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 내일 저녁에 윈도우 철거할거야, 다들 준비해줘~"
치프(디스플레이어 사이에 대표를 호칭하는 말) 가 당부하며 사무실을 나간다
디스플레이어 3년차인 나는
익숙해질 만도 했지만 여전히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씁쓸한 맘이 든다
얼마나 애써서 만든 작품들인데 겨우 2주만에 철거라니,,
기다리고 있는 데코 작업들이 줄줄이니 어쩔수 없지만
밤 세워가며 고생고생해서 만든 것들을 다시 내손으로
순식간에 무너뜨리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고 허무한 일이다
이튿날 저녁에 작업이 시작되었다
마네킹 옷들을 벗기고, 악세사리며 소품들을 하나씩 걷어낸다
좀 더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을 주려고
졸음을 참아가며 연구해 꾸몄던 커튼 한자락의 고상한 자태도
함께 철거작업을 도우러 나온 인테리어 기사님들의 거친 손끝에서
마치 뭐 이리 너저분한 천조각들이 많나 싶은 표정과 함께
가차없이 바닥으로 뜯겨져 내린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창고 한쪽으로 훌훌 말아서 던져지면
지난 보름간의 화려한 날들은 먼지를 머금으며 막을 내리는 것이다
서너평 남짓한 공간 디자인을 하기 위해 시안 작업만 대여섯번을 거치고
허락이 떨어지면 그날부터 전시 용품들을 만들기 위해
종종 걸음으로 소품골목의 좁고 긴 사이사이를 누볐다
김밥으로 끼니를 떼우기 일쑤고 팔이 떨어질만큼 무겁게
양손 가득 주문한 물건들을 실어 나를때는
요번 일만 끝나면 이짓 그만해야지 싶다가도
쇼윈도에 근사한 작품으로 그동안의 수고가 완성되어 오픈될 때는
언제 그런 맘이었나 싶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쇼윈도 전시물에 매료되어 눈길을 떼지 못할 때,
그리고 상품 반응을 살피느라 윈도우 근처에서 서성거리면
간혹 들리는 칭찬 소리가 귓가에 맴돌 때
나는 속으로 환호하며 안심했다
잘하고 있는거야!
해낼수 있을거야!
라고,,,
# 2
작업 감각이 어느 정도 능숙해질 쯤 독립해서 일을 시작했다
어차피 함께 할 디스플레이어들은 모두 프리랜서여서
일만 잡히면 연락해 작업을 하는 것이니 문제 될 건 없었다
이 바닥에도 실력보단 스팩으로 밀어부치는 골리앗 회사들이 판을 친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굳이 독립까지 할 필요 있냐고 지인들은 걱정들을 했지만
난 나만의 크고 깊은 우물이 갖고 싶었다
터지지 않고 언제든 물을 길어 올릴 근사한 웅덩이 하나 쯤 갖고 싶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 남으면 강한거 아닌가,,,
그게 내가 되지 말란 법 없잖은가 말이다!!!
디스플레이는 대부분 매장 문을 닫은 후 밤에 시작해 새벽에 끝난다
그러니 늘 잠이 부족했지만
낮에는 일을 잡기위해 영업도 해야 하고
프리랜서로 할 수 있는 다른 일까지 하고 있었기에 정신조차 멍~할때가 많았으나
내 삶의 푸르른 청사진을 꿈꾸며 참고 또 참았다
그렇게 정말 두 주먹 불끈쥐고 미친듯이 살던 어느 날,
내 인생에 잊지 못할 사건이 터졌다
거래처가 있던 삼풍 백화점이 무너진 것이다
4층에 있는 매장에 디스플레이를 해주고
남은 잔금을 받으러 가기로 했는데,,,
백화점이 무너진게 오후 6시경이었고 나는 5시에 약속이 되어 있었다
압구정동에서 먼저 일을 보고 가야했는데
늦어지는 바람에 전화를 걸어 내일 가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그 후 30여분 뒤에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한동안 놀란 가슴을 진정 시키기 어려웠다
살았다는 안도감보다 사는게 뭔가 싶은 서늘함이 밀려들었다
후들거리는 몸을 질질끌다시피 해서 집에 돌아와 펑펑 울었다
서너평짜리 디스플레이 공간이 무너지는 것도 씁쓸해 하던 나인데,,
그렇게 커다란 백화점이 장난감처럼
순식간에 무너져 버리는 것이 인생이구나 싶었다
신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관심도 없던 시절이지만
다시 돌아간 바쁜 나날 속에서도 맘 어디에선가,,,
나는 왜 그 현장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일까 라는 의문이
문득 문득 들기도 했다
그 후로 내게 찾아 온 변화 중 하나는
보기 좋은 것, 아름다운 것, 근사한 것들이라도
언제든 물거품처럼 사라질수 있다는 것에 대해
더 이상 씁쓸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웬지 큰 미련이 없어져 버렸다
그렇다고 세상살이에 대해 초월할 만한 정도는 아니지만
뭔가 달라진 것 만은 확실했다
# 3
이쯤되면
그런데 왜 글제가 "삼사일생" 이냐 궁금하신 분들이 계실것이다
형제가 1남 5녀다
엄마는 첫째로 오빠를 낳고 이후로 또 아들을 낳고 싶어 했으나
연이어 딸만 낳았다
엄마는 시어머니, 즉 친할머니의 구박이 엄청 심했다고 들었다
나를 임신하고 할머니는 딸 일거 같으니 병원에 가서
낙태를 하라고 강하게 명령하셨단다
마지못해 엄마는 같은 처지의 옆집 친구와 병원엘 갔고,
하지만 아무래도 뱃속 움직임이 이전과 너무 다름을 느껴
아들임을 확신했단다
그래서 친구를 먼저 수술실로 들여보내고
자신은 화장실에 가겠다며 줄행랑을 쳐 집으로 왔다고 했다
이것이 내가 첫번째 죽음에서 돌아온 사건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생김새와 풍채가
" 아들인듯 아들아닌 아들같은" 본인이 나왔다
할머니는 너무 실망해서 갓 태어난 나를
광목천에 둘둘 말아 아랫목에 그냥 던져 놓고
