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2:1~16 모세와 미리암 2020. 7. 19

 

1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2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그동안 많이들은 내용이 무엇입니까? 주의 종을 비방하면 문둥병이 걸린다는 말입니다. 저도 어려서부터 들어온 말씀입니다. 이 본문을 이런 식으로 해석을 하려면 저도 말할 내용이 많습니다. 한 교회를 20년 넘게 담임목사로 있으면 온갖 일들을 다 보게 됩니다. 그동안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도 목사를 함부로 비방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러나 이 본문을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적용한다면 이단의 교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지 봅시다.

 

본문 1~3절을 봅니다. 봉독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합니다. 그러자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합니다. 비방한 이유는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할 때에 미리암과 아론과 의논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한 이유는 처음 아내 십보라가 죽었기 때문으로 보는 자들도 있지만 성경에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십보라가 죽은 후에 후처를 취하였다고 하더라도 왜 하필이면 이방 여자 그것도 흑인을 취하였느냐는 비방을 합니다. 모세는 그 당시에 이스라엘 전체의 절대적인 지도자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최고가문의 최고의 여자를 아내로 취하여도 되는데 왜 그런 여자를 취하였느냐며 비방을 합니다. 미리암이 모세를 향하여 여호와께서 너에게만 말씀하셨느냐고 합니다. 우리에게도 말씀하셨기에 우리도 선지자라고 합니다. 이 말을 여호와께서 들으셨다고 합니다. 모세는 이 말을 듣고 가만히 있습니다. 가만히 있었다는 표현을 모세는 그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였다고 합니다.

 

아론은 모세보다 세 살 위의 형입니다(7:7). 미리암은 아론보다 나이가 더 많은 누나입니다. 모세의 부모가 모세를 석 달 동안 키우다가 갈대상자에 담아 나일강에 버립니다. 그때 갈대상자를 따라간 사람이 미리암입니다. 바로의 공주가 그 갈대상자를 보고 시녀에게 가져오게 합니다. 갈대상자를 열자 아기가 웁니다. 모성애가 발동하여 자기 아이로 기르려고 할 때에 미리암이 유모를 알아봐 주겠다고 하여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을 소개합니다. 그러면 적어도 미리암은 10살 가까이 되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미리암은 모세의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고 모세를 업어서 키운 누나가 됩니다(2:1~10).

 

출애굽기 15:20~21절입니다. “20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21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홍해를 건넌 후에 모세가 먼저 찬양을 하고 화답송을 미리암이 합니다. 미리암을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론도 대제자장으로 임명을 받아 우림과 둠밈의 재판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미리암과 아론과 아무른 의논도 하지 않고 허락도 받지 않고 구스 여인과 결혼한 것에 대하여 비방을 합니다.

 

비방을 받은 모세는 아무른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모세의 온유함이 지면에서 더하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온유(溫柔)함은 성질이 온화하고 부드럽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어의 온유함이란 단어는 억압된, 비참한, 낮아진, 가난한, 빈곤한, 온유함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유함이란 모세가 낮아진 마음이 되었다는 겁니다. 모세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가난하고 비천한 인간인지를 알았기에 미리암과 아론의 비방에도 가만히 있는 겁니다. 그러면 모세가 무엇 때문에 온유하게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자신의 속이 문둥병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4:6~8절입니다. “6 여호와께서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의 손에 나병이 생겨 눈 같이 된지라 7 이르시되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의 손이 본래의 살로 되돌아왔더라 8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만일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표적의 1)표징을 받지 아니하여도 나중 표적의 2)표징은 믿으리라

 

모세가 여호와의 부르심을 거부하면서 사람들이 자기를 믿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때 두 가지 표징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 표적은 모세의 손의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되고 그 꼬리를 잡으니 다시 뱀이 됩니다. 그런데 두 번째 표징은 방금 읽은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첫 번째 표징은 믿지 않아도 두 번째 표징은 믿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두 번째 표징을 바로 왕 앞에서는 행하지 않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모세는 자기의 속이 나병임을 안 겁니다. 그러므로 그 손을 다시 품에 넣었다가 빼니 깨끗하게 되었다는 것은 자신의 속이 어떠함을 알았기에 마음이 낮아진 겁니다. 물론 이 사건만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여 만남으로 인하여 자신이 어떤 긍휼을 입었는지 알게 됩니다.

