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늘부터 3회에 걸쳐 ‘교회, 하나님의 영광’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참으로 가슴 벅찬 내용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이 놀라운 뜻을 알기 위하여 교회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무엇인지 알기 위하여 교회가 아닌 것이 무엇인지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평소에 생각하는 교회가 무엇인지 다음의 빈칸에 써보시기 바랍니다.
{
}
대
부분의 사람들은 교회라고 하면 건물을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옛날에는 붉은 벽돌 건물의 뾰족지붕에 십자가가 세워져 있는 곳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란 하나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산 하나님의 백성들을 교회라고 합니다(행20:28).
하나님의 피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주고 산 백성들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지금까지 생각한 교회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교회도 아닙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말하는
교회는 거저 착한 일을 많이 하는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착한 일을 교회가 하면 세상이 얼마나 싫어하는지 교회를
다 없애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교회가 무엇이라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성경에서 교회가
무엇인가를 알고 믿는 것이 바른 길입니다.
여러분이 다니는 교회가 소속된 총회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대한 예수교 장로회’입니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 이름의 총회가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소속되어 있는 교단은 ‘대한 예수교 장로회 고신 총회’라고 되어 있습니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라는 이름을 쓰는 교단에서는 계시가
오직 성경입니다. 성경 외에 사람의 가르침이나 역사나 전통을 계시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러면 성경에서 교회라는 말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한글 성경에서 ‘교회’를 검색하면 112회 나옵니다. 이 단어가
에클레시아(εκκλησια)인데 전부 신약에서만 나옵니다. 그러면 구약에는 교회가 없었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이기에 그림자로 교회는 있습니다. 그것을 스데반 집사는 광야 교회라고 합니다.
사도행전 7:38절입니다.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구
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빠져 나온 것을 광야 교회라고 합니다. 출애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기를 너희 후손이
타국에서 객이 되어 4대를 지난 후에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브라함과 이삭의 후손인 야곱의
아들들이 애굽에 내려갔습니다. 70명이 애굽으로 내려가 약 430년 지났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때가 되어 출애굽이 일어납니다.
출
애굽의 정점은 10가지 재앙 중에 마지막 재앙인 장자의 죽음입니다. 이 장자의 죽음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은 어린 양의 피를
바르는 것입니다. 어린 양의 피가 발라지지 아니한 집은 그 집안에 아무리 착한 사람이 살아도 어린 양의 피가 없다는 이유로 장자가
다 죽는 것입니다. 이 어린 양의 피가 무엇을 증거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증거 합니다. 모든 성경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요5:39). 그러므로 구약에서 그림자로서의 교회는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살아남은 자들입니다.
이
러한 구약의 계시들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값을 주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내실 것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스데반 집사를 유대인들이 돌로 쳐 죽였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은 이유는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물로 된 성전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말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7:46~50절입니다. “46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게 하여 달라고 하더니 47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49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않는다는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한 사람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충만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게 되면 예수님이 성전에 대하여 하신 말씀의 뜻을 제대로
알게 됩니다.
요한복음 2:13~22절입니다.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예수님께서 건물로 된 성전에 들어가셔서 하신 이 일로 인하여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어떻게 죽일 것인지 의논합니다(눅11:18). 유대인들이 건물로 된 성전을 붙들고 있다가 참된
성전이신 예수님을 죽이는 일이 일어난 것처럼 오늘날도 건물을 마치 성전이나 교회인양 여긴다면 예수님을 배척하는 일이 됩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교회라고 부름을 받는 것은 어린 양의 피로 살아남아 애굽을 탈출한 사람들을 교회라고 합니다. 이러한 교회를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합니다. 구약에서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구원받아 나온 자들을 광야 교회라고 하는 것은 장차 나타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주고 산 자기 백성을 교회라고 할 것을 보여줍니다.
출애
굽기 15:13~18절입니다. “13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14 여러 나라가 듣고 떨며 블레셋 주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15 에돔 두령들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주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16 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임하매 주의 팔이 크므로 그들이 돌 같이 침묵하였사오니
여호와여 주의 백성이 통과하기까지 곧 주께서 사신 백성이 통과하기까지였나이다 17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18 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
출애굽 하여 홍해를 건넌 후에 모세가 찬양한
내용입니다. 이 찬양 속에 하나님의 처소 곧 성전을 만드실 것을 말씀합니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구속한 백성을 주의 힘으로 거룩한
처소 곧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를 만드시기 위한 것입니다.
구약에서도 이미 어린 양의 피로 구속하여 내신 백성들을 하나님의 자기 처소(성전, 교회)만드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나를 위한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처소를 만드시기 위한 구원입니다.
