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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5:1~3 하나님 앞에 잠잠히! 2019. 3. 13

 

1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2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3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오늘은 꽃샘추위가 와서 그런지 미세먼지가 거의 없습니다. 미세먼지로 전국이 난리이고 외교적인 문제도 일어납니다. 미세먼지는 유익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미세 먼지는 삼겹살 구워먹어도 나오고, 차타고 다녀도 나오고, 공장에서도 나옵니다. 공장 돌리려고 발전소 만드니 화력발전이든 원자력이든 미세먼지는 나옵니다. 예배드린다고 불 켜고 인터넷 방송하는 이것도 전기 사용하는 것이니 미세먼지 발생시키는 원인입니다. 그러므로 미세 먼지 일으키는 주범이 인간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왜 이런 미세먼지를 일으키게 됩니까? 땅의 티끌로 만들어진 인간이 땅의 티끌인줄 안다면 조용히 살아갈 것인데 자신이 땅의 티끌인 것을 모릅니다. 물론 조용히 살아가도 미세먼지를 일으키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조용히 살다 가는 것이 먼지를 덜 일으킵니다. 그런데 우리는 땅의 티끌이라는 말씀을 듣고서도 조용히 살아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내가 누군데! 감히 나를!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니 만물과 만사가 자기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죄인입니다. 이러한 우리들에게 오늘 말씀은 하나님 앞에서 발을 삼가고 말을 삼가라고 합니다.

 

본문 1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하나님의 집으로 갈 때에, 발걸음을 조심하여라. 어리석은 사람은 악한 일을 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제물이나 바치면 되는 줄 알지만, 그보다는 말씀을 들으러 갈 일이다.” 하나님의 집이란 성막이나 성전입니다. 성전에 가면 빈손으로 가지 않고 제물을 들고 가야 합니다. 그런데 부요하여 제물을 많이 들고 가는 사람의 발걸음은 당당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 제물이나 바치면 자기 할 일을 다 한 것으로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이 제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물에 눈이 먼 제사장들이나 목사들이 많이 바치면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떻게 말합니까?

 

사무엘상 15:22~23절입니다. “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아말렉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최초로 공격한 자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애버리겠다는 하셨으며 이들과 대대로 싸우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17:14,16)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각 왕을 살려오고 많은 짐승 떼들을 끌고 온 것입니다. 이때 사무엘이 한 말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청종하는 것을 제사보다 더 낫게 여기신다고 하십니다. 이때 사울은 여호와의 명령을 어긴 것은 백성을 두려워하여 백성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누구의 말을 두려워하며 누구의 말을 듣습니까?

 

이사야 1:13~15절입니다.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제사를 드리는 것은 일상의 삶에서 죄가 나오지 않을 수 없으니 제사로 속죄함을 받으라고 주신 것입니다. 물론 감사와 서원의 제물도 있습니다만 속죄의 제사를 통하여 자신들의 죄를 알고 회개하면서 대속하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일상의 삶은 거짓말하고 도적질 하면서 그저 하나님께 제물만 많이 바치고 절기만 열심히 지키면 복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사장이나 백성의 지도자들이나 선지자들이나 백성이 다 한통속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결과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하나님의 참 선지자들은 무수하게 책망합니다.

 

미가서 6:6~8절입니다. “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여기서도 오늘 본문 1절의 말씀처럼 여호와께 나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여호와께 나아가는 것은 성전에 제사를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전에 나아가면서 무엇을 들고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율법에도 명시된 대로 제물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런데 최고의 제물이 무엇입니까? 가장 귀하다는 일 년 된 송아지입니까? 일만 마리의 숫양입니까? 강물 같은 기름입니까? 나의 맏아들입니까? 내 몸의 열매입니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것은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을 듣는 자의 모습입니다.

 

호세아 6:6절입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친히 인용하시면서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듯이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합니다.

 

누가복음 10:38~42절입니다. “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 마르다는 3)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4)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 1절의 해석과 같은 말씀입니다. 내가 주님을 위하여 하는 일들은 빼앗길 수 있습니다. 내가 나의 열심과 정성으로 나온 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께로부터 오는 것은 빼앗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들음으로 알고 들음으로 받습니다. 그런데 교회 성장을 빨리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은 잠잠히 말씀을 듣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말씀을 듣고 일 년 만에 제자를 재생산해야 한다고 다그칩니다. 이런 현상은 한국의 문화현상과도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늦어진 나라이기에 빨리 이루어내려고 했습니다. 다른 나라는 수백 년이 걸린 것을 오십년 정도에 이루어내었으니 놀랄만합니다. 그러나 급속성장으로 인한 부작용들이 지금 온 나라에 가득합니다. 여기에 부응하여 교회성장을 외친 부작용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간에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잠잠히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제일 우선입니다.

