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deo streaming by Ustream
에베소서 2:8~10 선한 일을 위하여(2) 2012. 10. 14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일은 하나님께서 전에 예비하신 것이며 우리가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행하게 함이라고 하는 이 말씀은 그 안에서 산다는 말입니다. 영어로 to live 입니다. 선함 가운데서 살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선함이란 지난주에 하나님만이 선하신 분이시기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선한 일임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란 하나님께서 홀로 이루어내신 창조가 선한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 홀로 행하셨다는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선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허물과 죄로 죽은 인간에게서는 전혀 나올 수가 없기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어느 정도로 인간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는지 창세기에서 이미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어려서부터 항상 악하다고 합니다(창:6:5,8:21).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잠시라도 선한 것이 없습니다. 이런 말씀에 분노가 일어나시는 분들은 지난주의 말씀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후의 인간이 행하는 선이라는 것이 이미 죄인에게서 나오는 것이기에 자기 기준일 뿐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상태를 구약전체가 보여주고서 신약에서 결론을 내립니다.
로마서 3:9~18절을 봅니다.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ㄴ)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시14:1 이하; 53:1 이하)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ㄷ)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ㄹ)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시 5:9 시140:3) 14 ㅁ)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시10:7) 15 ㅂ)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사59:7 이하)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ㅅ)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시36:1)”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선을 행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인간의 실상이 이러합니다.
그러나 이런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고 나면 거듭난 사람이 되는데 거듭난 사람이 행하는 선한 것은 없습니까? 이런 질문들을 많이 합니다. 오늘은 여기에 대한 말씀을 보려고 합니다. 거듭난 우리가 과연 선을 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논쟁은 사실 교회 역사에서 오랫동안 계속되어 오고 있습니다. 이 보다 더 근원적이고 오래된 논쟁은 허물과 죄로 죽은 인간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것으로도 싸움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흔히 말하는 알미니안과 칼빈주의라는 싸움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인간이 스스로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은 장로교라면 이미 결론난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로교 안에서나 개인이나 단체들 안에서 이런 논쟁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인간이 선행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것을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선행을 한다면 누가 주체인가 하는 논쟁이 또 나옵니다. 선행을 하는 것이 예수 믿고 거듭난 나가 하는 일이냐? 아니면 성령이 하시는 일이냐? 참으로 복잡한 싸움들이 있습니다. 왜 이런 복잡한 일들이 일어날까요? 결국 인간의 자기 자랑거리가 있느냐 없느냐는 하는 이야기입니다. 분명히 구원은 우리의 자랑거리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구원 이전과 구원 이후로 나누어서 생각을 합니다. 구원 이전에는 허물과 죄로 죽었기에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구원 받고 나서는 어떻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구분이 무의미 하다고 봅니다. 구원 받기 전과 구원받고 난 후의 구분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구원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일이기에 은혜에서 은혜로 된다는 말입니다. 사실 이런 논쟁들이 오래전에 나그네라는 사람과 댓글로 주고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거듭난 내가 하는 것이라고 하고 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아서 나오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언약을 다 완성하시고 그 완성된 언약의 효력을 성령을 통하여 주시는 것이기에 인간에게서 선한 일이 나온다면 그것은 성령의 열매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논쟁은 구원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입니다. 제가 성경에서 보는 구원이란 하나님께서 나를 죽이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심어지게 하시고 자라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시는 그 전체가 구원이라고 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령의 열매인데 성령의 열매라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나의 열매가 아니라 성령의 열매입니다. 지난주에 원고에도 없는 미라 만드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에게선 무슨 선한 것이 나옵니까?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하신다고 하시는 것은 우리의 모든 것들을 다 빼내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가득 채워 넣으시는 것이 우리의 전 생애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11~21절을 봅니다. “봉독” 바울사도가 베드로를 책망합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입니다. 여기서 온 사람이란 어려서부터 할례 받은 유대인 기독교인들입니다. 이들이 안디옥에 왔는데 그때 베드로가 이방인과 함께 식사를 하다가 그 할례 자들을 두려워하여 식사를 하지 않은 체하였습니다. 그러자 베드로와 함께 있던 유대인들과 바나바도 함께 이렇게 하였습니다. 사람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외식을 하게 된 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헛되이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들의 이런 행위들이 바로 예수님의 죽으심을 헛되이 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 받은 자들이 어떻게 사는 것입니까? 