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님...
이렇게 책을 읽으시고 요약정리 하시는 모습을 뵈니 참으로 부럽다는 생각도 들고 약간의 도전도 되네요. 저 아래 제 댓글에서 반가이 답글을 달아 주신 것 잘 읽었습니다. 제 이해가 짧았음을 탓하지 않으시고 정성껏 답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일날 오랜만에 오신 어떤 집사님과 담소를 나누느라 집사님께 듣고 싶었던 말씀을 들을 시간을 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새벽 두시에 눈이 떠져서 집사님의 요약된 책 내용을 모두 정성껏 읽었습니다. 당황하지 마시라던 예고에도 불구하고 적잖이 당황스런 부분이 있어 또 글을 올립니다.
신현우교수님의 분석과 해석으로 안식일에 대한 공부가 많이 되었습니다만 결론적으로 안식일을 제도적 휴식장치에 비중을 둠으로써 인간을 위해 체제보수에서 깨어나 사회개혁에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야 한다는 결론은 상당히 의아합니다. 당황스럽네요 ^^
기독교인이라면 사회개혁에 앞장서야 한다는 말씀 앞에 동의가 되지 않는 부분은 모든 인간은 존재론적 죄인인데 그 죄인이 앞장 설 자격이 있냐 라는 의문과 그 체제개혁이 과연 하늘나라에 소망을 둔 자들이 가져야 할 가치일까 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주일 낮 우리 목사님으로부터 마태복음을 들으면서 저는 정말 많은 것들이 제 안에서 부수어 지고 있음을 봅니다. 마태복음에서도 예수님은 자비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신현우교수님도 안식일의 기본 정신은 자비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비와 신현우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자비는 다른 뉘앙스 같은데 제 이해가 부족했나요?
인간은 존재론적 죄인입니다 그러기에 상황만 되면 언제든지 죄를 분출해 내는 존재 자체가 죄인들입니다. 그런 자들을 향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은 결국 너희들은 자격없어, 그럴 능력도 없어 그러니 그 일은 내가 할 거야 라는 약속의 말씀이며 그분의 의지라 배웠습니다. 그리고 정말 그분은 그 약속을 친히 이루셨고요. 그리하여 그분 안에 거하는 것이 결국 자비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한다면 이 놀라운 사실을 전달해 주는 것이 최고의 이웃사랑이고요. 나의 존재인식과 그 존재를 향하신 그분의 일하심을 잊지 않고 날마다 기억한다면 불의(사회체제의 모순까지) 앞에서 조금은 당당해 질 수 있겠지요. 또 얼마간은 세상살이를 시시하게 조금은 눈을 내리깔고 바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집사님의 올려 주시는 글들로 많은 부분을 정리하게 되고 공감하기도 했지만 당황스런 부분을 참지 못하고 긴 답글을 주절이 늘어 놓았습니다. 다음 주는 조용히 제가 먼저 인사 드릴께요. 못다한 얘기 들려 주세요. 이렇게 이해가 부족한 제가 누군지 다음 주일에는 아시게 되겠네요 ㅎㅎ. 그때 당황하지 마세요..^^
시대의 아들들!
광주를 다녀 와서 이제 댓글답니다.
그동안 곽집사님의 신현우 교수의 책 발췌 요약을 잘 봤습니다.
신현우 교수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글을 읽었는데 밑의 댓글에서 말했듯이 김세윤 교수의 냄새(?)가 났습니다.
저의 설교나 글을 읽어도 어떤 사람들의 냄새(?)가 난다고 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그 시대와 그 사람의 상황에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신현우 교수를 검색 해 보니 그 분의 상세한 이력들이 나왔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학교의 비리를 개혁하기 위하여 혈서 까지 쓰신 분이더군요!
그런 용기로 인하여 제명이 되고 또 총신교수에서도 역사적 예수 이해의 문제로 인하여 교수 임용이 되지 않았다는 인터넷의 글을 보았습니다.
그 이력을 보고 나니 그 분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조금이라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에 대한 망원경과 현미경을 동원하여 상세한 논평을 하려면 이 분의 책보다 더 많은 양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논평을 하여도 역시나 사람들은 각자의 선 이해들로 읽기 마련입니다.
저는 이런 표현을 취향이라고 합니다만
안식에 대하여 간략하게 언급을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적 삶에 매여 있는 자들에게 안식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를 지나면서 중세교회에서 다시 교회의 전통과 교리들로 안식을 맛보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중세 교회에서 개혁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다 그 개혁교회에 속한 자들이기에 개혁한 자들의 신학의 영향을 받습니다.
개혁교회는 늘 개혁하여야하기에 개혁교회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백년을 개혁하여도 또 개혁하여야 합니다.
이런 개혁은 결코 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인간은 개혁이 안 된다고 봅니다.
