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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6:13~22 게으른 자와 말쟁이 2018. 5. 27

 

13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14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도느니라 15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16 게으른 자는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17 길로 지나가다가 자기와 상관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의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 18 횃불을 던지며 화살을 쏘아서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사람이 있나니 19 자기의 이웃을 속이고 말하기를 내가 희롱하였노라 하는 자도 그러하니라 20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21 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 같이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시비를 일으키느니라 22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오늘 본문은 게으른 자와 말쟁이에 대하여 나옵니다. 잠언의 이런 내용들을 겉으로만 보면 세상에서 교훈하는 내용과 다를 게 없어 보입니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 하라거나 이웃을 속이며 다툼을 일으키게 하는 말쟁이가 되지 말고 그런 말쟁이들을 주의하라는 식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교훈을 위한 내용이 아니기에 성경전체를 통하여 게으름이 무엇을 말하는지 말쟁이가 어떤 내용인지를 봐야합니다.

 

본문 13~15절입니다.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고 하면서 집밖에 나가지 않습니다. 게으른 자는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처럼 침대에서 뒹굴 거리고만 있다고 합니다. 돌쩌귀는 대문이나 문을 여닫을 수 있는 장치입니다. 방문을 열고 닫을 때 기둥과 문짝 사이에 쇠붙이가 달려있습니다. 이것이 돌쩌귀, 경첩인데 여기에 달린 문짝처럼 게으른 자는 침대에서 뒹굴 거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게으른 자는 음식을 먹기 위하여 그릇에 손을 넣었는데 입으로 올리는 것도 귀찮아한다고 합니다. 게으름에 대하여 눈에 보이도록 표현하고 있습니다.

 

게으름이란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왜 하지 않느냐고 하면 온갖 핑계와 변명을 합니다. 그런데 게으름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늘 경험합니다. 우리의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시킬 때에 내가 하기 싫기에 온갖 핑계를 됩니다. 우리가 부모와 선생이 되어 자녀와 학생들에게 무엇을 시켜도 여러 가지 변명과 핑계가 많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합니다. 더구나 오늘날은 옳고 그럼의 기준에 따라 무엇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선택하기보다는 나에게 좋은지 싫은지가 기준이 되어 버렸습니다. 타락한 모든 인간이 이렇습니다, 옳고 그럼을 따져도, 좋고 싫음을 따져도 그것이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자기가 지혜롭다고 여기기에 고쳐지지가 않습니다.

 

본문 16절입니다. 게으른 자는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긴다고 합니다. 게으른 자가 고쳐지지 않는 이유는 사리에 맞는 말을 하는 사람 일곱이 말해도 자기가 더 지혜롭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게으른 자 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 나타나는 일입니다. 자기 자신이 제일 옳다고 여기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어떤 지적을 받으면 싫어합니다. 말씀을 전해도 사람들이 듣지 않는 이유는 성경보다 자기가 옳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저도 누구로부터 지적을 받고 내가 말한 것이 틀리다고 하면 여러 가지 변명을 하면서 자기주장을 합니다. 세상의 일만이 아니라 성경을 보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주장합니다. 말씀을 나눌 때에 성경으로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보다는 내가 말한 것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성경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자기를 지혜롭다고 여기는 모습입니다.

 

어제는 은퇴하신 권사님과 이야기 했습니다. 따님이 어머님께 복음을 전하려고 함께 왔습니다. 이 분은 몇 대에 걸친 신앙의 가문이며 목사와 장로 권사가 즐비하게 나온 집안이라고 합니다. 한 시간 반을 이야기하는데 권사님은 용문산 출신의 부흥사들로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목사들의 설교로 하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성경을 찾아 가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떤 부분은 수납을 하는데 어떤 부분은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알고 믿는 것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성전이라는 말씀을 찾아서 함께 읽어도 여전히 건물이 성전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가르침이 세뇌가 되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가 하나님의 약속의 완성임을 믿는 것은 결코 우리의 능력이 아닙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사도들의 복음 선포를(2:36) 믿는 다는 것은 자신이 그동안 옳게 행한 것으로 생각한 모든 것이 다 배설물로 여기는 것이 됩니다. 유대 사회에서 지혜롭고 의롭다고 여긴 자들이 예수님을 배척하여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인간의 가장 최선의 의로움이라고 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조차 십자가 앞에서 어떤 죄인지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자신의 공적을 쌓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인 됨을 알아갑니다.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말씀을 보는 것도 우리의 공적을 쌓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가 어떠함을 알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복음이 싫은 것입니다. 처음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에 옳고 그런가보다는 나에게 좋은지 싫은지를 가치 기준으로 세우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듣고 내가 죄인임을 알아가는 것이 싫은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개발하고 나를 발전시키는 일에는 열심을 냅니다. 이런 자들이 스스로 주께로 돌아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열심이 이루어 내십니다.

 

에스겔 39:25~27절입니다. “25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이제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 야곱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며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사랑을 베풀지라 26 그들이 그 땅에 평안히 거주하고 두렵게 할 자가 없게 될 때에 부끄러움을 품고 내게 범한 죄를 뉘우치리니 27 내가 그들을 만민 중에서 돌아오게 하고 적국 중에서 모아 내어 많은 민족이 보는 데에서 그들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낼 때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알기에 게으를 뿐 아니라 온갖 악을 행함으로 나라가 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기 언약에 대하여 열심히 일하심은 취소된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기 이름을 위하여 바벨론 포로에서 돌이켜 주시고 맑은 물을 뿌리고 새 영을 부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3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적국 중에서 모아냄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하나님의 열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돌아온 자들은 그제야 자기의 죄를 깨닫고 그 죄를 뉘우칠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돌아온 자들은 더 이상 자기 지혜를 말할 수 없기에 입을 닫고 주님의 의만 자랑하는 자들이 됩니다.

