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봄에 수필 한 편 읽어봅시다!)



라일락 꽃 향기 맡으며



몇 년 전 낡고 오래된 아파트에 살 때였다. 그때는 하루의 한줌쯤 행복했고 그 나머지 시간은 슬펐다. 그 무엇보다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없어서 오랜 시간 자신을 헐뜯고 상처를 후벼 파며 보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다시 감고 싶었던 나날들. 누구든 한번쯤은 자신의 인생에서 그런 시간이 있지 않을까.

 

새벽에 일어나 집 앞 교회에 갔다. 그곳에라도 가지 않으면 온종일 죽은 듯이 누워 있을 것 같아서. 어둑한 예배당 구석에 앉아 안 보이는 하나님을 옆자리에 앉혀놓고 참 많이도 울었다. 눈물은 마음속에도 뚝뚝 떨어졌던지 습기 가득 찬 영혼은 툭하면 목이 메게 만들었다. 그때 만났던 사람들은 내가 울음을 참으려 얼굴이 붉게 물드는 모습을 다들 몇 번은 보았을 테지.


기도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때, 나는 혼자라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나의 고통과 슬픔을 말해줄 수도 없었고, 말한들 내 마음을 이해할 것 같지도 않았다. 가족도 있고 친구들도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오롯이 혼자인 것 같은 마음을 어떡하란 말인가.

 

기도소리만 가득한 예배당을 나와 천변을 걸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천변의 수목들은 갖가지 꽃을 피우고 있는데 나는 꽃이 보이지 않았다. 흐드러진 꽃무더기를 지나면서, 평화로운 표정으로 산책 나온 사람을 스쳐 지나면서 구름한 점 없이 맑고 푸른 아침의 하늘을 안고 걸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툭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손수건 하나 없던 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걷곤 했다. 무심결에 걷는 낡은 워킹화의 발끝은 마치 허공을 딛는 것 같았다. 그때는 생을 부유하던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땅에 발을 딛지 못하고 먼지처럼 떠돌아다니던 시간.


맑고 밝은 봄의 햇살이 저만큼 비추고 있는 아침이었다. 저만큼 아득하게 쾌활하게 페달을 밟으며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는 소년이 나타났다. 쏜살같이 다가온 소년의 자전거가 어느 새인지 찌릉찌릉 벨을 울리며 지나치는데 나는 그 자리에 그냥 주저앉고 싶었다. 왜 순결해 보이는 풍경이 더욱 나를 슬프게 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좀처럼 떼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앞으로 내밀었다. 그냥 걸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계속 걸어야 하는 형벌이라도 받은 것처럼.


머릿속에는 맹목, 사랑, 슬픔, 고통, 운명, 같은 단어들이 두서없이 떠다니는데 막상 옆을 보면 맑은 물 수초 사이에서 오리 떼들이 찰랑찰랑 물질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평화로운 아침 풍경과의 간극은 나에게 또 하나의 상처였다.

 

그렇게 무기력한 발걸음을 옮기던 때였다. 알 수 없는 꽃향기에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한 무더기 무성한 수풀사이에 잘디잔 연자주 빛 꽃잎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어떤 색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영롱한 기쁨의 빛이 꽃무더기마다 쏟아져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나는 심호흡을 다시 하고 눈을 크게 뜨고 꽃잎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에 한순간에 잡혔다. , 놀라워라. 그 순간 영혼 1도 없는 시체처럼 걷고 있던 나는, 믿을 수 없게도,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새벽에 눈을 뜨면서부터 줄곧 나를 사로잡았던 흐리고 축축하고 어둡고 상심한 마음이 환한 별을 가슴에 안은 것처럼 환하게 밝아왔다. 나는 꽃 가까이 다가가 향기를 맡았다. 아마도 난생 처음 꽃향기를 맡으러 꽃 가까이 섰을 것이다. 코끝에 생의 환희 같은 향기가 강렬하게 나를 덮쳤다. 마치 누군가 나를 생의 한가운데 세워놓고 사랑과 축복과 기쁨의 샤워기를 뿌려대는 것 같았다. 나를 한순간에 슬픔에서 환희로 바꾸어 놓은 꽃무더기가 바로 물푸레나무 과에 속하는 라일락꽃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나를 몇 겹이나 에워싸고 있던 우울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이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라일락 꽃향기였다니! 집으로 오는 길은 내내 꽃향기에 취해 있었다. 그때 라일락 꽃향기는 하나님의 위로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며칠 째 라일락 꽃향기를 맡으며 걷고 있다. 그렇게 슬픔의 시간을 보냈던 나는 더 이상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지 않는다. 가볍고 촉감이 좋은 아쿠아 런닝화를 신고 연두색 향연이 벌어진 숲을 향해 즐겁게 걸음을 옮긴다. 루이 암스트롱의 왓어 원더풀 월드(What A Wonderful World)를 콧노래 부르며. 꽃향기 속에 몇 년 전 슬픔에 가득 찼던 내 모습도 보인다. 그땐 그랬었지. 그럴 때가 있었음으로 오늘 더욱 감사하게 된다. 나는 그것을 축복이라 생각한다. 깊고 짙은 향을 맡는다. 그렇게 가끔 길 위에서 그렇게 하나님의 위로를 만난다. 그것 역시 감사한 일이다. 지금은 하루의 한줌쯤 우울하고 그 나머지 시간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시간 한 켠에 나를 사로잡는 구절이 있다.

 

삶을 하나의 무늬로 바라보라 / 행복과 고통은 / 다른 세세한 사건들과 섞여들어 / 정교한 무늬를 이루고 / 시련도 그 무늬를 더해 주는 색깔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