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2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3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을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원하시기를 청한지라 4 이에 저희가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가로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5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6 예수께서 함께 가실쌔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7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8 저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제 아래에도 군병이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9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를 기이히 여겨 돌이키사 좇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10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강건하여졌더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이라는 지역으로 가신 내용입니다. 이곳에 가신 이유는 이방인 백부장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믿음 없음을 보여주십니다.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서는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보냈습니다. 백부장이란 백 명의 부하를 둔 로마군대의 장교입니다. 가버나움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는 장교입니다. 이 사람이 용병부대의 장교이든 로마군대의 장교이든 간에 이스라엘 전 지역이 로마의 지배 하에 있었기에 대단한 권세를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식으로 말하면 일제 강점기 때에 일본군 헌병장교쯤 되는 사람입니다. 그때에 일본 순사만 온다고 하여도 우는 아이가 울음을 그쳤다고 할 정도입니다. 어느 장로님과 이야기 중에 어렸을 때에 자전거 타고 가다가 지서 앞에서 내려서 갔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도 어릴 때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것이 다 일재 식민지의 잔재입니다. 관공서만 가도 주눅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순사도 아닌 군인의 백부장이라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되실 것입니다. 그런 백부장이 예수님에게 어떻게 부탁을 하는지 봅시다.
2-3절을 봅니다.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그 종을 구원하여 달라고 유대의 장로 몇 사람을 보낸 것입니다. 자신이 직접 오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7절에 보시면 주님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태도입니다. 얼마든지 당당하게 부를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본 것도 아니고 단지 소문만 들었는데도 이방인인 자신은 예수님께 감히 나아갈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평소에 친분이 있는 유대인 장로들을 보낸 것입니다.
유대인의 장로들이 간절히 청합니다. 평소에 유대인의 장로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좋게 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백부장을 위하여 간절히 청하는데 백부장이 어떤 사람인지를 소개합니다. 유대 민족을 사랑하여 회당까지 지어준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유대인의 장로들이 예수님께 간청하여 그 집에 가도록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함께 멀지 않은 백부장의 집으로 가는 중에 백부장이 또 벗을 보냈습니다. 아마 이들도 유대인의 장로들일 것입니다. 그들이 와서 무엇이라고 합니까?
‘주여 수고하지 마옵소서! 내 집에 오심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이 고백도 백부장의 벗들이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백부장의 집으로 가셔서 고쳐주시도록 간청한 것은 백부장의 의도가 아니라 장로들의 의도로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직접 백부장의 집으로 오신다는 말을 듣고서는 자신이 직접 나오는 것이 아니라 또 벗들을 보내면서 자기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치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씀만 하시면 된다고 합니다.
8절을 봅니다. 저도 남의 수하에 있고 제 아래에도 군병이 있어서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고 하면 간다는 것입니다. 로마군대의 용맹은 대단한 것입니다. 돌격 앞으로 하면 죽음을 무릎서고 전진하는 것입니다. 어느 글에서 읽었는데 적은 군인으로 많은 적을 물리친 상황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자기 군대를 절벽 앞에서 앞으로 갓! 한 것입니다. 그러자 척척 걸어가서는 절벽에서 떨어져 죽어가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아무리 많은 군대라고 질려서 도망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군인의 명령체계입니다. 한마디로 시키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본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찾아볼 수 없는 믿음이 이방인 백부장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백부장은 예수님의 소문만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천지의 주인임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씀만 하시면 자기 종이 고쳐줄 줄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어떻게 이 사람에게 있었습니까? 예수님도 놀란 이 믿음은 무엇으로 설명이 가능합니까? 도저히 인간의 조건으로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상태를 은혜로 된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그 예수님이 무슨 말씀이시건 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바디매오가 눈을 떴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이런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여 주시기를 원하십니까?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여 주시기를 원하십니까?