 

본문 17절입니다. 길로 지나가다가 자기와 상관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의 귀를 잡는 자와 같다고 합니다. 여기서부터는 말에 관한 내용들입니다. 길로 지나가다가 자기와 상관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것은 자기의 옳음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판단을 해 주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도 길을 가면서 수많은 판단을 합니다. 주로 속으로 판단을 하지만 만약 마음에 있는 것을 말로 판단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네가 뭔데 나를 간섭하느냐고 달려들 것입니다. 그러서 이런 모습을 개의 귀를 잡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이 당시의 개는 반려견이 아니라 들개와 같습니다. 영어성경은 미친개로 되어 있습니다. 쓸데없는 다툼에 간섭하는 것이 어리석음입니다.

 

본문 18~19절입니다. 횃불을 던지며 화살을 쏘아서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사람이 있나니 자기의 이웃을 속이고 말하기를 내가 희롱하였노라 하는 자도 그러하다고 합니다. 자신은 장난으로 이웃을 속였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횃불을 던지며 화살을 쏘아서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은 미친 짓이라고 합니다. 말 한 마디가 인생을 불사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로 아이가 장난으로 연못에 돌을 던지지만 개구리에게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말쟁이란 나쁜 소문을 퍼뜨리며 고자질하는 자를 말합니다. 이런 말쟁이가 있는 곳은 항상 소란합니다.

 

본문 20~22절입니다. 불이 꺼지려면 화목재료가 다 없어지면 됩니다. 이처럼 다툼이 없어지려면 말쟁이가 없어지면 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는 말쟁이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말쟁이는 계속 나옵니다. 언론에 종사하는 자들도 말쟁이입니다. 언론도 말하는 사람에 따라 같은 사실도 다르게 말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주 자극적인 제목을 붙임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말쟁이들로 인하여 늘 요란합니다. 이러한 말쟁이가 많아지는 것은 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같고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쟁이들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남의 말을 하는 것이 별식과 같이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기 때문입니다. 내가 미운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을 말쟁이가 왜곡 과장하여 말하면 그런 말이 내 안에 깊이 박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나 교회나 간에 이런 말쟁이로 인하여 늘 요란합니다. 이런 말쟁이들이 언제 없어질까요?

 

시편 12:1~4절입니다. “1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2 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3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4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경건한 자와 충실한 자들이 끊어진다는 것은 바른 말씀의 선포 자들이 사라지고 거짓말 하고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 자들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말하기를 우리의 혀가 이길 것이라고 하면서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가 누구이겠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어버릴 것입니다. 사람이 거짓말하고 아첨하는 것은 결국 진리를 버리고 자기 이익을 따른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여호와께서 끊으실 것입니다.

 

이어지는 5~8절입니다. “5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6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7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 8 비열함이 인생 중에 높임을 받는 때에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뛰는도다

 

아첨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에 의하여 가련하고 눌림과 궁핍을 당한 자들이 탄식을 합니다. 비열함이 인생 중에 높임을 받고 있습니다.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뛰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말쟁이들에 의하여 탄식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안전한 지대에 두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결하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과 같다고 합니다. 말쟁이 들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오직 주님의 순전한 말씀만 의지하는 자들을 이 시대로부터 영원토록 지키실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이루었다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안전지대에 두시는데 그곳이 그리스도 안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어떤 해함과 상함이 없습니다. 더 이상 말쟁이가 없는 곳입니다.

 

시편 52:1~5절입니다. “1 포악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2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3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 (셀라) 4 간사한 혀여 너는 남을 해치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 5 그런즉 하나님이 영원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붙잡아 네 장막에서 뽑아내며 살아 있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 (셀라)”

 

표제어를 보면 다윗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에돔인 도엑이 사울에게 이르러 다윗이 아히멜렉의 집에 왔다고 그에게 말하던 때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자 다윗이 도망가다가 아히멜렉 제사장에게서 떡을 받고 골리앗의 칼로 받아 가는 것은 에돔 사람 도엑이 보고 사울에게 보고한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아히멜렉 제사장 집안의 사람 85명이 죽임을 당합니다(삼상22:18). 이러한 혀가 날카로운 면도칼 같이 간사를 행합니다. 이러한 혀가 남을 해치는 말을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들을 뿌리 채 뽑아서 영원히 멸하십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않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여기는 자들이 말쟁이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의인을 넘겨줌으로 자기 이익을 챙기는 자들입니다. 다윗이 기름 부음 받은 자입니다. 그런데 다윗을 사울에게 고발함으로 자기 이익을 챙기는 자들이 말쟁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면서 십자가의 완성을 말하지 않고 자기 사익을 위하여 십자가를 왜곡하는 자들이 말쟁이들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합니다. 자신이 게으른 자이며 말쟁이임을 아는 사람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입을 닫고 회개하게 됩니다. 자신의 말과 주장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는 것을 인식합니다. 이런 자들은 이사야 선지자처럼 자기 입을 다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입술이 부정한 자 가운데서 주의 영광을 뵈게 되었으니 죽었다고 합니다. 이런 자들은 제단 숯불을 그 입술에 됨으로 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에베소서 5:3~4절입니다. “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우리가 다 말쟁이로 이런 말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런 말을 하는 자가 아니라 감사하는 말을 하는 자로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말씀 앞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입을 다고 회개할 것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