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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우목사
2018.05.01 10:15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신다는 뜻입니다.

이 본문의 최소 단락인 3장 전체만 천천히 읽어보시면 결코 사람의 행위로 공적을 쌓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많은 은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당이 생기는 것은 아직 어린 아이이며 육신에 속한 자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심는 이나 물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또 상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가 주의 일에 참여되는 것 자체가 이 역사 속에서 상이며

그 아버지의 나라에 참여하며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 상입니다.

그런데 다시 이 말씀을 가지고 서로 시기경쟁하듯이 상을 위하여 다투게 한다면

그것은 다시 육신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래의 설교원고는 2005년도에 한 것입니다.

지금 설교하라면 다시 해야 될 정도이지만 그래도 참고해서 한 번 보시고 미진하시면

다시 질문 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3:1-9 자라게 하시는 분 2005. 3. 20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4 어떤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1)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8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믿음이란 나의 결단이나 결심으로 무엇을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이란 이 세상의 지혜로 보면 어리석고 미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사람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고백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복음을 전하면서 조심한 것은 내 전도함이 사람의 지혜나 권하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되어지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전하는 자나 받는 자의 능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복음을 들은 고린도 교회에 어떤 문제가 생긴 것입니까? 고린도 지역의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편지한 것이 아니라 고린도지역에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은 자들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파당이 생긴 것입니다. 파당인 생긴 것은 나는 너와 다르다는 자기 자랑이 나오는 것입니다. 특히 성령의 은사들이 풍성하게 나타났는데 그러한 은사들을 가지고 나는 너보다 더 낫다는 자랑들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일하심과 그 은혜가 증거 되어야 할 교회에서 서로 잘났다고 자랑하니 시기와 분쟁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서 바울사도가 책망을 하는 것입니다.

 

3:1-3절을 봅니다. 신령한 자와 같이 대하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대하여야겠다고 합니다. 아직도 밥을 먹지 못하여 젖을 먹어야겠다고 합니다. 신령한 자는 밥을 먹고 어린아이는 젖을 먹는데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지금 어떤 상태라는 것입니까? 어린아이라서 아직 젖을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사도가 너희는 장성한 신자가 되라는 것입니까? 그렇지요! 왜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젖을 먹어야 하는가하는 책망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평소에 신령하여 밥을 먹는 정도의 수준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대부분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기본이고, 믿고 나서 신기한 능력들이 나타나는 것을 고급단계로 보는 것입니다. 방언을 말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큰 능력을 행하고 하면 그런 사람들은 대단히 수준이 높은 사람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얼마나 그러한 은사들이 풍성하였습니까? 방언이 있고, 통역이 있고, 병 고치는 은사가 있고, 예언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러한 은사들이 나타나는 것을 가지고 서로 자랑한 것입니다. 나는 너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은 것은 내가 능력 있는 베드로에게 바울에게 아볼로에게 배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서로 시기와 질투가 나오는 것입니다. 나는 개척한 바울 파다. 나는 교회를 부흥시킨 아볼로 파다는 자랑들이 나오고 시기와 분쟁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희가 아직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어찌 사람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람이란 육신에 속한 사람의 특성들이 그대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령한 자 즉 밥을 먹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히브리서 5:11-14절입니다. “1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12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13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젖을 먹는 자는 어린아이인데 이들은 무엇을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까?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중심주제가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는 유대인들, 즉 히브리인들이 예수님을 믿는데도 환난과 핍박이 계속되니 자기들이 무언가 부족한 것으로 여겨 자꾸만 구약의 율법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유대기독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얼마나 완전하고 완벽한지를 증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단한 식물을 먹는 사람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완벽성을 믿는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10:10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기초나 초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믿는 것을 자꾸만 초보적인 수준으로 이야기하고 고급적인 단계로 나아가는 것을 무슨 신비한 체험을 하고, 기적을 일으키는 쪽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역시 종교성이 그렇게 만듭니다만 그 배후에는 누가 역사하는 것입니까?