 

본문 4~8절입니다. “4 여호와께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에게 이르시되 너희 세 사람은 회막으로 나아오라 하시니 그 세 사람이 나아가매 5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로부터 강림하사 장막 문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시는지라 그 두 사람이 나아가매 6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7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8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여호와께서 갑자기 세 사람을 불러놓으시고 모세를 변호하여 주십니다.

 

출애굽기 33:18~23절입니다. “18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21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22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름으로도 안다고 합니다. 모세가 주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할 때에 주님께서 하나님의 선한 것을 모세 앞에 지나가게 하시면서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합니다. 여호와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호와의의 영광을 직접 보면 죽을 수밖에 없기에 여호와께서 모세를 반석위에 숨겨두셔야 여호와의 영광의 뒷모습을 보게 됨을 압니다. 반석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뒷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 반석이 그리스도라고 바울은 말합니다(고전10:4). 그리스도의 희생 안에서 긍휼을 입음을 안 것입니다.

 

본문 9~12절입니다. “9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10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나병에 걸렸는지라 11 아론이 이에 모세에게 이르되 슬프도다 내 주여 우리가 어리석은 일을 하여 죄를 지었으나 청하건대 그 벌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 12 그가 살이 반이나 썩어 모태로부터 죽어서 나온 자 같이 되지 않게 하소서

 

여호와께서 모세를 비방하는 미리암과 아론에 대하여 진노하고 떠나시자 미리암이 나병이 걸렸습니다. 그러자 아론이 모세를 향하여 내 주라고 고백하면서 우리가 어리석은 일을 하여 죄를 지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벌을 우리에게 돌리지 말아달라고 합니다. 나병이란 살이 썩어 가는데도 고통이 없는 질병입니다. 자신들이 선지자가 아니라 비로소 모태로부터 나병이 든 죄인임을 알았습니다. 모세는 이들보다 먼저 안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전적인 나병환자임을 알 때에 구원을 요청하게 됩니다.

 

레위기 13:12~17절입니다. “12 제사장이 보기에 나병이 그 피부에 크게 발생하였으되 그 환자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퍼졌으면 13 그가 진찰할 것이요 나병이 과연 그의 전신에 퍼졌으면 그 환자를 정하다 할지니 다 희어진 자인즉 정하거니와 14 아무 때든지 그에게 생살이 보이면 그는 부정한즉 15 제사장이 생살을 진찰하고 그를 부정하다 할지니 그 생살은 부정한 것인즉 이는 나병이며 16 그 생살이 변하여 다시 희어지면 제사장에게로 갈 것이요 17 제사장은 그를 진찰하여서 그 환부가 희어졌으면 환자를 정하다 할지니 그는 정하니라

 

마태복음의 산상수훈 결론이 마태복음 8장에서 나병 환자의 치유사건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율법의 의로 깨끗하다는 자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전신에 나병이 든 자라고 하신 말씀이 산상수훈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심층을 말씀하신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죄가 어떠한지를 알고 전적인 죄인이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병임을 아는 자들은 예수님께 고쳐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산상수훈 이후 처음 고쳐달라고 한 사람이 나병환자입니다. 오늘 본문의 미리암이 자기도 선지자라고 모세를 비방하다가 나병이 든 것입니다. 모세를 비방한 것은 구스 여인도 싸잡아 비방한 겁니다. 이렇게 비방하는 미리암의 속이 나병이 가득한 겁니다. 그런데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모르는 겁니다. 그러나 온유한 자 앞에서는 다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온유한 자는 자신이 어떤 죄인인지 아는 사람입니다.

 

본문 13~16절입니다. “13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의 아버지가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을지라도 그가 이레 동안 부끄러워하지 않겠느냐 그런즉 그를 진영 밖에 이레 동안 가두고 그 후에 들어오게 할지니라 하시니 15 이에 미리암이 진영 밖에 이레 동안 갇혀 있었고 백성은 그를 다시 들어오게 하기까지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16 그 후에 백성이 하세롯을 떠나 바란 광야에 진을 치니라

 

미리암이나 아론이나 자신들이 나병임을 알고서 모세에게 죄를 지었다고 고백합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고쳐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아버지가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어도 이레 동안 부끄러워하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이 말씀은 미리암의 비방을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비록 고침을 받았다고 하여도 이레 동안 격리시키게 하십니다. 이레 동안 격리되어 있고 그동안 백성들은 행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에 백성들이 행진함으로 이 사건을 온 이스라엘에 알린 겁니다.

