가지 인데 앞에서 본 대로 네게 네 아비 여호사밧과 유다 왕 아사의 길로 행하지 않고 오직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음행하게 한 것과 자기보다 착한 아우들을 죽인 것으로 인하여 여호와께서 네 백성과 네 자녀들과 네 아내들과 네 모든 재물을 큰 재앙으로 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호람은 창자가 빠져 나오는 병이 들어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16~20절입니다. “16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들과 구스에서 가까운 아라비아 사람들의 마음을 격동시키사 여호람을 치게 하셨으므로 17 그들이 올라와서 유다를 침략하여 왕궁의 모든 재물과 그의 아들들과 아내들을 탈취하였으므로 막내 아들 여호아하스 외에는 한 아들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18 이 모든 일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람을 치사 능히 고치지 못할 병이 그 창자에 들게 하셨으므로 19 여러 날 후 이 년 만에 그의 창자가 그 병으로 말미암아 빠져나오매 그가 그 심한 병으로 죽으니 백성이 그들의 조상들에게 분향하던 것 같이 그에게 분향하지 아니하였으며 20 여호람이 삼십이 세에 즉위하고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다스리다가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으며 무리가 그를 다윗 성에 장사하였으나 열왕의 묘실에는 두지 아니하였더라

 

다른 왕들은 이런 징계가 오면 잠시라도 회개하는 척이라고 하는데 여호람은 전혀 그런 모습이 없습니다. 그래서 적이 쳐들어와서 왕궁의 모든 재물과 그 아들들과 아내들을 탈취하여 갑니다. 겨우 여호아하스 한 명의 아들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여호람은 병이 들어 2년 동안 고생을 하는데 창자가 빠져나와 죽게 됩니다. 32세에 왕이 되어 8년간 악을 행하다가 병으로 죽어갔습니다. 죽고 나자 백성들이 왕에게 분향도 하지 않고 아무도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비록 왕들의 묘실에는 묻히지 못하였지만 다윗 성에 장사 되었습니다. 이 여호람은 버림받은 자입니까?

 

다시 본문 6~7절을 봅니다. 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아내가 아합의 딸이었기에 아합의 집안의 길로 가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악을 행하였지만 다윗 언약으로 인하여 다윗의 집을 멸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개인사적으로 보면 버림받은 비참한 모습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매와 인생채찍이 가하여 지는 것이 버림받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만약 버리셨다면 하나님은 내버려 두십니다. 그러면 그런 징계도 없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4절입니다. “1)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간음한 여자들이라고 해서 남자가 예외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각주 1)을 보면 간음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성경은 교회에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가 세상을 사랑하면 이것이 간음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이며 그리스도의 신부가 세상을 자꾸만 사랑하면 어떻게 하셔야 합니까? 두 가지 방법을 씁니다. 징계하시는 방법과 그 사랑하는 대상을 망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먼저 의지하는 대상을 멸하시는 내용을 봅니다.

 

에스겔 29:14~16절입니다. “14 애굽의 사로잡힌 자들을 돌이켜 바드로스 땅 곧 그 고국 땅으로 돌아가게 할 것이라 그들이 거기에서 미약한 나라가 되되 15 나라 가운데에 지극히 미약한 나라가 되어 다시는 나라들 위에 스스로 높이지 못하리니 내가 그들을 감하여 다시는 나라들을 다스리지 못하게 할 것임이라 16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의 의지가 되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족속은 돌이켜 그들을 바라보지 아니하므로 그 죄악이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하셨다 하라

 

1절부터 보시면 애굽을 의지하려고 하지만 애굽이 갈대지팡이라고 합니다. 의지하려고 하면 부러져서 허리를 상하게 될 것이며 어깨 죽지가 찔릴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애굽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꾸만 의지하기에 아예 미약한 나라를 만들어 버리십니다. 그리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의 의지가 되지 못할 것이며 이스라엘 족속은 돌이켜 그들을 바라보지 않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셔서 그 죄악이 기억되지 않게 하심으로 그렇게 하시는 분이 여호와인줄 알리라고 하십니다. 여호와의 사랑과 질투와 열심을 이렇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사야 1:3~6절입니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런 모습입니다. 여호람의 모습이 이러하며 우리의 모습이 이렇습니다. 이렇게 머리끝부터 발끝 까지 매를 맞아서 성한 곳이 없는데도 주께로 돌아오지를 않습니다. 이것이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인간의 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런 백성들을 하나님은 돌이키시는데 어떤 방식으로 돌이키십니까?

 

이사야 1:24~27절입니다. “24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케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수하겠으며 25 내가 또 나의 손을 네게 4)돌려 너의 찌끼를 5)온전히 청결하여 버리며 너의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26 내가 너의 사사들을 처음과 같이, 너의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칭함이 되리라 하셨나니 27 시온은 공평으로 구속이 되고 6)그 귀정한 자는 의로 구속이 되리라

 

한마디로 말씀을 드리면 돌이키는 것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열심히 자기의 언약을 이루어내심으로만 구속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람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죄를 범하였기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가 없음을 구약은 아주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 아래 갇혀 있다는 사실을 구약 전체가 상세하게 계시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인간이 스스로 의에 이를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일방적인 은혜의 방식으로만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시편 65:1~4절입니다. “1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 2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3 죄악이 나를 이겼사오니 우리의 허물을 주께서 사하시리이다 4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죄악을 이길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악이 나를 이겼사오니 우리의 허물을 주께서 사하실 것이라고 찬양합니다. 참 뻔뻔한 내용입니다. 죄가 나를 이겼으니 주께서 나를 사하여 주셔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가까이 오게 하시고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죄가 사유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할 것입니다. 이 성전의 아름다움이란 건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로 만족하는 자가 사유함을 받은 자입니다.

 

시편 130:1~8절입니다. “1 여호와여 내가 깊은데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2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3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찐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4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케 하심이니이다 5 나 곧 내 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리며 내가 그 말씀을 바라는도다 6 파숫군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숫군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7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여호와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 8 저가 이스라엘을 그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리로다

 

주께서 죄를 살피시면 아무도 주님 앞에 설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 앞에 설수 있음은 오직 사유하심이 주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용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루실 것은 구약이 내다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호람을 평가하기를 그가 악을 행하였으나 다윗 언약으로 인하여 멸하지 않으신다는 표현이 바로 그리스도로 인한 구속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7절입니다.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새로운 피조물이 어떤 자들입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는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않으시고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를 받은 자들은 십자가로 나타난 하나님의 그 사랑 외에는 할 말이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가 연약할 때에 우리가 죄인 되어 있을 때에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을 때에 십자가로 확정된 그 사랑을 가지고 찾아오십니다. 그 사랑을 받은 자는 나는 행한 것이 죄 밖에 없는데 주께서 그 죄를 사하셨다고 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