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
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28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30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수태고지(受胎告知)를 하면서 은혜를 받은 자라고 합니다.
이 당시 처녀가 잉태하면 파혼 당할 뿐만 아니라 돌에 맞아 죽게 되는 신세입니다.
그런데 은혜를 입은 자라고 하면서 평안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은혜란 우리의 신세를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은혜라고 합니다.
우리는 나의 존재가 세상에서 보다 나아지는 것을 복이라고 여기고 은혜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처녀가 완전히 신세 망치는 현실인데도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제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면
그 사람의 신세는 이제 망쳐진 것입니다.
자기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살지 못하게 됩니다.
노아가 은혜를 입고서 한 일이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을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볼 때에 노아는 완전히 세상에서 망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은혜를 입었다는 것을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 통용되는 은혜란 세상에서 낯설지 않는 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나 노아처럼 이렇게 낯설게 다가오는 것을 성경에서 은혜라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은혜를 받고 살아갑니까?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상통에서 차단으로, 혼합에서 분리로 !
이런 낯설게 다가오는 은혜를 단 한번도 사모한 적이 없습니다.
아니, 사모하기는 커녕, 낯설음을 은혜로 여기질 않았습니다.
친숙한 자리에서 익숙한 자리에서 밀어내짐을 받을 때,
그것이 주님이 주시는 은혜임을 확신할 수 있는 신앙이 허락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