어떤 개혁에 성공하였다고 하는 순간 그 개혁은 다시 힘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개혁주의가 진리라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살아남았기에 진리라고 고집하는 것입니다.
신현우 교수가 주장하는 여러 가지 적용들이 성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안식의 내용이라면 얼마나 궁색한지 모릅니다.
그러한 적용들이 성경이 말하는 안식이라면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이루어낼 수 있는 안식의 내용입니다.
심지어 표를 얻고자 보수정권에서도 말하는 안식의 내용들입니다.
물론 그런 안식도 없는 사회이기에 오늘 뉴스에 보니 19살 여고생이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고 집에서 목을 맸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안식을 주시려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교회가 세상 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경쟁은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으로 경쟁하지만 교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마저 자신들의 경쟁과 탐욕으로 채우고자 하니 더욱 안식이 없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안식을 전하시고 안식을 주시는 것을 배척한 그 시대나
지금이나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만 참된 안식을 주십니다.
그 안식을 받은 자들은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더 이상 세상의 성공을 위한 경쟁이 사라집니다.
현재로 자족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자들은 자기의 소유를 더 늘리기 위한 경쟁만 멈추어도 자비는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비와 긍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정말 주의 자비와 긍휼과 안식을 받지 못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안식이 임한 자는 이렇게 저렇게 안식을 위하여 무엇을 하라고 하지 않아도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완성된 안식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쉼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 안식의 누림이 그 사람에게 있다면 회사 경영도 쉼이 있는 경영을 할 것입니다.
교회도 목사나 장로들이 완성된 그 안식을 누린다면 교회 자체의 성장이나 성공을 위한 경쟁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개혁을 해서 제대로 안식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안식이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고 고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완성된 그 안식의 복음을 다시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혈서를 쓰면서 까지 개혁을 외친 교수님에게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그 완성된 복음이 아쉬워서 한 말씀 드린 것입니다.
덧붙여
이 글을 보신 모든 분들께 히브리서3, 4장의 안식의 말씀을 묵상하기를 권하면서
신현우 교수의 글은 복음 칼럼에 올리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벚꽃 집사님, 이렇게 또 게시판에서 교제를 하네요.ㅎ
제가 올린 글들을 통해 집사님께서 안식일에 대해 공부가 많이 되셨다니 저로서도 감사한 일입니다...(제가 원한 게 그 부분입니다.)
제가 신현우 교수의 글을 올리면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게(알기를 원하였던 게) 구약의 안식일법의 의미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의 논쟁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 게 무엇인지였습니다. 집사님도 파악하셨다시피 구약의 안식일법과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드러난 것은 '자비'입니다. 이게 핵심입니다. 이 '자비'를 도출하면서 신현우 교수는 성경적인 해석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염려하였던 것은 신현우 교수가 이 '자비'를 도출하는 과정의 성경해석에서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본문의 의미와 다르기 때문에 당황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집사님은 다른 부분에서 당황하였네요.)
제가 알기로 성경 해석은 크게 세 단계를 거칩니다. 먼저 본문에 대한 관찰 단계인데, 이 관찰을 통해 기본적인 정보를 얻게 되고, 그 다음 해석 단계를 통해 본문의 문맥적인, 배경적인, 문법적인, 역사적인 의미를 파악하게 되고, 마지막 단계는 적용 단계로서 이 본문의 의미를 현대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떻게 적용을 하여야 하는지 고민하는 단계입니다.
성경해석에 대해 말이 나왔으니 더 말씀 드리면, 이 해석 단계에서 우리는 기존의 구속사적, 언약적, 하나님 나라 중심적, 그리스도 중심적(완결적) 해석 패러다임으로 성경 본문을 해석합니다.(저는 모든 성경 해석은 그리스도 완결적으로 수렴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신현우 교수의 글을 올리면서 이 글에 대해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목사님 말씀처럼 신현우 교수의 글에는 그리스도 중심적(완결적) 결론이 부족한 것도 맞습니다...
다만, 저는 기존의 어떤 사람들의 글보다 신현우 교수의 글은 2,000년 전 당시 유대땅에서의 예수님의 사역을 가장 잘 설명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글에 만족하는 것이지 100%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집사님은 신현우 교수의 글에서 사회개혁에 앞장서야 된다는 내용이 동의가 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그 부분은 (신현우 교수가 강조할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강조하고자 한 부분은 아닙니다...
신현우 교수의 사회개혁 주장(정확하게 말하면 '자비'를 받은 사람은 자비를 베풀어야 된다는 주장) 때문에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cf. 제가 늦은 시간에 댓글을 다는 이유는 이제 야간 업무를 마쳤기 때문입니다.ㅎㅎ 저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안식을,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담에 같이 교제를 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