 

오늘 우리는 모세입니까? 미리암입니까? 모세나 미리암이나 다 같은 죄인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먼저 나병임을 알게 되었기에 조금 더 마음이 낮아진 겁니다. 그래서 미리암과 아론의 비방에 응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미리암이 나병이 듦으로 자신이 어떤 죄인인지 알게 됩니다. 이후로 미리암의 말은 한 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입을 닫을 수밖에 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리암이 죽어서 묻혔다는 내용만 기록됩니다(20:1). 그리고 나병의 규례를 미리암의 예로 말씀합니다(24:9).

 

오늘 우리가 남을 보고 비방을 합니까? 하지 않습니까? 세상 모든 일에 다 비방을 합니다. 정치, 종교, 경제 모든 분야에 다 비방을 합니다. 어찌 그리 아는 것이 많은지 입을 대지 않는 부분이 없습니다. 그러면 교회당에 모여서는 비방하지 않습니까? 목사도 비방을 잘합니다. 교인들도 그런 목사를 닮아서 비방을 잘합니다. 그뿐 아니라 교인들끼리도 비방을 합니다. 그래서 이런 꼴 보기 싫어서 교회당에 모이기 싫었는데 마침 코로나19 라는 절호의 기회가 생겼습니다. 마음 놓고 오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서로 부닥치지 않으면 자기가 나병임을 모릅니다. 속속들이 자신이 나병임이 드러나는 곳이 교회라는 모임입니다. 만남과 부딪힘을 통하여 자신이 어떤 죄인인지 알아야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자신의 모습이 모태로부터 살이 반이나 섞어서 죽어 나온 자와 방불함을 알아야 주님께 요청합니다.

 

마태복음 11:15~19절입니다. “15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16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7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18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2)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합니다. 세례요한을 향하여 귀신을 들렸다고 하는 자들이 예수님을 비방합니다.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함과 같이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먹고 마시니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함을 받습니다. 여기서 행한 일의 각주를 보면 어떤 사본에 그 자녀들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 지혜이신 예수님을 옳다고 믿는 자들은 그 지혜의 자녀들이 믿고 옳다고 합니다. 그 자녀들로 부름 받는 자들이 세리와 죄인들입니다.

 

마태복음 11:25~30절입니다.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음이 온유한 예수님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죄인이라서 온유한 분이 아니라 창조주시기에 우리의 속을 다 아시기에 온유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온유함에 의지하는 자들은 자신이 살이 반이나 섞어서 죽어서 태어난 자와 같음을 아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세리와 죄인들입니다. 이들은 자타가 인정하는 죄인들인데 이들이 예수님의 온유함에 자신을 맡기는 겁니다. 그러므로 미리암의 비방은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과 이방인을 영접하는 것을 비방한 죄가 되기에 나병이 든 겁니다. 그 비방으로 나병이 들자 아론이 용서를 구합니다. 모세가 기도하여 병이 고침을 받습니다. 그러면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한 것은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을 영접하는 것을 비방한 것과 같은 비방이기에 바리새인의 모습입니다.

 

누가복음 7장에 죄 많은 여인이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씻기고 머리카락으로 닦고 향유를 붓고 그 발에 입 맞추기를 쉬지 않은 여인을 보고 바리새인이 속으로 비방을 합니다. 예수님은 그 속을 아시고 바리새인 시몬에게 빚진 자의 용서를 말씀하십니다. 이 여인은 많이 용서 받았기에 많이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리새인은 자신이 용서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기에 예수님과 이런 여인을 비방한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론이 모세에게 간구하기를 자신들이 살이 반이나 섞어서 죽어 태어난 자처럼 되지 않도록 기도하는데 사실은 자신들이 그런 자로 보여야 온유한 자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 온유하신 분이 십자가로 단번에 영원히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 온유함에 자신을 맡기시기 바랍니다.