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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학생들을 포함한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명도 구조되지 못하고
모두가 죽음으로 내몰리는 받아들일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건을 목도하면서, 수많은 이들의 눈물과 간구에도 아무 응답이 없는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나요?
지구상의 수많은 어린이들이 지금 이순간에도 굶주려 죽어가고
이유없는 전쟁으로 인해 힘없는 이들이 죽어가도 아무런 손짓이 없는 하나님...
하나님은 살아계신 걸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이해의대상이 아니라 순종해야할분입니다.
저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이해할수없는일을 다 설명할수없지만 그분이 내 구원자이고 내 하나님이신것을 분명히 알기에 그분의 선하심을 믿습니다
그런일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고계심을 믿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다 파악되고 이해되는것이라면 하나님이라 할수없지않나요?
먼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길 기도해보십시요
충고의 말씀이라 생각하고 새겨듣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존재라는걸 단정하시고 말씀을 하시는 듯하여
조금은 당혹스럽습니다.
저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씨름하고 있으며, 살아계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기에 인격적인 관점에서
내 자신에게 때로는 하나님께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맹종을 원하시는 것을 성경 어디에서도 본적이 없읍니다.
이해되지 않는데 무엇을 믿는다는 것입니까.
이성과 확신이 배제된 믿음은 거짓이고 위선일 뿐입니다.
지금 화두가 되고 있는 구원파, 신천지와 같은 무리들의 어리석음이 어디에서 비롯됬다고 생각되시나요?
성령을 보내심은 믿음에 대한 강요가 아니라, 옯바른 믿음울 위한 지혜를 주시기 위함이요
진리의 깨달음을 얻게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으로 논쟁하고 싶은것은 아니기에 각설하고 본론으로 돌아갑니다.
주변의 목사님과 이문제에 대하여 수없는 토론을 했음에도 시원한 답변을 얻지 못해
이목사님께 노크해 본것입니다.
제우스님!
귀하의 질문을 수요일 설교시간에 그대로 인용하였습니다.
수요일 설교를 참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정리가 안 되시면 다시 질문 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를 클릭하시고 충분한 시간을 갖고 들어보시기바랍니다. => http://evergreen17.80port.net/xe/291275
저의 상담에 대하여 설교말씀으로까지 상세하게 가르침을 주심 깊은 감사의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제가 이해한 목사님의 설교말씀의 요지는 지금 당장이라도 심판받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감에 감사하며 나의 죄악됨을 순간마다 회개하며 살아야 된다라는 것 같습니다.
타락한 아담의 후손으로 선한 구석하나 있을 수 없는 인간들의 삶은 어느 곳,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죄악이 가득할 수 밖에 없겠지요.
목사님의 말씀이 일면 수긍이 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부딪히는 것은 죄악 가득한 인간세상을 향하여 유독, 유일하게 창6장의 노아의 홍수심판을 통하여 세상을
쓸어 버리냐는 것입니다.
또한 그 심판 이후로는 죄악이 가득 할 세상을 향하여 물로 심판을 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지요.
목사님의 설교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노아의 시대보다 바늘구멍 만큼이라도 더 깨끗하지 못할것을
하니님께서 몰랐을리가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노아의 홍수심판은 인간의 죄악됨이라고 말씀하심에 전적으로 수긍하기 힘든 이유입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창3장의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심에 있다고 봅니다.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그러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창6장의 여자의 후손(하나님의 아들들)과 뱀의 후손(사람의 딸들)이 섞여버리는 사건으로 인해
뱀의 씨가 섞이지 않은 여자의 후손에 대한 새로운 하나님의 약속의 시작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간섭으로 봅니다.
유일한 하나님의 간섭!
노아 이래...여자의 후손을 막으려는 뱀의 후손의 계교,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손길이 끊이없이 반복되는 것을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속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시는 그 순간까지도 볼수 있습니다.
(문의의 본질이 아니었으니, 각설합니다.).
4천여년간의 흐름속에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깝노라고., 그 천국은 네 마음속에 있노라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라, 그것이 진정 하나님의 나라라고.
