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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목사님
성경구절에..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위 말씀을 그대로 해석하면 우리가 열심히 성령을 따라가면 육체를 이길수 있다고 하는 일반적인 해석이 되는데..
이러한 구절들을 어떻게 봐야 예수그리즈도가 중심이 되는 옳바른 해석이 될지요?
옳바른 내용을 알고 싶습니다
분명히 그리스도의 피가 중심이 되려면 내가 행하는 것이 아니리 예수 님의 피의 능력으로 육체로는 도저히 할수 없는 것을 이루게 하는 해석이 되어야하는데.....위와 같은 구절이 많은 부분에서는 어떻게 봐야하는지요...그리고 그리스도 피가 중심이 된다고 하면서 정작 어떤 성경구절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만이 할수 있다고 하다가 어떤 부분에서는 꼭 사람이 노력이 가해져야 복을 받는것처럼 성경구절이 기록되어졌을까요?
서울에서 부끄러운 성도가....질문드립니다
목사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아멘!!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제가 그냥 몇 마디
제 경험으로 비추어 말씀드리면...
위에 말씀에 아멘 하고도..
하나님이 이루신다고 했는데도
또 내가 자꾸 뭔가 하려고 하는 게 인간입니다.
못 말립니다.
성도님이
나름 성령을 따라 행하려고
(자신이) 노력하는 순간부터...
육체의 열매가 맺히기 시작할 겁니다..(제 경험상)
인간은 본성상
자신이 뭔가를 하지 않으면 늘 불안하고
마음이 안 놓입니다.
그게 정말 믿음 없음입니다.
지독하게 믿음 없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큼도)
그래서 무슨 행위로 자꾸
자신의 믿음 없음의 불안함을 지우고...
믿음 있음을 자기 행위로 확인하려 합니다.
그렇게 노력하다가
만신창이로 절망하고 좌절하여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보잘것없고
무능한 존재인지를 깨달으며
자신이 얼마나 가망없는
죄인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십자가를 보면 깨달을 때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긍휼과 용서 외에는
내게 아무 소망이 없음을 알고
죽은 자와 같이
내 모든 힘을 내려 놓을 때
(그러한 자리로 성령께서 몰고 가심)
그제서야 내게
성령께서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잠시..^^
성령의 열매는
성령께서 맺으시는 열매입니다.
육체의 열매는 ...
이건 말 안해도
우리가 언제나 맺고 있는거구요.
성경구절과
목사님의 해석한 말씀을
꼼꼼히 무슨 뜻인지 잘 새겨보세요..
마지막에 보면
성령을 따라 행한다는 것은
자기의 가능성을 믿지 않고
전적으로 예수님만을 믿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머리로만
이해가 아니라...
온 몸과 마음으로
아멘이 되시길 ....
님의 질문처럼 성경을 읽어보면 그렇게 보이는 부분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말씀도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이루어지게 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갈라디아서의 이 말씀은 에베소서 설교시작하기 전에 갈라디아서를 다루었던 본문입니다.
전체 설교원고는 그곳에서 찾아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님의 질문에 해당되는 부분의 일부를 옮겨놓습니다.
읽어보시고 다시 이야기 하도록 하지요!
그러면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과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언약의 책이고 하나님께서 자기의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내신다는 것이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예수님께 성령이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주셨습니다(요3:34). 그 결과 예수님은 한 번도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아버지의 이름과 그 영광만을 위하여 일하신 것입니다. 단 한번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안 되는지에 대한 간구를 하셨지만 그러나 결국은 내 뜻대로 하지 말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한다고 하시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내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여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이제 아버지로부터 성령을 받아 성령을 부어주시는 분이 되셨습니다(행2:33). 예수님께서 부어주시는 성령을 받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요한복음 16:8-15절을 봅니다. “봉독” 죄와 의와 심판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책망을 받게 됩니다. 성령이 임하면 진리의 영이시기에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고 그 성령은 스스로 말씀하지 아니하시며 오직 들은 것을 말씀하시고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성령이 임하여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는 반드시 누구의 영광을 나타내게 됩니까?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이것이 또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따라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아버지께서 성령을 예수님께 한량없이 부어주셔서 예수님의 뜻대로 사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서 십자가에 죽기 까기 복종하게 하시는 길로 가신 것처럼 오늘 자기 백성들에 성령을 부어주시면 이제는 예수님과 함께 연합되어 함께 죽고 함께 살고 함께 하늘에 앉혀진 묵시적인 존재가 되었기에 이런 사람들에게는 이제 자기 이름의 영광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만 드러내는 존재가 됩니다. 그러나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인간은 계속하여 자기 이름의 영광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항상 육체의 소욕보다 성령의 소욕이 더 강하고 영원하시기에 자기 백성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자기 영광인 아들의 이름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 과정을 고난 또는 환난이라고 합니다.
고린도후서 1:8-9절을 봅니다.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바울 사도가 예수님을 만났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바울이지만 그 속에서 자기를 의지하려고 하는 육체의 욕심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환난을 주시는데 어느 정도로 주시는 것입니까?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사형선고를 받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이 말은 이제 나는 죽었다는 말이 날마다 나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는다는 말이 다만 금욕적인 생활을 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령을 따라 행하게 하시는 것이 예수님에게서, 바울에게서 이런 모습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결과는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즉 자기의 일체의 가능성과 행위를 의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에는 반드시 자기 이름의 영광이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는 것이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말씀을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모습입니다.
갈라디아서 5:17-18절입니다. “봉독”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서로 충돌이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령의 소욕은 예수님을 믿게 만드는 일인데 육체의 소욕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진 인간이 자기 자원으로만 살아가는 죄악의 근원된 모습이 우리의 살과 뼈에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따라 행한다는 것은 자기의 가능성을 믿지 않고 전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들이기에 율법 아래 있지 않는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