 

데살로니가 후서 2:9-11절을 봅니다. “9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1)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1)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진리의 사랑을 받지 못한 자들은 거짓 표적과 기적들을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이 대단한 능력인줄 알고 가면 갈수록 자기들은 더 신비하고 고급스런 신자인줄 착각하게 만들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멀어지게 만들어 버리고자 하는 것이 사단의 전술이며 전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가 부탁하는 것이 이어서 나오는 말씀에 있습니다. “13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14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5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감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처음부터 택하시고,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한 것이 없지 않습니까? 복음으로 부르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영광이 성도에게 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의 자람이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아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아들 안에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 다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이요, 하나님의 영광이요 하나님의 기쁨이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성경 한 곳을 더 봅니다.

 

골로새서 1:24-29절입니다. “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25 내가 교회 일군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4)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지금 바울사도가 교회를 위하여 수고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를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그 목표점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완전한 자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져 온 비밀인 그리스도입니다. 곧 영광의 소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아십니까? 그 십자가를 아십니까? 그렇다면 그 비밀의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싫어하고 미련하다고 거리끼는 것이 하나님의 비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고린도전서 1:30절에서 지혜롭고 의롭고 거룩한 것입니다. 이보다 더 완전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 안에서 완전한 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시기와 분쟁이 나올 수가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란 인간의 행위를 다 고발하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의가 부정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 드러나는 자리가 십자가의 자리인데 이 복음을 듣고서도 자기들이 서로 낫다고 시기와 분쟁이 일어나고 있으니 어린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말하면서도 나는 너보다 복음을 잘 알아듣는다는 식으로 자기 자랑이 역시 나올 수가 있습니다. 지난 주 수요일 한 형제가 방문을 하였습니다. 그 형제는 자기가 열심히 착하게 주님을 위하여 일하면 무언가 다른 사람보다 나아지고 세상에서 복을 받는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혀 그렇게 나타나지 않는 것 때문에 갈등을 하다가 저희 교회 홈페이지에서 설교를 듣고서 믿음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최고의 기쁨이 저의 설교를 듣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제가 잘 전하고 그 형제가 잘 알아들어서 그렇게 되었다면 서로가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무엇이 생기게 되겠습니까? 이장우파가 하나 생기는 것입니다.

 

4-7절을 봅니다.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라고 말하는 것은 육신에 속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너희를 보니 어찌 사람이 아니리요! 어찌 육신에 속한사람이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씨 뿌리는 자나 물주는 자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씨를 뿌렸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지만 그것은 주님께서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집을 지을 때 여러 가지 도구를 사용합니다. 도구는 왜 필요합니까? 집을 짓기 위하여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집을 다 짓고 나면 그 도구들에게 영광을 돌립니까? 그 집을 지은 사람에게 영광을 돌립니까? 지난주에 서머나 교회 헌당식에 가보았습니다. 어마 어마한 규모입니다. 그곳에서 망치나 톱이나 도끼에게 공로패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 건물을 지은 사람들에게 공로와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8-9절을 봅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의 밭이라고 합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의 밭인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집으로 세워져야하는 것입니다. 그 집이 세워지면 누가 영광을 받습니까? 그 집을 세우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구로 사용된 자들은 무엇입니까? 그 하나님의 영광에 쓰임 받았다는 것 자체가 영광인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이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용서를 입고 그 크신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도구로 사용되어 지는 것이 상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합니다. 감히 자신을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한 영광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집입니다. 저는 망치요 톱이요 대패인 것입니다. 그래서 많이 아프지요! 그러나 여러분도 누구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세워지면 또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쓰시는 것도 주님이시오, 그 도구들의 전하는 바를 믿게 되는 것도 주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도구가 아니라 자라게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 십자가 앞에서 자기 자랑의 입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동시에 거저 주시는 은혜의 영광을 찬미할 뿐입니다.


고린도전서 3:10-17 터와 집 2005. 4. 3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2)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린도 교회의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지금까지 보았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을 자기들이 잘 나서 그렇게 된 것인 양 자랑하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 파당이 생기고 시기와 분쟁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육신에 속한 자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신에 속하지 아니하고 신령한 자, 즉 영에 속한 자는 어떤 모습이 나오는 것입니까?