하
나님의 자기 처소를 만드시기 위한 것을 구약에서 성막과 성전을 통하여 그림자로 보여주셨습니다. 광야 교회 시절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의 설계도를 보여주시고 만들게 하셨습니다. 이 성막이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성막이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고정되는 성전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언약이
영원함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건물로 된 성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성막과 성전이 무슨 기능을 하는 지가 중요합니다. 성막과
성전에서 항상 피 흘리는 제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러한 성전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주시는 것은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열왕기상 8:27~29절입니다. “27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28 그러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이 종이 오늘 주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29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주의 종이 이 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후에 기도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손에 지은 전에 계시지 않음을 솔로몬이
압니다. 다만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자기 이름을 두시는 곳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46
절을 보면 범죄 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전의 기능이란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속죄를 통하여 자기 백성의
죄가 용서함을 받아야 하나님께서 함께 거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능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성전의 기능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세상의 수많은 신전들처럼 신을 섬겨서 복을 받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전에 온갖 우상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성전을 하나님은 파괴하여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심판의 몽둥이로 사용하셔서 성전을 파괴하여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하시기에 그러한 건물로 된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실 영원한 성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구약 전체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특히 에스겔서에서 보면 예루살렘의 성전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상황에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성전의 환상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 성전이
완성되고 나니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옵니다. 건물에서 어떻게 물이 나오겠습니까? 그런데 그 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에스겔 47:1, 8, 12절입니다.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강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이런 성전은 건물이 아닙니다.
요
한복음 7:37~39절입니다.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앞
에서 요한복음 2장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건물 성전을 헐어 버리고 삼일 만에 짓겠다고 한 성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입니다.
예수님의 몸이 성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성전이 되시기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 배에서 생수가 강같이 흐른다는
말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성전이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성전이 된다는 것이 바로 그 배에서 생수가 강같이
흘러나온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성령을 말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예수님의 생명이 그 사람 안에 들어오는 것이기에 이 사람은 생명의
말을 내어 놓는 사람이 됩니다.
고린도전서 3:16~17절을 봅니다.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린도
전서 5:18~20절입니다. “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여러분들
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피로 값을 주고 산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의 영을 부어주심으로 성전이 됩니다. 이런 자들은 자기의 몸이 자기의 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전이기에 이런 자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영광을 돌리는 것이 무엇인지는 다음 시간에 계속하겠습니다.
2강. 교회를 누가 만드는가?
첫
째 시간에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구약에서 어린 양의 피로 출애굽한 자들을 광야 교회라 부르듯이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이 세상에서 대속을 받은 자들이 교회입니다. 이러한 교회는 자기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희생인 십자가의 피로 된 것이기에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나 된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둘째 시간에는 이러한
교회를 누가 왜 만드시는가에 대하여 성경 전체를 살펴보겠습니다. 교회를 누가 만듭니까? 교회를 만드는 것은 예배당 건물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당 건물을 성전이라고 말하거나 교회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첫 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교회를
누가 만들 수 있습니까?
요한복음 19:30절입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예
수님께서 십자가에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다 이루었다는 말입니까? 유대인들이 볼 때에 십자가의 죽음은 저주 받아
죽은 죽음입니다. 나무에 달려 죽는 것은 저주 받아 죽는 것이라고 신명기 21:23절에서 말씀합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을 거의
외우다 시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하는 예수님을 보고 사람들은 조롱하고 비웃고 침 뱉고
돌아섰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다 이루었다는 말씀입니까?
요한복음
6:38~40절입니다.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하
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하신 자기 백성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시고 다 찾아내시는 일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이 일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십니다. 십자가에서 자기 백성의 죄를 대속하시고 그 대속한 자들에게 자신의
영을 부어주십니다. 이 영을 성령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임하면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배에서
생수가 강같이 흐른다고 첫 시간에 살펴본 내용입니다. 이 일을 십자가에 다 이루신 것입니다.
예
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니 그 영혼이 떠나가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헬라어로 보면 그 영혼을
넘겨주셨다고 되어있습니다. 이 영혼이라는 말이 영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영을 넘겨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을 어디에
넘겨주신 것입니까?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게 넘겨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영이 임한 자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됩니다.
이렇게 교회를 만드실 것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15~18절입니다.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베드로가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하게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대답은 혈육이 아니라고 합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가 없고 오직
하늘에 계신 예수님의 아버지만이 하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음부란 무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죽음의 권세도 이 교회를 이길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교회를 반석
위에 세운다고 하셨는데 베드로의 뜻이 반석입니다. 그러면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말입니까?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세운다는
말입니까?
