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수 906
2012.12
27
주일낮설교 이전자료에 누가복음 22;1-23 유월절과 새 언약 듣기와 다운로드가 안되네요.
듣기와 다운로드가 되도록 부탁 드립니다.
새해에도 주님 은혜 안에서 영원한 복을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주일낮설교 이전자료에 누가복음 22;1-23 유월절과 새 언약 듣기와 다운로드가 안되네요.
듣기와 다운로드가 되도록 부탁 드립니다.
새해에도 주님 은혜 안에서 영원한 복을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다운로드받기=>마우스우측클릭하세요
아니면 위 플레이어 마우스대고 우측 클릭하시면 다른이름으로 저장하시면 됩니다
http://evergreen17.80port.net/42nuk/ju080427.MP3
누가복음 22:1-23 유월절과 새 언약 2008. 4. 27
1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가까우매 2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책으로 죽일꼬 연구하니 이는 저희가 백성을 두려워함이더라 3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4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줄 방책을 의논하매 5 저희가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6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 7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 8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9 여짜오되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0 이르시되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의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11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 12 그리하면 저가 자리를 베푼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예비하라 하신대 13 저희가 나가 그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 14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15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1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7 이에 잔을 받으사 사례하시고 가라사대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1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9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21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위에 있도다 22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23 저희가 서로 묻되 우리 중에서 이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일까 하더라
우리가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는 목표가 무엇입니까? 내가 사는 것은 오직 이것을 위하여 산다는 그런 뚜렷한 목표가 있습니까? 밥을 먹는 것도 물을 마시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오직 그 목표를 위한다는 그런 목표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표가 그때그때마다 다릅니다. 아이 때 다르고 청년 때에 다릅니다. 늙어서는 또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목표를 설정하였지만 계속하여 수정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단 한 번도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잊어버리신 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4장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우물가에 앉으셨고 제자들을 먹을 것을 구하러 마을로 갔습니다. 그때 한 여인이 물 길러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과 대화하시면서 영생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에 제자들이 음식을 구하여 잡수시라고 할 때에 예수님은 내 먹을 양식은 따로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양식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요4:34).
지난주에도 보았습니다만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율법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도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 다 이루어진다고 하셨습니다. 그 사건이 바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이 볼 때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실패의 현장이 십자가인데 예수님은 그곳에서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다 이루었는지 오늘 본문을 통하여 또다시 확인하려고 합니다.
우선 21:37-38절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낮이면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이면 감람원이라는 산에서 쉬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갔습니다. 갈릴리에서부터 주목받은 예수님이 드디어 예루살렘에서 말씀을 증거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22:1-2절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지금 자기들의 기득권을 송두리째 빼앗길 것으로 염려한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먹고사는 근거가 되는 성전을 파괴해 버리라는 예수님을 가만히 둘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방책을 세우는데 뾰족한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공개적인 장소에서 예수님을 체포하여 가면 많은 백성들이 가만히 있지 않고 데모를 일으킬 것입니다. 그래서 작전을 세운 것이 유월절을 지나서 처치하려고 하였습니다(마26:5).
그러나 바로 이때 예수님의 12제자중의 한 사람인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갔습니다. 22:3-6절을 봅니다. 사단이 가룟 유다에게 들어갑니다. 그러자 대 제사장들과 군관들에게 예수님을 넘겨줄 방책을 의논합니다. 저희가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였습니다.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예수님을 죽이는 일을 누가 기뻐하였습니까?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입니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팔아넘기면서 기뻐하는 것이 죄인 된 인간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넘겨주기 위하여 무리가 없을 때를 기다립니다.
22:7절입니다.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 것입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에 대하여 오늘 처음 듣는 분도 몇 분계시기에 좀 상세하게 말씀을 드려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삼대절기가 있습니다. 최고의 절기가 유월절입니다. 이 유월절을 기준으로 칠칠절과 초막절입니다. 유월절은 언제부터 지켰는가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에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다가 해방되던 그 해부터 유월절을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당시로 계산하면 무려 1천 4백년을 지켜온 전통입니다.
이 절기가 왜 중요한가 하면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유월절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바로 왕이 쉽게 내어놓지 않습니다. 그래서 열 가지 재앙이 내립니다. 자기들의 재산인 노예들, 그것도 400년을 넘게 부려먹은 종들을 쉽게 내어놓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거부할수록 재앙은 점점 더 심하여 가는 것입니다. 그 마지막 재앙이 장자의 죽음입니다. 사람의 장자만이 아니라 짐승의 처음 태어난 수컷도 죽임을 당하는 재앙입니다.
이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알려주었습니다. 그것은 일 년 된 수컷 중에서 흠 없는 어린 양을 취하여 잡으라는 것입니다. 그 피는 문인방과 문설주에 바르고 고기를 불에 구워서 먹으라는 것입니다. 먹을 때에 신발을 신고 띠를 띠고 지팡이를 잡은 채 급히 먹으라고 합니다. 그날 밤에 애굽에서 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날 밤 천사가 애굽 온 땅을 두루 다니며 처음 태어난 사람이나 처음 태어난 짐승의 수컷을 다 죽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 양의 피가 발린 집은 천사가 그냥 넘어갔기에 유월입니다. 넘어간다는 말입니다.