이를 알게하고 깨닫게 하고 도우시는 성령을 보내겠노라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사랑이 진정 무엇인지, 무엇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인지를,
어떤것이 진정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인지를 가르쳐 주셨고, 그것을 몸소보이시며, 우리 또한 증거하고
살아갈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가르치셨는데, 예수님의 승천이래 나타나는 인간사 속에서의 수많은 연약한 이들을 향한 굶주림과 고통과 이유없는
죽음이 단지 타락된 인간의 삶에 대한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수긍이 되지 않습니다.
지옥의 심판인들 눈앞에서 서서히 물에잠겨 죽어가는 아이를 구하지 못하는 엄마의 고통보다 클까요?
전 여전히 하나님의 침묵에 눈물이 납니다.
창세기 3장의 인간 타락과 여자의 후손에 대한 약속 이전에 하나님은 언약하셨습니다.
그 언약을 창세전 언약 또는 영원전 언약이라고 합니다(딤후 1:9~10, 딛1:1~3).
그리고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의 타락 이전에 이미 그리스도의 희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창세기 2장입니다.
아담을 잠들게 하시고 갈비뼈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신 것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이라고 합니다(엡 5:31~32).
이러한 언약들은 사람의 구원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아들의 영광을 위한 언약입니다.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모든 것은 그 아들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골1:16).
구원을 받는 것도 아들의 영광을 위하여 심판을 받는 것도 아들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롬9장,빌2:10~11).
귀하의 글을 보면 이런 내용도 어느 정도 이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로 언약이 성취가 되었고 서로 사랑하라며 살라고 한 이 세상이 왜 여전히 이모양 이냐는 말로 보입니다.
노아 홍수로 심판하시고 나서 물로 심판하시지 않는다고 하신 이유는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하기에 심판을 하신다면 늘 심판아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아 홍수 이후에 소돔과 고모라 성의 심판을 통하여 장차 심판이 어떠할지를 보여주셨습니다.
베드로후서 2:4~6.
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5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6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베드로후서 3:1~7.
1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2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6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물로 심판하신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언약을 완성하신 이후에도 세상을 불에 태우시겠다고 하십니다.
전 인류가운데 8명만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보이는 이 하늘과 땅을 다 불살라 버리신다고 합니다.
그 안에 포함된 인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귀하는 믿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세계의 인구가 70억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몇 사람이 십자가에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하면서 죽어가는 그 아들을 보고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 십자가가 언약의 완성이라고 하는 이 복음을 누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십자가에 함께 못박히는 것이 구원이라고 하는 이런 복음을 누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휴머니즘이 아닙니다.
휴머니즘에 의하여 살해당한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한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내용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셔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살해한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세월호만이 아니라
온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생각해 보라는 답변이었습니다.
성경은 휴머니즘이 아닙니다.
.................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나님 아버지는 인간의 생명을 벌레만도 못하게 보시기에 지옥의 땔감용으로 준비하시는 무서운 분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과 하나되는 아들이 되게하사 참된 평안을 누리길 원하시는 사랑의 존재이심을 저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여전히 나의 아버지는 아무리 천한 자의 생명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금번의 대화가운데서 온전한 소통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며 아픔을 안고 물러갑니다.
시간 내주시고 친절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금일 방송 된 뉴스 한 꼭지를 올려봅니다.
평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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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9일) 저희는 세월호 4층에 있던 고 김시연 양의 휴대폰 영상을 입수해서 보도해드리려 합니다.
김시연양은 저와 처음 인터뷰했던 김중열 씨의 따님입니다.
김중열씨가 저와 두번째 인터뷰하려던 바로 그 순간에 김 양은 시신으로 돌아왔었습니다.
고 김시연 양의 이 영상은 최초 침몰 신고가 있기 직전인 8시50분부터 50분간 간헐적으로 찍힌 영상들입니다.
배가 기울자 당황해하는 여학생들의 모습과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 방송을 불신하는 아이들의 대화,
또 마지막으로 친구들을 걱정하며 기도하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어제 이 영상을 보신 학부모들은 한참을 통곡했다고 합니다. 바다로부터 온 아이들의 네번째 편지입니다.
김관 기자가 보도해드리겠습니다.
[기자]
동영상은 여학생들의 비명 소리로 시작합니다.
[야 진짜, 너무 심해 이건.]
고 김시연 양이 처음 촬영 버튼을 누른 시간은 오전 8시 50분인데, 이는 최초 침몰 신고가 접수되기 2분 전입니다.
[커튼 찍어, 커튼.]