베드로라는 인물 위에 세운다고 보는 것이 가톨릭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초대 교황이고 지금은 266대인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씀을 보시면 결코 베드로라는 인물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이
신앙고백 후에 예수님께서 비로소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제자들에게 가르칩니다. 그러자 베드로의 반응이 어떻게 나오는지 봅시다.
마
태복음 16:21~23절입니다. “21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조
금 전에 주는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베드로가 갑자기 예수님으로부터 사탄아 물러가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조금 전에 신앙 고백한 그 내용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베드로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로막고 나선 것이
바로 사탄의 일 곧 사람의 일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일이 곧 사탄의 일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만
자기 백성을 자신의 교회로 만들어 내신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베드로 자신의 혈과 육의 힘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내겠다고
하는 이 생각이 바로 사탄의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만이 이루어내십니다. 당연히 교회도 하나님께서 만들어
내십니다. 하나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사시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교회를 만들어 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어지는 말씀을 봅니다.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 따르려고 하는 태도가 바로 사탄의 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사람이 만들어 낼 수가 없고 오직 예수님께서 자기의 피로 만들어 내시는 것이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는 사탄이 결코 흔들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른다는 것은 자신의 혈과 육, 곧 사람의
능력이 예수님께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28~32절입니다. “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바울사도가 예베소 교회의 장로들과 헤어지면서 부탁하는 말입니다. 감독이란
오늘날 목사를 말합니다. 감독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돌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피란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이 피로 값을 주고 산 교회를 돌보는 역할을 하는 것이 교회의 감독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떠나고 나면 사나운 이리들이 올 것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교회를 허물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무엇으로 교회를
허물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교회를 허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효력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또 부탁하기를 주님과 은혜의 말씀께 부탁을 한다고 합니다. 교회의 감독들도 인간이라
연약합니다. 그래서 주님과 은혜의 말씀이 교회를 든든히 세우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중고등부 학생으로 이런 말씀을 소화하기에 좀 힘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죽만 먹어서 안 되고 이제는 단단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교회가 무엇인지 바로 알고 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을 통하여 실감하셔야 됩니다. 교회를 만들어 내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피 곧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주고 산 자들을 교회라고 합니다.
고
린도전서 1:1~3절입니다. “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여기서는 교회를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진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시고 그 영을 자기 백성에게 넘겨주시면 그 영을 받은 자가 세상에서 구별되었다 해서 거룩한
자라고 합니다. 이러한 자가 바로 성도 구별된 무리 곧 교회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어서 교회로 구별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알면 알수록 우리가 교회로 부름 받은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알게 됩니다.
베
드로전서 1:1~2절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교회의 별명이 흩어진
나그네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교회를 무엇으로 정의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랐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언제 아셨습니까? 창세전에 이미 아신 자를 성령으로 구별하여 순종하게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게 하려고
택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뿌림을 받아야 교회라는 말입니다. 마치 출애굽 때에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발라야 살아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받는 자들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자기 피로 만들어 내십니다. 이런
교회는 사람이 만들 수도 없고 허물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 아래 있다면 세상 그 어떤 것들도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낼 수가 없습니다.
로마서
8:26~39절입니다.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3강. 교회, 하나님의 영광 -에베소서를 중심으로
에
베소서는 교회론 이라고 할 정도로 교회에 대하여 풍성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 에베소서를 저희 교회에서 설교하였습니다. 한 주에 약
40~50분 설교로 2년 5개월 동안 110회가 넘습니다. 그 정도로 풍성한 교회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에
베소서 1:15~23절입니다. “15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바울 사도의 기도입니다. 그 기도의 내용이
우주적인 스케일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의 비밀을 세상의 사람들은 결코 알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산 교회만
그 비밀을 압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기도하기를 지혜와 계시의 영을 달라고 간구합니다. 교회란 성도들이기에 성도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 임하면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란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면 무엇을 알게 됩니까? 교회의 영광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지
혜와 계시의 영이 임하면 마음의 눈이 밝아집니다. 마음이 눈이 밝아지면 우리를 부르신 부름의 소망이 무엇인지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이 일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신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부르심의 소망이란 이 세상의
썩어질 것들이 아닌 하늘에 간직된 썩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고 낡아지지 아니하는 기업입니다(벧전1:4). 이 기업이 얼마나 좋은지 이
세상의 모든 귀하고 아름답다고 하는 것들이 다 쓰레기로 보이게 됩니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일하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이시고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 앉히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만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들도 그렇게 함께 하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2:1~7절입니다.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허물과 죄로 죽은 자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함께
부활시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합니다. 이것을 묵시 속에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역사 속에 아직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이 묵시 속에 완료된 그 수준을 만들어 내시기 위하여 이 땅에 살려두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썩어지고 낡아질 모든 것들을 다 빼내도록 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남겨두신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요소들을 이
세상에서 고난을 통하여 다 빼내어 버리시고 이미 완성된 그 나라에 데리고 가십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누구만 알게 됩니까?