어느 목사의 설교제목을 몇 가지만 소개합니다. “문제들로부터 유익을 얻는 방법”, “성경으로 축복받는 방법”, “대인관계를 바르게 하는 방법”, “돈을 지혜롭게 관리하는 법” 어떻게 스트레스를 해소할 것인가? 실패에서 어떻게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나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위기에서 어떻게 담대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변화될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이 혼란 속에서 나 자신을 건져낼 수 있는가? 나에게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고독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목적이 이끄는 삶의 저자인 릭 워렌 목사의 설교제목입니다. 수요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조사하고 그것을 채워주겠다고 신문에 광고하여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그렇게 성공하였다고 한국에서도 초청하여 대형집회를 하였습니다. 오늘날 이 방법이 교회들마다 받아들여지고 있고 세미나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예수님께서 믿음이 좋다고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내 집을 장사하는 소굴로 만들었다고 하시겠습니까?
예수님께 감히 나아가지도 못하겠다는 백부장, 저희 집에 오심을 감당할 수도 없다는 그 태도가 우리에게 있습니까? 이스라엘 중에도 이만한 믿음을 찾아보지 못하였다는 말씀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대하였습니까? 결국에는 싫다고 죽였습니다. 왜 죽였습니까? 예수가 자기들의 필요를 채워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 백부장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믿음 없음을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이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말씀만 하시면 이루어 질 줄을 믿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심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분이 어떻게 감히 자기 집에 들어올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나서 말씀을 들은 것도 아닙니다. 그저 소문만 듣고서 이런 고백이 나온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믿음이 이런 믿음입니까?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 같은 죄인을 만나 주시고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다 흘려주셨습니까? 저는 감히 주님 앞에 고개도 들지 못하겠습니다.
이런 고백이 나옵니까! 이런 믿음이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그분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그 말씀대로 성취가 된다는 것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이방인 백부장처럼,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예수님 앞에 자신을 제대로 아는 자가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런 자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는 모든 무릎이 다 그 앞에 꿇게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 7:1-10 이 만한 믿음 2012. 11. 28
1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2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3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을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원하시기를 청한지라 4 이에 저희가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가로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5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6 예수께서 함께 가실쌔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7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8 저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제 아래에도 군병이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9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를 기이히 여겨 돌이키사 좇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10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강건하여졌더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이라는 지역으로 가신 내용입니다. 이곳에 가신 이유는 이방인 백부장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믿음 없음을 보여주십니다.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서는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보냈습니다. 백부장이란 백 명의 부하를 둔 로마군대의 장교입니다. 가버나움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는 장교입니다. 이 사람이 용병부대의 장교이든 로마군대의 장교이든 간에 이스라엘 전 지역이 로마의 지배 하에 있었기에 대단한 권세를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식으로 말하면 일제 강점기 때에 일본군 헌병장교쯤 되는 사람입니다. 그때에 일본 순사만 온다고 하여도 우는 아이가 울음을 그쳤다고 할 정도입니다. 어느 장로님과 이야기 중에 어렸을 때에 자전거 타고 가다가 지서 앞에서 내려서 갔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도 어릴 때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것이 다 일재 식민지의 잔재입니다. 관공서만 가도 주눅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순사도 아닌 군인의 백부장이라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되실 것입니다. 그런 백부장이 예수님에게 어떻게 부탁을 하는지 봅시다.
2-3절을 봅니다.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그 종을 구원하여 달라고 유대의 장로 몇 사람을 보낸 것입니다. 자신이 직접 오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7절에 보시면 주님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태도입니다. 얼마든지 당당하게 부를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본 것도 아니고 단지 소문만 들었는데도 이방인인 자신은 예수님께 감히 나아갈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평소에 친분이 있는 유대인 장로들을 보낸 것입니다.