갈라디아서 2:20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주체가 바뀐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인 선하심 안에 살아야 할 인생이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자 선악과를 따 먹은 그 나가 죽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우리의 육체가운데 살아간다고 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선악과 따 먹은 나의 주체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런 나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이시고 이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나의 행위의 가치는 이제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내가 사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이렇게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기 위하여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신 분이시기에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우리에게 알리시며 그 뜻을 따라 살아가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정말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자기의 행위에 대하는 전혀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는 나의 나 된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자신은 자기의 약함 외에는 자랑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선한 일이라고 하는 것은 하지 말까요? 이런 질문을 하는 분이 반드시 있습니다. 저는 되묻고 싶습니다. 무선 선한 일을 하면서 사셨나요? 불우이웃 돕기 좀 하셨나요? 구제헌금을 좀 하셨습니까? 그런 것들로 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슈바이처 박사에 대하여 들어보셨을 겁니다. 위인전기에도 나오는 인물입니다. 이 사람이 의사이며 음악가이고 철학자며 신학자였고 루터교의 목사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프리카에 가서 의료봉사를 하면서 평생을 보냈습니다. 노벨 평화상도 받았습니다. 참으로 선한 사람이라고 세상 사람들이 말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지옥에 갔다고 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짧은 설교시간에 그의 사상을 다 말할 수 없지만 그는 분명하게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선한 사람이라고 하는 자들이 얼마든지 지옥에 가게 됩니다. 이것을 세상 사람들은 독선이라고 합니다. 이런 오해를 받아도 분명한 복음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나사렛 예수가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셨고 그 분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것이 성령이 임한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이런 복음을 듣고서 자신이 세상에서 아주 나쁜 짓을 다하면서 자신은 예수 믿어서 구원받았다고 하는 자들이 또 나옵니다. 이들 또한 예수님을 이용하는 자들이지 은혜로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세상에서 이런 오해를 받지 않도록 세상에서도 선행을 하라고 합니다. 베드로전서 2:11~12절이니다. “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예수 믿는 사람은 세상에서 나그네입니다. 나그네는 짐이 가벼운 것입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많이 가지려고 하는 것이 육체의 정욕입니다. 이것을 제어하라고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교회들이 왜 욕을 얻어먹습니까?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세상에 속한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기에 욕을 얻어먹습니다.
초대교회 때도 복음을 듣고서 세상의 풍속과 다르게 살기에 악행 하는 자라는 욕을 얻어먹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조상도 모르는 자들이라고 욕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욕을 먹는 것은 예수이름 팔아서 자기 이익을 챙기기 때문에 욕을 얻어먹습니다. 한 예를 들면 주일날 결혼식이 있으면 토요일 가서 다른 사람보다 더 넉넉하게 부조하면서 내일 교회가야 하기에 못 온다고 하면 그런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을 욕 할까요? 그러므로 믿지 않는 자들 중에서 선한 행실이라고 하는 것을 지혜롭게 잘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인간의 정당한 제도들도 주를 위하여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악행을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서 주님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의 윤리나 도덕의 기준보다 더 나은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합니다. 그 세상적인 것들이 꼭 돈이나 물질적인 것들만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추구하는 가치들도 이 세상에 속한 것입니다. 제가 어려서 위인전기전집들을 좀 읽었습니다. 그 내용들은 권선징악, 고진감래, 사필귀정 이런 내용들이었습니다. 이런 것들도 세상에 속한 가치들입니다. 또 남을 위하여 섬기고 희생하는 것 등도 가치로 여깁니다. 슈바이처가 사람이 행복하려면 남을 섬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말하는 그런 선행이라는 것들을 잘 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입니다. 믿는 자들은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기에 세상에 있는 것들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보다 더 여유 있게 나누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이런 것들이 하나님 앞에 의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선한 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의롭고 선한 것이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만이 의가 되고 선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무엇이 선입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을 창세전에 택하신 자기 백성들에게 은혜로 부어주시는 것들만이 의로운 것이며 선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환난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불순물들이 빠져나가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만 온전히 채워지는 것을 거룩하고 흠도 점도 없는 신부라고 합니다(엡1:4, 5:27).
빌립보서 1:6절입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다른 번역을 봅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확신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신실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모든 삶의 과정에서 선하지 못한 땅위의 것과 정욕의 것과 귀신의 것들을 다 빼내시고(약3:15)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게 됩니다(엡4:24). 이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이 반드시 이루시고야 맙니다.