 

본문 2~3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2 하나님 앞에서 말을 꺼낼 때에, 함부로 입을 열지 말아라. 마음을 조급하게 가져서도 안 된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 위에 있으니, 말을 많이 하지 않도록 하여라. 3 걱정이 많으면 꿈이 많아지고, 말이 많으면 어리석은 소리가 많아진다.”

 

3절을 먼저 봅니다. 걱정이 많으면 꿈이 많아진다고 합니다. 걱정이 많다는 것은 세상에서 무언가 이루어야 할 일이 많으면 걱정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꿈속에서도 쉬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은 걱정이 많으면 꿈자리가 사나워진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합니다. 내일에 대한 염려가 많으면 잠을 편히 잘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자라면 내일 염려는 내일에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쉼이 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쉼을 누려야할 교회가 세상의 썩어질 꿈과 비전을 말한다면 쉼이 없는 곳이 됩니다.

 

2절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을 꺼낼 때라는 것은 기도할 때를 말합니다. 기도는 말을 많이 해야 들어주신다고 생각하는 것인 모든 종교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간절히, 정성을 다하여 빌고 비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며칠을 금식하고 철야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응답이 된다는 이런 말들은 성경을 모르는 종교인의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도 기도할 일이 생깁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으니 말을 많이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다 아신다는 겁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그런 종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시편 138:6절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 살피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심이니이다여호와께서 하늘에 계신다고 해서 우리의 사정을 모르신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잘 아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139편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피하여 숨을 곳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의 앉고 일어섬과 우리의 모든 언행심사를 다 아십니다. 우리가 하늘에 올라가도 거기 계시고, 무덤에 내려가도 그곳에 계시고, 바다 끝에 갈지라도 그곳에 계십니다. 주님의 눈길과 손길에서 피할 곳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마태복음 6:5~8절입니다.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예수님께서 기도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바로 앞의 5~6절을 보면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정해진 기도 시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러 그런데 기도시간에 맞추어 일부러 큰 길 가에 가는 겁니다. 그러므로 골방에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골방에서 기도하라고 하니 이것을 또 방법론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우리들입니다. 오늘 본문과 연결하여 보면 기도할 때에 말을 많이 해야 들으실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이방인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면 무엇을 기도해야 합니까?

 

마태복음 6:31~34절입니다.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농사짓지 않는 공중의 새도 먹이시고 길쌈하지 않는 들풀도 솔로몬의 영광으로 입은 옷 보다 더 귀하게 입히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왜 걱정하고 염려하느냐고 하면서 믿음이 없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시면서 그러한 것들은 아버지가 없는 이방인이나 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것들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신다고 하시면서 기도를 가르쳐 주셨고 그 결론이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듣는 자들은 자기의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말을 많이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을 우리가 들어도 막상 급한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원망도 하고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므로 말을 많이 하지 말라는 이 말씀조차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셔야 합니다.

 

이사야 53:7절입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잠잠히 십자가로 가신 분이 누구십니까?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피조물인 사람들 그것도 죄인들에게 온갖 조롱과 수치를 다 당하시며 십자가로 잠잠히 가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 그 영을 넘겨주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들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주님 앞에서 입을 닫게 됩니다.

 

욥기 40:4절입니다.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인 욥이 까닭모를 고난 속에서 온갖 말을 다 하였습니다. 자기 생일을 저주하기도 하면서 하나님께서 대답하여 주시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시자 입을 가릴 뿐이라는 이 고백을 합니다.

 

에스겔 16:33절입니다. 이는 내가 네 모든 행한 일을 용서한 후에 네가 기억하고 놀라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정도로 완전히 망한 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용서의 선포입니다. 그 용서를 받은 자도 입을 열지 못합니다. 자신의 죄가 어떠함을 알고 그 죄가 용서 받았기에 입을 닫는 것입니다.

 

로마서 3:19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율법을 주신 것을 죄를 알게 하여 입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통하여 자기 죄를 알게 하시고 대속하실 주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들은 모든 말씀으로 자기의 죄를 알게 되기에 입을 닫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이러한 자들은 자기에 대하여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합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