커튼은 창문에서 45도 넘게 벌어졌고, 아이들은 움직여 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내 옆으로 올 수 있겠어?]
[못 움직이겠어.]
[너무 무서워.]
[야, 나 진짜 무서워.]
[우리 지금 벽에 붙어있다.]
영상은 5분 뒤, 8시 56분 다시 촬영됐습니다.
[우리는 진짜로 죽을 위기야. 이 정도로 기울었다. 오늘은 4월 16일.]
그 순간, 방송이 나옵니다.
[선내에 계신 위치에서 움직이지 마시고, 잡을 수 있는 봉이나 물건을 잡고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은 귀를 의심합니다.
[야, 미쳤나봐.]
[이런 상황에서 막 그러지 않냐? 안전하니까 가만히 있으라고.]
[그러면 지들끼리 다 나가고.]
[지하철도 그렇잖아. 안전하니까 좀만 있어달라고 했는데, 진짜로 좀 있었는데 죽었다고. 나간 사람들은 살고.]
45분 뒤 다시 시작된 영상 속엔 구명조끼를 입은 채 겁에 질린 여학생이 보입니다.
그리고 시연양은 마지막 기도를 남깁니다.
[우리 반 아이들 잘 있겠죠? 선상에 있는 애들이 무척이나 걱정됩니다.
진심입니다. 부디 한명도 빠짐없이 안전하게 (수학여행) 갔다올 수 있도록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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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린 영혼의 마지막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이 들었겠지요
그러나 그 기도에 대해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살아 생전에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며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시인했던 저 아이의 기도에 침묵하셨습니다.
당신의 아들 이름으로 기도하면 다 들어준다고 듣고 배워왔기에
감당할수 없는 두려움 속에서 떨며 기도하던 저 아이의 간구..질흑같던 죽음의 바다속에서 보내온
마지막 편지입니다.
그렇게...시간이 흘러...아무런 응답이 없이...
...채 피어보지도 못한 수백명의 어린 영혼들이 진도 앞바다에서 수장되었습니다.
이제 내일..주일에...
하늘보좌에 앉으시어
수천만의 교회를 통해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겠지요.
사랑이신 하나님.
제말에 맘이상하셨다니 죄송한맘이듭니다.
인간의 지혜로 하나님을 완벽하게 이해할수없다는 이야기지 제우스님의날과는 다른뜻입니다.
오해를 푸시길 비랍니다.
인간의 이성과 지혜로도 해결되지않는 부분이 남게되더라구요.
그런데 그 미해결부분까지 믿게해주시더라구요... 성령께서요...
이해되지않는데 이해되어지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게되더군요.....
진심입니다. 부디 한명도 빠짐없이 안전하게 (수학여행) 갔다올 수 있도록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 선상에 있던 아이들은 구조가 됐던걸로 보입니다만.... 시연양의 기도덕분인지....본인 걱정은 뒷전이고
친구를 먼저 생각하는 시연양 그 영혼을 주님의 평안으로 의탁합니다 아멘
'이런 것도 도와주지않고 침묵하는 하나님 ' 이런 말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이란걸 아십니까?
제~님은 남을 걱정하기에 앞서 자신이 누구인지 부터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의 하신 뜻을 살피지 않고 내 생각 내 뜻을 이뤄주지 않는다고 슬퍼하는 것은 선악과를 먹고 인간 맘대로 선악을 판단하는 죄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문제는 이것을 잊는데서부터 항상 생기지요
하나님을 함부로 판단하는 당신은 죄인이며 구원받을 수 없는 자입니다
당신의 이름이 생명책에 들어 있는지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시고 예수만 붙드십시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고 성도들에게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우리를 성숙시키기 위해 하신 것입니다.
매일 매일 심판의 날로 여기며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깨어있어야 합니다.
에녹이 아들을 낳고 무드셀라( 죽으면 심판이다)라고 이름지으라는대로 순종하고 매일 심판을 준비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않고 옮기운 것 처럼 우리도 매일 심판을 준비하며 죽어도 죽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시편 73편을 올립니다.
1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과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이건만,
2 나는 그 확신을 잃고 넘어질 뻔했구나. 그 믿음을 버리고 미끄러질 뻔했구나.
3 그것은, 내가 거만한 자를 시샘하고, 악인들이 누리는 평안을 부러워했기 때문이다.
