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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3:9~13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2019. 1. 9

 

9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10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12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그동안 때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때를 자기를 중심으로 이루려고 하기에 힘들어 합니다. 그런데 그 때란 우리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때가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말씀을 드리면 또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잘 보여서 그 때를 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때라는 것은 우리의 애씀으로 나의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자기의 때에 이루심을 보았습니다.

 

오늘본문 9~10절 새 번역으로 봅니다. “9 사람이 애쓴다고 해서, 이런 일에 무엇을 더 보탤 수 있겠는가? 10 이제 보니,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수고하라고 지우신 짐이다.” 사람이 애를 쓴다고 나의 때를 이룰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를 쓴다고 때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느냐고 묻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씨를 뿌려야 거두어 먹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서 일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수고하라고 지우신 짐이기 때문에 때를 따라 수고하면서 살아야 함이 마땅합니다.

 

창세기 3:17~19절입니다.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우리는 수고하다가 흙으로 돌아가야 할 인생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때, 곧 자기 영광의 때를 확보하여 영속하려고 하는 것이 죄입니다.

 

본문 11절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고 합니다. 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주님의 뜻대로 돌아가기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인생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수고하며 살다가 흙으로 곱게 돌아가는 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인생들에게 다른 피조물에게는 없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라는 구절의 '영원'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자음으로 세 글자 올람입니다.

 

본문 11절을 새 번역으로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제때에 알맞게 일어나도록 만드셨다. 더욱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을 주셨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깨닫지는 못하게 하셨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라는 단어를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공동번역은 역사의 수수께끼를 풀고 싶은 마음으로 번역합니다. 다른 번역 에서는 영원의 감각또는 시간 의식으로도 번역합니다. 히브리어의 올람이라는 단어는 구약에서 437회나 나오는데 영원을 향한 갈망으로 이해하여 영원으로 번역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번역이 되는 것은 인간이 의식하는 시간과 영원이라는 것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이지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 것은 영원하신 분을 찾게 하시기 위한 것이지만 타락한 인간은 왜곡된 영원을 추구합니다.

 

창세기 11:1~4절입니다. “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노아홍수 이후에 흩어져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셨지만 타락한 인생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흩어짐을 면하고 자기들의 이름을 내기 위하여 바벨탑을 쌓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이들을 흩어버리시지만 인간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바벨탑을 쌓아서 흩어짐을 면하고 자기 이름을 영원히 견고하게 하기를 원하면서 살아갑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문명건설입니다. 조용히 이름 없이 살다가 흙으로 사라져도 하나님의 때를 따라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거부하고 나오는 모습이 바벨탑을 쌓는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는 것은 자신의 영원함이 아니라 주님의 영원함을 알게 하시려고 사람에게 시간의식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주님의 영원함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영원함을 위하여 시간을 사용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하여도 흘러가는 시간을 잡아둘 수 없고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기에 불로장생의 약을 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도 죽음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니 사후의 세계를 준비한 것입니다. 부와 권력이 있는 자들이 현재의 영광을 사후에도 누리기 위하여 만든 것들이 거대한 무덤들입니다.

 

이집트의 피라밋이 거대한 무덤입니다. 이들도 사후의 세계를 생각하여 시신을 미이라로 만들어 보관을 한 것입니다. 중국의 진 나라 시황제의 무덤은 일부만 발견되었지만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권력을 가진 한 인간이 영원에 대한 잘못된 갈망으로 인하여 얼마나 엄청난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는지 그 유적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는데 타락한 인간들은 그 시간의식으로 자기의 영원성을 추구한 것입니다. 그 결과 인류의 거대문명들은 인간의 영원성을 추구하는 것이며 이러한 것이 종교성으로도 나타납니다.

 

본문 12~13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12 이제 나는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13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전도자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자신은 영원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였다는 것입니다. 영원이란 사람이 측량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영원을 사모하지만 주어진 이 삶도 기뻐하면서 은혜로 산다는 겁니다.

 

본문 11절을 공동번역으로 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이 제 때에 알맞게 맞아 들어가도록 만드셨더라. 그러나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역사의 수수께끼를 풀고 싶은 마음을 주셨지만, 하느님께서 어떻게 일을 시작하여 어떻게 일을 끝내실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사람이 시간의식을 받았지만 영원하신 하나님의 일의 시종을 다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달은 것은 그 영원을 사모하면서 살지만 주어진 삶을 수고하면서 살되 자신의 수고로 먹고 마시며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마치 영원한 시작과 끝을 다 아는 것처럼 그 영원을 자신을 중심으로 고정화 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탐심인 것입니다. 이러한 탐심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 보겠습니다.

 

로마서 1:18~23절입니다.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알만한 모든 것을 우주만물을 통하여 보여주셨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그의 창조를 통하여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은 영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영원성을 추구하면서 살아간 것입니다. 흙으로 돌아가야 할 인간이 자신의 영광을 영원하도록 기념하려고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남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을 하는 것도 소멸하는 육신의 한계를 보았기에 자신의 이름만은 영원히 남기겠다는 표현입니다. 영원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한 짓이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우상으로 바꾼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경의 말씀을 읽고 듣는다고 교회로 모인 사람들조차 자신들의 이름을 위하여 살아갑니다. 바벨탑을 쌓으면서 흩어짐을 면하고 자기 이름을 내려고 하였습니다. 그런 자들처럼 우리 교회가 흩어지지 말고 더 대단한 일들을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남기자고 합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아가는 정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 땅에 영원한 흔적을 남기려고 할 뿐 아니라 하늘에서도 영원한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합니다. 이들이 바로 자신의 영광을 영원하게 하려고 하는 탐심입니다. 이들 위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하는 것이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영원한 영광을 추구하면서 평생을 살아가는데도 승승장구한다면 하나님이 버린 것입니다.

 

사도행전 17:22~25절입니다.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하나님께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지만 타락한 인간들은 그 종교성으로 자신들을 위한 우상만 가득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어지는 26~31절을 봅니다.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 것은 하나님을 더듬어 찾게 하시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 더듬어 신을 찾았다고 하면서 만들어낸 신들이 그리스 아테네의 온갖 우상들과 그들을 섬기는 신전으로 가득하였습니다. 그들이 신을 위한다고 만든 것들은 자신들의 영원성을 고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들을 향하여 바울사도는 참된 신은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이 호흡과 생명과 만물을 주시는 분이라고 증거 합니다. 그 참된 생명과 호흡을 주시기 위하여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전합니다. 그러므로 전에는 간과하였지만 이제는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기에 이를 믿지 않으면 그것이 심판입니다.

 

로마서 1:24~25절입니다.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하나님께서 버려두시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게 됩니다. 복음은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입니다(딤후1:9). 그런데 생명도 아니고 썩어질 것들을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한다면 이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자들이며 이렇게 되는 것을 버려두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기 백성은 이런 헛된 영광을 추구하는 방향에서 전복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야 십자가가 보입니다.

 

고린도전서 1:18~24절입니다.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2)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십자가의 도는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며 사후에도 자신의 영원성을 추구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지혜임을 믿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는 것은 인간들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영원이나 영광이 아니라 십자가로 나타난 하나님의 영원과 영광을 보고 믿는 것이 하나님께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은 미련하고 어리석고 십자가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