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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설교를 작년부터 거의 매 주 쉬지 않고 들어 온 성도입니다
십자가 복음을 가감없이 전해 주시는 목사님께 늘 마음으로 감사하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가
이렇게 처음으로 용기를 내 보았습니다
몇가지 궁금했던 사항을 질문하려고 해요
첫번째, 제가 다니는 교회도 목사님이 복음적이시라 상당부분 목사님의 설교말씀이 많이 공감이 되는데요
상급에 있어서는 유독 차이를 보이십니다
말씀에는 그리스도인의 상급과 면류관에 대해 나오는데 목사님께서는 계시록 4장 10절 말씀을 인용하시더라고요
면류관은 이십 사 장로들이 주님께 던져 주님께만 영광을 올려드린다고 하지만 상급은 다르지 않습니까?
말라기 3장 16절에도 주님께서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기념책에 기록하신다고 하셨고요
고린도전서 3장에도 공력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요
고리도전서 9장24-27절까지에도 상 받기를 위해서 바울 사도께서 달음질 하신다고 하고
계시록 22장12절에 주님께서 상이 있는데 일한 대로 갚아 주신다고 하셨는데요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목사님...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두번째, 에베소서 1장 13-14절에 나오는 성령의 인을 짐승의 인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인친다는 것이 소유권이 이전되는 것으로 성령의 인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이라고 배웠습니다
세번째, 캘빈의 5대 교리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는 어떤 부분에 작용한다고 보면될까요?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은 사건도 인간의 자유의지때문에 발생한 일이라 하구요,
바울을 따르다가 세상이 좋아 간 사람들도 자유의지로 가버렸는데요 하나님은 인격이시라 사람의 선택을 이길 수 없다(?)
고 한다면 알미니안에 가까운 주장이 아닐까요?
두서없이 여쭈어 죄송합니다만 목사님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 다른 질문이 또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여정에는 일방적인 주님의 은혜가 작용하는데요
' 성령께서 유기 하신다는 것 '은 무슨 뜻인지요...?
유기란 버려두는 것을 말하지요!
사실 모든 아담의 후손들을 죄로 인하여 유기된 자들입니다.
그러나 창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한 자들은 버려두지 않으시고 택하여 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택하시지 않으면 다 유기된 자들입니다.
로마서 1장에 보시면 내어 버려 두셨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내어버려 두신 상태는 죄 아래 살면서 죄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귀하의 질문은 믿는 자가 중도에 탈락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구약이나 신약에 그런 인물들이 나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싫어하시고 좋아하시는지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은 역할입니다.
그 사람의 선택과 유기가 목적이 아니라 그런 선택과 유기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어떤 그릇은 진노의 그릇으로 어떤 그릇은 긍휼의 그릇으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나를 중심으로 보면 도저히 풀리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선택과 유기로 보시면 됩니다.
감사드립니다 교리에 대해서 어떤 분과 얘기를 나누다가 모르는 부분이 있어서 목사님께 여쭈었습니다
명쾌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목사님 또 한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빌2:6-8)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에서 사람의 모양이라 함은 어떤 모양입니까?
(롬8:3)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에서 죄 있는 육신의 모양과 비슷한 의미인가요?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하나님 아버지께만 순종하셨는데 그럼 예수님은 신성은 다 비우고 오셨다고 봐도 될까요?
신성을 비우고 오셨다면 베푸신 기적은 성령의 역사로 생각하면 맞습니까?
답변을 기대하겠습니다 목사님
바쁘실텐데 천천히 답해주셔도 됩니다
감사드립니다
조직신학적인 질문을 하시군요!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다는 말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사람으로 오셨다는 말입니다.
사람으로 오셨지만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죄를 그에게 정하신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죄인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대신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기적은 성령의 역사로 보시면 됩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목사님 예배를 드리면서 성도는 어디에 촛점을 두어야 하는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율법적으로 예배를 드려서가 아니라 성도라면 다른 일보다 예배에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하겠죠
그러면 만사를 제치고 와서 주님께 신령과 진리로 예배를 드린다면 주님께서 받으셔야 하는데 다 그렇진 않지 않습니까?
