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3:1~6 어떻게 예수를 죽일까? 2018. 10. 28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지난주에 안식일의 주인이 누구시며 그 안식일의 주인이 무엇을 하시는지를 보았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뜻을 알려주셨습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 특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은 안식일의 뜻을 알지 못하고 문자대로 지키려고 했습니다. 안식일을 잘 지키려고 무엇이 일인지 아닌지를 39가지 부칙을 만들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참된 안식을 주시기 위하여 일을 하신 것입니다. 안식일에 일하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죄를 사하여 주시는 권세가 있음을 중풍병자를 고쳐주심을 통하여 보여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나병 환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이 모든 자들은 조금도 쉼이 없었던 자들입니다. 이들에게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참된 안식을 주고 계십니다. 참된 안식을 주시기 위하여 안식일에 일하시는 예수님을 싫어하는 자들은 안식을 문자적으로도 해석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문자적으로 해석해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지난주에 봤습니다만 십계명에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방법이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일을 하지 않아야 합니까?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에서는 하나님의 창조를 일한 것도 없이 선물로 받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일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신명기 5장에서는 구원의 선물 역시 일한 것도 없이 은혜로 값없이 받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일을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창조와 구원이 다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명기의 십계명은 애굽에서 구원 받은 것을 기억하라고 하시면서 종들이나 짐승도 일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잘 지킨다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제사장들이 예수님의 언행을 보면서 어떻게 반응합니까?

 

본문 1~2절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다시 회당에 들어가십니다. 그 회당에 모인 자들 중에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는지 주시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혹시 이 한 쪽 손 마른 사람을 일부러 회당에 가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을 올무에 걸기 위하여 못할 일이 없는 자들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언행을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의도를 아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안식일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다시 보여주시기 위하여 말씀하십니다.

 

3~4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십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예수님과 그 사람에게 집중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고 하십니다. 이것이 어려운 질문입니까? 결코 어려운 질문이 아닙니다. 안식일에 악을 행하고 사람을 죽이는 일은 생각도 못할 일입니다. 당연히 안식일에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이렇게 쉬운 대답을 왜 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불리하기에 대답을 하지 않고 잠잠한 것입니다.

 

5절을 봅니다. 그들의 마음의 완악함을 탄식하시고 노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탄식하시고 분노하십니다. 안식일을 주신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선을 행하시고 생명을 살리시는데 그림자 안식일을 지키느라고 선을 행하시며 생명을 살리시는 예수님을 배척하고 있는 그들을 향하여 탄식하십니다. 율법의 선생이라고 하면서 백성들을 잘 못 가르치는 것을 보시고 분노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을 둘러보시며 그 손 마른 사람에게 네 손을 내밀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 손을 내밀매 그 손이 회복이 된 것입니다. 그 손을 내밀라고 하시자 그 손이 내밀어 지는 것은 그 사람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창조의 능력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을 보면 그 안식일의 주인이 예수님이심을 알고 예수님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6절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를 의논합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무슨 악한 일을 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사람을 죽이는 일을 했습니까? 참으로 선하고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참된 안식일을 지키신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바로 헤롯당과 함께 예수를 죽일 의논을 합니다. 헤롯당과 의논을 하는 것은 예수가 기존의 유대의 질서를 어기는 것이기에 헤롯당도 질서를 지키려면 예수를 죽여야 한다고 바리새인들이 충동을 하여 함께 죽일 의논을 합니다. 결국 이들이 함께 예수님을 죽입니다.

 

참된 안식일을 주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킨다고 하는 자들이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지난주에도 보았습니다만 안식일과 구약의 모든 절기들과 모든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그림자의 역할입니다.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의 뜻을 알았다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할 것이 아니라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신이 복음의 광채를 보지 못하도록 눈과 귀를 가려놓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려고 의논하고 죽인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목숨처럼 지켜온 안식일을 예수님이 주인이라고 하시면서 너희는 안식일에 악을 행하고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 평생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제대로 하신 분이 계십니까?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함으로 복을 받기 위하여 한 것이 아니고, 저주 받을까봐서 두려워서 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주일성수를 하고 십일조를 하신 분이 계십니까? 제가 어떤 분을 만나보니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지 그것으로 복을 받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유대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안식일만 아니라 모든 율법을 다 지켜 흠이 없다고 하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너희는 그 안식일을 지킨다고 하면서 안식일의 주인이 참된 안식을 주는데 그것을 반대하고 있으니 너희가 악을 행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가운데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하셨습니까? 주일성수를 하는 사람이라면 주일만이 아니라 모든 공적인 예배에 다 참석해야 하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십일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감사와 건축헌금과 절기 헌금과 선교와 구제와 장학헌금과 각종 교회의 헌금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 할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길임을 알고 정말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신 분이 계시면 손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다는 아니지만 하나님을 위한다고 열심히 하였습니다. 바울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열심이 하나님의 말씀을 완성하려고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일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알았습니다.