에베소서 1:22~23절을 다시 봅니다. “22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예
수님의 십자가로 하나님의 언약을 다 이루시고 그 영을 넘겨준 자들만 알게 됩니다(요19:30). 그래서 예수님이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라고 합니다. 만물이 다 그의 발아래 복종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머리가 되지 않으면 그 발에 밟힐 뿐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충만 입니다. 예수님 없으면 공허입니다. 혼돈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방황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2:5~11절입니다.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아
담의 타락 이후로 인간들은 누구에게 무릎 꿇는 일을 수치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때론 자기가 살기 위하여 마지못해 무릎을 꿇을 때가
있지만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무릎을 꿇는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에게 임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나의 주시며 그리스도임을 고백하는 것이 무릎 꿇는다는 말입니다. 그 동안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인줄 알았는데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면 그리스도가 자신의 주인일줄 알게 됩니다. 이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예수님을 믿는 자는 구원에 이르지만 지금 예수님의 이름을 믿지 않으면 마지막 날에 무릎을 꿇고 나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9~13절입니다. “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13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바울사도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복음이란 영원 전에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 비밀은 하나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산 교회만 압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을 미워하는 사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려고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비밀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가 복음을 위하여 또는 교회를 위하여 환난을 당하는 것이 오히려 영광이라고 합니다.
세
상 사람들이 말하는 영광과 전혀 다른 영광입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교회의 영광을 세상의 영광으로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영광이라고 하는 그른 것들이 결코 교회의 영광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영광으로 아는 자들이 교회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다 미련하고 어리석다고 하는 그 십자가가 구원의 능력임을 알고 믿는 자가 교회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세상의 힘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완성을 믿는 자들입니다.
에베
소서 3:14~21절입니다. “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바
울사도의 교회를 위한 두 번째 기도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기도하는 내용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교회로 하여금 그 영광의 풍성함이
어떠한지를 알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사람이 강건하여지고 그 사랑 가운데 자라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그리스도의 비밀과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아는 유일한 곳입니다.
에베소서 5:30~32절입니다.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31 ㄱ)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주
나의 신랑 나 주의 신부’ 이런 노래를 아십니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남편으로 교회를 신부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는 것도 단지 두 사람만 행복하게 살라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그리스도의 비밀을 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부부가
한 몸이 된다는 것은 이미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창세기에서 아담의 옆구리에서 하와가 나옵니다. 아담의 옆구리가 찢어지고 갈비뼈를
적출하여 하와를 만드십니다. 이것은 인간이 타락하기 이전의 일입니다. 인류가 타락하기도 전에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그의 신부된
교회를 구원하실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 그의 옆구리에 창이 찔려 물과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산 교회는 하나님의 피가 뿌려진 영광스러운 교회입니다. 예수님의 피를 보배로운 피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관심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교회라는 단체나 성전이라고 하는 건물이 아니라 자기 아들의 피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도 그 아들의 희생을 공로를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골로새서
1:13~18절입니다.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만
물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곳은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만들어지기에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입니다. 교회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공로를 알고 믿을
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다른 것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죽으심으로 다 이루어내신 십자가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씀입니다. 부활도 영광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로 인하여
부활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의 영이 임한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한 것입니다.
에
베소서 2:19~22절입니다.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어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다 찾아내시면 하나님의 처소가 완성되기에 그제야 이 세상의 끝이 올 것입니다. 이제 복음이 옛날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거 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될 날이 얼마나 남지 않았습니다. 복음으로 자기 백성들을 다
찾아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처소 곧 교회가 완성이 되기에 이 역사를 마감해 버립니다.
그
러므로 우리가 정신으로 차리고 지금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자기 백성을 구속하여 내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도 하고 교회라고도 하고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라고도 합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거처가 교회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교회가 아닌 것은
심판입니다
히브리서 10:28~29절입니다.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우
리가 교회가 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거룩한 언약의 피로 되었습니다. 이것을 증거 하는 분이 은혜의 성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구원받았음을 알고 믿게 되었다면 천하를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하나님의 영광인 교회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주제: 교회, 하나님의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