 

2:12절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신령한 자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아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이 은혜인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은 자기 자랑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증거 한 바울 사도가 누구든지 공력을 쌓아 가는데 남아 있으면 상을 받고, 남아있지 않으면 상을 받지 못한다는 말로 서로 서로 경쟁 하도록 만들겠습니까? 지금 시기와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책망하면서 또다시 시기와 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경쟁을 붙이기 위하여 공력을 따라 상이 다르다는 그런 말을 하였겠습니까? 결코 아니겠지요! 그런데 이 말씀을 어떻게 오해하는가 하면 인간의 공력에 따라 하늘에서 상급이 차이가 난다는 근거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천국과 지옥을 갔다 왔다는 간증을 하면서 천국은 지금 한창 건축 공사 중인데 그 재료가 지상에서 올라오는 것이랍니다. 어떤 집들은 이미 다 지어진 집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죽은 성도들은 집이 다 지어진 것이지요! 그런 집들을 보니 바울사도의 집은 너무나 크고 넓고 좋은 집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도 전도를 많이 한 사람의 집이 크고 좋은 집이라는 것입니다. 천국의 건축 재료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하면 전도를 하면 그 사람의 이름을 벽에 붙여서 넓혀간다는 것입니다. 어떤 재료는 계란 몇 개이기도 하였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목사님께 정성껏 드리는 것이 하늘에 재료가 되어서 집이 지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상에서 열심히 하면 하늘에서 좋은 집에서 살고 그렇지 아니하면 단독주택은커녕 합숙소에나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세상의 공력에 따라 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공력이 불타면 상을 받지 못한다고 말하기에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말씀입니까? 3:9절을 봅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밭이고 하나님의 집이 됩니까? 성도가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건축 재료란 인간의 땀과 수고와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임한 성도가 하나님의 집의 재료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2:20-22절을 봅니다.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우리가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하실 성전을 짓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터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터는 무엇입니까?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하고 사도들이 증거 한 예수 그리스도가 터가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10-11절입니다. 이 터를 바울사도가 닦아 두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기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 능력으로 터를 닦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터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터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터 위에 성도가 연결되어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터는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된 것처럼 그 위에 세워지는 집도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5:13,17,18절입니다. “13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17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18 여호와의 다스리심이 영원무궁하시도다 하였더라”

 

이스라엘 백성을 구속하시고 은혜로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즉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최종목표가 아니고 그렇게 구속하신 백성을 주의 처소로 삼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주의 처소는 사람의 손으로 세운 것이 아니라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성소란 가나안 땅도 아니고 구약의 성전도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언약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소요 하나님의 성전의 모퉁이 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건물 성전을 헐라고 하시면서 자기 몸이 성전 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의 모든 언약을 이루시고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 성령이 임한 자는 버림받은 모퉁이 돌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져서 하나님의 거하시는 처소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이 성전은 사람의 손으로 지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성전이 하나님이 거하실 거룩한 집이 되는 것입니다.

 