산모가 있으니 아궁이 불을 잔뜩 피웠는데
얼마나 뜨겁게 불을 지폈던지 내 등이 장판에 들러붙어
살이 다 타고 뼈가 녹아 내릴정도 였단다
아버지가 부랴부랴 병원에 데려갔지만 죽을 거라는 의사 답변만 들었다
의사는 엄청 화를 내더란다
어떻게 갓 태어난 아기에게 이렇게 할 수 있느냐고
상태가 심각해 이틀도 못가 죽으니 준비를 하라고 했다는데,,,
나의 마흔 세번째 생일이 돌아오고 있다
이렇게 두번째 죽음도 면한 것이다
당시에 의사가 명이 긴 아이인 것 같다며 잘 키우라고 했단다
그 후로 지금까지 등의 상처 때문에
남들은 모르는 눈물겨운 고생을 감당해야 했지만
이젠 정말 다 괜찮다^^
# 4
죽음에서 세번 돌아왔다는 말을 농담처럼 했다
허나, 어찌 세번 뿐이겠는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찰나에도 그 분의 허락이 아니라면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사는 하루하루가
모두 죽어 있는 날들 이었다는 것 역시 깨닫게 하셨다
말씀에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롬 1:19) 하셨는데
나도 분명 하나님에 대해 의식을 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마흔이 가까워서야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걸 보면
세상 만물과 일상의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셨음에도
교만함이라는 두꺼운 비늘이 가려져
생수의 근원 되시는 주님을 무시하고 싶어했고
스스로 터진 웅덩이에 물을 가두고 싶어했던 것임을 고백하련다
이런 나를 오랜 시간 기다리시면서
진정한 살아남(生) 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신 것을
감히 세치 혀로 찬양할수 있을까,,마는
그래도 감사드리고 싶다
주님,
어느 것 하나 주님 은혜 아닌 것이 있겠습니까?
출애굽 하도록 끊임없이 흔들어 주셔서,
사람 믿는거 아니라고 배신 당하게 해주셔서
땅에 의미두지 말라고 지진,기근 ,전쟁으로 보여주셔서
우상숭배 못하도록 돈도 명예도 없도록 하셔서
수에 칠 가치조차 없는 존재라고 말씀해 주심으로
내가 흙임을 알게 해 주셔서,,,
십자가 바라보도록 눈과 귀 열어주셔서,,,
그리고 매일 자기를 부인하고 죽는게 주와 함께 사는 것임을 알게 하셔서,,,
고맙습니다!!!
할렐루야
위의 글은 라이브 처치의 황영경집사 글이고요
다음에 붙이는 글은 늘푸른 교회 전지은 집사의 간증 중 일부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삼풍백화점 붕괴사고)
그러나 감사도 잠시뿐 나는 여전히 달라진 것 없이 세상에 파묻혀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에 어머니를 뵙기 위해 나왔을 때 서울 서초동에 있는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내가 한국에 나오면 꼭 가보는 곳이 서울 강남 압구정에 있는 명품관 갤러리와 무너져버린 서초동의 삼풍백화점 이었다. 이 두 곳은 세계의 유명브랜드와 유명 보석들을 판매하고 있던 곳으로 내가 빼놓지 않고 쇼핑을 하던 곳이었다.
그날은 삼풍백화점에서 특별한 세계의 진귀한 다이아몬드 보석 전을 열고 있다고 하여 가보려고 기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때 시각이 네 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내가 갈 준비를 거의 마치고 있을 즈음 기사가 급히 들어왔다 그리고 하는 말이 어머니가 갑자기 편찮으셔서 급히 병원에 모시고 가야하는데 백화점에는 내일 가시면 안 되냐며 몹시 미안해하며 부탁을 했다. 우리 집에 들어온 지 오년이 넘는 동안 평소에 성실하고 개인적인 일로 일찍 퇴근한 적이 없는 기사의 부탁이라 들여보내고 집에서 쉬고 있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갔던 김 기사에게서 흥분된 목소리의 전화를 받았다. 기사의 말이 ‘회장님 빨리 TV를 켜보십시오. 지금 삼풍백화점이 무너져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습니다. 그 시간대가 예정대로라면 회장님이 쇼핑하고 계실 시간인데 정말 큰일 날 뻔 하셨습니다.’ 라고 말했다. 나는 기사와의 전화를 끊고 급히 TV를 켰는데 백화점은 마치 전쟁 중 폭격을 맞은 듯 처참하게 무너져 있었다.
1995년6월29일에 발생한 이 사고로 인해 오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었다. 백화점이 무너져 내린 시각이 오후 5시 59분인데 예정대로라면 나는 이 시간에 다이아몬드 보석전이 열리는 층에서 보석 감상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을 시간이었다. 나는 TV를 보면서 몸에 소름이 돋았고.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 같은 전율이 느껴졌다. 김 기사가 우리 집에 들어 온 오년이 넘는 동안 개인적인 일로 근무 중에 퇴근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다른 날도 아닌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그날 그 시간에 기사의 어머니가 아파 일찍 들어가는 바람에 백화점에 가지 않아 나는 무사했다. 나는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에 열심히 나가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