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19:1~20:37 방해하시는 하나님 2017. 9. 17

 

35 유다 왕 여호사밧이 나중에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교제하였는데 아하시야는 심히 악을 행하는 자였더라 36 두 왕이 서로 연합하고 배를 만들어 다시스로 보내고자 하여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만들었더니 37 마레사 사람 도다와후의 아들 엘리에셀이 여호사밧을 향하여 예언하여 이르되 왕이 아하시야와 교제하므로 여호와께서 왕이 지은 것들을 파하시리라 하더니 이에 그 배들이 부서져서 다시스로 가지 못하였더라

 

지난주에 본 말씀은 여호사밧 왕이 아합과 함께 전쟁에 나갔다가 식겁하고 돌아왔습니다. 분명히 미가야 선지자가 전쟁에 나가면 진다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아합과 함께 여호사밧이 전쟁에 나갔습니다. 아합보다 여호사밧이 영적인 촉수가 밝은 사람이기에 400명이 동일하게 말하는 선지자의 말이 신뢰가 가지 않아서 다른 선지자가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왜 미가야 선지자의 말을 듣고서도 아합을 따라 전쟁에 나간 것입니까? 자기 체면이 걸린 것이지요! 이미 자기 백성이 아합의 백성과 같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또 분위기가 거절 못할 분위기도 됩니다. 우리도 어떤 결정이 틀린 줄 알면서도 분위기 때문에 돌아서지 못하고 따라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은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라고 할 것은 아니라고 하라고 하셨지만 우리는 그렇게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이런 길에서 돌이키게 하시기 위하여 식겁하게 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오늘 본문 19:1~3절입니다. “1 유다 왕 여호사밧이 평안히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그의 궁으로 들어가니라 2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3 그러나 왕에게 선한 일도 있으니 이는 왕이 아세라 목상들을 이 땅에서 없애고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을 찾음이니이다 하였더라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온 여호사밧을 예후 선지자가 책망합니다.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냐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야 마땅하지만 왕에게 선한 일도 있기에 그 진노를 다 쏟지 않았다는 말씀을 듣고 여호사밧은 다시 온 백성들로 하여금 주께 돌아오게 합니다. 주께 돌아오게 하는 길은 말씀의 선포입니다. 말씀을 선포하고 백성의 재판관들이 그 말씀대로 재판하면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는 나라가 됩니다.

 

4~7절을 보면 왕이 직접 전국을 순회하면서 그들의 조상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합니다. 각 성읍에 군 지휘관을 세우는 것(17:19)이 아니라 재판관을 세웁니다. 재판관이 어떻게 재판해야 할지를 6~7절을 봅니다. “6 재판관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재판하는 것이 사람을 위하여 할 것인지 여호와를 위하여 할 것인지를 잘 살피라 너희가 재판할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심이니라 7 그런즉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치우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는 일도 없으시니라 하니라이렇게 재판하라고 합니다. 여호사밧의 이름도 여호와께서 재판하신다는 뜻입니다.

 

8~10절은 예루살렘에서 재판관들이 어떻게 재판해야 할지를 더 세부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레위사람들과 제사장들과 이스라엘의 족장 중에서 사람을 세워 여호와께 속한 일과 예루살렘 주민의 모든 송사를 재판하게 합니다. 그 재판의 기준은 율법입니다만 그 율법을 따라 재판하는 자들은 진실과 성심을 다하여 여호와를 경외하여야 합니다. 진실과 성심을 다하여 여호와를 경외하는 재판관이라면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재판을 하면 여호와께 죄를 범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율례와 제사와 법도에 관한 것은 대제사장 아마랴가 다스리고 왕에 속한 일은 유다 지파의 어른 스바다가 다스리고 레위 사람들은 각 분야의 관리가 되게 함으로 이스라엘 전역에서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합니다. 이럴 때에 적이 쳐들어옵니다. 어떻게 할까요?


20:1~4절입니다. “1 그 후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이 1)마온 사람들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고자 한지라 2 어떤 사람이 와서 여호사밧에게 전하여 이르되 큰 무리가 바다 저쪽 아람에서 왕을 치러 오는데 이제 하사손다말 곧 엔게디에 있나이다 하니라 3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4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

 

신앙의 개혁이 일어나자 세 나라가 연합하여 유다를 공격하려고 올 때에 금식기도하면서 여호와께 간구합니다. 아합과 연혼하고 아합과 함께 전쟁에 나갈 때는 부와 영광이 극에 달하였습니다. 그럴 때에는 여호와께 이렇게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혼이 나고 돌아오는 길에 선지자의 책망을 받고 온 나라를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이제 전쟁 앞에서 온 백성으로 금식기도하게 하고 자신도 개인적으로 기도하고 온 백성 앞에서 기도합니다.

 

5~13절입니다. “5 여호사밧이 여호와의 전 새 뜰 앞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회중 가운데 서서 6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 7 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이 땅 주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을 주께서 사랑하시는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원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8 그들이 이 땅에 살면서 주의 이름을 위하여 한 성소를 주를 위해 건축하고 이르기를 9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전염병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성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성전 앞과 주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에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 10 옛적에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에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과 세일 산 사람들을 침노하기를 주께서 용납하지 아니하시므로 이에 돌이켜 그들을 떠나고 멸하지 아니하였거늘 11 이제 그들이 우리에게 갚는 것을 보옵소서 그들이 와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의 기업에서 우리를 쫓아내고자 하나이다 12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13 유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아내와 자녀와 어린이와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여호사밧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에 대한 응답이 선지자 야하시엘에게 임합니다.