16-17절을 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 성전을 더럽히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떤 것이 더럽히는 것이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자기 피로 값 주고 세우신 교회를 인간의 야망이나 땀이나 피로 더럽히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이 임한 성전이라면 그 십자가의 피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인데 다른 것으로 자기를 치장하면 그것이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성전은 어떻게 하십니까?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셔서라도 자기의 거하실 처소를 깨끗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터 위에 집이 세워지는 것은 누가 하시는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가 거하실 처소를 만들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일에 부름을 입은 자들이 성도입니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터를 세웠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 하나님의 도구로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더 낫고 못났다는 비교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다 성전의 재료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따로 나의 재료를 마련해서 하나님의 집을 지어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집이 되는데 조심해서 세우라는 것입니다. 금이나 은이나 보석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은혜로 주어진 것들입니다. 이것이 영원한 것입니다. 풀이나 나무나 짚이란 자기에게서 나온 재료들입니다. 비교하고, 경쟁하고, 자기 자랑하기 위해서, 하는 것들은 다 불타 없어지는 것입니다. 주께서 세우시지 아니하신 것은 다 뽑혀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구원을 받습니다. 결국 구원이란 내 공력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상을 받고 해를 받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미 그 은혜에 참여되어진 것이 상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부터 상을 받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 상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각양 좋은 것들입니다. 그 은혜를 지금 맛보고 사는 사람들은 주님 오시는 그날에 그 은혜만 남게 되니 그것이 온전한 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고집과 종교적인 야망으로 상을 많이 받아보려고 자기의 땀과 열심을 쏟아 부었는데 주님 오시는 날에 다 불타서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해를 받는 모습이 됩니다. 그러나 그 불에 태워짐을 통하여 무엇을 남기시는 것입니까? 왜 하나님의 나라는 은혜로만 되는지를 확인 시키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돌아봅시다. 한국의 땅 부자 1%가 전국의 땅 45.3%를 차지하고 상위 10%의 부자들이 전국토의 72%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쟁 사회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서민들이 신분상승을 하려면 이미 땅 싸움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 교육시키는 것으로 승부를 겁니다. 그러나 그것도 안 되는 것이 이미 교육은 자본의 싸움이기에 따라잡기에 힘이 듭니다. 이런 세상에서 은혜가 마음에 들어올 틈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이런 경쟁사회 속에서 이겨야 하는데 교회오니 그 방법을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먼저 바치면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 성공 못해도 하늘에서는 호화저택에서 보란 듯이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바치기 경쟁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결과물이 오늘날 한국의 대형교회의 탄생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 세상을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모두 불태워버리십니다. 왜 불태워버리시는 것입니까. 인간의 몸에서 나오는 것들을 다 부정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영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똥을 누면 반드시 흙으로 덮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 진중에 다니시기에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말씀도 성경에 있습니까?

 

신명기 23:12-14절입니다. “12 너의 진 밖에 변소를 베풀고 그리로 나가되 13 너의 기구에 작은 삽을 더하여 밖에 나가서 대변을 통할 때에 그것으로 땅을 팔 것이요 몸을 돌이켜 그 배설물을 덮을찌니 14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구원하시고 적군을 네게 붙이시려고 네 진중에 행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진을 거룩히 하라 그리하면 네게서 불합한 것을 보시지 않으므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리라” 바로 앞의 구절에서 몽설한 자도 부정하니 진 밖에 나가서 씻고 하루를 있다가 들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사람의 땀도 하나님의 일에 흘리지 못하게 하십니다.

 

에스겔 44:17-18절입니다. “17 그들이 안 뜰 문에 들어올 때에나 안 뜰 문과 전 안에서 수종들 때에는 양털 옷을 입지 말고 가는 베 옷을 입을 것이니 18 가는베 관을 머리에 쓰며 가는베 바지를 입고 땀나게 하는 것으로 허리를 동이지 말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털로 된 속옷을 입지 못하게 하신 것은 땀을 흘리면 안 되기에 그렇습니다. 즉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에는 인간의 배설물인 정액, 땀, 똥들이 나오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더럽혀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솜씨를 발휘하지도 못하게 하십니다. 제단의 돌을 징으로 다듬지도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성막을 지을 때의 브살렐과 오홀리압의 솜씨는 하나님의 신이 충만히 임하여 된 것이기에 자기 자랑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자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지는 지, 아니면 자기의 명예와 영광과 욕망을 따라 세우는지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그 날에 모두 불을 태웁니다. 불에 타는지 안타는지 지금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불로 심판하실 그날에 모든 공력이 드러날 것입니다. 자기의 행한 일들이 다 드러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불로 태우셔서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만을 남기시는 것입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약1;17). 그러므로 모든 영광을 그리스도 말미암아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7-11절입니다. “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하고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고린도전서 3:18-23 하나님의 것 2005. 4. 10

 

18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바 ㄱ)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20 또 ㄴ)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송이 꿀보다 더 달다고 합니다. 정말 그렇게 느끼십니까? 유대인들의 교육에서 회당에 입학을 하면 말씀을 새긴 판에 꿀을 발라서 혀로 핥아먹게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송이 꿀보다 더 달겠습니까?

 

디모데후서 3:16-1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1)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이 말씀 가운데 우리가 좋아하는 내용이 한 단어라도 있습니까?