(롬12:1,2)처럼 삶을 예배로 본다면 의미가 달라지겠지만요
저희 교회 목사님께서는 예배속에서 약속을 발견해야한다고 하시고 예배를 중요시 여기십니다
예배 잘 드리면 재앙이 떠나가고 신령한 복이 임한다고요 물론 그런 목적만은 아니겠지만...
과연 성도는 어떤 맘으로 예배를 준비하고 아이들에겐 예배에대해 어떻게 알려줘야 할까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반갑습니다.
먼저 이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어느 휴대폰 광고입니다.
어느 가정에 가족이 집에 있고 아버지가 초인종을 누릅니다.
아무도 빨리 나가서 문을 열어주는 자가 없이 미적거립니다.
그런데 택배가 왔다는 말에는 가족 모두 빠름, 빠름, 빠름으로 달려가는 서글픈 이 시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오늘 교회에 다닌다는 사람들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를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관심이 없고 하나님이 들고 오시는 선물만 생각한다면 이것이 교회일까요?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셨는데
이 예수님에 대하여 관심이 없고 예수 믿는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에 따라 세상에서 복을 받고 천국에서도 상이 달라진다고 하면
저는 그런 곳을 세상이라고 합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성경에 상과 면류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상과 면류관이라는 것이 세상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상과 면류관일까요?
창세기 15:1절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방패와 상급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상이라는 말입니다.
귀하가 질문한 말라기 3장의 바로 앞 13절부터 보시면 하나님을 말로 대적하는 자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악을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악을 행하는 자들이 세상에서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문제는 욥기서와 시편 37, 73편과 하박국서를 보면 잘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세상에서 이런 말을 하지 않고 여호와께서 다 알고 계시며 심판하실 것을 믿는 자들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며 이들을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는 것이 기념 책에 기록하신다는 말씀인데 여기서 상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의 공력도 두 가지로 구별됩니다. 하나는 불에 타는 것과 하나는 불에 타지 않는 것입니다. 불에 타는 것은 사람들의 공로사상에 의하여 나온 것들은 다 불에 타서 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불에 타서 사라지지 않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나온 것만 불에 타지 않는 것입니다. 은혜로 된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일체의 자기 행위의 자랑이 나오지 않습니다. 바울사도가 고린도전서 15:10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어떤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지만 내가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이렇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9장의 달음질도 무엇을 향한 달음질인지 잘 보시기 바랍니다. 그 상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바로 앞의 23절을 보면 복음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복음에 참여되는 것이 상이라는 말입니다.
빌립보서 3:11~14절입니다.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바울이 예수님께 잡힌 것입니다. 그 잡힌바 된 것을 잡으려고 한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바울을 잡아서 무엇을 하시려고 잡으신 것입니까?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많이 하고 잘했다고 다른 상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 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상이란 영원한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 상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면류관은 세 가지가 나옵니다.
의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이런 면류관이 모자에 쓰는 관일까요?
의와 생명과 영광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는 것이 면류관입니다.
칼빈도 기독교 강요에서 분명히 상은 영원한 생명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값없이 수고하는 그 자체를 상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일한대로 갚아 주신다고 하신 말씀도
그 일이 무엇인지 상지 무엇인지 위의 말씀에서 다 언급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성령이 인친 증거는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는 것이 성령의 인친 증거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인침은 육체의 어떤 표가 아니라 성령이 임하여 자신이 전적으로 죄인임을 알고 오직 은혜로만 의롭게 된다는 것이 믿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짐승 곧 적그리스도의 인을 받은 자는 결코 이런 믿음이 나올 수가 없는 것이지요!
세 번째, 아담과 하와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 한 이후에는 죄와 사망이 왕 노릇하는 가운데 사는 자와 의와 생명이 왕 노릇하는 가운데 사는 것으로 구별이 됩니다. 그 안에서 각자가 자유의지라고 하면서 살겠지만 그러나 누가 권세자로 있느냐로 보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