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대하여 알아보기
복음은혜감사
2018.08.22 16:16
목사님 창11장에 데라가 가족을데리고 가나안땅을가고자 떠나가다가 하란땅에 머무르게됩니다
데라가 갈대아우르를 떠나 가나안땅으로가는것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단순 데라본인 결정으로 가는것이지 하나님의 계시는 아니지요 하나님으로부터 아브라함이 첫 계시로 부름받은것은 갈대아우르가아니고  75세때 하란땅에서이니깐요

그리고 갈대아우르지역은 유브라티그리스강이흐르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이라 농사도잘되고 살기좋은 곳인데
왜 데라가 그살기힘든 가나안땅으로
가려고 했을까요 거리도 상당히 먼데요
이점도 궁금합니다

첫째는 아브람이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아버지를 설득하여 가는 도중에 데라가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가지 않고 머물렀다고 보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7:2-4절에 보면 아브람을 하나님이 하란에서 부르신 것이 아니라 갈대아 우르 즉 바벨론에 있을 때 부르신 것입니다. “2. 스데반이 이르되○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3.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4.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바벨론을 메소보다미아 라고도 합니다. 여기에서 보면 아브람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가다가 하란에서 데라가 죽고 나서 다시 가나안으로 갔다고 보는 것입니다.

둘째는 데라가 바벨론에서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하란으로 떠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데라는 바벨론에서 무엇을 하던 사람입니까? 여호수아 24:2절입니다. “2.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데라는 다른 신들을 섬기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데라, 사라, 밀가의 이름이 달의 신을 가리키는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데라라는 이름은 가장 눈에 띄는 달의 신의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갈대아 우르와 하란 이 지역은 달숭배의 중심지였는데 데라가 바벨론을 떠난 것은 바벨론에 이 당시에 적의 침략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데 고고학적이 자료에 의하면 주전 1,950년에 엘람이라는 나라가 바벨론의 우르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데라가 자신의 안전을 생각하여 하란으로 피하였으나 하란에서 머문 것은 그곳도 달숭배의 중심지였기에 그곳에서 가나안으로 가지 않고 머물렀다고 보는 것입니다.

복잡하지요. 그러므로 성경이란 해석하기에 따라 여러 가지 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해석의 중심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의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지지 아니하면 한참 가다보면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보면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람을 부르시고 길을 떠나게 하셨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실 땅을 바라보고 떠난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떠나라는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의 첫 번째 내용입니다. 바벨론땅에 그대로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내셔도 되실텐데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생존의 조건이 가장 좋은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고대 사회로 올라 갈수록 씨족사회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곳으로 간다는 것은 이미 위험을 각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불러내시는 것입니다.

출애굽에서도 하나님은 애굽에서 떠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출애굽이란 애굽에서 떠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말씀하실 때는 어디에서의 구원이신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영어로 하면 from 이지요 어디로부터 구원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디를 향한 구원인가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에서 가나안으로의 부름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디서 어디로의 부르심입니까?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마귀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영벌에서 영생으로의 부름입니다. 이러한 방향성이 분명하지 않으면 구원을 단지 현재의 상태보다 더 나은 상태를 말하게 되는 것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가 부자 되는 것, 병든 자가 건강해지는 것, 이런 식의 구원을 말하게 되면 하나님이 아브람을 바벨론에서 불러내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불러내시는 뜻을 모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벨론이 살기 좋습니까? 가나안이 살기 좋습니까? 애굽이 살기 좋습니까? 가나안이 살기 좋습니까? 세계 4대 문명 발상지라는 곳이 어디 입니까? 다들 강을 끼고 있는 지역입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인도와 중국이 다 강을 끼고 있는 지역입니다. 그런데 아브람을 메소포타미아에서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나오라는 것입니다. 문명발생지란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지요. 그런데 그곳에서 나오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면 이제는 아브람을 따라 함께 떠난 자들이 누구인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다음주에 계속하여 보겠습니다만 아브람에게 붙어 있는 것이 복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고생길입니다. 비옥한 바벨론을 두고서 알지도 못하는 낯선 곳으로의 떠남이 얼마나 망설여지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으시기에 이들을 인도하여 내시는 것입니다. 비록 그 과정은 힘들고 어려움이 중첩되어 있지만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나서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위력인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 동일하게 세상이 좋고 세상에서 좀더 행복한 삶을 추구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서 주님의 나라를 사모하게 하시고 그 아들의 나라를 찾아 나서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는 세상의 것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부름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를 따라 나선 자는 직접 부름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브람과 함께 떠난 자들의 모습을 봅시다.

우선 데라입니다. 다른 아들도 있었지만 아브람과 함께 바벨론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려고 하였습니다. 31절에 보시면 데라가 아브람과 롯과 사래를 데리고 가나안으로 가려고 하였으나 하란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출발을 하였는데 도중에 머무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갈 길은 험해 보이고 현재의 삶은 좋아 보이니 머무는 것입니다. 바울과 함께 일하였던 데마라는 사람은 디모데후서 4:10절에서 이렇게 말씀 하고 있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세상이 좋아서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데라는 하란에 머문 것입니다. 우르에서 우상을 섬겼는데 하란에서도 우상을 섬기는 것이 많았기에 그곳에 적응하기가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안전하다 안전하다 하는 곳이 위험의 지경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떠날 준비를 하고 사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언약을 따라서 아브라함 언약 1 에도 데라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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