 

여러분이 누구에게 교훈을 받는 것, 훈계를 받는 것을 좋아하십니까? 더더구나 책망을 받는 것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행하는 것이 틀렸다고 바르게 하라는 말씀이 좋습니까? 여러분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민방위나 예비군 훈련 가서 정신교육 받는 시간이 아닙니까? 그럴 때 하는 말이 또 설교하구만! 그러면서 여러분은 매주일 별 볼 일없는 사람의 설교를 듣고 있으니 여러분이 대단하십니다. 우리는 모두가 누구에게 간섭받고 사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범죄 한 인간의 본성입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어느 누구의 간섭도 없이 천상천하유아독존으로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처럼 살고 싶어서 선악과를 따먹고 스스로 선과 악을 결정하면서 살겠다는 것이 죄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어느 누가 나를 보고 책망하면 그렇게 싫은 것입니다. 내가 남을 책망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면서 말입니다. 다른 사람이 교통신호 어기면 죽일 놈 살릴 놈 하면서 자기가 어기면 당연하게 여기지 않습니까? 누가 당신 왜 그러느냐고 하면 인상 쓰고 가지요! 남이 잘난 체 하면 온갖 흉을 보면서 깎아 내리지요! 평소에 이렇게 살던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교회로 모였습니다. 어떤 모습이 나올까요? 똑같은 모습이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실망하는 이유는 착한 사람들이 모인 줄 알았는데 세상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실망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보다 더 좀생이고, 잘 삐지고, 한번 토라지면 삼대구년을 가고, 끼리끼리 놀고, 시기와 경쟁은 더 많이 나오고, 겉으로 안 그런 척 하면서 위선하고 이런 모습들이 우리 안에 없습니까? 그러면서도 자기는 잘 믿고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속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를 자랑하고 있기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8절 말씀을 봅니다.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고 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속는 줄 모르고 삽니다. 그 이유는 자기는 지혜롭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전도를 해보면 얼마나 똑똑한지 모릅니다. 여기 모이신 여러분들 모두가 다 한 자락씩 하는 분들입니다. 어디 나가도 누구에게 꿀릴 것 없이 당당히 자기주장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나 바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미련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합니다. 누가 얼마나 똑똑하고 지혜로운가에 따라서 돈도 잘 벌고, 명예도 얻고, 권세도 얻는 세상이기에 특히 우리나라는 더하지요 그래서 세계최고의 사교육비가 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말씀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세상에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미련한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세상의 지혜를 하나님께서 미련하게 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지혜란 세상을 살 때에만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세상의 지혜가 통하지 아니합니다. 세상의 지혜란 무엇입니까? 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부입니다. 세상에서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세상의 자랑이 될 것들을 추구하고 사는 것이 세상의 지혜입니다.

 

세상지혜란 결국 자기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지혜롭다고 여기고 손해가 되는 것은 어리석고 미련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비유를 자주합니다만 가정에서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계십니까? 자기 아이가 학교에서 늦게 왔습니다. 왜 늦게 왔느냐고 물으니 청소당번들이 선생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다 도망갔는데 혼자서 다 하고 왔다는 것입니다. 학원에 가야 되는데 늦게 왔을 때에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세상 지혜는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집니다. 세상의 지혜를 하나님께서는 헛것으로 여기십니다.

 

성경의 지혜는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까지 주라고 하십니다. 오리를 가자면 십리까지 가주라고 하십니다.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합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십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 알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겠습니까?

 