이 유월절이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어린 양의 피로 시작되는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이스라엘다우려면 이 어린 양의 피의 능력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이 어린 양의 능력이 아닌 말과 병거의 힘을 의지하면 그것은 오히려 망하게 되는 것이 이스라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유월절을 기점으로 달력도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기존의 달력이 3월 달이라면 이 유월절을 기점으로 첫 해로 삼은 것입니다. 우리가 광복 몇 주년 그렇게 하듯이 새로운 달력까지 만든 것이 유월절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잡히시는 절기가 유월절입니다.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하던 사람들도 이 절기를 피하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였을 때에 예수님을 체포하면 민란이 일어날까봐 두려워서 명절이 끝나고 잡아서 죽일 계획을 세웠지만 그러나 유월절에 예수님이 잡히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그렇게 이루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귀가 가룟 유다에게 들어가서 예수님을 팔려고 하는 것도 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룟 유다는 책임이 없는 것입니까? 우리는 흔히 이런 질문을 하면서 만사가 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나의 책임이 없다고 항변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인생이란 항변할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어떤 그릇을 빗든지 그것은 주인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가룟 유다는 진노의 그릇으로 쓰임을 받는데 그 특징은 드러납니다. 그 특징이란 예수님을 팔아넘긴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배반한 것이 예수님을 십자가로 몰아넣으면 예수님께서 무언가 기적적인 일을 이룰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하였다는 말도 하지만 그러나 성경은 도적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12:1-8절입니다. “봉독” 마리아가 향유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에 붓고 그 머리털로 발을 씻깁니다. 향유 냄새가 그 집에 가득하게 되었는데 이때 가룟 유다가 말하기를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이 낫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은 유다가 도적이라서 돈 궤를 맡고 거기 넣은 것을 훔쳐가기 위하여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임금이 되면 재무부 장관이라도 해서 더 챙길 텐데 십자가에서 죽는다는 이야기만 하시니 은 30십이라도 받고 팔아넘긴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바로 사단이 들어간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과 돈 사이에 어느 편을 사랑합니까? 그러므로 가룟 유다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디모데전서 6:7-10절입니다. “7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 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우리도 부 하려하기에 돈을 사랑합니다. 그 결과는 침륜과 멸망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자유로운 분이 계십니까? 우리가 다 예수님을 팔아먹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가룟 유다처럼 저주 받아 죽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인생이라고 여기시기 바랍니다. 인정하신다면, 오늘날 그런 저주를 받지 않고 자기 죄를 알고 예수님을 믿고 사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이며 기적인지를 아시겠습니까?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우리가 이러한 은혜를 입게 된 것입니까? 그것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인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향하여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에서 나온 유월절 밤에 오직 어린 양의 피가 발린 집만 죽음의 천사가 넘어간 것입니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선한지 악한지를 묻지 않습니다. 어떤 가문인지를 묻지 않습니다. 오직 어린 양의 피만 보고서 죽음의 천사가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정체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어린 양의 피의 능력을 증거 하기 위하여 부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들은 자기들의 의를 자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으로 나온 의가 아닌 새로운 의가 주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새 언약입니다.
7-20절입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이 함께 있습니다. 유월절에 급히 나오느라고 발효되지 않은 밀가루로 떡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그러므로 유월절에 쓴 나물과 누룩 없는 떡을 양 고기와 함께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룩 없는 떡을 먹는다고 해서 무교절인데 일주일간 누룩 없는 떡을 먹는 것입니다. 이 유월절을 준비하려면 장소가 있어야 합니다. 유월절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여들기에 장소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준비할 까요? 예수님께서 지시하십니다. 성에 들어가면 물동이를 들고 가는 사람의 뒤를 따라가라고 합니다. 그 집에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만찬을 행할 때에 예수님께서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그들은 몇 번의 유월절을 지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유월절을 최후의 만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유월절을 끝으로 다시는 제자들과 함께 먹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승천하시기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정적입니다. 이 유월절이 하늘나라에서 이루기까지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땅에서의 유월절의 완성이 아니라 하늘에서도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양의 혼인잔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유월절은 잔을 네 번 나눈다고 합니다. 출애굽기 6:6-7절을 봅니다. “봉독” 애굽의 무거운 짐에서 빼내고 고역에서 건지며 큰 재앙으로 구속하고 자기 백성 삼으시는 것입니다. 이 일을 예수님께서 자기 피로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유월절의 완성인 새 언약인 것입니다. 죄와 사망의 무거운 집에서 빼내고 그 고역에서 건지며 구속하시고 자기 백성 삼으시는 그 놀라운 은혜가 예수님의 피로 된 새 언약 안에 다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통째로 받고 사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자가 받는 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 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우신 그 언약을 의지하며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