4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으며, 몸은 멀쩡하고 윤기까지 흐른다.
5 사람들이 흔히들 당하는 그런 고통이 그들에게는 없으며, 사람들이 으레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아예 가까이 가지 않는다.
6 그들에게는 오만이 목걸이요, 폭력이 그들의 나들이옷이다.
7 그들은 피둥피둥 살이 쪄서, 거만하게 눈을 치켜 뜨고 다니며, 마음에 기대한 것보다 더 얻으며,
8 언제나 남을 비웃으며, 악의에 찬 말을 쏘아붙이고, 거만한 모습으로 폭언하기를 즐긴다.
9 입으로는 하늘을 비방하고, 혀로는 땅을 휩쓸고 다닌다.
10 하나님의 백성마저도 그들에게 홀려서, 물을 들이키듯, 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11 덩달아 말한다. "하나님인들 어떻게 알 수 있으랴? 가장 높으신 분이라고 무엇이든 다 알 수가 있으랴?" 하고 말한다.
12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가 악인인데도, 신세가 언제나 편하고, 재산은 늘어만 가는구나.
13 이렇다면, 내가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온 것과 죄를 짓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온 것이 허사라는 말인가?
14 하나님, 주께서는 온종일 나를 괴롭히셨으며, 아침마다 나를 벌하셨습니다.
15 "나도 그들처럼 말하면서 살아야지" 하고 말했다면, 나도 주의 백성 가운데 한 사람처럼 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16 내가 이 얽힌 문제를 풀어 보려고, 깊이 생각해 보았으나, 그것은 내가 풀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17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야, 악한 자들의 종말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18 주께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세우시며, 거기에서 넘어져서 멸망에 이르게 하십니다.
19 그들이 갑자기 놀라운 일을 당하고, 공포에 떨면서 자취를 감추며, 마침내 끝장을 맞이합니다.
20 아침이 되어서 일어나면 악몽이 다 사라져 없어지듯이, 주님, 주께서 깨어나실 때에, 그들은 한낱 꿈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집니다.
21 나의 가슴이 쓰리고 심장이 찔린 듯이 아파도,
22 나는 우둔하여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나는 다만, 주님 앞에 있는 한 마리 짐승이었습니다.
23 그러나 나는 늘 주님과 함께 있으므로,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잡아 주십니다.
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해 주시고, 마침내 나를 주의 영광에 참여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25 내가 주님과 함께 하니, 하늘로 가더라도, 내게 주님 밖에 누가 더 있겠습니까? 땅에서라도, 내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26 내 몸과 마음이 다 사그라져도, 하나님은 언제나 내 마음에 든든한 반석이시요, 내가 받을 몫의 전부이십니다.
27 주님을 멀리하는 사람은 망할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정절을 버리는 사람은, 주께서 멸하실 것입니다.
28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것이 나에게 복이니, 내가 주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고, 주께서 이루신 일들을 전파하렵니다.
제우스님
아픈 마음으로 떠나신다고 하셔서
이 글을 보실런지는 모르겠으나
여기 글들을 읽는 다른 분들을 위해서도 몇 자 적을까 합니다.
이장우 목사님의 말씀처럼
인본주의가 예수를 죽였다는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정나미 떨어지는 소리 같겠지만
인본주의는 곧 마귀의 일입니다.(마16:23)
우리의 인지상정으로 나오는 모든 생각들이
악하다고 보시면 딱 맞습니다.(마15:19)
제우스님이 그 아이들을 생각하며 아픈 마음으로 눈물 흘리는 것과
그 아이들의 죽음 앞에서 전능하시면서도
님의 간절한 바램과 그 수많은 기독교인들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침묵하는 냉정하기 짝이 없는 하나님이 비교가 되는군요.
저 역시
세월호로 인한 인간적인 연민과
심적 고통은 누구 못지 않았습니다.
제게도 또래의 아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아 홍수 때에 8명 외에 모두 물로 멸망한 그들에 대해서는
그저 관념적으로 생각할 뿐입니다.
왜냐면 그 속에 내 가족이나 내 친척들이나
나의 가까운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근래 나이지리아의 납치당한 수백명의 여학생들의 생사에 대해
님은 세월호 만큼은 마음이 아프지 않을 겁니다.