유대인의 장로들이 간절히 청합니다. 평소에 유대인의 장로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좋게 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백부장을 위하여 간절히 청하는데 백부장이 어떤 사람인지를 소개합니다. 유대 민족을 사랑하여 회당까지 지어준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유대인의 장로들이 예수님께 간청하여 그 집에 가도록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함께 멀지 않은 백부장의 집으로 가는 중에 백부장이 또 벗을 보냈습니다. 아마 이들도 유대인의 장로들일 것입니다. 그들이 와서 무엇이라고 합니까?
‘주여 수고하지 마옵소서! 내 집에 오심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이 고백도 백부장의 벗들이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백부장의 집으로 가셔서 고쳐주시도록 간청한 것은 백부장의 의도가 아니라 장로들의 의도로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직접 백부장의 집으로 오신다는 말을 듣고서는 자신이 직접 나오는 것이 아니라 또 벗들을 보내면서 자기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치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씀만 하시면 된다고 합니다.
8절을 봅니다. 저도 남의 수하에 있고 제 아래에도 군병이 있어서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고 하면 간다는 것입니다. 로마군대의 용맹은 대단한 것입니다. 돌격 앞으로 하면 죽음을 무릎서고 전진하는 것입니다. 어느 글에서 읽었는데 적은 군인으로 많은 적을 물리친 상황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자기 군대를 절벽 앞에서 앞으로 갓! 한 것입니다. 그러자 척척 걸어가서는 절벽에서 떨어져 죽어가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아무리 많은 군대라고 질려서 도망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군인의 명령체계입니다. 한마디로 시키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본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찾아볼 수 없는 믿음이 이방인 백부장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백부장은 예수님의 소문만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천지의 주인임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씀만 하시면 자기 종이 고쳐줄 줄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어떻게 이 사람에게 있었습니까? 예수님도 놀란 이 믿음은 무엇으로 설명이 가능합니까? 도저히 인간의 조건으로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상태를 은혜로 된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그 예수님이 무슨 말씀이시건 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바디매오가 눈을 떴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이런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여 주시기를 원하십니까?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여 주시기를 원하십니까?
어느 목사의 설교제목을 몇 가지만 소개합니다. “문제들로부터 유익을 얻는 방법”, “성경으로 축복받는 방법”, “대인관계를 바르게 하는 방법”, “돈을 지혜롭게 관리하는 법” 어떻게 스트레스를 해소할 것인가? 실패에서 어떻게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나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위기에서 어떻게 담대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변화될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이 혼란 속에서 나 자신을 건져낼 수 있는가? 나에게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고독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목적이 이끄는 삶의 저자인 릭 워렌 목사의 설교제목입니다. 수요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조사하고 그것을 채워주겠다고 신문에 광고하여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그렇게 성공하였다고 한국에서도 초청하여 대형집회를 하였습니다. 오늘날 이 방법이 교회들마다 받아들여지고 있고 세미나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예수님께서 믿음이 좋다고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내 집을 장사하는 소굴로 만들었다고 하시겠습니까?
예수님께 감히 나아가지도 못하겠다는 백부장, 저희 집에 오심을 감당할 수도 없다는 그 태도가 우리에게 있습니까? 이스라엘 중에도 이만한 믿음을 찾아보지 못하였다는 말씀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대하였습니까? 결국에는 싫다고 죽였습니다. 왜 죽였습니까? 예수가 자기들의 필요를 채워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 백부장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믿음 없음을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이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말씀만 하시면 이루어 질 줄을 믿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심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분이 어떻게 감히 자기 집에 들어올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나서 말씀을 들은 것도 아닙니다. 그저 소문만 듣고서 이런 고백이 나온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믿음이 이런 믿음입니까?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 같은 죄인을 만나 주시고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다 흘려주셨습니까? 저는 감히 주님 앞에 고개도 들지 못하겠습니다.
이런 고백이 나옵니까! 이런 믿음이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그분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그 말씀대로 성취가 된다는 것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이방인 백부장처럼,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예수님 앞에 자신을 제대로 아는 자가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런 자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는 모든 무릎이 다 그 앞에 꿇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