성경을 보면 이분설이나 삼분설로 보이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구약은 히브리어로 신약은 헬라어로 기록이 되어 있음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헤브라이즘은 사람을 헬라식으로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하여 전인적인 사람을
때로는 영, 영혼, 혼, 육, 몸, 목구멍, 숨,바람 등 여러가지로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같은 사람을 여러가지 다르게 바꾸어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순아님의 인간에 대한 설명은 누구나 알아듣기 쉬운 체제가 됩니다.
저도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는 부분에서 이런 구분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 구분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말합니다(롬7:4, 고전10:16, 12:27, 엡4:12).
예수 그리스도는 포도나무요 성도는 그 가지라고 합니다(요15장).
이 얼마나 쉬운 표현입니까?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으면 저절로 열매를 맺지만 떨어지면 말라 죽는 것입니다.
그리므로 그리스도에 의하여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는 그리스도께서 주가 되셔서 다루어짐을 당하는 것이 성도입니다.
이것은 기계적인 도식처럼 다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전인적으로 다루어진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그 다루어지는 모습이 다르기에 이런 것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그리스도의 지시와 간섭에 의하여
육신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것들과 충들을 일으키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덧 입게 하십니다.
[롬7:21-25]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 을 섬기노라
저는 위 사도바울과 같은 싸움이 내 삶에 나타날때 진정한 성령님의 간섭함을 믿으며
창세전 택함받음을 믿으며 늘 성령님이 함께하심에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목사님 감사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전인적으로 다루 시기도 하고
로마서 8장 16절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임을 증거 하시 거니와" 처렴
개벌적으로 도 다루 신다고 믿으면 않되는 지요?
오순아님!
전인적이라고 하는 것과 개별적이라고 하는 것은 같은 말이지요!
성도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시기 위하여 다루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엡2:22)로 만드시는 것이지요!
몸은 하나요 전인적 이라고 봅니다.
제가 개별적 이라고 한 것은 몸이 담고 있는 영과 혼과 육이 개별적 이라고 한 것입니다.
로마서에 성령께서 몸안에 있는 우리의 혼이나 육이 아니라 우리의 영과 함께 증거 하신다고 하기 때문 입니다.
사도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할때 전인적인 몸이 죽는 것이 아니라 몸안에 있는 개별적인 육(죄)이 죽는 것을 의미 하는것 아닌지요.
그래서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전인적으로 도 다루시지만 개별적으로 도 다루신다고 믿으면 되겠는냐 고 말씀 드린 것 입니다.
목사님의 깊이있는 진리의 말씀을 감사 함으로 잘 받아 먹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저의 믿음이 잘못된 데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글을 드립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 하실때 아담의 몸은 영과 혼을 담고 있는 몸으로 창조 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영이 죽고 육(죄)이 들어와 아담의 몸은 죽은 영과 혼과 육(죄)을 담고 있는 몸이 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의 몸은 죽은 영과 혼과 육을 담고 있어 짐승과 같이 되었고 육과 혼이 결합한 육신이 우리 몸을 주관하게 됨으로
본질 상 저주의 자식으로 오로지 자기의 유익을 쫒아 사는 마귀의 새끼들이 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하신 자녀들을 부르셔서 성령의 역사 하심으로 우리의 죽은 영을 살리시는 것으로 믿습니다.
이것이 거듭나는 것이요, 속 사람이 살아 나는 것이요, 새 사람으로 변화 해 가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새 사람이 되는것은 육에 붙어 있어 더러워진 혼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흠도 점도 없이 깨끗하게 씻어 살아난 영과 결합한
영혼이 우리 몸을 주관하게 되는 것이며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는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영과 혼과 몸이 하나되어 성령의 인도함을 받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몸에는 성령의 열매가 맺어 행위가 아니라 행실로 나타나는 것으로 믿습니다.
이러한 행실은 구체적으로 우리의 지(知) 정(情) 의(意) 즉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행동이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선과 온유와 절제를 나타내게 되며 이 모든것은 오직 성령의 역사 하심으로 만 가능 한 것으로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 몸이 육(죄)의 세상에 살고있어 항상 육(죄)의 공격을 받고 있으므로 하나님이 주신 전신갑주를 입고 이겨 내야 하고
성령의 검(말씀)으로 육(죄)을 죽여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육(죄)의 공격을 참고 건디고 끝까지 이겨 내야
하고 말씀으로 육(죄)을 죽이는 일에 힘쓰고 애쓰고 노력하고 있는지 확인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럼으로 목사님 말씀과 같이 우리 속에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 하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