왜냐면 님으로부터 멀리 있는 일이기에 그렇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은 모두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는 존재며
자기 세계 밖에 모릅니다.
하나님을 말하고 예수를 말하고
성경을 이야기 한다 하여도
인간들은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요8:19)
저는 이번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한국의 소위 기독교인이란
사람들이 인본주의적인 사고 방식을 갖고 있는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그런 기독교인들과 님이 생각하고
지금까지 섬겨온 그 하나님은
성경에 계시된 그 분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단지 님이 그럴 거라고 상상한
자기가 만든 하나님일 뿐입니다.
왜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하냐면
님의 글 속에 나타난 님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다르기 때문입니다.(고전2:16)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과 그를 믿은 유대인들과의 대화를 잘 읽어보시면
그 대화가 얼마나 동문서답인지 아실 겁니다.
한 분은 위로부터 났으며
나머지 유대인(인간)들은 모두 아래에서 났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온전한 소통이 있을 수가 없는 관계입니다.
하늘에서 오신 분은 진리를 말하고
땅에서 난 자들은 거짓된 욕심을 행할 뿐입니다.
유대인들이 스스로 철썩 같이 믿고
있던 자기들의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
예수님은 “너희 아비는 마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님이 말씀하시는 “뱀(마귀)의 후손”이라는 것이죠.
그 당시의 유대인과 지금의 우리가 다르지 않습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떨어지지 않습니다.(마10:29)
세월호를 하나님이 모르시지 않습니다.
님이 하나님을 모를 뿐입니다.
창세전 언약과 계획 속에
하나님은 이 하늘과 땅을 이미 심판하실 것을 전제하고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를 염두해 두고
이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처음 창조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새로운 세계가 있습니다.
이 땅은 반드시 불로서 심판하십니다.
왜냐면 그 분의 아들까지 죽인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죄와 마귀를 일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분은 창조주십니다.
우리는 피조물일 뿐입니다.
토기장이 앞에 우리는 그릇일 뿐입니다.
세월호 안에는 기도하며 죽어간
신실한 믿음의 아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 저주 받은 땅을 떠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저주의 땅을 떠나
영원한 복된 나라에 일찍 들어가는 것이
성도의 소망이 아닌가요?
그리고
그 세월호 안에는 대다수가 아마도
인간이 왜 죽는지도 모르면서 살다가
맨날 부모로부터 “공부해라”는 말만 듣다가
졸지에 “죽음”이라는 믿지 못할 현실을 맞이한
많은 아이들이 있을 겁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면서
우리가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역시 “죽음”을 향해 하루 하루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저들보다 의롭기 때문이
이 땅에서 하루 더 살아 있는 게 아닙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이 땅을 떠나는 것입니다.
“이 땅”은 불사르기 위해 잠시 간수해 두신 것일 뿐입니다.(벧후3:7)
님은 왜 그렇게 이 땅에서의 목숨에 전전긍긍하십니까?
하나님을 그저 이 땅에서의 목숨을 지켜주는
그런 분으로 생각하십니까?
저와 님이 세월호 안에서 죽은 이들과 같이
지금 당장이라도 죽어야할 존재임을 모르십니까?
님의 마지막 글에
“아무리 천한 자의 생명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사랑의 하나님” 이라 하셨는데
그런 하나님은 성경에 없습니다.
그건 인본주의가 만든 사람을 위한 하나님이겠죠.
모든 종교에서 인간들이 상상하여 만든 신의 모습일 뿐입니다.
그리고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도 성경에 없습니다.
찾아보십시오.
오히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니라’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너희는 땅의 티끌 같은 존재다.’
이런 말씀들이 있을 뿐입니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 마음을 낮추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신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빌2:5~7)
그 분 앞에서
마땅히 심판 받아 죽어야할
자신의 죄인됨을 보시기 바랍니다.
할 말이 많지만
글 속에 모두 담기가 힘들군요.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긍휼하신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 절규에 침묵하신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의 침묵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는
십자가를 통하여서만 알려주십니다.
노아 홍수 때는 전 인류가 물로 심판을 받는데
노아 가정 한 가정만 방주에 탑니다.
그리고 일주일전에 문은 닫혔습니다.
이 동일한 말씀으로 이 세상을 불사르기 위하여
보전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으로 세월호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