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장이자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율법학자) 에스라(7:6).


그는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을 마감하고 본국으로 귀환하게 되자 훼파된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착수한다.


성전(성벽) 재건사업에 딴지를 거는 방해 세력이 있었지만 에스라는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

그의 이같은 집념은 이방인에 의해 하나님의 성전이 파괴되고 그들에게 포로가 것은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지 못한 것에 대한 징계요 처벌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본국으로 돌아올 기회가 주어지자 예배와 신앙의 구심점을 성전(성벽) 재건과

율법 신앙 강화라는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또한 에스라는 종교개혁의 일환으로 이스라엘 공동체 내부에서 이방인과 통혼한 자들을 색출하여

강제 이혼을 명령하였다.

에스라의 사역은 마디로 말씀으로 돌아가자. 말씀대로 실천하자라고 정의할 있다.


이같은 에스라(느헤미야) 사역과 활동을 예수님의 관점에서 평가한다면 과연 긍정적으로 봐야

것인가 아니면 부정적으로 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1) 에스라는 눈에 보이는 건물로서의 성전(성벽) 가치를 두고 재건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보시고 하나도 위에 남지 않고 무너뜨려지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에 계시는 분이 아니며 진정한 성전은

예수님 자신이라는 점을 시사하셨던 것이죠.


2) 에스라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인과 통혼하는 것은 율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하여

하나님의 뜻에 입각하여 강제 이혼을 명령하였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방 창녀 라합의 구원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고 또한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갈

없다고 하는 이방 모압(23:3) 여인 룻의 혈통에서 예수그리스도가 탄생하는 것을 성경 역사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3) 에스라는 율법을 더욱 철저히 준행해야 두번 다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판단,

율법 중심의 신앙 강화에 역점을 두고 실천했습니다.

그런데 결과 예수님이 그토록 저주한 바리새파,사두개파가 시기에 형성되었다는 점입니다.


4) 에스라(느헤미야) 유대 멸망 이전에 하나님을 섬겼던 것보다 더욱 열심히, 더욱 철저하게 율법에 기준하여

실천하려 했던 종교개혁자요, 종교 부흥의 역군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은 때부터 400 동안 입을 굳게 다물고 침묵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소위 ‘신구약 중간기’(하나님의 침묵기간=암흑기).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전달하던 선지자 역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에스라(느헤미야) 활동과 사역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해야 하는지요?

1) 바벨론 포로 70 이후 본국으로 귀환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라는 측면(언약 관계)에서

가치를 두어야 하는지요?

('에스라'라는 이름의 뜻이 여호와가 도움이듯이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언약의 하나님이었다고 한다면

말은 없어진다. 인간 에스라의 배후에 보이지 않는 , 하나님이 하셨다는데 무슨 질문을 던지겠는가.)


2) 아니면 에스라의 '성전,율법,제사 중심의 신앙'과 '말씀의 생활화'는 성령을 받지 못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 인간적인 열심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