 

14~17절입니다. "14 여호와의 영이 회중 가운데에서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셨으니 그는 아삽 자손 맛다냐의 현손이요 여이엘의 증손이요 브나야의 손자요 스가랴의 아들이더라 15 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16 내일 너희는 그들에게로 내려가라 그들이 시스 고개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그들을 만나려니와 17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여호와의 응답은 여호와의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전쟁에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어떤 장면이 떠오릅니까? 홍해 바다 앞에서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합니다. 우리가 매장지가 없어서 이곳에서 죽게 하느냐고 합니다. 그때 모세는 너희는 가만히 서서 오늘 너희에게 베푸시는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고 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예배를 본다는 말을 싫어합니다. 마치 쇼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모양입니다. 물론 그런 쇼를 하는 예배를 본다는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시는 그 구원을 본다는 의미에서 예배를 본다는 것도 좋은 표현입니다. 여호와의 전쟁에서 우리는 할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다윗이 고백한 일한 것이 의롭다 함을 받는 복입니다. 바울사도는 이 복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설명하는 데 사용한 것입니다.

 

18~19절입니다. “18 여호사밧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도 여호와 앞에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하고 19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니라여호와의 응답에 온 백성이 찬송합니다.

 

20~26절입니다. “20 이에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21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22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23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24 유다 사람이 들 망대에 이르러 그 무리를 본즉 땅에 엎드러진 시체들뿐이요 한 사람도 피한 자가 없는지라여호와의 전쟁입니다. 세 나라의 적들이 서로 서로 침으로 멸망하였습니다.

 

25~30절입니다. “25 여호사밧과 그의 백성이 가서 적군의 물건을 탈취할새 본즉 그 가운데에 재물과 의복과 보물이 많이 있으므로 각기 탈취하는데 그 물건이 너무 많아 능히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으므로 사흘 동안에 거두어들이고 26 넷째 날에 무리가 2)브라가 골짜기에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한지라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곳을 2)브라가 골짜기라 일컫더라 27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사람이 다시 여호사밧을 선두로 하여 즐겁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이 그 적군을 이김으로써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28 그들이 비파와 수금과 나팔을 합주하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전에 나아가니라 29 이방 모든 나라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적군을 치셨다 함을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30 여호사밧의 나라가 태평하였으니 이는 그의 하나님이 사방에서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음이더라

 

여호와 전쟁의 결과로 여호사밧은 그 전리품만 챙겨오면서 찬양할 뿐입니다. 그러자 이방의 모든 나라가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여호사밧의 나라에 평강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의 생애 전체를 돌아보면 온전히 여호와께 돌아오지 못한 모습이 나옵니다. 산당을 다 철거하지 못하고 남겨두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마음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호사밧도 여호와의 전쟁을 경험하였지만 다시 북 이스라엘과 연합합니다.

 

31~37절입니다. 여호사밧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년 동안 다스립니다. 여호사밧의 생애는 다른 책에도 기록이 됩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여호사밧에 대하여 북 이스라엘의 아하시야와 교제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하시야는 심히 악을 행하는 자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악을 행하는 자와 사귀는 것을 싫어합니다. 이미 아합과의 연혼을 통하여 혼이 나자 율법에 따라 사법체제를 개혁하고 주께로 돌이켰습니다. 그래서 세 나라의 전쟁에서도 여호와의 도움을 구함으로 승리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시 말년에 아하시야와 교제를 합니다.

 

35~37절입니다. 앞에서 함께 읽은 내용입니다. 저는 오늘 제목을 이 본문을 보고서 방해하시는 하나님으로 정하였습니다. 물론 여호와의 전쟁의 승리가 나옵니다. 이럴 때는 자신이 아무른 힘도 없고 사람도 도와줄 수가 없기에 오직 여호와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자신이 이긴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의지함으로 승리를 하였습니다. 전리품만 가득 챙겨왔습니다. 나라가 부강하고 평안해지자 여호사밧은 다시 아하시야와 교제를 합니다. 아하시야는 심히 악을 행하는 자인데 왜 이 왕과 교제를 하는 것입니까? 두 왕이 에시온 게벨에서 배를 만들어 무역함으로 금을 더 얻고자 한 것입니다. 이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셨기에 배를 파선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을 방해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이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부강하여 지고 전쟁에 승리하고 나라가 평안해지자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아합과 연혼함으로 혼이 납니다. 돌아와서 개혁을 하고 났을 때에 다시 전쟁이 일어납니다. 이 전쟁에는 오직 믿음으로 여호와의 전쟁을 목격합니다. 그래서 평안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하는 일이란 에시온 게벨에서 배를 만들어 금을 얻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배가 파선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방해하심으로 하나님은 자기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오늘 우리도 여호와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그런데 어떤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까? 나의 가는 길을 미리 설정하여 놓고 이런 길로 인도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기도를 들어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방해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에시온 게벨에서 파선하게 하시는 방식으로 우리의 길을 방해하시는 길이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원하는 뜻들이 아무른 방해를 받지 않고 걸어갈 수 있었다면 우리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파선하게 하심으로 우리의 마음을 낮추셔서 그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보며 남은 길을 믿음으로 걸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