 

고린도전서 2:1~5절입니다.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1)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바울이 고린도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합니다. 고린도에 오기 전에 그리스 아테네에서 수많은 철학자들과 논쟁하면서 논리적으로 복음을 전하려고 하였지만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고린도에 와서 그러한 세상의 지혜와 아름다운 방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알고 전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믿음의 기초가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이 아니라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사람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습니다.

 

6~9절입니다. “6 그러나 우리가 2)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7 오직 3)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지혜를 알지 못하였기에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지혜의 한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지혜는 사람에게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지혜로는 율법을 지키든 온갖 능력을 행하든지 간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귀로 듣지도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도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그 영광을 자기 백성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십자가 앞에 자신의 모든 공적이 무가치하게 드러나기에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10~12절입니다.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성령이 임하게 되면 하나님의 깊은 것을 알게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십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누가복음 24장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듣고도 믿지 않고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의 부활하신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믿으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구약 성경 곧 율법과 선지서와 시편에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증거 하십니다. 나중에 식사시간에 예수님께서 기도하시자 그제야 눈이 밝아지는 순간 예수님은 그들 앞에서 사라지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보여주시면서 증거 하시면 더 잘 믿을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을 합니다만 예수님은 성경으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을 때에 이들이 하는 말이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거웠다고 합니다. 성경으로 예수님을 증거 해야 하는 것을 예수님이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성경으로 예수님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문자대로 증거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이 있다고 하면서 오늘도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이 안식교인들입니다. 안식일이 분명히 그림자라고 하는데도 그들을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안식일을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시고 그 의의 선물을 자기백성에 주심으로 참된 안식을 얻는다고 해야 하는데 아직도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고 한다면 이들이 바로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합니다.

 

고린도후서 3:6절을 봅니다.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새 언약의 일꾼은 율법 조문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영으로 한다고 합니다. 영으로 한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 넘겨주신 그 영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는 율법의 조문을 문자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의 조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자가 새 언약의 일꾼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지 않은 자는 아직도 율법 조문을 전하기에 그 율법 조문을 전하는 것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자들이나 엠마오 마을로 가는 자들이나 그들의 눈이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7~11절입니다. “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9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10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11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모세의 율법은 죽이는 직분이며 사라질 직분이지만 영광스러웠습니다. 그러므로 살리는 새 언약의 영광은 영원한 영광입니다.

 

12~18절입니다. “12 우리가 이 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13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14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야 모세의 수건이 벗겨집니다. 모세의 수건이 벗겨져야 십자가로 나타난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을 보게 됩니다. 물론 이 역사 속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거짓 선지자들은 이 역사 속에서 무엇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런 자들은 다 율법 조문으로 전합니다. 구약을 말하든 신약을 말하던 어떤 법적인 조건으로 복을 말하고, 구원을 말하는 것은 다 모세의 수건이 가려져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런 자들이 어떻게 속는지 말씀을 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1:13~15절입니다. “13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19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20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복음을 전하지 않고 율법 조문으로 전하면 사람들은 그 조건을 지키려고 모든 노력을 다합니다. 세대주의 종말론을 전하고, 환난과 휴거를 말하고, 666과 베리칩을 말하면서 환난을 피하려면 특정한 사람과, 특정한 교리와, 특정한 장소에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기복주의나 신비주의나 금욕주의나 신사도운동이나 마찬가집니다. 이런 말에 빠지면 그 교주가 자신을 높여놓았기에 사람들을 종으로 삼고 잡아먹고 빼앗고 뺨을 칠지라도 용납하는 것입니다. 은혜로 교회에서 타작마당이라고 하면서 뺨을 때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데 빠지는 자들은 미련하고 어리석은 십자가를 버리고 더 나은 구원의 욕망을 따라 세상에서 복도 받고 하늘의 큰 상을 받으려고 하기에 그렇습니다.

 

미련하고 어리석고 무력하고 허무하게 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믿지 못하는 자들은 오늘도 어떻게 하면 예수를 죽일까를 의논할 것입니다. 그 마음들이 우리 안에도 들어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예수, 내가 원하는 복, 내가 원하는 구원, 내가 원하는 복음이 아니라고 할 때에 우리 안에서도 나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성령은 우리가 예수님을 살해한 자로 드러내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고 성령을 보내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망을 하십니다(16:8~11). 그 죄에 대한 책망 한 가지만 보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재림주가 되십니다. 재림하시면 이 보이는 하늘과 땅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을 믿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나를 좋게 하고 나를 잘되게 하는 예수를 믿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목사가 시키는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 것을 악이라고 하고 십자가를 지게 하시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까이 오면 우리도 예수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여 성경을 보게 되면 우리도 어떻게 예수를 죽일까하는 자로 드러납니다. 정말로 열심히 헌신 충성 봉사를 하였는데 복은커녕 세상이 말하는 저주라는 것을 받을 때에 하나님이 있다면 나와 보라고 큰소리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택한 백성이라면 자기 죄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주로 믿지 않고 내가 주가 되었음을 알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주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행2:36). 이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