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부산에 박집사입니다.

사모하던 수련회를 다녀와서 든든한 은혜로 일상을 감사하게 살고 있습니다.

오늘 저의 둘째와 아파트 단지를 걸으며 나누던 이야기 중에 수련회 이후의 생각에 대해서 질문을 쏟아내며, 하나님의 진심이 무언지 모르겠다면서 자기의 생각이 혼란스럽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서 천국을 간다고 들어왔는데,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세전의 일방적인 선택으로 구별되었다면 내가 왜 교회를 가야하고,예수님을 영접하는 고백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그것(자기 구원의 확신)을 내가 어떻게 알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였습니다.

저의 둘째는 중3입니다.

저희 교회에서 듣는 설교들 속에서 제가 "오늘 설교는 이런 내용이 아니다. 성경은 이런 말을 우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 아니다."라는 잔소리들을 해대니 평소에는 아빠 삐질까봐 들어주는 딱 그 정도가 신앙에 대한 관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수련회를 다녀와서 이 녀석이 이전 보다 말씀에 진지한 마음이 드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아~왜 목사님이 초등학생들도 얼마든지 복음을 들을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는지 이해가 됩니다.

아이들도 전하는 자가 무엇을 전하느냐에 따라서 이렇게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기도 하는구나를 겪어보니 말씀 앞에 더욱 진지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아이의 질문에 뭐라 대답을 해줄까? 고민하다가 "준수야 우리가 라면을 끓일 때 냄비에 물을 붓고 불을 켜놓으면 물이 끓게 되잖아. 그런데 냄비 안의 물은 불에 의해서 끓여지는 결과로 나오는 한가지의 현상 일 뿐이지. 물이 어떤 역할을 한다고 해서 냄비에 불이 켜지고 안켜지고 하는게 아니란다. 우리는 하나님의 불같은 사랑으로 끓게 된는 결과가 나타는 현상으로 보여질 뿐이야. 불이 켜지게되면 자기부인의 고백도 나오게 되고, 죄인으로의 낮은자로 인식하게되고, 여러가지 인생의 과정을 통해서 예수님만이 나의 모든 것으로 고백되어지는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되어지는 것이란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완벽한 비유는 아니겠지만 아들 녀석이 먹는 걸 좋아하다보니 웃으면서 쉽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서 그 또한 감사했습니다.

그 이야기에 답하면서 스스로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진짜 내가 먼저 예수님을 믿었나? 예수님이 그럼 언제 무슨계기로 나를 믿게하셨나?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게 먼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오직 예수님의 긍휼밖에는 아무런 소망이 없기 때문에 다른 어떤 것도 그 진리를 바꿀 수는 없을 것같다라는 생각에 누군가의 대사처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것 같은... 난 이제 어쩔수 없다. 라는 맘이 진하게 맴돕니다.

때때로 찾아오는 삶의 압박들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예수님과의 누림의 교제 만으로도 숨 막히는 일상과 주변 사람들의 건강의 문제와 부모님들의 힘든 삶이나 순간순간 찾아오는 가정으로서의 책임감 등으로 부터 자유하려고 합니다.

뿐 만아니라 어려서 부터 해온 교회 생활이지만 현재의 답답한 마음으로 부터 "이래서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호흡이 되어달라"는 간절함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반대급부의 감사를 할 때도 있습니다.

어째튼 목사님 항상 건강 잘 살피시고, 기억 날때 마다 기도합니다.

약함 가운데서 강함이 되시는 우리주님을 바라보면서 다시 오실 예수님 뵙는 그 날까지 같이 예수님안에서 한 지체로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그런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께도. 예수님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