우리교회 어느 집사님이 임대 아파트에 사시다가 아이들이 어려서 언니 집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그래서 빈 집에 어떤 아는 사람이 어렵다고 해서 살게 하였는데 이제 아이들이 커서 지난해에 나가달라고 하였답니다. 그러자 겨울 지나고 나가겠다고 하였는데 이제 나가달라고 하니 그동안 공짜로 살았는데 돈 내놓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월세를 19만원씩 주고 살던 사람이 공짜로 삼년을 살았으면 예 감사합니다하고 나가야 할 텐데 분양받으면 가격이 오른다는 것을 알고서는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집 열쇠까지 바꾸어 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사람을 한번 만나려고 하는데 그 사람이 교회 집사이고, 신학도 했다고 하고, 아들도 신학교를 다닌다고 하면서 자기가 사람들 모아놓고 기도회도 인도하고 그러는 사람인데 제가 한번 심방하면 그 사람 다니는 교회 목사님도 심방을 하겠다고 해서 무슨 말씀을 할까라고 하다가 마태복음 21장의 악한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생각했습니다. 세를 준 것인데 세를 받으려고 종들을 보내니 때리고 죽이고 한 것입니다. 두 번째 또 보내도 그렇게 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냈는데 아들마저 죽여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그 포도원이 자기 것이 되겠거니 한 것입니다. 비유가 딱 이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다가 보니 그 공짜로 살고 있는 사람이 바로 저와 여러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주님께로 받아서 살면서 자기 것인 양 자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본 말씀에서 예수 믿는 사람은 성전입니다. 이제는 건물이 성전이 아닙니다. 성도가 성전입니다. 이 성전은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값을 주고 사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19-20절입니다.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성령이 임하여 예수를 믿게 된 사람이라면 내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다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종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것이라고는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 질문합니다. 여러분의 집이 누구 것입니까? 여러분의 자녀가 누구 것입니까? 여러분 자신이 누구 것입니까? 대답을 못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것이라고 대답을 하면 왜 자기 것처럼 여기고 있느냐고 책망하거나 다 바치라고 할 것 같아서 대답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자기 것인 양 자랑하고 있는 것을 보고 바울사도는 고린도 교회를 책망하는 것입니다.

 

자랑한다는 것은 자기 것을 가지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불쌍해서 남이 선물로 준 것을 가지고 자랑하면 그 사람은 못난 사람이 되고 선물을 준 사람이 잘난 사람이 되기 때문에 선물로 받은 것도 자기가 무엇을 잘해서 받은 것인 양 자기 자랑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못났으면 은혜로 구원하시고 거기다가 은사까지 주셔야 하셨겠습니까? 그런데 그 은혜와 은사들을 자기들 자랑거리고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21-22절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는 사람 자랑하는 재미로 살고 있는데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전도를 이야기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교회를 자랑하고 목사를 자랑하라고 합니다. 그래야 사람이 몰려온다는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십자가를 자랑하면 있던 사람도 도망가기에 십자가를 자랑하지 않고 사람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만물이 다 너희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너희란 성도들을 말합니다. 만물의 성도들의 것이라고 합니다. 바울이나 아볼로나 베드로도 너희의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고린도 교회의 파벌이 생긴 사람들이 자랑의 사람들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 성도를 위한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들을 가지고 서로 누가 더 나은가를 비교하며 자랑한다는 것 자체가 그 선물을 주신 하나님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어떤 사람들입니까?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다 너희의 것이라고 합니다. 생명이나 사망, 현재일이나 장래일이 왜 우리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값으로 사셨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지혜는 어떻게 사망을 피하고 생명을 유지할까를 애쓰고 있습니다. 현재나 장래나 간에 나의 영원한 영광을 위하여 온갖 지혜를 다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기에 사망이나 생명이 현재일이나 장래일이 흔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35-39절을 봅니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바 ㄱ)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사망이나 생명이나 현재나 장래나 그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가지고 네 것이나 내 것이니 다툴 것도 자랑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만족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결국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을 누가 빼앗아 가겠습니까?

 

나그네는 짐이 가볍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그래서 부족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됨으로 다 얻었습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왔고 주로 말미암아 유지되고 주에게로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 있는 자는 주님만 자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 주님께서 주신 것들이 얼마나 놀라운지 살아가면서 더욱 실감하며 사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아볼로와 바울을 누구를 위하여 주신 것입니까? 여러분들을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목사를 누구를 위하여 주신 것입니까? 여러분들을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생명이나 사망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도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8-10절입니다. 죽은 자 같으나 산 자 입니다.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주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눈을 크게 뜨시기 바랍니다. 천하가 부럽지 않는 성도로 사시기 바랍니다. 세상지혜로 볼 때 비록 내 손에 아무것도 없다고 할지라도 모든 사람을 부요하게 할 수 있는 복음의 사람이 된 것으로 감사하며 주님을 자랑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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